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2001년으로 접어들면서 커다란 지각변동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민주당 의원 3인의 자민련 이적으로 빚어진 정치판의 소용돌이는 DJP공조 복원-안기부 선거자금 신한국당(한나라당 전신) 유입사건 수사-잇따른 개헌론 제기-YS(김영삼 전대통령), JP(김종필 자민련명예총재)의 정치전면 복귀-민주당 장재식 의원 추가 이적 등 시시각각 새로운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정치는 국민에게 기쁨을 주지 못하지만 빠른 변화와 충격적인 행위들을 통해 사람들 혼을 빼놓는 느낌이다. 신년벽두부터 불어닥친 이러한 정치권의 급박한 움직임은 궁극적으로 정계개편이란 큰 그림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여권이 힘의 열세를 느끼는 한 끊임없이 정계개편 욕구에 시달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아예 달라진 여권의 초강경 자세가 틀림없이 정계개편을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규정하고 경계심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이회창 한나라당총재는 이와 관련 “상식을 벗어난 의원 꿔주기와 DJP공조복원은 단순히 자민련을 교섭단체로 만드는데 그치지 않을 것임을 잘 안다”며 정계개편 가능성을 경계했다.
문희상의 ‘토네이도 이론’
여권내 정계개편론을 자세히 알기 위해선 대표적 정계개편론자인 문희상 민주당 의원의 소신을 더듬어 볼 필요가 있다.
문의원은 지난 98년 현정부 초대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 재임시절 실제로 정계개편을 시도하려다 좌절당한 경험이 있다. 문의원의 정계개편론은 ‘반이회창세력’의 전면결집을 지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DJ와 YS의 화해를 통해 JP와 한묶음으로 엮어내는 3김연대가 정계개편의 기본 목표이다. 이를 위해 한나라당의 상도동계와 대타협을 통해 새로운 정치세력을 형성, 정치권을 완전히 뒤바꾸겠다는 발상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전두환, 노태우씨 등 전직대통령과 김윤환 민국당대표, 박철언씨 등 각계 세력을 모두 결집해 동서화합과 정권재창출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거창한 플랜이다. 문의원의 정계개편론은 ‘토네이도(Tornado) 이론’이라 불린다. 여름철 미국을 강타하는 토네이도처럼 거대한 폭풍이 형성되면 주변의 흐름을 다 빨아들일 수 있다는 논리다. 이 흐름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칠수록 오히려 폭풍에 휘말려 들어간다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대규모 정계개편은 정권초기 집권당의 힘이 강력할 때 가능하다는 단서가 달려 있다. 레임덕을 걱정하는 현상황에서는 기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문의원은 이같은 구상이 김중권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과 이종찬 전의원 등의 ‘낚시론’에 밀려 좌초됐다고 설명하고 있다. 김중권 대표 등은 대규모 새판짜기 형태의 정계개편론이 위험한 만큼 낚시하듯이 한나라당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한 명씩 영입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김대중 대통령에게 건의했고 실제 이러한 방향으로 추진됐다. 문의원의 정계개편론이 책상 서랍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그보다 덜 충격적인 김중권 대표의 정계개편방안이 채택된 셈이다.
그렇지만 문의원과 같은 주장을 펴는 여권내 인사들이 아직 다수 존재하고 여전히 다양한 정계개편 시나리오를 제기하며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김중권체제는 두 가지 노림수를 안고 출범했는데, 첫째는 정국안정이요 두번째는 외연확장이었다”며 “전자는 자민련 원내교섭단체 구성으로 현실화됐고 두 번째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고 의미심장한 분석을 내놓았다.
현재 제기되는 정계개편은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 문의원이 제기하는 방식보다는 폭이 축소된 형태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최근의 정계개편론은 정치권의 전면쇄신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대권쟁취를 위한 세력확보방안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 때문에 어떤 정계개편이든 2002년 대선 체제를 겨냥해 짜맞춰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여권이 추진하는 정계개편방안은 지역연합론과 민주연합론으로 나뉘어진다. 전자는 동서연합을 주창하는 흐름과, 호남, 충청권 연합을 기본으로 영남권 일부를 묶어내자는 부분 지역연합론으로 나뉜다. 또 영남권 일부를 묶어내는 데도 PK를 선택할지 TK를 선택할지 여부를 두고 팽팽한 의견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지역연합론’ 대 ‘민주연합론’
이같은 복잡한 구상은 구체적인 인물을 대입할 경우 비교적 쉽게 이해된다.
여권이 정계개편의 기본 동력을 DJP공조로 잡은 이상,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길은 3김연합이다. DJ가 YS까지를 껴안아 3김이 공동으로 추천하는 대통령후보를 내는 방식이고 이를 위해 세력을 규합하는 경우다.
이 구상은 지역연합과 민주연합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여권 인사들 사이에서 최고의 플랜으로 각광받고 있다.
YS는 DJ를 향해 온갖 독설을 내뿜고 있지만 대선후보와 관련해서는 “영남권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후보가 나와야 한다”는 말로 열린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일반적으로 YS의 영향력이 통할 수 있는 후보라면 지원할 수 있다는 논리로 해석된다.
YS는 이회창 총재보다 이인제 최고위원, 노무현 해양수산부장관 등 여권후보들에게 한결 친숙함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1월1일 YS가 이인제 최고위원으로부터 큰절을 받고 흐뭇해하는 사진은 많은 사람들의 화제가 됐다. 이총재에 대해서는 무차별 비난을 퍼붓는 모습과 대비됐다. 민주당의 대권주자들은 대체로 YS휘하에서 정치에 입문했고 YS와 정치적 동질성이 많은 사람들이다.
YS의 대변인격인 한나라당 박종웅 의원은 이와 관련, 누차 기자들에게 “단순히 숫자를 늘리는 정략적 차원의 개편이 아니라 구국을 위한 차원에서 명분이 주어진다면 3김연합도 신중히 검토될 수 있다”며 신축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다만 YS가 설령 이같은 정계개편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한나라당 내부에 YS를 따라나설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김덕룡, 박관용, 강삼재 의원 등 민주계로 통칭되는 의원들은 모두 스스로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독자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YS의 협력은 상징적인 효과만으로도 충분히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같은 흐름과 관련, 주목되는 것은 JP의 역할이다. JP는 지난 1월8일 김대중 대통령과의 청와대 회동 이후 ‘임기 말까지 공조’를 합의했다고 밝혀 주목을 받고 있다. 그 동안 두 사람은 공조시한과 관련해서는 일절 언급한 적이 없는데 이례적으로 시한을 밝힌 것이다. 이는 현정권 내내 공조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차기 대선에서 정권재창출을 위해서도 함께 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특히 합당도 염두해 둔 발언이라는 분석이 많다.
JP는 최근 부쩍 정치에 대한 의욕을 과시하고 있다. JP는 1월9일 기자들과 만나 “나이 70인 나에게 지는 해라는 지적도 맞는 얘기”라며 “그래도 황혼으로 지면서 서쪽 하늘을 한번 벌겋게 물들여봤으면 하는 과욕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역할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강조한 말이다. JP는 총재를 맡고 있지 않을 뿐 사실상 정치전면에 나서 자민련을 이끌고 있고 각종 정치적 발언에 어려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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