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 뿌나의 경제는 오쇼 라즈니쉬 덕에 굴러간다’는 말이 나도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오쇼 명상 리조트.’ 전세계 100여개 나라에서 매년 6만명씩 찾아오는 이곳은 ‘영혼의 스승’에서부터 ‘섹스 구루’까지 극단적 평가를 받고 있는 오쇼 라즈니쉬의 독특한 명상법을 즐기는 휴양소다. 에이즈 검사에 통과해야만 입장할 수 있는 다소 ‘신비스런’ 이곳을 본지 기자가 직접 취재했다.
기자는 지난해 12월26일 서울에서 오후 비행기로 8시간 날아가 그 다음날 새벽 1시 봄베이공항에 도착한 뒤, 숨쉴 겨를없이 승용차 밴을 잡아타고 5시간 동안 험악한 도로와 운전기사의 아슬아슬한 묘기에 진땀을 흘린 끝에 이곳을 찾았다.
오쇼 아쉬람에서 21세기형 ‘명상 산업(Meditation Industry)’의 가능성을 확인해보자는 취지였다. ‘인구 250만의 뿌나 사람들은 오쇼 아쉬람 때문에 먹고 산다’는 다소 과장섞인 말이 나돌 정도로, 정신세계를 의미하는 명상과 경제적 측면에서의 관광 수입이 절묘하게 배합된 곳이기 때문이다.
뿌나는 해발 500m가 넘는 고원지대에 자리잡아 울창한 숲에 연중 온화한 기후를 자랑하는 도시. 이런 환경적 이점과 오쇼의 세계적 명성 때문에, 오쇼 아쉬람은 인도의 수천군데가 넘는 명상소들 가운데서 가장 많은 수의 외국인들이 방문하는 곳이라 한다.
에이즈 테스트를 받다
뿌나 시내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오쇼 아쉬람의 메인 게이트(출입구)에는 검은 색으로 덧칠한 대문이 웅장하게 버티고 서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수많은 남녀 외국인들이 이 문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기자는 외국인들 무리에 섞여 별 생각없이 그 안으로 들어가려 하다가 문 앞을 지키고 서 있던 푸른 눈의 외국인에 의해 그만 제지당하고 말았다. 메디테이션 패스(Meditation Pass, 명상 출입증)가 없다는 것이다.
적갈색 원피스 비슷한 옷을 걸친 이 남자 외국인은 정문 오른쪽에 있는 웰컴센터(Welcome Center)를 손으로 가리키며 거기서 절차를 밟으라고 말했다. 조금 후에야 알게 됐지만 취재를 하러 온 기자라는 신분이 이 수문장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쉬람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 얼굴 사진이 부착된 면허증 같은 것을 그 외국인에게 보여주고 문지방을 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웰컴센터로 가 남들이 하는 것처럼 절차를 밟았다. 아쉬람 출입 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했더니 이번에는 웰컴센터 안내자가 에이즈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이 검사에서 음성반응이 나와야만 출입증이 발부돼 아쉬람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메디테이션(Meditation, 명상)과 에이즈 테스트?’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듯한 느낌을 주는 두 단어. 그러나 이번 짬에 에이즈 검사를 한번 받아보자는 호기심이 생겼다. 한국에서는 별로 받아볼 기회가 없었으니까.
에이즈 검사는 피를 뽑은 당일로 검사 결과를 알 수 있는 ‘퀵 테스트’와 하루 이틀 뒤에 결과가 나오는 ‘일반 테스트’,두 종류가 있다고 했다. 쇠 뿔도 단 김에 빼라 했던가, 일반 코스보다 비싼 루피(인도 화폐 단위)를 물고 퀵 테스트를 밟았다. 웰컴센터 안내자는 오후 4시쯤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 오쇼와 그의 아쉬람에 대한 영문 안내책자를 뒤적거리며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극단적 평가받는 오쇼
오쇼는 시인 류시화와 무용가 홍신자의 스승으로 한국에도 익히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우리나라에도 한때 ‘오쇼 라즈니쉬 붐’이 일어 그가 남긴 강의록을 책으로 엮은 ‘노자 도덕경 강론’ ‘금강경’ ‘42장경’ ‘우빠니샤드’ 등이 번역 출판된 바 있고, 그의 저서 ‘배꼽’은 140만부나 팔려나가는 초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아마 한 외국인의 저작물이 국내에서 무려 50여권이나 번역돼 나와 있는 것도 오쇼 외에는 찾아보기 드문 예일 것이다.
오쇼는 그 저서나 행동에서 기존의 인습적 사고나 기성체제의 세속적 권위에 순응하고 타협하기를 철저히 거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 때문에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평가를 받고 있는 명상 사상가다. 오쇼를 추종하는 쪽에서는 그를 ‘위대한 영적 스승’이라고 하는 반면에 그 반대쪽에서는 ‘이재(理財)와 섹스에 밝은 구루(Guru, 깨달은 사람)’라고 비아냥거린다.
오쇼의 전기에 의하면 그의 정확한 인도 이름은 모한 찬드라 라즈니쉬(Mohan Chandra Rajneesh). 1931년 자이나교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시절이던 1952년에 마치 원자폭탄의 폭발 같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며, 1958년 26세의 나이에 대학의 철학교수로 임명된 후 9년 동안 교편을 잡았다.
그러다가 1966년 교수직을 사임한 뒤 인도 각지를 떠돌면서 종교 집회나 명상 모임에 초청돼 강연과 논쟁을 벌였다.
그는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힌두교 샹까라 교단을 혹독히 비판하는 등 기성 종교를 가차없이 공격했고, 간디의 반현대적 기술반대적 사상과 빈곤을 찬양하는 인도의 뿌리깊은 전통에 독설을 퍼붓는가 하면, 테레사 수녀를 두고 산아제한을 반대하면서 인구증가와 빈곤이 낳은 고아들을 돌봄으로써 가톨릭을 선전하는 위선자라고 몰아붙이기도 했다. 특권계급의 위선을 폭로하면서 인간의 자유를 설파하는 그는 가는 곳마다 기성체제측의 분노를 자아냈다고 한다.
1968년 오쇼는 봄베이에 정착했다. 여기서 그는 인도 전통의 정적인 명상법이 갖가지 신경증적 증상으로 속을 앓고 있는 현대인에게는 부적합하다며, ‘광란의 시간’을 의도적으로 허용해 카타르시스를 거쳐 사람의 내면이 고요해지도록 유도하는 ‘혁명적인’ 명상법을 내놓았다.
이것이 오늘날 전 세계의 오쇼 추종자들이 널리 실천하고 있는 ‘다이내믹 메디테이션(역동적 명상)’이다. 그 무렵부터 그의 주위에는 일단의 서양인 제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으며, 그는 ‘바그완(Bhagwan, 축복받은 자)’으로 불렸다.
오쇼는 1974년 명상소를 봄베이에서 뿌나로 옮기면서 지금의 오쇼 아쉬람을 건립했다. 70년대 후반 서양인 제자들에 의해 그의 명상법이 세계 각국으로 알려지면서 오쇼 아쉬람은 하루 방문객 2000명이 넘는 기록을 세웠다. 언제나 축제같은 분위기인 동적 명상과 성(性)을 명상의 수단으로 설파하는 오쇼의 가르침은 동양세계에 매료된 서구인들로부터 더욱 폭발적인 주목을 끌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쉬람으로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엄청난 부를 축적한 오쇼 측근들의 분열과 오쇼의 건강 문제 등이 겁쳐 오쇼 일행은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81년 미국으로 떠난다.
오쇼는 제자들과 함께 미국 오레곤주의 황무지를 개간, 농업공동체를 꾸리면서 다시 급성장한다. 불과 4년만에 그는 90여대의 롤스로이스 차를 마련하는가 하면 대학과 은행 등 기업체를 설립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그의 측근이 돈을 횡령하는 사태가 발생, 법정으로 비화되면서 결국 오쇼는 미국에서 추방당한다.
그는 이후 세계 각국을 떠돌아 다니다가 1987년 뿌나의 아쉬람으로 돌아왔고, 90년 1월19일 건강이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 오쇼가 떠난 후 그의 아쉬람은 핵심 제자들에 의해 현재까지 공동체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이윽고 오후 4시가 됐다. 약간 설레는 마음으로 웰컴센터로 갔더니 기자의 반명함판 사진이 부착된 ‘메디테이션 패스’가 발급돼 있었다. 출입증의 유효기간은 2001년 3월26일까지. 이 기간을 넘기면 에이즈검사와 함께 출입증을 재발급받아야 한단다.
아쉬람을 출입하는 사람들은 옷 차림새로 오쇼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다.
대문의 외국인 수문장이 입고 있는 것처럼 목에서 발목까지 통으로 이어지는 적갈색 원피스 형태의 옷을 이곳에서는 ‘머룬 로브(maroon rove)’라 부르는데, 오쇼는 생전에 이 머룬 로브를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따라서 이 옷차림을 한 사람들은 대개 오쇼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산야신(명상 수행자라는 의미)’으로 독특한 산스끄리트 이름을 갖고 있다. 오쇼 아쉬람에서는 본명보다는 산야신 이름이 더 통용된다. 반면에 일반 옷차림을 한 사람들은 이곳을 탐색하거나 관광차 온 이들이다. 물론 산야신이 아니더라도 머룬 로브를 사 입을 수 있다.
기자는 내친 김에 아쉬람 밖의 옷가게에서 400루피를 주고 머룬 로브를 사 입었다. 인도인 옷가게 주인은 어리벙벙한 초짜 외국인임을 알아챘는지 처음에는 그 10배 가격인 4000루피를 불렀는데, 마침 옆에 있던 한국인 산야신이 보다못해 거드는 바람에 정상 가격으로 살 수 있었다.
인도에서 10일을 머무는 동안 인도상인의 터무니없는 바가지 씌우기와 오토릭샤(세발 달린 자동차) 운전사들과의 요금 문제로 한번도 싸우지 않은 날이 없었다. 뻔히 알고 있는데도 돈을 더 받으려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이 탄로나도 태연한 참으로 뻔뻔스런 얼굴들이었다. 조용히 명상 하러 왔다가 인도 사람들과 돈 문제로 다투는 다른 외국인들을 보면서, 영혼의 성찰은커녕 인간성만 버리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스모킹 메디테이션
바깥 세상과는 달리 아쉬람 안의 세계는 그야말로 정적과 평화가 감도는 파라다이스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루 입장료 150 루피를 내고 출입증에 그 증표를 붙이는 것으로 파라다이스에 들어갈 수 있다. 총 40에이커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오쇼 아쉬람은 푸른 숲이 우거진 열대의 오아시스 분위기를 내고 있다. 또 흰색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길, 아름드리 나무들 사이로 난 산책로, 올림픽 경기장 규모의 수영장과 테니스장, 레스토랑 등 자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내부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아무튼 자주색 로브를 사 입고 아쉬람 안으로 들어가 이곳저곳을 탐색하는 동안 ‘스모킹 메디테이션(Smoking Mediation)’이라는 이름이 붙은 외딴 장소가 눈에 띄었다. 아쉬람 안에서 유일하게 흡연할 수 있는 장소인데, 담배 피우는 것도 명상이라는 풀이가 재미있다. 이미 예닐곱 명의 애연가들이 담배 명상을 즐기고 있었다.
그중에 검은 색 로브(나중에 확인한 바지만 이 옷차림을 한 사람들은 명상 수련을 이끄는 지도자라고 함) 차림의 한 서양인 남성과 젊은 여성이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성이 주로 진지하게 질문을 하고 남성이 대답하는 쪽이었는데,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포옹을 하고, 다시 대화하다가 ‘느낌’이 통했는지 키스를 하는 행동을 반복했다. 마지막에는 여성이 자기 질문에 만족한 듯 ‘댕큐’하면서 남성과 헤어졌다.
한국인의 눈으로는 낯선 장면이지만 여기서는 그것이 보통의 행동인 것처럼 보였다. 이런 장면은 수시로 목격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남녀 두 사람이 구면인 듯 반갑게 만나더니 깊은 포옹을 나누면서 서로의 감정을 느껴보는 듯했다. 그것은 서구사회의 일반적인 포옹과도 달랐다. 입을 다문 채 가슴과 가슴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듯 오랫동안 끌어안고 있던 두 남녀는 비로소 무언의 대화를 마쳤다는 듯이 밝은 얼굴로 헤어지는 식이었다.
오쇼 아쉬람이 성(性)에 관해 개방적이라는 점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쉬람의 화장실과 사우나실은 남녀 구별이 없다는 점이다. 특히 사우나실은 남녀가 벌거벗고 함께 이용할 수 있다. 이것은 폐쇄되고 기피돼온 성을 오히려 드러내서 적극적으로 명상에 활용해야 한다는 오쇼의 지침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섹스는 명상의 수단
흔히 오쇼가 기성 종교로부터 이단시되거나 사회로부터 비난받는 빌미가 되는 것이 바로 성에 대한 그의 진보적인 사상이다. 그가 남긴 ‘대담하게 죄를 지어라’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신이 그대에게 성욕을 주었다면 그것은 성욕을 통해 배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그대의 창조적 에너지다. 그것을 억누르지 말라. 그것을 다듬어 가능한 한 순수하게 하라. 왜냐하면 삶에서 많은 것을 창조해내는 것은 그대의 성적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그대가 자신의 성욕을 받아들이고, 성욕이 신의 선물이므로 거기에는 발견되어야 할 무엇이 틀림없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서, 신을 향한 깊은 사랑과 감사로 그것을 포용한다면, 그것은 거부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탐욕을 부린다거나,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지 말라. 그것은 그렇지 않다. 인생에는 더 많은 것이 무수하게 존재한다. 섹스는 다만 기초일 뿐이며 사원 전체가 아니다.…
다만 그대의 성적인 순간들을 순수한 기쁨과 행복과 평화로움으로 삼도록 하라. 섹스는 기쁨이며 슬픔이고 황홀경이면서도 고뇌이기도 하다. 그대는 이 역설을 이해하여야 한다. 잠시 동안 그대는 다른 사람 속으로 녹아들며 그러한 순간에는 에고(EGO)도 없다. 그리하여 커다란 기쁨이, 오르가즘의 기쁨이 있다.…”
오쇼는 성적 억압이 성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성에 강박되도록 만들었으며, 심한 경우 신경증의 원인이 된다고 주장했다.
사실 섹스는 고대인도 전통에 따르면 강력한 생명력이자 에너지이며, 그 에너지는 억압되거나 반대로 낭비되는 대신 올바른 통로를 열어주면 깨달음과 사랑으로 성화(聖化)될 수 있다고 한다. 한국의 한 오쇼 연구자의 말을 빌려보자.
“오쇼는 기피해야 할 대상으로서의 성이 아니라 명상의 수단으로써, 즉 삶의 최고 경지를 이루는 수단으로써 성을 말했다. 이러한 그의 설파는 당시 횡행했던 히피물결을 타고 물질문명의 무게에 짓눌려 정신적 황폐함을 느꼈던 서구 젊은이들에게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그가 서양권에서 많은 제자들을 두게 된 것도 상당 부분 ‘명상으로서의 성’ 문제를 적극적으로 펼쳤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사회 통념상 위험 수위를 넘은 ‘성 명상론’과 오쇼 자신의 여자와 관련한 소문 등으로 인해, 그는 ‘섹스 구루’라는 어감이 좋지 않은 별명도 갖게 된다. 오쇼 명상소에서 만난 어느 한국인 산야신은 “오쇼가 섹스 구루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오쇼는 인습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발언과 행동 때문에 이미 기성 종교나 사회체제로부터 적대감을 샀었고, 1980년에는 전통 힌두교 세력으로부터 암살당할 뻔도 했다. 그가 성을 명상의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들고 나왔을 때 ‘섹스 구루’라고 매도한 것은 그를 공격해 매장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오쇼는 미국에 가서도 사회시스템을 정면으로 공격했는데, 롤스로이스를 93대나 소유했던 것도 미국 자본주의를 희롱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사실 오쇼는 예수 이래 가장 위험한 인물이라는 평가까지 받았으며, 예수나 소크라테스와 같이 정치권력(청교도적인 미국의 레이건 정부)의 박해와 독극물에 의한 중독으로 건강을 잃어 58세에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지나치게 오쇼를 두둔하는 듯한 발언이나, 오쇼를 스승으로 받아들이는 그로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오쇼의 죽음과 관련해 이곳의 산야신들은 한결같이 오쇼가 미국의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감방에 구금돼 있는 동안 비밀리에 투입된 독약에 의해 골병이 든 것이 사망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또 오쇼 생전에 직접 그를 만나 강의를 들은 뒤, 뿌나에 아예 정착해 ‘시라지’라는 산야신 이름으로 살고 있는 한 한국인은 이렇게 말한다. “오쇼는 먹고 배출하는 데 익숙한 서양인들을 명상의 세계로 끌어들이기 위해 일부러 ‘성’을 미끼로 사용한 측면이 있다. 다이내믹 메디테이션 등 동적인 명상법도 동양인처럼 가부좌를 틀고 앉기를 힘들어하는 서구인들을 배려한 것이다. 그리고 그 작전은 먹혀들어가 오쇼 생전에 전세계 제자들이 25만명에 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쇼 사후 10년이 지나면서 오쇼 아쉬람이 명상적 측면에서 그 순수성이 퇘색하는 듯한 느낌도 받는다. 외국인들 중에는 명상은 젖혀놓고 여자를 사귀려는 것을 주목적으로 찾아오는 듯한 사람들도 더러 있는 것 같다.” 오쇼 아쉬람에서 자원봉사로 홍보 일을 맡고 있는 바산트 조쉬(Vasant Joshi, 산야신 이름은 사티야 베단트) 박사는 전세계 100여 개 나라에서 매년 평균적으로 6만명이 방문한다고 말한다. 아쉬람측에서 최근 2년 동안 이곳을 찾은 방문객을 대상으로 샘플 조사한 바에 의하면 전체 방문객의 50%가 처음으로 아쉬람을 찾았으며, 그 중의 80%는 오쇼의 산야신들이 아닌 일반인들이었다고. 연령별로는 26세에서 45세까지가 주류를 이루고, 교육수준별로는 정규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34%, 미술 음악 영화 등 예능계 출신이 30%, 나머지 30% 정도는 고등학교 졸업자라는 것.
매년 100여 나라에서 6만명이 찾아
또 오쇼의 가르침이 서양인들을 주로 겨냥했기 때문인지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수를 차지한다. 참고로 99년 통계에 의하면 독일인(28%)이 제일 많고, 이탈리아인(10.5%) 영국인(7%) 스위스인(4%) 등 유럽인들이 전체 방문객의 69.1%를 차지하고 있고, 그 다음으로 미국인(8%)이 차지한다.
아시아쪽에서는 일본인이 6%를 차지하고 있고, 한국인은 대만인과 함께 2%를 기록하고 있다.
기자가 방문한 시점에도 한국인들이 20여 명 정도 뿌나에 들어와 한두달 일정으로 명상을 하고 있었다.
한 한국인 산야신에 의하면 명상을 하러온 이탈리아 남자들이 유독 한국인 여성들을 명상 파트너로 ‘좋아해’, 한때 한국의 산야신들이 처음 오는 한국인 여성들을 위해 ‘이탈리아 남자를 조심하세요’라는 한국어 안내문을 아쉬람 게시판에 붙여 놓았을 정도라고 한다. 아마 그 이탈리안들은 명상보다는 여자 사귀기를 더 좋아했던 모양이다.
어떻든 매년 6만명씩 찾아오는 방문객은 매일 입장할 때마다 150루피(약 3.5달러)씩 내니 아쉬람의 입장료 수입만 따져도 어머어마한 액수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입장료를 낸 사람들은 ‘붓다 홀’이라 이름지어진 건물에서 매일 열리는 ‘다이나믹 명상’(아침 6시), ‘비파사나 명상(오전 9시45분), ‘쿤달리니 명상’(오후 4시 15분) 등에 공짜로 참여할 수 있고, 오쇼 아쉬람의 명상의 꽃인 ‘오쇼 화이트 로브 브라더 후드’라는 밤의 모임에서 명상과 축제적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이외에 개인적으로 명상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더 구체적으로 체험해보기 위해 각종의 명상테라피(명상요법) 프로그램에 참여할 경우 별도의 비용을 내야 한다. 이를테면 하루코스로 명상에 대한 안내를 해주는 ‘명상:마지막 자유’라는 프로그램은 18달러, 새로온 사람들을 위해 3일짜리 프로그램인 ‘느낌 열어주기(Opening to Feeling)’는 하루에 33달러를 내고 참여한다.
명상 테라피 전문가들을 위한 코스도 있다. 이 코스는 명상치료요법을 본격적으로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그룹별 강의인데, 예를 들어 오쇼 아쉬람에서 가장 인기 있는 ‘미스틱로즈’의 경우 한달 코스로 참여하는데 500달러가 들고, 힐링아트(치료 예술)라고 하는 두개천골요법의 경우 3200달러가 필요하다고 한다.
명상 비즈니스
한편 자원봉사자들이 오쇼 아쉬람의 모든 일을 맡아서 한다. 아쉬람 곳곳을 청소하는 일에서부터 부엌의 음식 만드는 일, 대문을 지키는 일까지 모두 ‘일 명상(Working Meditation)’이란 이름으로 산야신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이뤄진다. 심지어 명상법을 가르쳐주는 리더도 자원봉사자다. 대신 이들이 받는 혜택은 하루 입장료 150루피가 면제되는 정도이므로 아쉬람 입장에서는 엄청난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두는 셈이다.
오쇼 아쉬람의 수입과 지출 부분은 ‘21인 위원회’라고 불리는 ‘이너 서클(Inner circle)’에 의해서 관리되며 철저한 비밀사항에 속하므로 자세히 파악할 길은 없다. 아마 오쇼 생전 및 사후에도 돈 문제로 제자들 사이에 여러 차례 갈등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피하는 듯 싶었다. 최근에도 이너 서클 멤버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곳 산야신들은 ‘그러거나 말거나’하는 태도를 취했다.
아무튼 오쇼 아쉬람은 명상과 관광산업의 연계라는 측면에서 매우 성공적인 사례에 해당할 수 있을 것 같다. 오쇼 제자들의 뛰어난 사업감각(21인위원회에는 세계적 거부들이 적잖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기자는 확인하지 못했음) 덕분에, 인도인들 사이에 ‘구루 비즈니스(Guru Business)’ ‘명상 비즈네스(Meditation Business)’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고 한다.
기자는 500명 정도는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붓다홀에서 이뤄지는 공개 명상 프로그램 중 ‘회전 명상’을 관찰해보기로 했다. 머룬 로브를 입은 남녀 산야신들이 명상 시작음이 들리자 두 팔을 활짝 옆으로 펴고,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오른 손바닥은 위쪽으로, 왼 손바닥은 아래쪽으로 향하게 하면서 한없이 빙글빙글 돌았다. 저러다가 어지러워 쓰러지지는 않나 하는 염려가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쯤 흐르자 머룬 로브를 입은 한 서양여성은 완전히 무아지경에 빠져든 듯했다. 고개를 하늘쪽으로 약간 치켜든 자세에서 황홀경을 체험하는 듯한 표정인데 얼굴은 밝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지상에 내려온 선녀가 있다면 바로 저런 모습일까 할 정도로 감흥이 돋았다. 비단 그 여성 외에도 대부분의 산야신들이 대리석이 깔린 바닥 위에서 빙빙 돌면서 깊이 몰입해 있는 상태였다. 가장 동적인 행동에서 오히려 내면의 정적인 모습을 바로보는 명상법인 듯했다.
그러나 오쇼 아쉬람의 정수는 뭐니뭐니해도 ‘멀티버시티’. 명상과 개인의 변형을 위한 세계 최고의 시설임을 자부하는 이곳에서는 현대의 정신 치료법, 동서양의 치유 기술, 비의적 과학, 창조적 예술, 호흡법과 무술, 탄트라. 선, 수피즘 그리고 명상 아카데미 등 9개 분야로 나뉘어 있다. 또한 개인적인 세션과 클래스, 코스, 워크샵, 그리고 전문 세라피스트가 되기 위한 훈련과정도 있다.
오쇼가 성을 명상의 도구로 적극 활용했다니까, 탄트라 워크샵에 참여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곳은 기자에게는 출입이 허락되지 않았다. 탄트라 명상은 남성은 여성, 여성은 남성 파트너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신 인체의 7개 차크라(척추를 중심으로 인체에 존재하는 에너지 센터)를 이용한 탄트라 메디테이션에 참여한 바 있는 한 산야신의 설명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남녀 파트너가 얼굴과 얼굴, 배와 배를 서로 마주 보게 하는 방향으로 눕는다. 남성이 파트너의 등 뒤 첫 번째 차크라에 손을 갖다 놓는다. 이는 남성이 보내는 의미라면 여성은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그리고 나서 음악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숨을 쉰다. 다음으로는 여성이 남성의 등 뒤 두 번째 차크라에 손을 갖다 댄다. 이때 남성은 내면적이고 수동적이라면 여성은 분출하고 양성적이 된다.
이렇게 일곱 번째 차크라까지 남성과 여성이 번갈아 하다보면 남성은 내면에 있는 자신의 여성성을 발견하고, 여성은 반대로 내면에 있는 자신의 남성성을 발견하게 된다.…’
그 산야신은 차크라를 이용한 탄트라 메디테이션 외에도 힌두교적 탄트라 등 여러 방식이 있다고 말할 뿐, 더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았다. 다만 탄트라 수련에서 제일 중요한 점은 자신의 내면에 깊숙이 숨어 있는, 성에 대한 억압적이고 왜곡된 의식들을 툴툴 털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탄트라 워크 샵에서는 성에 대한 모든 얘기들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과정도 있다고 한다. 이를테면 어떤 외국 여성은 어릴 때 양부에게 강간을 당한 경험 등이 의식속에서 자신을 괴롭혔다고 고백했는데, 탄트라 메디테이션을 한 뒤 그런 문제를 극복했다는 식이다. 자신의 내밀한 성 문제를 여러 사람 앞에서 공개한다는 것은 어쩐지 동양 사람들의 정서에는 맞지 않는다 싶어 더 이상 탄트라에 대한 호기심을 접어두기로 했다.
보통 명상이나 수련의 세계에서는 지도자가 세상을 떠나면 그 단체 역시 힘을 잃어버려 흐지부지하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다. 한국도 그렇고 외국에서도 그런 사례는 얼마든지 목격된다. 오쇼 라즈니쉬가 90년 세상을 떠났을 때, 오쇼에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던 세계인들은 당연히 오쇼의 죽음과 함께 오쇼가 남긴 것들도 함께 묻힐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오쇼 아쉬람만은 달랐다고 한다. 스승이 떠난 뒤 잠시 소강상태에 있던 아쉬람은 핵심 제자들에 의해 제2의 부흥기를 맞고 있다. 아쉬람을 찾는 사람들의 숫자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그 중에서 오쇼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산야신들도 점증하는 추세다.
오쇼의 제자들은 스승이 사망했다는 말을 금기시한다. 오쇼 아쉬람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오쇼의 무덤에는 ‘오쇼는 결코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았으며 단지 지구라는 별을 방문했을 뿐이다’라는 묘지명이 있다. 즉 오쇼는 생사의 차원을 떠난 존재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오쇼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티벳 망명정부를 이끄는 달라이 라마는 오쇼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오쇼는 뛰어난 지도자다. 그는 인간이 자아를 개발하는데 있어서 부딛히는 장애점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일한 사람이다.”
기자는 틈틈이 아쉬람 안에서 머룬 로브를 걸친 사람들을 대상으로 오쇼 아쉬람에 대한 느낌이 어떠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들은 대부분 ‘평화(Peace)’ ‘사랑(Love)’ ‘영혼의 각성(Soul Awareness)’이라는 단어를 쓰며 아쉬람에 대해 만족해 했다. 어떤 이는 장난스럽게 ‘섹스(Sex)’라는 단어를 구사하면서 웃기도 했다. 아무튼 오쇼 아쉬람이 외국인들에게 던져주는 공통의 메시지가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인도를 사랑하는 한국의 산야신들
그들은 또 오쇼의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았거나,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이곳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의 산야신들도 대부분 오쇼의 책을 읽고 오쇼의 체취가 남아 있는 곳을 직접 보고 싶어 아쉬람을 찾는다는 게 정인수씨의 말이다. 몇해전 이곳에서 ‘검은 로브’를 입고 지도자로서 자원봉사를 하기도 했던 정씨는 한국의 산야신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현재 오쇼 아쉬람을 찾아 산야신 이름을 받은 한국인들은 국내외에 300명 정도 된다. 오쇼에 대해 한국에서도 편견들이 있다 보니 한국의 산야신들은 좀 폐쇄적인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들은 그래서 한국보다도 인도에 있는 것을 더 편안하게 생각하고 틈만 나면 마음의 고향처럼 인도를 찾게 된다. 실제로 여기서는 한국에서는 맛볼 수 없는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 와서 명상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개는 전문 테라피스트(치료사)의 길을 걸어가려고 열심히 세션에 참여하는 산야신들이 더 많다. 나도 한국에서 두개천골요법(일종의 명상 치료요법)을 펼치다 좀더 배울 필요가 있어서 여기 와 공부하는 경우다.”
한국의 산야신들은 오쇼 아쉬람에서 무언가 배울 게 있기 때문에 찾는다는 설명이다. 정씨 자신도 몇해전 인도에서 배운 실력으로 한국에 자연요법인 ‘발반사요법’을 보급한 바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두개천골요법을 보급하기 위해 노력중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만난 양규리씨(29)도 ‘미스틱 로즈’라는 명상테라피를 배우기 위해 학원강사를 때려치우고 왔다고 말했다.
오쇼가 떠난 지 10년이 된 지난해부터 오쇼 아쉬람이 서서히 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한국인 산야신도 있다. 아쉬람을 이끄는 이너서클의 방침 때문인지 정신적인 의미가 강한 ‘아쉬람’이란 단어보다는 마음과 몸을 이완시킨다는 의미인 ‘리조트’라는 단어를 더 자주 구사하고, 실제로 그런 식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옳은 방향인지 아닌지는 지금으로서는 섣불리 판단할 문제는 아닐 것이다. 다만 더 많은 세계인들이 이 때문에 아쉬람을 편하게 찾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점은 인도의 보수적인 사람들에게 오쇼 아쉬람을 ‘밉게’ 보면서도 늘어나는 관광 수입 때문에 어쩌지 못하는 딜레머를 안겨주기도 한다. 오쇼 아쉬람을 찾고 싶은 한국인들은 이곳에 터잡고 사는 한국인 산야신 ‘시라지’에게 메일(sirajkumari@yahoo.com)로 도움을 청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