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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김서령의 ‘여기 사는 즐거움’

“20만원을 200만원으로 늘려 쓰는 법, 자연이 알려줬죠”

지리산의 부부 파수꾼, 나무꾼과 햇살

  • 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20만원을 200만원으로 늘려 쓰는 법, 자연이 알려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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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 나무꾼이 한때 환경운동단체 ‘에코붓다’ 소속 활동가였다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네 살 꼬마가 수도하는 승려처럼 제 먹은 그릇을 정갈하게 비워내는 모양은 낯설고 신통했다. 두 살 찬유 또한 다르지 않았다. 셋은 밥그릇을 싱크대 안으로 운반하는데 찬유는 아직 숟가락질이 서툴러 부스러기를 조금 흘렸을 뿐이고 싱크대까지 가져가는데 시간이 좀 더 걸릴 뿐이다.

나무꾼은 좀체 입을 열지 않는다. 자신의 얘기는 되도록 빼달라고 한다. 보이는 그대로의 삶이지 더 이상 숨은 철학이 있을 리 없다고 손사래를 친다.

우리(사진기자와 나)를 그 마을에 데려다준 택시기사가 이렇게 말했다.

“취재하러 간다꼬예? 저렇게 많이 배운 사람이 농사짓고 사는 것은 장려할 일이 아니지예. 배운 사람은 배운 사람대로 도시에서 할 일이 따로 있는 거잖아예. 큰 공부해놓고 농사지으면 학비가 아깝잖아예.”

그 말에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는데 아이들의 밥상을 보고 있자니 답이 절로 정리된다. 머릿속의 생각을 제 삶 속에서 직접 실천하겠다는 것이다. 백번 선언하고 구호를 외치는 것보다 한걸음 실천이 시급하다는 것을 말없이 보여주려는 것이다. 논농사가 수월치 않음에도 고집스럽게 논을 부쳐 스스로 만들어낸 식량으로 아이를 키우겠다는 것이 나무꾼의 철학임을 나는 어렵지 않게 납득한다.



돌배나무의 선물

“20만원을 200만원으로 늘려 쓰는 법, 자연이 알려줬죠”

막내 찬유와 함께 한 햇살.

우린 지금 음식이 지천인 시대에 살고 있다. 한 해 버려지는 음식쓰레기가 15조원 상당이라던가. 음식이 귀하지 않다는 것은 그걸 기른 흙에 대한 존귀함을 잃어버렸다는 뜻이다. 흙은 자연이다. 자연을 소홀히 여기는 것이 인간생존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일임을 우리는 뒤늦게 허겁지겁 깨닫고 있다. 인류는 지금 커다란 전환점에 놓여 있다. 돈을 지급하고 탄소배출권을 사지 않으면 탄소를 함부로 내뿜을 수도 없는 지점에 당도했다. 가장 편리하고 진보적인 문명기인 줄 알았던 이 시대가 오히려 가장 어리석고 파괴적일 수도 있다는 자각은 당황스럽다.

우린 날마다 화학비료, 제초제, 방부제, 착색료, 조미료, 방사선이 범벅된 밥상 앞에 앉게 됐다. 이런 식품을 공급하는 거대 곡물회사와 식품회사, 유통회사에 피땀 흘려 번 돈을 갖다 바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이건 목숨의 존엄에 대한 모독이다. 그러나 개인의 힘으론 좀체 그 사슬을 끊기도 어렵다.

나무꾼이 비료 없이 퇴비만 줘서 키운 무는 크기가 그저 갓난아기 팔뚝만했다. 서울서 씨름선수 장딴지만한 무만 보던 내 눈에 그건 미니어처처럼 장난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맛은 기가 막혔다. 달고 야물고 향긋했다. 그건 배추도 마늘도 깨도 마찬가지였다.

“우린 제초제 안 쓰고 멀칭도 안 해요.”(나무꾼)

“멀칭이 뭐예요?”(나)

“비닐 씌우는 농법이지요. 그것 하면 김매는 품이 안 들지만 잡초 뽑기 싫으면 나는 대로 그냥 내버려둬요.”(나무꾼)

“인제 한 10년 했으니 베테랑 농부가 됐나요?”(나)

“아니요. 아직 얼치기예요. 농사는 어릴 때부터 몸에 배지 않으면 진짜 꾼이 되긴 힘들어요.”(나무꾼)

햇살네 집 앞엔 늙은 거목이 여러 그루 있다. 아무렇게나 솟은 품이 누가 일부러 심은 게 아니라 어디선가 씨가 날아와 절로 솟아난 것 같다. 물론 햇살 가족이 이 마을에 들어오기 전부터 뿌리박고 자라던 놈들이다. 뽕나무는 여름에 오디를 무진장 쏟아내고 돌배나무는 가을에 탱자만한 열매를 비처럼 뿌려준다.

“오디는 한번 털면 20㎏는 족히 떨어져요. 한 해에 대여섯 번 하니까 아마 100㎏쯤 수확할 걸요.”

아이들의 좋은 간식이지만 다 먹을 순 없으니까 햇살은 가마솥에 불 때서 오디잼을 만든다. 그걸 알고 몇 해 전부터 여기저기 친구들이 이 야생 오디잼을 주문해온다.

돌배도 마찬가지다. 그냥 먹긴 알이 잘지만 돌배열매를 잔뜩 주워 읍내의 즙 내리는 곳에 가져다주면 겨우내 아이들 마실 음료가 된다. 야생열매이니 과수원 배보다 효능이 좋을 것도 확실하다.

“돌배를 줍자 하면 아이들이 무척 좋아해요. 큰아이 현승(맑음)이가 동생들 데리고 단숨에 두 박스쯤은 거뜬히 주워요. 물론 찬유는 두 개 주워 넣고 세 개는 밖으로 버리지만….” 돌배나무 진액은 정말 달콤했다. 따로 노동하지 않고도 절로 자연이 내미는 선물을 아이들과 함께 받아 안는 것이 지금 햇살이 지리산에서 누리는 특혜다. 게다가 돌배나무엔 그물 침대를 매어놓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는 오후엔 거기 누워 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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