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선 도로는 방금 공사를 끝낸 듯 깨끗했고, 기름 바른 김처럼 번들거리기조차 했다. 길의 속도로 쉬지 않고 달리는 노란 중앙선에는 바퀴자국 하나 묻어 있지 않았다. 차도의 저쪽 끝과 이쪽 끝을 현기증 나도록 둘러보아도 자동차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방금 전 두 노인네를 떨군 버스가 시커먼 매연을 뿜어대며 지나갔을 뿐이다. 산허리를 굽이돌아 올라오면서 내내 그르렁대던 낡은 버스가 이제 막 생긴 도로를 처음으로 달린 게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주위는 한적했다.
‘여기까지 이렇게 길이 생겼구나.’
이영례 여사는 새삼 고개를 돌려 사위를 둘러보았다. 초행길인 듯 낯설기만 했다. 길이야 없던 것이 새로 생겼으니 생소하다 손치더라도, 전에 한두 번쯤 눈길이 닿았을 법한 나무들이나 바위들조차도 생경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자동차는커녕 사람 하나 눈에 띄지 않는 탓도 있을 것이다. 잘 닦인 포도 위를 두 늙은이만 걷고 있다니. 이여사는 앞서 걷고 있는 권상훈 옹의 구부정한 뒷모습을 보며, 어쩐지 사치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같이 가요.”
아침부터 오락가락 하던 비 탓인지 제법 한기가 느껴져 이여사는 걸음을 빨리 했다. 가까스로 제 몸을 지탱하며 얼굴을 떠받치고 섰던 코스모스가 지나가는 이여사의 기세에 온 몸을 흔들었다.
산은 이미 불타고 있었다. 풍성하고 화려한 잎사귀를 한껏 머리에 인 껑충한 나무들이 시위하듯 빽빽이 산자락에 꽂혀 있었다. 저런 모습도 달라진 거라면 달라진 거라고 할 수 있었다.
이여사가 어렸을 때, 산에는 나무나 풀보다는 돌멩이가 많았다. 돌부리에 걸리거나, 자잘한 돌멩이들을 잘못 밟아 넘어져 무릎 깨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몇 십 년이 흐른 지금도 그 흉터는 그대로 남아 있다. 별 구경거리도 없는 데다가 심심하면 딴죽을 걸어 조그만 몸뚱이를 자빠뜨리기만 하는 산이었기 때문에 어린 이영례에게는 어머니 손을 잡고 찾아가는 아버지 성묘 길은 영 멀고 지루하게만 느껴졌었다. 당시 어린 이영례와 동생은 산을 대머리 산이라고 불렀었는데, 지금은 그 별명이 무색하리만큼 울울창창했다.
“못 알아보겠어요. 이렇게 딴판이 되다니.”
권옹의 옆에 나란히 서서 걷게 되자 이여사가 말했다.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산과 길이 나뉘어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린 남매가 붙여준 적의 어린 그러나 애교 섞인 이름으로 불렸을 적의 대머리 산은 어느 곳으로 가든 걸어가는 그곳이 길이 되었다. 사람 가는 길이 곧 길이었다. 때문에 어느 쪽으로든 마음 내키는 대로 갈 수 있었다. 꼭 그 길이 아니라도 산으로 가는 길은 무수히 많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아 보였다. 정해진 길이 아니면 가지 못했다. 길이 가지 못하는 길은 사람도 가지 못했다. 사람은 길이 이끄는 대로만 가게 되어 있었다.
이여사는 아스팔트의 탄탄함을 발바닥으로 느끼며 남편을 쳐다보았다. 그는 희미하게 미소만 짓고는 아무런 응대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주위를 살피며 걷기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어제 저녁, 내일 어디 가 볼 데가 있으니 준비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여사는 가만히 고개만 끄덕였다. 어디를 가는데요? 라고 묻지 않았다. 남편은 달포 전부터 분주히 무슨 일인가를 준비하는 눈치였다. 아내인 자신이 알기 바라지 않는 것 같아서 일부러 모른 척하고는 있었으나 그것이 자신과 관계되는 일이라는 것만은 알아차리고 있었다. 혹시 준비해오던 그 일과 내일의 행차가 모종의 연관이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40년을 함께 살다보면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들이 있었다.
그런데 정작 오늘 아침 남편은 늦잠을 잤다. 너무 곤히 자고 있는 바람에 깨울까 말까 망설이다가 아침잠이 이렇게 깊은 양반이 아닌데 싶어서 이여사는 조심스레 남편을 깨웠다. 겨우 눈을 뜬 남편은 시계를 보자마자 세수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집을 나섰다. 그 서슬에 이여사는 물론 권옹 자신도 조반을 거르고 버스를 탈 수밖에 없었다. 터미널 간이식당에서 간장 국물에 만 국수 한 그릇으로 대충 끼니를 때운 것도 울렁거림을 다스리기 위해서였다.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끼니는 거르지 않는다는 게 권옹의 철칙 중 철칙이어서 이여사는 께름칙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남편은 이렇게 서두르는 것일까.
행선지는 이여사의 고향이었다. 버스에 나란히 앉았을 때 이여사는 남편이 난데없이 자신의 고향에 가는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다시 고향 땅을 밟을 수 있었던 건 50년 만이었다. 그리고 이여사가 고향을 찾는 건 20년 만이었다.
이여사는 그저 남편의 속 깊은 배려에 고마운 마음만 가지려고 했다. 마음만 먹으면 혼자서라도 언제든지 올 수 있는 길이었건만 어떻게 된 일인지 그 동안 한 번도 찾지 않았었다. 그걸 전적으로 남편 탓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남편 쪽에서 선뜻 나서주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춥지 않아요?”
제법 바람이 찼다. 산에 올라올 줄 알았더라면 더 단단히 챙겨 입고 왔을 텐데. 산바람은 끝이 매워서 얇은 가을 옷 따위는 송곳처럼 숭숭 뚫고 제 멋대로 들락날락거렸다. 이여사는 남편의 허술한 옷차림을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봤다. 물기 빠지고 기름기 빠진 낡은 몸뚱이로는 이만한 바람에도 뼈가 시렸다.
남편은 고개를 가로젓고 멈춰 서서 이여사의 옷을 단단히 여며주었다. 남편의 따뜻한 검지 손가락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버스가 지나왔던 길을 한참이나 거슬러 올라가던 권옹이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한동안 눈가늠을 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반비알진 비탈로 조심스레 내려섰다.
“조심해요, 빗물이 있어서 미끄러우니.”
남편이 이여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말마따나 촉촉이 빗물을 머금고 누운 풀잎들은 미끄러웠다. 비틀거리는 이여사의 손으로 권옹의 따뜻한 악력이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순간 이여사는 고개를 숙였다. 늙고 메마른 몸뚱이로 찌릿찌릿 전류가 통했기 때문이다. 오소소 솜털들이 들까불렸다.
‘웬 주책이람’.
이여사는 속으로 혀를 찼다. 고향에 왔다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방심한 게 분명했다.
옷깃을 세워줄 때 목덜미를 스쳤던 손가락의 여운 그리고 힘세고 따뜻한 손아귀는 순식간에 이영례를 40년 전 신혼의 기슭에 내려놓았다. 그때 이영례에게는 계획이 많았었다. 남편 닮은 아들을 둘쯤 낳고, 그리고 굳이 자신을 닮지 않아도 되는, 예쁘고 귀여운 딸아이 하나쯤 낳는다는 그런 계획. 조금 더 욕심을 부리고 싶었지만 아이 셋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나는 꿈이 있어. 그건 바로 아이를 셋만 낳는 거야. 세 명의 아이들이 재잘대는 우리 집은 얼마나 행복할까. 내가 꿈꾸는 행복이란 바로 그런 거야. 나에겐 천국이 따로 필요 없어. 우리 집이 천국이니까. 그런 날 위해 남편은 밤마다 내 요동치는 가슴을 안아주겠지.
거창하지도 않은 그저 한 여인네의 소박한 꿈이었다.
이여사는 손끝에서 촉발된 기억에 휩싸여 질끈 눈을 감고 잠시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왜 어지럽소?”
권옹이 이여사의 어깨를 부축하며 물었다.
“아니에요. 그만 가요.”
그러나 눈을 뜨면 갈아엎어진 강산만큼이나 현실은 달랐다. 이여사는 어깨에 놓여진 남편의 손을 떼어내고 앞장서서 걸었다.
“아무리 주변이 바뀌었다 해도 우리 부모님 누워 계신 곳은 알아볼 수 있어요.”
불쑥 말은 그렇게 했으나 자신은 없었다. 군데군데 눈에 띄는 봉분들은 아무래도 처음 보는 것들 같았다. 무성히 자란 잡초에 봉분이 폭 파묻혀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여사는 봉분을 찾는 척하고 뒤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여기쯤인가?”
권옹은 뭔가에 단단히 놀란 눈치였다. 이여사와 눈길이 마주치자 뭐라고 말하려는 듯 두 입술을 움직거렸으나 그대로 시선이 스쳐지나가 버리자 말소리는 새어나오지 못했다. 시선을 놓치고 난감해하는 표정이 이여사의 눈꼬리에 아슬아슬 매달려 있었다.
남편의 넓은 등판과 뒤통수를 바라보며 따라가던 일에만 익숙하던 이여사였다. 저 남자는 저렇게 걷는구나. 팔은 옆구리에 꼭 붙이고 발은 약간 벌린 채 성큼성큼. 팔을 흔들지 않으면 걷는 데 좀 곤란하지 않을까. 보기에도 불편해 보이는데. 군인처럼은 아니더라도 조금만 팔을 흔들어주면 좋으련만. 그래도 저 이는 내 남편이야. 젊은 이영례는 남편의 등판을 이정표 삼아 길을 걸어왔다. 길을 걸어가는 순서가 따로 정해져 있을 리야 만무하지만 이여사는 그랬다. 늘 등뒤에서 걷던 아내가 앞서 걸어가고 있어서 남편은 놀랐을까.
“난 뒤로 오는 당신이 참 좋아.”
젊은 권상훈은 새색시 이영례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등은 누군가 안아 주지 않으면 늘 허전하거든. 가슴이야 이렇게 내 팔로 감싸안으면 되지만, 등은 그러니까 내 손이 닿지 않는 유일한 부분이야. 그곳을 당신만은 만질 수 있어. 내가 만질 수 없는 나, 그걸 당신에게 줄게. 당신, 언제까지나 내 등을 안아 줄 수 있지?”
등을 안으려면 그의 등뒤에 서야 했다. 이여사는 걷는 속도를 늦추었다. 모두 고향 탓이었다. 고향은 이여사의 감정을 들썽거리게 하고 있었다.
조금만 걸었을 뿐인데도 무척 피곤했다. 남편에게 자신의 뒷모습을 보이며 걷는 게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뒤통수와 등허리가 따끔거리는 것 같았다. 자신의 등뒤를 내준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무엇을 뜻하는지 비로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내딛는 발, 흔드는 팔이 마치 꼭두각시 같이 뻣뻣했다. 이렇게 부자연스럽게 걷다가는 분명 땅바닥으로 고꾸라질 것이 틀림없기에 이여사는 눈에 띄는 가장 가까운 묘지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권옹은 두 입술을 굳게 다물고 이여사 옆으로 와서 나란히 섰다. 이여사는 권옹의 옆얼굴을 흘깃 바라보았다.
‘여기가 맞나요?’
언젠가 같이 왔었던 기억을 되살려 그가 고개를 끄덕여주기 바랐지만, 그러나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얼굴은 아무 것도 읽어낼 수 없는 무표정이었다. 어쩐지 남편이 자신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도 같았다.
권옹의 빈손을 보았을 때 이여사의 자신감은 더욱 약해졌다. 소주 한 병 챙기지 않고 장인 장모의 묘소를 찾아 뵙다니. 이런 경우 없는 짓을 할 양반이 아닌데, 여기가 선산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자신의 부모님 묘소를 찾는다고 짐작한 게 잘못이었나 싶었다. 그럼 대체 여긴 뭐 하러 왔을까?
이여사는 남동생에게 부모님 제사를 일임했었다. 부모님 묘역을 돌보는 일은 아들이 하는 일이었고, 이여사의 할 일은 시부모님을 받들어 뫼시는 일이었다. 봉양할 시댁 식구들이 없다고 해서 며느리의 역할이 바뀌는 것도 아니었다.
온 순서대로 가는 법이 없다더니 동생이 늙은 누이를 제치고 먼저 저승길로 떠났다. 장조카는 아버지 유언이라며 동생을 화장하고 뼛가루를 이 대머리 산도 아닌 엉뚱한 바다에 뿌렸다. 우리나라 국토 십분의 일이 묘지라니 참 큰일이에요, 금수강산이 아닌 묘지강산입니다, 저두 화장할 생각입니다, 라고 조카는 말했다. 그런 장조카가 할아버지 할머니 묘소를 얼마나 제대로 돌볼까마는, 그렇다고 이여사가 발벗고 나서서 부모님 묘역을 거둔 것도 아니었다. 집안 대사는 남자들이 정하는 법이고 여자들은 군말 없이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배웠고 또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이씨 집안을 이어갈 장손은 조카지 이영례 자신은 아니었다. 이씨 성을 가진 이영례 여사는 권씨네 집안을 이어가는 사람일뿐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이여사는 양희를 한 번도 이곳에 데리고 오지 않았다. 그것밖에 다른 이유란 전혀 없었다. 양흰 누가 뭐래도 내 딸이야, 암 내 딸이고 말고. 이여사는 새삼 다짐하듯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양희는 김 서방 일에만 신경 쓰면 그만이었다. 그게 딸의 할 일이었다.
이여사는 묘지를 자세히 뜯어보았다. 헤어진 지 반백 년 된 늙은 부모 자식 혹은 형제들도 세월에 닳아버려 알아보지 못하는 얼굴 대신에 흉터나 점 따위로 서로를 확인하고들 하지 않던가? 그렇듯 묘지도 잘 들여다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처음 보는 듯 낯설기만 했다. 여기까지 지나쳐오면서 봐왔던 봉분들과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크기나 모양도 한결같았다. 이게 내 부모 무덤이요, 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비석이 놓여 있지 않은 이상 곳곳에 불쑥불쑥 솟아 있는 수많은 무덤들 중에서 내 조상 무덤 찾기란 모래알에 섞인 좁쌀 찾기나 한가지였다.
이여사는 무렴한 마음에 새로 자라 나오기 시작하는 풀을 닥치는 대로 뽑아 내팽개쳤다.
“조심해요, 그러다 손 다치겠소.”
권옹이 장갑도 끼지 않은 이여사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여사의 마음이 울컥, 했다.
“아무래도 모르겠어요.”
권옹은 손수건을 꺼내어 그새 이여사의 손바닥에 배어든 풀물과 빗물을 닦아주었다. 혹시 베이지 않았나 손가락 사이사이까지 근심 어린 눈빛으로 살펴봤다. 이여사는 파뿌리 같은 남편의 머리를 보며 공연히 어린아이처럼 투정을 부렸다.
“이런 불효자식이 다 어디 있답니까? 글쎄 제 부모가 어디 누워 계신지도 모르다니 여기도 아닌 것 같아요. 아니에요, 모르겠어요. 딸자식 시집가 버리면 끝이라더니 다 날 두고 한 말이었어요.”
그예 목소리마저 떨려 나왔다. 한꺼번에 몰려드는 여러 가지 감정에 휘둘려 이여사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한바탕 통곡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감정은 치받쳐 솟아오르긴 해도 눈물이 되어 쏟아져주지 않았다. 눈물도 나이를 먹는지 꾸물꾸물 인색하게 몇 방울 흘러내릴 뿐이었다.
“미안해요, 내 정말 미안하오.”
권옹은 떨리는 목소리로 이여사에게 사과했다. 이여사는 마른 눈물을 찍어내느라 당황하는 남편을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권옹은 방금 전까지도 아내가 멈춰선 이 묘지가 바로 장인 장모의 산소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내가 먼저 입을 열지 않았더라면 그만 꾸뻑 절이라도 할 뻔하였다.
권옹은 이여사를 외면하고 먼 데로 눈길을 옮겼다. 잿빛 하늘을 가로지르며 새가 날아갔다. 비둘기인지 기러기인지, 한 점으로만 보이는 날개 달린 짐승 하나가 저쪽 북녘 하늘을 향하여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저, 누구신지요?”
초로의 노인 하나가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한 눈빛을 쏘아대며 권옹 곁으로 다가왔다. 노인은 손에 커다란 낫을 그러쥐고 있었다. 이여사는 서슬 퍼런 낫을 보고 슬그머니 권옹의 등뒤로 숨었다. 인기척 하나 없이 다가온 노인을 보고 권옹도 조금 놀랐다.
“혹시.”
노인은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권옹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를 샅샅이 살펴보더니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권옹은 노인이 무덤의 후손임을 직감했다. 권옹은 사정을 설명하려고 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노인이 낫을 치켜세웠다. 권옹과 이여사는 본능적으로 두어 발짝 뒷걸음질쳤다. 입에서는 억눌린 비명이 낮게 새어나왔다. 노인은 무덤의 웃자란 잡초를 머리채처럼 휘어잡고 치켜든 낫으로 슥 베었다. 잡초는 단 한 번의 낫질로 싹둑 잘렸다. 날카롭게 잘린 한 다발의 잡초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노인은 권옹에게 거친 음성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시오?”
권옹은 마른침을 삼키고 노인에게 공손히 머리를 조아렸다.
“아, 아니오. 길을 그만 잘못 들어서 큰 실례를 범했소. 임자 우린 저쪽으로 가봅시다.”
권옹은 이여사와 함께 황황히 뒤돌아 섰다. 노부부는 손을 잡고 뛰었다. 이여사는 등뒤에서 혀를 끌끌거리는 노인의 목소리를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왜 남의 무덤 앞에서 눈물바람이야? 한참 울고 나서 누가 죽었냐구 묻는다드니, 쯧쯧쯧 꼬락서니하군, 제 조상 무덤 하날 찾지 못해 저 야단법석이야? 요즘 젊은 것들 탓할 거 하나 없어. 저 늙은이들이 저 모양인데 쯧쯧쯧, 그저 늙으면 죽어야지, 암, 죽어야 하구말구.”
노인이 내뱉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예리한 미늘이 되어 권옹과 이여사를 물고 늘어졌다. 이여사는 자꾸 헛발을 디뎌 허청거렸다.
‘망할 놈의 노인네! 어디서 갑자기 낫을 들고 나타나선 사람을 놀래켜?’
이여사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억지로 놀리며 허둥지둥 길을 빠져나갔다. 먼저 차도가 보였고, 그리고 좀전 권옹의 손을 잡고 내려섰던 비탈이 눈에 들어왔다. 이여사는 조그맣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차도에 올라서자마자 이여사는 아스팔트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가슴을 싸안았다. 쿵쿵 요동치는 심장이 목구멍까지 밀려 올라왔다. 하얀 지프 한 대가 이여사 곁을 빠르게 스쳐 지나가면서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고 바람을 훅 끼얹었다.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허공을 탕탕 울렸다.
“몹쓸 것!”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이여사는 방금 빠져나온 길을 노려보았다. 숨을 헐떡거리기는 권옹도 마찬가지였다.
“당신도 좀 앉아 쉬세요. 원 저리도 심술 맞은 노인네가 있어. 당신, 괜찮아요?”
권옹의 안색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이여사는 무릎을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양희 아버지!”
“괜찮아요, 괜찮아.”
“당신 얼굴빛이.”
권옹은 다가오는 이여사에게 손을 휘휘 내저었다. 이여사는 무르춤하여 그 자리에 멈춰선 채 남편의 기색을 살폈다.
“좀 앉아 쉬지 않아도 괜찮겠어요?”
권옹은 한동안 숨을 골랐다. 잠시 후, 그는 이여사에게 다가갔다. 이여사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남편은 자기의 손에 쥐어져 있는 손수건을 보았다. 이게 왜 여기 있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한 후, 이여사의 땀을 닦아주며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성묘는 다음 기회로 미뤄야할 것 같애. 오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거 같았는데, 거 참. 오는 데 마음이 급해서, 게다가 이렇게 빈손이지 뭐요. 임자, 미안하오. 또 날을 잡아 다음엔 아침 일찍부터 서두릅시다. 애들한테 물어 위치도 자세히 알고 말이야.”
권옹은 혀를 내밀어 제 아랫입술을 빨았다. 이여사는 남편이 자기의 얼굴 어느 부분을 쳐다보는지 알 수 없었다.
“대신 말이오, 오늘은 나하구 따루 가볼 데가 있어요. 여서 멀지 않으니 좀만 참고 나하고 같이 갑시다.”
“여기, 에요?”
그제야 이여사는 오늘 산행의 목적이 다른 데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 고향 선산에서 남편이 자기하고 같이 가볼 데가 부모의 산소말고 또 어디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남편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사실 남편이 성묘를 한다고는 말하지 않았던 일이고, 이 길이 이여사의 부모님 묘역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한 것도 아니었다. 이 근처에 있는지조차도 자신할 수 없었다. 지레 그러리라고 이여사 혼자 짐작한 것이었다.
남편이 달포 전부터 준비하던 그 일을 보여주기 위해서 이곳 고향선산에 왔다는 걸 이여사는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무슨 일일까. 도무지 가늠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이여사는 묻지 않았다. 이여사는 마음이 동요되고 있었다.
권옹은 차도에서 내려섰다. 이여사는 물끄러미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그가 방금 빠져나왔던 길로 다시 들어서려 하자 이여사가 억제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거기로요?”
“초입만 같을 뿐이오. 아까 그쪽하고는 반대쪽으로 가는 거니 안심해요.”
“다른 길로 가요. 두 번 다시 그쪽으로는 가고 싶지도 않아요.”
“거길 가려면 이 길밖에 없어요. 아깐 길을 잘못 들어서 그런 거니 자 안심하고 날 따라와요.”
권옹은 비탈을 거슬러 올라와 차도에 서 있는 이여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여사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한 발 물러섰다. 순간 이여사는 화들짝 놀라며 두 손을 앞으로 내저었다. 허우적거리던 손이 가까스로 남편의 손을 찾아쥐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역광 때문에 남편이 깜빡 사라져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요.”
권옹이 걸음을 멈춘 곳은 아무 것도 없는 빈땅이었다.
이여사는 혹여 먼 눈으로 놓친 것이 있나 싶어 주위를 꼼꼼히 둘러보았다. 단풍나무 몇 그루 곱게 익은 것만이 눈에 띌 뿐 이곳이 목적하고 온 곳이라는 느낌은 어디에서도 짐작할 수 없었다. 고작 단풍 구경을 하자고 그런 생고생을 했던가 싶어 허탈할 지경이었다. 없는 길을 만들어가며 허위허위 걸어왔던 두 다리에서 맥이 탁 풀려 그만 주저앉고 싶었다.
“잘 봐 둬요. 저기 저 자리 우리가 누울 자리야.”
남편은 나뭇잎들이 수북히 쌓여 있는 곳을 가리켰다. 아마도 그곳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누울 자리라니? 이여사가 그 말을 이해하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이러고 있으니 꼭 우리 처음 결혼해서 집 보러 다닐 때 같구려. 좀 좁은 듯 하지만 일부러 그랬어, 당신하고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아서.”
이여사는 당황했다. 그가 가리키고 있는 곳은 묘지, 죽은 이영례 자신과 죽은 남편 권상훈이 함께 누울 묏자리였다. 이처럼 가까이 자기의 죽음이 있을 줄은 몰랐다. 가깝다고는 생각했었다. 환갑 진갑 일찌감치 보내고 칠순이 멀지 않았으니 삶보다는 죽음이 가까울 나이였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손을 내뻗으면 잡힐 거리에, 이토록 생생하게 준비되어 있을 줄이야. 남편의 손가락 끝에 걸려 있는 세 평 남짓한 초라한 땅. 그곳이 죽어 시체가 된 제 몸뚱이가 누울 죽음의 집이었다. 지금이라도 눕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죽음을 완성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 땅이었다.
그러자 순간, 나뭇잎으로 뒤덮인 땅이 스르르 풍선처럼 부풀어올랐고, 두 사람이 함께 눕고 덮을 만큼의 넓이와 높이로 얹힐 봉분이 눈에 선연히 그려졌다. 그것은 이곳에 오면서 봤던 숱한 봉분과 똑같은 모양이었다. 갑자기 봉분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기 시작했다. 볼록 볼록 볼록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앞다퉈 대지를 뚫고 솟아올랐다. 이 허전한 땅을 순식간에 먹어치운 그것들은 이윽고 온 산을, 온 땅을 징그러운 멍게로 만들어 버렸다.
이여사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거기에 대고 절만 할 줄 알았지 정작 자기 자신이 그 좁은 공간에 눕는다는 상상은 티끌만큼도 하지 못했던 이여사였다. 죽음은 다만 하나의 추상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자기의 묏자리를 두 눈으로 똑똑히 바라보고 서 있는 지금, 죽음은 더 이상 추상이 아닌 현실로 다가왔다.
이여사는 깊은숨을 내쉬면서 빈땅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산 까치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까치는 두 발을 모두어 통통통 뛰어다니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또 한 마리가 날아왔다. 두 마리 까치는 나란히 서서 단단한 부리로 나뭇잎을 쪼다가 서로의 깃털을 톡톡 쪼아대기도 하며 서로를 희롱했다. 한동안 두 사람의 묏자리에서 노닐었다. 사람의 눈길이 따가웠던 것일까. 갑자기 나중 온 까치가 땅을 박차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러자 먼저 왔던 까치도 포르르 날아가 버렸다. 어느 쪽으로 사라졌는지 하늘엔 흔적 하나 남지 않았다. 까악! 하는 짧은 외침만이 빈 하늘을 울렸다.
그리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당신 고향에 가셔야지요, 전 괜찮아요.”
멀리서 자동차 달리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잠시 후 또 한 대의 자동차가 지나갔다.
‘죽어 같이 누운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당신, 살아 있을 적 같이 있지 못했으니 죽어서라도 같이 있으세요. 새가 되어 훨훨 날아가세요. 새들이 가지 못할 길이 어디 있나요? 사람은 가지 못하는 길, 혼령 되어 가세요. 반평생 당신 빈 몸뚱이만 안고 살았는데, 죽어서까지 당신의 차가운 몸뚱이를 안으라는 말인가요?’
“아니야, 이 좁은 땅덩이 가르고 쪼개서 니 고향 내 고향 할 게 뭐 있겠어, 당신 고향이 그저 내 고향이야. 난 여기 당신하구 누울 거야.”
“·”
“당신 혹여라도 이장할 생각은 절대 말아요.”
“원, 무슨. 당장에 돌아가실 양반처럼 말씀하시네요. 아서요, 말이 씨가 된답디다.”
“·”
“또 누가 알아요 내가 먼저일지 온 순서대로 가는 것두 아닌 담에야.”
차라리 그리 되기를 이여사는 소원하였다.
권옹은 이여사의 손을 꼭 그러쥔 채 하늘을 우러렀다. 같이 갑시다, 우리, 한 날 한 시에. 아마도 남편은 그렇게 소원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여사는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남편의 단단하게 잠겨 있는 서재의 책상서랍 안에 들어 있는 게 무엇인지 이여사는 잘 알고 있었다. 남편은 지금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리라. 남편으로서는 최고, 최선의 노력이었을 오늘의 준비가 그러나 이여사는 반갑지 않았다. 저렇듯 낙엽으로 제 자리임을 표시한 성의조차도 고맙지 않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 서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이여사는 화장하리라 마음먹고 있던 터였다. 돌보지 않는 무덤의 임자가 될 마음은 전혀 없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버려진 숱한 무덤을 봐오지 않았던가. 잡초의 강인한 뿌리에 송두리째 얽혀 있는 무덤, 영혼마저 얽매여 있는 무덤, 버려진 무덤, 무덤들. 형식만 갖춰놓고 돌보지 않을 바에야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제주도 없이 덜컥 무덤만 장만해 놓으면 그 뒷감당은 누가 하란 말인가.
남편이 어떤 식으로 행동과 말을 한다한들 이여사의 원망은 쉽게 풀어지지 않으리라. 자신의 무릎 상처 드러내 보여가면서 서로의 신분 확인할 자식 하나 없는 이상 한 번 맺힌 한은 좀처럼 풀리기 어려웠다.
게다가 그것은 풀어헤치는 것이 아니었다. 푼다고 풀리는 것도 아니었다. 이여사처럼 40년 세월 동안 곰삭혀 내리는 것이었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이여사의 얼굴로 똑, 빗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하늘이 뿌린 것인지 아침에 오락가락하던 비를 담고 있던 단풍나무가 흘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권옹의 하늘바라기는 하염없었다.
이여사는 깊은숨을 삼키고 입술을 깨물었다. 뭔지 모를 벅찬 기운이 가슴속 저 밑바닥부터 꿈틀거리며 올라와 지그시 목울대를 조여오기 시작했다. 그것이 목젖을 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이여사는 노을이 비껴들기 시작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불이 너무 셌나. 가스불 위에 올려놓은 양은 냄비에서 비눗물이 넘쳐흘러 파란 불꽃들이 지지직거리며 꺼질 듯 장탄식을 내뱉었다. 수납장 이곳 저곳을 열어보느라 한눈을 팔고 있던 양희는 급히 냄비 뚜껑을 열어 던지고, 불길을 조절하였다. 성난 기세로 뚜껑을 밀어 올리던 비누거품들이 이내 잦아들었다.
“아유, 엄만 귀찮지도 않나?”
어머니가 시킨 일을 마지못해 하는 중이라는 양 투덜거리며 양희는 튀김용 젓가락으로 행주를 뒤적뒤적거렸다. 뜨겁게 삶아지기 시작한 행주는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얗다. 하긴 양은 냄비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도 행주는 새하얗다. 어머니는 일주일에 두 번은 꼭 젖은 행주 마른 행주 할 것 없이 모두 비눗물에 넣고 푹푹 삶았다. 하얗게 건조된 행주들을 보면 가슴 뿌듯해진다는 것이었다.
양희는 수납장에서 찾아낸 포도주 병을 열어 목 높은 글라스에 조금 따랐다. 검붉은 빛깔이 무척 고혹적이었다. 엄만 또 언제 이걸 담그셨을까?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며 군침을 돌게 하였다. 양희는 식탁 의자에 앉아 한 모금 마시고, 또 한 모금은 병아리처럼 입에 물고 가만히 있었다. 알싸한 혀의 감각을 좀더 즐기고 싶어서였다.
행주는 조금 있다 빨아 널어야지.
포도주 속을 헤엄치며 놀던 혀의 감각이 둔해져왔다. 따뜻하게 데워지다 못해 끈적끈적하게 뭉쳐 하나의 덩어리가 된 듯한 포도주를 식도로 밀어 넣으며 양희는 새삼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여튼 우리 엄만 알아줘야 해. 대충대충 좀 하고 사시지, 뭘 저렇게 매일 쓸고 닦고, 닦고 쓸고 하시나 몰라.”
눈길 닿는 그 어느 곳에서도 양희는 먼지 하나 그을음 하나 발견할 수 없었다. 싱크대는 물론 가스 렌지대도 말끔했다. 방금 전 양희가 올려놨던 냄비에서 떨어진 비눗물이 없었더라면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거라고 말해도 믿을 수 있었다. 그릇은 그릇대로, 수저는 수저대로, 양념 통들은 양념 통대로, 모든 식기들이 양희가 결혼하기 이전부터 봐왔던 그 자리 그대로 놓여 있었다. 눈과 손에 익은 그 자리는 각 사물들에게 딱 알맞은 제자리였다.
물건이 아주 못쓰게 되지 않는 이상 잘 버리지 않는 어머니였다. 저 양은 냄비도 양희가 어렸을 때부터 사용하던 것이다. 처음엔 물론 밥을 끓이거나 국을 끓이는 용도로 쓰였다. 표면에 도장된 노란색 도료가 조금씩 벗겨지면서, 그리고 무엇 때문인지 이곳저곳이 우그러들기 시작하면서 냄비는 행주 삶는 일에만 전용되었다.
무엇 하나 눈에 설지 않은 물건이 없었다. 냉장고, 전기 밥솥, 전자 렌지 하다 못해 삶은 빨래 뒤적거리는 튀김용 젓가락조차도 뜨거운 기름에 빠진 양희의 간식거리를 건지던 것이었다. 어머니가 끓는 기름 속으로 허연 밀가루 덩어리를 밀어 넣고 저 긴 젓가락으로 이리저리 휘저으면 양희는 속으로 하나, 둘, 셋, 넷 숫자를 세곤 하였다. 어떤 땐 스물에, 어떤 땐 스물 다섯에 어머니는 젓가락을 들어올리신다. 그러면 그 끝엔 놀랍게도 노르스름하게 잘 구워진 도넛, 고구마 튀김, 야채 튀김 따위가 걸려 나오곤 했다. 히야, 맛있겠다!
“안 돼 양희야, 뜨거워! 기다렸다 식으면 먹어야지?”
참지 못하고 양희가 덥석 집어먹으려면 어머니는 양희의 손등을 잡으며 어린 식욕을 달래곤 하였다. 그러면 양희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것들을 보면서 군침을 꿀꺽꿀꺽 삼키곤 이번엔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빨리 식어라, 빨리 식어라.
양희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왠지 슬펐다. 몇 모금 마시지도 않았으므로 술 탓은 아니었다. 조금도 낯설지 않다는 건 그 만큼 세월이 오래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또 한 모금의 포도주를 삼키는데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빈집을 울리는 초인종 소리는 공연히 간담을 서늘케 했다.
“엄마? 엄마 오셨어요?”
양희가 거실로 뛰어나가 인터폰을 들었으나, 화면에 나타난 사람은 모르는 남자였다.
“누구세요?”
“도시가스에서 나왔습니다.”
“지금 아무도 안 계신데 다음에 아, 아녜요 들어오세요.”
순간적으로 남의 집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에 의아해하며 양희는 서둘러 문을 열어주었다.
젊은 남자는 무전기처럼 생긴 가스 누출 탐지기와 도화지 만한 공책을 들고 들어왔다. 양희는 먼저 제복과 명찰을 확인한 후 남자를 주방으로 안내했다. 빨래 삶는 냄새가 주방 가득 고여 코끝을 자극하였다. 양희는 가스 불을 끄고 냄비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뒤로 물러났다.
남자의 손놀림은 리드미컬했다. 짧고 억세 보이는 손답지 않은 움직임이었다. 남자가 탐지기를 가스 호스와 밸브 주변에 갖다대자 탐지기에서 부그르르르 물 끓는 소리가 났다. 이곳 저곳에 척척 탐지기를 대던 남자가 말했다.
“참 관리를 잘 하시네요.”
그리곤 흘깃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술잔을 보았다.
“아, 네에.”
말을 얼버무리며 양희도 술잔을 바라보았다. 글라스 표면에 붉은빛 포도주 자국이 얼룩져 있을 뿐 술은 남아 있지 않았다. 양희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젠 완연히 가을이에요.”
“네에, 그, 그러네요”
“낙엽두 떨어지구 찬 바람두 불구.”
“·”
“괜히 마음이 쓸쓸한 게 왠지 마음이 더 추워지기도 하구 말이죠.”
“·”
“그럴 때일수록 불조심에 신경 쓰셔야 합니다.”
그리더니 갑자기 남자가 양희 쪽으로 몸을 홱 돌렸다. 양희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 뒷걸음질쳤다.
“자, 여기에 서명 좀 해 주세요.”
남자는 양희에게 볼펜을 내밀었다. 양희는 숨을 들이마시고, 검침 대장이 놓여 있는 싱크대로 다가갔다. 남자로부터 건네 받은 볼펜은 미지근했다. 양희는 공책에 또박또박 이름을 썼다. 남자의 시선이 볼펜 끝으로 꽂히고 있었다. 볼펜 자국이 깊게 패였다.
“어떻게 되시나요?”
“네? 뭐가요?”
“그러니까.”
“·”
“세대주와 어떤 관계이신가, 이 말입니다.”
“아, 네에. 따, 딸이에요.”
남자가 돌아간 뒤 양희는 개수대에 서서 손을 씻고, 글라스를 닦아 엎어놓았다. 그리고 양은 냄비를 들고 목욕탕으로 갔다. 고무장갑을 끼려다 그만두었다. 우선 찬물 한 바가지 퍼 넣고 맨손으로 행주를 빨기 시작했다.
탁탁, 행주를 털어 베란다에 널고 나서 양희는 소파에 주저앉았다. 어쩐지 힘이 쪽 빠지는 기분이었다.
양희는 크게 심호흡 몇 번 한 후, 수화기를 집어들고 다이얼을 꾹꾹 눌렀다.
“네, 김 차장님 부탁합니다. 집이에요.”
집? 이럴 때도 집이라고 말하는구나. 늘 사용하던 단어가 오늘따라 생소하게 느껴졌다. 집, 집이라.
꽉 쥐고 있는 수화기 저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왈칵 반가웠다.
“아유 우리 마나님께서 왜 이리 반가워하시나? 왜애.”
“으응, 저, 당신한테 혹시 연락 없었어?”
“연락? 무슨 연락?”
“집에 와보니까 아무도 안 계셔. 두 분이 같이 어디 가신다 말씀도 없었는데. 혹시 당신한텐 말씀을 하셨나 해서.”
“응? 어어, 당신 거기 있구나. 뭐 두 분이서 어디 잠깐 외, 외출하셨겠지.”
“아냐, 나 당신 출근하자마자 여기 왔는데 지금까지 안 돌아오셨어. 연락두 없구.”
“그럼 어디 멀리 바람이라두 쐬러 가셨나?”
“근데 왜 아무 말씀도 안 하셔. 멀리 가시면 가신다 말씀을 해야잖아. 이상해.”
“뭐가 이상해. 장인어른 장모님이 어린애신가 뭐, 일일이 당신한테 보고하구 가게?”
“그래두 한 마디쯤은 해야 걱정을 안 하지. 도대체 어딜 가신 거지? 왜 또 전화는 안 하시구 말야. 답답해, 핸드폰두 없으니. 진작에 핸드폰 하나 해 드릴 걸 그랬나봐, 여보.”
“ 당신 장인어른 거기 다녀오신 뒤부터 신경이 좀 예민해진 거 같애. 장모님 혼자 나가신 것두 아니구 전엔 당신 안 그랬잖아, 장모님두 안 그러시는데 당신이 왜 그래?”
“내가?”
그럴지도 몰랐다. 자신이 모르는 일을 곁에 있는 사람은 알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믿음으로부터 배신당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그 상처의 깊이를 알지 못한다. 더군다나 남자인 남편이 알 수는 더욱 없었다. 남편은 절대 그 심정을 모를 것이다.
“아냐, 아냐. 주방이 엉망인걸. 이렇게 어질러놓고 어딜 가시는 분이 아닌데, 치우지도 않구 그냥 나가셨어. 봐, 이상하잖아.”
엉망이라니, 거짓말이다.
“뭐 급한 일이라두 있으셨나? 걱정하지 마, 금방 돌아오실 거야.”
사실을 말하자면 양희도 그렇게 생각하는 바이다.
오전에 친정에 도착해서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안에서는 인기척이 없었다. 만일을 위해 늘 갖고 다니던 곁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양희는 두 분이 멀리 출타했음을 알 수 있었다. 편지나 쪽지 따위를 써놓은 건 아니었다. 물론 미리 연락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느낌이었다. 양희는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집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집 구경하는 기분이었다. 안방으로 들어가 장롱이며 서랍장이며 죄 열어보고 거기 있는 옷가지와 이불 따위에 손을 대보았다. 킁킁 냄새도 맡아보았다. 흔적을 남기지 않느라 원래 있었던 모양과 위치를 미리 살피고, 그대로 해놓는 일도 잊지 않았다.
아버지의 서재에도 들어갔다. 단단히 잠겨 있는 책상 서랍 하나만을 제외하곤 모두 샅샅이 열어보고 살펴보았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무얼 찾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자꾸만 들여다보고 만져보고 싶었다. 공연히 가슴이 뛰었다. 집안은 늘 그랬듯이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빈틈이라곤 전혀 없었다. 주방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행주 하나만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양희는 어머니의 오래된 습관을 기억해내고 행주를 삶기로 했다. 칭찬을 듣기 위해서였다. 어머니로부터 칭찬 받는 일이 양희는 무엇보다 기뻤다.
“이건 이렇게 하는 거구 저건 저렇게 하는 거야. 그래. 잘 하는구나, 양희야.”
“내가 누구 딸인데 그럼, 엄만!”
“아무렴 우리 딸이지. 그렇구 말구.”
“당신,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불쑥 끼여든 건 남편의 목소리였다. 그제야 양희는 통화중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당신 무슨 일 있어?”
“일은 무슨. 아무 일도 없어. 고만 끊어.”
“근데 왜 아냐. 당신 거기 계속 있을 거지? 이따 들를게. 집에 같이 가.”
수화기를 내려놓고 양희는 소파에 길게 누웠다. 그러니까 포도주 한 잔으로는 어림도 없는 모양이었다.
집안을 세밀히 둘러보는 내내 두근거리던 가슴을 양희는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술 생각이 든 건 그 때문이었다. 전에 마시다 남은 양주가 생각나 장식장을 열어봤다. 없었다. 다 마셨나?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역시 알코올 종류는 없었다. 아버지가 술을 즐기지 않으니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좀 실망스러웠다. 맥주나 소주 한 두 병쯤은 있어야지, 어떻게 집안에 술이 한 병두 없냐.
바닥에 떨어져 있는 행주를 본 건 그때였다. 양희는 반가웠다. 그깟 행주 따위가 왜 그렇게 반가웠는지 모르겠다. 어쩐지 틈 하나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 틈 안으로 슬쩍 손을 집어넣듯이, 양희는 오래된 양은 냄비를 꺼내어 즐거이 행주를 삶았다. 그리곤 수납장을 뒤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거기서 그 포도주 병을 찾아냈다.
공연한 수선을 떤 게 아니었나 싶었다. 집에 들어설 때부터 자신을 사로잡고 있다고 믿었던 긴장감 따위는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제 집에서 불안해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양희는 기지개를 켜면서 하품을 했다. 찔끔, 눈물 한 방울이 눈가에 매달렸다. 이게 다 포도주 탓이야. 낮부터 술이나 마시다니, 그것도 주부가. 낮술 마시면 제 부모도 못 알아본다는데 어쩌지.
가물가물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게으르게 눈까풀을 껌벅거리던 일 조차 힘들고 귀찮았다. 눈앞의 사물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있었다. 여긴 내가 시집가기 전까지 살던 집, 나는 지금 친정에 와 누워 있다, 편안하다, 엄마는 장 보러 가셨다, 사위에게 줄 닭을 사려고, 아버진 술을 사들고 들어오실 거다, 남자들은 만나면 술 마시는 게 일이다, 두 분이 술 마시는 걸 엄마두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얘 느이 아버지 김 서방 땜에 술이 많이 느셨구나, 호호호, 그나저나 엄마는 왜 이리 늦으실까, 엄마, 엄마.
“양희야, 양희야.”
양희는 목놓아 울고 있었다. 너무 오래 울었다. 울음소리는 더 이상 새어나오지 못했다. 눈물도 다 말랐다. 목도 아프고 눈도 아팠다. 그러나 마음이 더 아팠다. 양희는 아픈 마음을 이겨보려고 계속 울었다.
“웬 잠이 이렇게 깊을꼬? 양희야, 양희야. 정신 차려.”
목이 잠겨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엄마? 우리 엄마야? 우리 엄마가 온 거야?
“양희야 일어나야지. 얘가 어디 아픈가? 얘, 은지야, 은지야!”
“엄마?”
엄마였다. 풀로 붙여 놓은 듯 딱 달라붙어 있던 두 눈까풀을 안간힘을 써서 떼어내니 엄마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엄마!”
엄마는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마로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양희는 엄마의 손을 끌어내려 꼭 잡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이었다.
“어떻게 된 게야? 어디 아프냐? 감기 들면 어쩌려구 이불두 안 덮구 한 데서 자? 무슨 나쁜 꿈을 꾼 모양이로구나.”
씁쓸한 꿈이었다. 엄마를 잃어버렸다. 아무리 찾아도 엄마가 없었다. 다가가 얼굴을 보면 엄마가 아니었다. 양희는 엄마를 목놓아 불렀다.
그것은 양희의 깊은 내면에 씨앗 되어 숨어 있다가 때때로 싹을 틔워 비집고 나오곤 했다. 이렇게 불쑥불쑥 튀어나오면 곤란했다. 좀더 단단해져야지. 좀더 단단해져야겠다. 양희는 주춤주춤 일어났다.
“엄마. 언제 오셨어요? 아버진?”
“방에서 쉬신다. 넌 오면 온다구 얘길 하구 오지, 많이 기다렸니?”
“아, 아니에요. 잠깐 눈 붙인다는 게 그만 깜빡 잠이 들었나봐요. 어디, 다녀오시는 거예요?”
혼몽했던 의식은 완전히 돌아왔다. 어머니는 외출복 차림이었다. 언뜻 찬바람 냄새가 맡아졌다. 어디 먼 길을 다녀오는지 무척 고단한 기색이었다.
“응, 그냥. 너, 김 서방하구 다툰 건 아니지?”
“엄만, 아녜요. 많이 피곤해 보이세요. 엄마 여기 앉으세요. 이렇게 좀 해 보세요.”
“아니다, 됐다, 얼른 가봐라. 김 서방 퇴근해 기다릴 시간 아니니?”
“이리루 온다구 했어요. 아유 이렇게 굳은 거 봐.”
“얼른 가라니까 그러네.”
양희는 어머니의 어깨 주무르는 손놀림을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는 빨리 가라고 하면서도 시원하다, 시원하다를 연발하였다. 양희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이 보잘것없는 손놀림 하나로 어머니의 깊은 슬픔마저 풀어드릴 수만 있다면.
어머니의 어깨. 이 작지만 옹골찬 어깨. 그러나 슬픔에 눌려 구부러진 어깨. 그 날 어머니의 가냘픈 두 어깨가 격렬한 떨림을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모습을 양희는 잊을 수 없었다.
아버지를 홀로 떠나보내고 어머니는 한숨을 자주 내쉬었다. 어쩌면 어머니는 아버지를 그렇게 보낸 드린 걸 후회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배웅도 마다했을 만큼 어머니는 떠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 날 티브이는 남과 북으로 흩어져 살던 이산 가족들의 감격적인 상봉 장면을 하루 종일 보여줬다.
“고만 좀 하지. 왼죙일 저것만 보여 주냐? 아유, 지겨워. 왜들 저렇게 울고불고 난리래. 좀 점잖게 만나면 안 되나?”
양희는 공연히 투덜거리는 시늉을 하며 티브이를 껐다. 목젖을 지그시 눌러오던 뜨거운 기운이 다행히 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십 년 동안이나 못 만나지 않았니.”
그러면서 어머니는 또 한숨을 내쉬었다. 양희도 덩달아 꽉 막힌 목구멍을 열어 느꺼운 숨을 조심스레 토해냈다.
“전에두 말씀드렸지만 난 아버지 저기 가시는 거 싫어요. 절대 반대야. 뭐예요, 이제 와 새삼스레.”
“그런 말이 어딨어!”
“그렇잖아요, 여자 마음이. 엄만 속상하지도 않아요? 아버진 안 가신다구 그러셨는데 괜히 엄마가 먼저.”
“같은 여자니까 내가 그 마음 모르겠니, 그쪽도 여잔데. 느이 아버지 기뻐하시면 나두 기쁘다, 부부는 일심동체라잖니.”
“난 기쁘지 않아요.”
“됐다 그 얘긴 고만 하자.”
어머니는 의연하려고 무척 노력하였다. 아무렇지도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 손수 티브이를 다시 켜기도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화면엔 눈길 하나 주지 않고 안방을 향해 걸어갔다.
“좀 누워야겠다.”
어머니의 구부정한 등을 본 순간 양희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엄마, 그래두 저랑 김 서방은 엄마 자식인 거 아시죠!”
걸음을 멈춘 어머니는 그러나 뒤돌아보지 않고 고개만 끄덕끄덕 하였다. 많은 것을 감추고 있는 작고 초라한 등이었다.
식사할 때 잠깐 얼굴을 내비쳤던 어머니는 밤이 이슥해지도록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양희는 남편과 함께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았다. 귀는 줄곧 안방을 향해 열려 있었다. 안방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냥 누워만 있는 모양이었다.
“여보, 여보 저것 좀 봐!”
남편의 목소리는 턱없이 높았다.
“북한 비행기야! 북한 비행기가 김포공항엘 다 오다니. 와, 이거 참 오래 살고 볼일이야. 장인어른 저 비행기 타고 평양에 가셨겠지?”
격앙된 남편의 목소리가 실내를 쾅쾅 울렸다. 움찔 놀란 양희는 안방 쪽을 쳐다보고 남편에게 목소리를 낮추라는 눈짓을 했다.
“저거 다 아까 나왔던 거야.”
심드렁하게 말했지만 새삼스레 벅차 오르는 감동은 어쩔 수가 없었다. 티브이에서는 북에서 온 사람들이 남에서 살고 있는 가족들과 얼싸안고 엉엉 울고 있었다. 50년만의 만남이었다. 양희는 저토록 많은 수의 북쪽 사람들을 한꺼번에 텔레비전에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러나 조금도 낯설지 않았다. 남쪽 사람들과 똑같이 생겼고, 똑같은 말을 하고, 똑같이 울었다. 지금 이 시간 북쪽에서도 서로들 만났겠지,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만져보고 어깨를 끌어안고 울고 있겠지 양희의 눈가에도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통일도 머지 않은 것 같애. 어떡하냐?”
한껏 목소리를 낮춘 남편이 은근하게 속삭였다.
“뭐가?”
“통일되면.”
“·”
“장모님 말야.”
양희는 남편을 흘겨보았다.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그렇잖아, 양쪽 어머니 그때까지 다 살아 계시면, 장인어른, 아야야.”
“이 이가 증말, 그만두지 못 해! 들려.”
양희는 인상을 쓰고 남편의 등을 때리며 연신 안방으로 시선을 던졌다. 어머니가 들었으면 어떡하나, 그것만이 걱정이었다.
“주책이야, 주책. 어째 남자라구 그렇게 무심하냐?”
“여보세요. 여보세요!”
남편은 난데없이 수화기를 들고 소리치고 있었다.
“거기 경찰이죠? 여기 남편 구타하는 아내가 있는데요. 얼른 잡아가세요.”
어이가 없었다. 양희는 남편을 가볍게 노려보고 피식 웃고 말았다. 남편도 계면쩍은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양희는 남편에게 눈다짐을 주고 일어나서 안방 쪽으로 조심조심 걸어갔다. 등뒤의 티브이 소리가 작아졌다. 남편은 텔레비전 앞으로 바짝 다가가 앉아 화면을 쳐다보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엄마. 엄마, 주무세요?”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너무 소리가 작아 들리지 않았을 것 같았다. 조금 머뭇거리다 슬며시 방문을 열려고 할 때였다. 낮고 날카로운 외침이 귓가로 쌩 날아왔다.
“여보! 나왔어, 장인어른이야!”
“·”
“만나셨어. 만나셨다구.”
“·”
“괜히 나두 눈물나는데?”
“·”
“어 뭐야. 벌써 지나갔잖아, 아참 금방 지나가네. 좀더 보여주지. 여보, 장인어른 지나갔어.”
가슴이 고동치고 손이 덜덜 떨렸다. 아무리 침을 삼켜도 입은 바짝바짝 말라왔다. 머릿속에서 휘잉, 하고 바람도 불고 깃발도 펄럭였다. 양희는 넘어질 것 같아서 벽을 짚었다. 내가 왜 이러지? 내가 왜 이럴까? 양희는 자신이 왜 이토록 동요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무리 정 도타운 부모자식 사이라지만 마치 자신이 당사자인 양 행동하고 반응하는 건 아무래도 이상했다.
양희는 주방으로 들어가 차가운 냉수를 들이켜고, 무엇을 생각하는 것도 아닌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나서 안방 문을 빼꼼히 열었다.
어머니는 이쪽으로 등을 돌린 채 누워 있었다. 양희가 들여다보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고요히 등을 보인 채 누워만 있었다. 어머니는 저런 식으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시위하고 있는 것이리라. 정작 아버지 앞에서는 못 그러시곤. 선뜻 들어설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완강한 등은 양희가 들어갈 조금의 틈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티브이도 켜지 않은 채였다. 리모컨은 머리맡 손이 닿을 거리에 놓여 있었다. 아마도 어머니는 리모컨을 들고 여러 번 망설였을 것이다. 수도 없는 망설임의 손자국이 거기에는 고스란히 찍혀 있을 것이다. 단단한 적막함과 쓸쓸함을 물리치기 위한 그 어떤 말이나 몸짓도 갖고 있지 못한 양희로서는 조용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양희가 문을 닫으려고 할 때였다. 문득 어떤 흔들림을 본 듯했다. 양희는 문의 좁은 틈으로 눈을 바짝 들이댔다. 철벽 같이 미동도 않고 있다고 생각했던 등이 실은 잔잔하게 떨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시는구나! 어머니가 우시는구나!
순간 목구멍과 콧구멍으로 뜨거운 기운이 확 치솟아 오르고 눈물이 쏟아졌다. 얼굴이 불길에 휩싸인 듯 뜨거워졌다. 머리 꼭대기로 치솟은 뜨거움은 그러나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머릿속을 뱅뱅 돌았다. 갑자기 머리통이 커다랗게 부풀어오르는 것 같았다. 누군가 귀를 막았는지 세상의 소리들은 멀어졌고 대신 심장에서 부는 바람 소리만이 격렬하게 들렸다.
양희는 어머니 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하나. 입에 발린 헛된 물음들이었다. 할 일을 찾지 못한 빈손은 하릴없이 제 입만 꼭 틀어막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엄마! 엄마!
어머니의 쓸쓸한 등을 안아 드려야 할 텐데. 엄마를 위로해 드려야 하는데. 어떡하지, 어떡하지? 양희는 발만 동동 굴렀다. 조금의 도움도, 위안도 되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자괴감 마저 들었다. 내가 진짜 엄마 딸이었다면 저토록 서러운 엄마의 등을 안아줄 수 있었을까? 어깨의 떨림을 조금은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이때처럼 어머니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이 원망스러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왜 난 엄마 딸이 아니던가? 왜 엄만 날 낳지 않고 데려다 키웠는가? 왜! 왜! 왜!
못난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못난 딸이었다. 양희는 더 이상 어머니의 들썩거리는 어깨를 쳐다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문을 닫고 그 문에 기대 서서 숨죽여 울기만 했을 뿐이다.
어느새 어머니는 잠들어 있었다. 소파 등받이에 모로 기대어 낮게 코를 골고 있었다. 양희는 깃털을 옮기듯 어머니의 등을 부축하여 소파에 눕혔다. 조심스런 이동에 잠깐 뒤척거리긴 했지만 다행히 깨지는 않았다.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기는 실로 오랜만이다. 단아한 얼굴, 오종종 제자리에 놓여 있는 눈 코 입, 비교적 조쌀한 편이긴 하지만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늘 봐왔던 얼굴을 새삼 감상하듯 그것도 잠든 얼굴을 가까이에서 내려다보니 눈맞추고 마주 볼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전압이 낮은 전류가 살갗 밑으로 돌아다니는 기분이랄까.
이마의 세월이 굽이친 흔적과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전보다 부쩍 늘어나 있었다. 결혼하고 나서부터 한 시도 떼어놓지 못했던 인내와 희생의 징표이리라. 그러나 40년 세월에 걸쳐 빚어졌던 인내와 희생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었다.
악몽이라도 꾸시는 걸까. 눈썹이 찡그려졌다. 얼마나 고단했으면 순식간에 잠 속으로 빠졌을까. 양희에게는 40년의 인고보다는 오늘 하루의 피곤함이 더 안쓰러웠다.
누운 자세와 자리가 편안하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사부자기 들어 푹신한 이부자리에 토닥토닥 뉘였으면.
문득 어머니의 아랫배를 보았다. 한 번도 생명을 담아보지 못했던 아랫배가 조용히 오르내리고 있었다. 아버지를 위해 포태의 기쁨도 포기했을 어머니. 감히 묻지 못했으나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양희 자신이 그 증거이니까.
두 아이를 배고 낳고 키우면서 어미로서의 행복과 자긍이 무엇인지 잘 아는 양희로서는 어머니의 수고로움과 애정에 늘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 저려오는 가슴은 어찌 할 수 없었다. 혈육, 핏줄을 뛰어넘을 수 없는 그 무엇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혹시 어머니도 나처럼 그 희미한 막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은 양희를 끈질기게 괴롭히고 있었다. 그것은 공허였다. 그것은 심연이었다. 한 번도 채워지지 않았던 어머니의 자궁, 딱 그 만큼의 크기로 존재하고 있을 공허였다. 아버지는 물론 양희 자신도, 은지 은철이도 채워줄 수 없는, 끝과 깊이를 알 수 없는 까마득한 심연이었다.
참 재미있는 가사라고 여겼는데, 재미로만 들을 노래가 아니라는 생각이 미친 건 요 근래 들어서였다. 언젠가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한 편으론 그렇구나 고개를 끄떡이기도 했었지만. 김은 속으로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다 택시 운전사에게 물었다.
“정말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 요금 오만 원이면 갈 수 있어요?”
운전사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듯 룸미러로 뒷자리에 앉은 김의 얼굴을 힐끔 보았다. 그리곤 라디오를 한 번 쳐다보고 피식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왜요? 평양 가시게요?”
한참 대답이 없어 실제 거리와 요금 계산을 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운전사에게서 의외의 반문이 날아왔다. 불쑥 대꾸하는 말 본새가 보통이 아니구나 싶어서 김도 가볍게 한 마디 거들었다.
“네에, 김정일 국방위원장 만나러 갑니다.”
그 말에 운전사는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룸미러를 또 쳐다보았다. 운전사의 눈이 또 하나의 눈썹을 그리고 있었다. 김도 큭큭 웃음을 흘렸다.
“왜 못 가겠어요? 가자구 말씀만 하시면 지금 당장이라두 갈 수 있죠, 길만 있으면 어디든지 갑니다. 저승길만 빼놓고요.”
“저 노래 가사대로 정말 오만 원이면 갈 수 있는 거죠?”
“ 부모님 고향이 저쪽이세요?”
가볍게 농지거리하듯 시작했으나 결국 마지막 질문으로 김의 기분은 비 나리는 밤거리처럼 이내 가라앉았다. 오다 그치다 변덕을 부리던 비가 해 넘어가는 걸 기다렸다는 듯 저녁이 되고부터 제법 실하게 뿌려지기 시작했다. 차창으로 가느다란 빗방울이 무수한 사선을 긋고 있었다.
좀 특별한 상황에 놓여 있다 손치더라도 아내의 부모라면 역시 김의 부모였다. 김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두 이번에 많이 울었어요.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테레빌 보구 있으면 눈물이 그렇게 흐릅디다. 아, 난 그쪽에 연고가 없어요. 부모님 형제 처자식들 다 이쪽에 있어요. 헤어진 가족 하나 없는 나두 그걸 보면서 울었는데 저쪽에 두고 온 사람은 오죽할까 싶어요. 가슴 많이 아프셨죠?
오십 년 동안 부모 자식이 헤어져 살았다니 이런 원통할 일이 또 어디 있겠어요. 어떤 부부는 오십 년 동안 헤어져 있으면서 서로 결혼두 안 하구 기다렸다는데, 글쎄 정작 만나서는 말 한 마디도 못했다지 않아요? 그거 보셨죠? 참 기가 막힙디다. 왜 말을 안 하느냐구 딸이, 북에 두고 온 딸이 성화를 해대고, 기자들도 성화를 해대니까 이 할아버지 기껏 한다는 말이, ‘기쁨에 넘쳐 할말이 없습니다’ 그러지 않겠어요? 아참 또 눈물이 날라 그러네. 차라리 따루따루 결혼해서 그냥 살지, 뭐 하러 기다렸나 몰라, 말 한 마디 못할 거. 것두 오십 년 동안이나 말야, 말이 오십 년이지, 난 굉장히 오래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여태 오십 년두 못 살았어요.
난 헤어진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어요. 무슨 대학교수, 의사, 시인, 점잖으신 양반들이 쪼그랑 할머니가 된 어머닐 껴안고 펑펑 우는 덴 정말 가슴이 아프더라구요. 그걸 보면서 가슴이 답답해지는 게 우리 민족이 이렇게 불쌍한 민족이구나, 그래서 한 많은 이 세상 하는 그런 노래도 있구나, 아무튼 우리나라 빨리 통일이 돼야 되요. 아 그 노인네들 죄 돌아가면 자식들끼리 서로 알아나 보겠어요? 안 그래요? 그리구 지구상에서 땅덩이 갈라져 사는 나란 우리 대한민국밖에 없다잖아요. 빨리 통일이 돼야 손님?”
귀담아 듣기는커녕 대꾸도 없이 김은 창 밖만 내다보았다. 노래는 이미 끝났다. 라디오에서는 목소리의 톤이 높은 여자 아나운서가 시내 교통 상황을 빠르게 주워섬기고 있었다. 비 때문에 도로 곳곳이 정체현상을 빚고 있고, 노면이 미끄러우니 각별히 운전에 조심하라는 그렇고 그런 내용이었다. 역사는 역사대로 삶은 삶대로 따로따로 굴러가는 두 개의 나란한 바퀴였다.
달라진 건 없었다. 떠들썩함의 기억 때문에 오히려 마음만 더 공허해진 건 아닌가 싶었다.
“걱정 마세요. 경의선 철도가 다시 생긴다니 언젠가 택시 길도 열릴 겁니다. 그렇게만 되면 손님만은 오만 원 아니라 공짜로 모셔다 드리죠. 아, 평양 거리를 내 차루 달리는데 그깟 돈이 대수겠습니까? 내 약속할 수 있습니다.”
김의 얼굴에서 어떤 기미를 읽었는지 연신 룸미러를 힐끔거리던 운전사가 호언장담을 했다. 참 착한 백성이다. 김은 운전사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정말이시죠? 내 아저씨 이름하구 차번호 다 외웠으니 그때 가서 딴 소리 하시면 안 됩니다.”
짐짓 무거워지려는 기분을 털어 내려고 김은 앞좌석으로 고개를 쭉 빼어 운전사의 프로필을 들여다보며 외우는 시늉을 했다. 운전사는 또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사십대 중반. 김과 몇 살 차이 나지 않았다. 세상을 보는 시각 차이가 나면 얼마나 나겠느냐만 김은 운전사의 순정한 긍정성이 부러웠다.
김은 그게 그렇게 단순한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그들을 헤어지게 했던 힘, 어머니와 아들을 아버지와 딸을 형과 아우를 남편과 아내를, 강제로 부지불식간에 갈라놓고 찢어 놓았던 힘, 그 거대한 힘, 사람들을 갈라놓고도 모자라 땅도 가르고 하늘도 가르고 바다도 가르고 길도 가르고, 모든 걸 동강내버린 엄청난 힘, 그 힘의 존재를 생생하게 느끼기 때문이었다.
늙은이들이 불쌍해서 가여워서, 죽기 전에 소원이나 풀라고 동정을 베풀기 위해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만나게 해줬던 것은 아닐 터이다.
김도 티브이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가슴 아파했고 통탄 통탄했다. 그러나 하루종일 4일 내내 세 개의 방송국에서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내보내는 화면을 보았을 땐 이 모든 감동과 눈물이 힘에 의해 주관된 행사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랬다, 그것은 행사였다. 흥행에 성공한 이벤트였다. 이벤트를 성공시킨 힘은 정체불명이었다. 김은 그 보이지 않는 힘의, 50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해진 그 힘의 정체를 알 수 없어서 불안한 것이었다. 40여 년 동안 속고만 살아온 것 같이 도무지 그 꿍꿍이속을 알 수가 없었다. 하나를 주면 적어도 하나 이상은 받지 않겠는가 하는 산술적 계산도 빠지지 않고 김의 순정성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갑자기 전쟁은 사라지고 평화가 도래한 느낌.
내일 당장이라도 휴전선을 넘어가 평양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고 대동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소년학생궁전에서 교예단의 신기 어린 서커스를 관람하고 그리고 고려호텔에서 하루의 여장을 풀 수 있을 것 같은 착각, 환상.
그러나 휴전선은 여전히 휴전선이었다. 지금은 글자 그대로 전쟁을 쉬고 있는 중이다. 김이 3년의 군대생활 내내 총구를 겨누고 칼끝을 겨누고 있던 심장은 바로 북한괴뢰도당이었다. 아직도 우리의 주적은 북한인 것이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빗줄기 어린 차창으로 내다보는 도시의 밤거리는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번쩍번쩍거리며 불야성을 이뤘다.
김은 이 환락의 도시 한복판을 택시를 타고 편안하게 가로지르고 있었다. 택시를 타면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 운전사의 말대로 몇 년 혹은 몇 십 년 후면 택시를 타고 평양까지 달릴 수 있을 것이다. 단돈 오만 원만 내면.
운전사는 제 기분에 도취되어 공짜로 서울에서 평양까지 달리겠다고 했다. 김은 운전사의 허튼 소리를 이해 못하는 바 아니었다. 덩달아 자신도 흰소리를 떠벌려대지 않았던가. 그러나 김은 절제 없이 마구 써대는 운전사의 감정이 염려스러웠다. 티브이를 보면서 울고, 그 얘기를 하면서 또 울먹거리는, 그 착하고 순해빠진 심성이 못마땅한 것이었다. 한 아이가 울면 모든 아이가 덩달아 따라 울어버리는 유치원생 같은 단순 유약함. 마치 드라마를 보면서 울듯이 그렇게 울기만 하는 감정적인 너무나 감정적인. 그럼에도 약간의 시간만 흐르면 뒤늦은 유행인 양 깨끗이 잊어버리는 기억상실증. 어쩌면 그렇게도 돌림병처럼 전 국민에게 일제히 그런 증세가 퍼지는 것인지 김은 알 수 없었다.
피투성이 되어 투쟁하던 이념들이 하나 둘 죽어 나빠지고, 포연 없는 전장에서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것은 자본주의. 한반도의 자본주의는 돈을 먹고 자라는 바오밥나무다.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도 돈을 먹고, 돈을 호흡한다. 이념도 돈이 없으면 말라죽는다. 지금까지 50년 동안은 오만 원이 없어서 평양에 가지 못했다. 이념이 가로막았던 길을 돈이 뚫었고, 사람은 겨우 그 돈의 뒤꽁무니에 매달려 쫓아갈 수 있게 되었다. 무기를 녹여 쟁기를 만든다고? 맞는 말이다. 쟁기는 돈을 긁어모으기 위해 휘두르는 것이므로.
김이 느끼는 께름칙함은 거기서 왔다. 평화로 가는 길을 공짜로야 갈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혈육이니 민족이니 핏줄이니 하며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고 있을 때, 보이지 않는 힘은, 둘이 힘을 합쳐 더욱 거대해진 힘은, 우리 곁에서 눈물 값을 계산하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천천히 마셔, 이거 독한 거야 그러다 취해.”
모처럼 장인어른을 모시고 마시려던 술을 아내와 대작하면서 김은 그 날 이후 그녀의 음주가 부쩍 빈번해졌음을 새삼 깨달았다. 오늘의 핑계는 ‘비가 오기 때문에’인데, 굳이 아내가 매번 이유를 갖다 붙이려는 시도도 저 자신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특히 아내가 친정에 다녀오는 오늘 같은 날이면 술 마시는 속도와 양은 거의 정비례하며 증가하기 일쑤였다. 역시 아내는 장인어른의 방북을 관계의 끊어짐으로 생각하는 게 틀림없었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술을 홀짝거리는 아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내의 얼굴엔 거무스레한 우울함이 기미처럼 깔려 있었다.
“당신 무슨 고민 있어?”
그는 짐짓 속내를 알 수 없다는 시늉을 하며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처가로 향하던 택시에 그대로 아내를 태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마시기 시작한 술이 벌써 오르기 시작했는지 아내의 얼굴은 불콰했다.
“고민은 무슨. 그냥 비 오잖아.”
아내가 어쩐 일인지 심란해하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혹시 장모님에게서 그 얘기를 들은 건 아닐까. 그에게 부탁한 당사자인 장인어른이 말했을 리는 없을 테니까. 그러나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아내는 말없이 술만 마셨다. 그는 공연히 마음이 흔들려서 슬쩍 말머리를 꺼내보았다.
“너무 걱정하지마. 다 잘 될 거야, 장인어른이 장모님을 얼마나 생각하시는데.”
그게 잘 되는 일인지 어떤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기로 하자. 그는 단지 자신의 말에서 눈치 빠른 아내가 어떤 의미를 알아차려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힌트를 주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김의 말을 으레 남편이 아내에게 하는 위로의 말로만 알아듣고 씁쓸한 미소에 섞어 들어넘겨 버리곤 또 술잔을 기울였다. 그도 술 한 모금 마시고 제 입술을 핥았다. 아내 모르게 비밀을 갖고 있다는 게 상당한 심적 부담이 되고 있었다.
“장인어른은 좀 어떠셔?”
언젠가 그는 자기가 누워 잠잤던 이부자리를 본 적이 있었다. 제 이부자리야 누구든 보고 있는 것이므로 새삼스레 그걸 봤다고 말할 건 못 되지만, 그날 따라 유난히 달라 보여서 좀 색다른 느낌을 받았었다. 제 몸의 자국이, 누웠던 흔적이 생생히 남아 있는 이부자리를 볼 때의 기분은 참 묘했다. 그것은 마치 삶의 자리에서 죽음의 자리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잠을 죽음의 흉내라고 볼 수 있다면 그렇게 큰 억지는 아닐 것이다.
죽어 누울 자리를 응시하고 온 두 분. 그는 그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오해하지는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이해의 감정을 장인어른과 공유하고 싶었으나, 그러나 지금은 아내를 이해하는 일이 먼저였다.
“아버지 주무시는 것만 보구 왔어. 두 분이 어딜 다녀오셨는지 엄마두 굉장히 피곤해하시더라구. 그래서 당신 못 오게 한 거야. 대체 어딜 다녀오신 거지? 물어두 대답두 안 해주시구 말야. 근데 아버진 왜? 오늘 아버지 찾아뵙기루 했었어?”
“아니, 그냥.”
말을 얼버무리는 김은 아내에게 미안했다. 두 분의 묏자리를 장만한 사람이 바로 그였고, 따라서 오늘 두 분이 어디에 다녀왔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장인어른이 고향에 다녀온 뒤 갑작스럽게 묏자리를 구해보라고 하여 그걸 얻느라 그는 아주 애를 먹었다. 낮에 아내가 전화로 물었을 때 모르쇠 했던 이유는 장인어른의 부탁 때문이었다. 당분간은 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렇지 않았더라도 그 자신 미리 말해줘서 기분 좋을 건 없다는 생각에 아내에게 말해줄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게 되고 보니 기분이 영 찜찜한 게 아니었다.
“당신 어머니 고향에 언제 가봤었지?”
두 가지 모두는 아니더라도 하나는 알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 오히려 미리 알아둬야 하는 게 자식된 도리일 것이다.
“ 화성에?”
지구 다음에 있는 행성인 화성이냐는 듯 아내는 어색하게 되물었다. 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는 한동안 대답 없이 입술만 잘근잘근 씹었다. 눈가와 볼이 더욱 불그레해졌다.
“한 번도 없어.”
“멀쩡한 서방 옆에 놔두고 웬 자작이야? 이리 줘.”
“정말이야. 없어. 어디 있는진 알지만, 지도에서 봤으니까 알지, 화성 어딘진 몰라. 찾아가래믄 못 가.”
“천천히 마시래두.”
“화성 땅이 뭐 다 엄마 고향인가? 난 엄마가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몰라 뭐야? 나란 사람.”
괜한 말을 꺼냈다 싶었다.
“내가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모르는데, 엄마가 어서 태어났는지 알게 뭐람, 치. 여보 잠깐만.”
아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욕실로 들어갔다. 태연한 걸음걸이였다. 그새 그럴 리야 없겠지만 취한 기색도 없었다. 문고리 걸어 잠그는 똑, 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와 공연히 가슴이 철렁했다.
헤프게 감정 내보이는 걸 싫어하는 아내였다. 그런 면은 김과 같았다. 어쩌면 아내의 그런 면을 그가 닮아가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내는 자신이 강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었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을 강인하게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것은 장인어른이 고향에 다녀온 뒤부터 부쩍 심해졌다. 그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정작 자신의 노력과는 달리 오히려 아내가 많이 약해지고 있음을 알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일이었다. 반백 년 세월도 꿰뚫고 이어지는 혈육의 정이었다. 가족을 찾아 떠나는 노인들의 뒷모습에서 필시 아내는 제 혈육을 떠올렸을 것이다. 티브이에서 신문에서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혈육에 대한 그리움. 아내는 지금 욕실에서 어머니를 부르고 있을 것이다. 길러준 어머니가 아닌 낳아준 어머니를. 얼굴도 모르고 성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어머니를, 낳은 지 8일 만에 차가운 길거리에 자식을 내다버린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원망하며 숨죽여 울고 있을 것이다.
아내는 한참, 나오지 않았다.
김은 긴 한숨을 토해내며 술잔을 들었다. 핏줄, 핏줄 앞에서는 모든 논리와 이성과 의지가 무릎을 꿇고 마는 모양이었다. 핏줄은 때로 상황을 뛰어넘어 사람을 강하게도 또한 약하게도 만들었다.
“아버지 50년 동안 꿈에도 못 잊던 저쪽 가족 만나러 가시고, 우리 엄마 자식이라곤 달랑 나 하나밖에 없는데(여기서 김은 “왜 자식이 하나야? 사윈 자식 아닌가?”라고 정정해주었는데, 아내가 귀담아 들었는지는 자신할 수 없었다). 울 엄마 나 입양한 딸이라고 혹여 마음 다칠까 얼마나 나한테 지극 정성을 다했는데, 나도 배 아파 난 은지 은철이한테 그렇게 못 해 여보, 나 나쁜 년이야, 지금 나, 날 낳아 준 엄마가 보고 싶어 미치겠어. 날 키워준 엄마, 불쌍한 우리 엄마, 저렇게 혼자 쓸쓸히 누워 계시는데, 난 나 버리고 도망간 엄마가 보고 싶단 말야. 엄마, 엄마. 나 나쁜 년이지 여보? 엄마한텐 지금 아무도 없는데, 나밖에 없는데 아냐, 우리 엄만 한 분뿐야. 나는 엄마가 하나야. 우리 엄만 하나야. 그래 다 가라 그래. 아버지두 가구, 다 가! 난 죽을 때까지 우리 엄마랑 살 거야!”
그 날 장인어른이 북의 어머니와 형님을 만난 장면을 티브이에서 보고 아내는 가슴속에 고였던 말을 그렇게 쏟아냈다. 한번도 생모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던 아내여서 김은 좀 놀랐었다. 지금, 아내는 또 다시 설움이 북받쳐 올라 자기도 모르게 하소연하게 될까봐 욕실로 숨어 들어간 것이리라.
장인어른 또한 그 앞에서 속내를 보였었다. 그걸 전적으로 술 탓이라고 돌려버리는 건 인격에 대한 모독이었다.
“그 안에 필림 들어 있다는 걸 그만 깜빡했어. 기껏 찍은 사진 한 장도 볼 수 없으니 이처럼 원통한 일이 또 있나, 어쩌자구 그걸 생각 못 했을까, 어쩌자구 그런 미련한 짓을 했나.”
가족들이 마련해준 한 보따리의 선물을 안겨주고도 성에 차지 않아 장인어른은 그만 사진기까지 덥석 집어준 모양이었다. 사진기뿐만이 아니었다. 선물을 담아갔던 가방은 물론이거니와 옷 가방과 갈아입을 옷까지 몽땅 주고 왔다. 차고 있던 시계도 벗어주었다. 아마 입고 있는 옷까지도 벗어주고 싶었을 것이다.
사진기가 갔으니 그 안의 필름까지 딸려간 건 당연했다. 필름 챙길 염을 하지 못한 자신의 민함을 탓하는 장인어른을 위로한답시고 김은 이렇게 말했다.
“장인어른 너무 심려 마세요. 뉴스에두 나왔잖아요. 이제 경의선 철도만 복원되면 장인어른 그 기차 타고 고향에 가시게 될 겁니다. 그럼 그쪽 형님이랑 어머니 언제든지 만나실 수 있으니까 그깟 사진 몇 장쯤 없어도 되죠 뭐.”
그렇게 주워섬겼으나 기실 그 자신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시간을 뛰어넘는 일들은 꿈에서나 가능한 일일 것이다.
장인어른은 말없이 술잔을 기울였다. 김은 장인어른이 자신의 말을 긍정해줬으면 하고 바랐다. 장인어른은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김 서방.”
“네 장인어른.”
“나도 살아서 타 볼 수 있겠나?”
“네?”
“자네처럼 나도 그 기찰 타 볼 수 있겠나 말이야.”
“죄송합니다.”
김은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입에 발린 말이었다. 여든이 넘은 노인에게는 낯간지러운 말장난에 불과했다. 그러나 설사 입에 발린 말이라 할지라도 왜 좀더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했을까, 금세 후회스러웠다. 물론입니다, 장인어른, 탈 수 있어요, 탈 수 있구 말구요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다 됩니다. 공연한 큰소리라 할지라도 차라리 그러는 편이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었다.
김은 장인어른의 빈 술잔에 술을 따랐다. 처연했다.
“아닐세, 그게 어디 자네 잘못인가, 다 내가 늙은 죄지. 나도 잘 알아. 그래서 좀더 돈을 가져가지 못한 게 한이 되는 거야. 돈이라두 많이 주구 왔드라면 좀 편케 살지 않겠나? 애비가 돼서 즈이 어머니를 모시라고 해 놓구 아무것도 주질 못했으니, 나처럼 못난 애비, 못난 남편도 없을 거네.”
“아닙니다, 장인어른, 그거야말로 뭐 장인어른 탓두 아니지 않습니까?”
어째서 고작 요런 말밖에 떠오르지 않는 건지 김은 가슴이 답답했다. 차라리 입을 꼭 다물고 가만히 듣기나 할 것이지, 어쩌자구 되지도 않는 말을 자꾸 입에 올리는 것인지.
“여기 오기 전날 밤에 지갑을 줬는데, 그 지갑 안에 신용 카드가 있었어. 왜 신용 카드 쓰는 법을 알려주지 못했을까? 그걸 알려줬드라면 한 달에 얼마씩은 꼬박꼬박 쓸 수 있을 텐데, 내가 왜 그걸 안 알려줬는지.”
“형님이 그걸 아신다구 해두 여기 카드를 거기선 못 쓸 거예요.”
“이보게 김 서방. 정말 원망스러워. 내가 아버지이고, 남편이라는 사실이 이렇게 화나고 절망스러울 수가 없네. 자네두 자식 키워 봐서 애비된 심정 잘 알겠지. 그러나 애비가 되서 자식을 지켜주지 못하고 애들 어미를 지켜주지 못하는 그 심정, 그 찢어지는 심정만은 모를 걸세. 차라리 날 만나지 않았드라면, 날 애비로 태어나지 않았던들.”
“장인어른.”
“자네 장모 볼 낯도 없고, 내 누굴 원망해야 되겠는가? 누굴 붙잡고 하소연해야 이 원통함이 풀리겠나 말이야. 정말 원통하고 원통해서 참을 수가 없네. 게다가 난 이렇게 늙어버렸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늙은이일 뿐야.”
아아 드디어 말문이 꽉 막혀 버렸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저 가만히 얘기를 듣고, 술잔이 비면 술을 따르고, 가끔 눈을 맞추거나 고개를 끄덕이고, 조용히 술잔을 들면 그것으로 되었다. 그리고 화장실 간 사람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으면 그만 술자리를 접고 일어나 그를 찾아 데리고 와 따뜻한 잠자리에 눕히면 되는 것이었다.
아내는 쭈삣쭈삣 주방으로 돌아왔다. 감쪽같은 얼굴이었다. 식탁 위에는 김이 끓여놓은 꿀차 두 잔이 놓여 있었다. 아내가 입술을 달싹거렸다.
“고마워 미안해.”
욕실의 거울을 통해 흐트러진 감정을 빈틈없이 주워담아 꼭꼭 수습했을 아내이건만 목소리에는 아직도 촉촉이 물기가 배어 있었다.
“겨우 요까짓 거 갖구 그렇게 감격하면 곤란한데? 이리 와.”
김은 아내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 상체를 김에게 기댔다. 묵직한 슬픔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두 팔 가득 안겨온 아내의 몸은 뜨거웠다. 그의 손을 찾아 쥐는 손도 화들짝 놀랄 만큼 뜨겁게 달궈져 있었다. 손가락을 아프도록 꽉 쥐는 게 어쩐지 아내가 숨어서 하던, 울음을 눌러 삼키려는 동작 같아서 코끝이 저릿했다.
단 몇 분 동안의 출렁거림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다 알 것 같았다. 피를 끓어 올리고 이성을 녹여내려 한바탕 흥건한 격정의 시간을 치러낸 아내, 모든 인내의 과정을 혼자서만 주관하고 혼자서만 통과한 아내.
그 동안 한 번도 아내의 슬픔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봤던 적이 없는 김이었다. 그랬구나, 한 마디로 가볍게 지나가곤 했었는데 이렇게 영혼에 사무쳐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그는 자신의 무심함이 아내의 슬픔을 더욱 깊게 했음을 깨달았다.
“양희야.”
아내에게는 끊어짐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 있었다. 아내는 장인어른의 방북을 다른 사람들처럼 이어짐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끊어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날 이후부터 아내가 보이고 있는 동요와 불안한 양상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다섯 살 때 입양되었다는 아내가 8일 만에 버려진 혹독한 경험을 잊고 살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장인어른 장모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김과 은지 은철이 때문에 산다고 하겠지만. 그럼에도 아내의 버려짐에 대한 끔찍한 기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닌가 보았다. 장인어른의 방북으로 인해 삼십오 년 동안 다져진 가정이 흩어져 버리는 건 아닐까, 그래서 또 다시 부모로부터 버려지는 건 아닐까, 하고 아내는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의식 저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 박혀 있는 오래 전 상처를 쿡쿡 들쑤시고 있는 것이었다. 김은 애꿎게 장인어른을 원망했다.
언젠가 아내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난 탯줄 없이 태어났어.”
그때는 그 말이 품고 있는 고통과 슬픔을 짐작할 수 없었기에 그는 자의식 강한 여성의 자기 선언쯤으로, 그것도 흉내쟁이의 우스개 소리로만 받아넘겼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 같은데?”
“하늘에서 뚝 떨어졌단 말야.”
“왜, 알에서 태어났다고 그러지.”
자기의 근원을 알 수 없어서 부정할 수밖에 없는 여인의 고통. 그 부조리한 고통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남자를 남편으로 가졌으니 여인의 고통은 또 얼마나 짙어졌을까.
김은 아내의 몸과 함께 상처받은 영혼을 깊게 껴안았다.
“근데 당신 아까 갑자기 그건 왜 물었어?”
따끈한 꿀차 두 잔을 사이좋게 마시고 들어와 막 잠자리에 누운 아내가 물었다. 김은 스탠드를 켜고 형광등을 끄면서 심드렁히 대꾸했다.
“뭘?”
“우리 엄마 고향 말야, 난데없이 왜 엄마 고향 얘길 꺼냈냐구. 당신 한 번도 가본 적 없잖아? 그리구 화성이란 건 또 어떻게 알았어?”
아내의 옆자리에 누우려던 김은 좀 전에 했던 얘기를 까맣게 잊고 있었으므로 속으로 이크, 했다. 제 감정에 사로잡혀 있던 아내가 드디어 그의 힌트를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그가 반사적으로 내가 장모님 고향을 왜 몰라? 어쩌구 하며 눙치려는데 벌떡 일어난 아내로부터 직격탄이 날아왔다.
“당신 나 몰래 엄마 고향에 다녀왔지? 그렇지? 그렇지?”
아내의 추궁이 시작되었다. 김도 일어나 앉을 수밖에 없었다. 직성이 풀릴 때까지 계속될 신문에 지레 겁을 내서는 아니었다. 시시콜콜 따져 묻는 집요한 태도가 귀찮아서도 아니었다. 그건 뭐랄까, 아내가 장모님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래서 이번 방북은 장모님에게 있어서 관계의 끊어짐이 아니라 영원한 이어짐이라는 강한 믿음을, 아내에게 심어 주기 위해서였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고 영원히 이어지면, 아내가 또다시 부모로부터 떨어져버리는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을 테니까. 어차피 그녀가 알아차리길 바라며 먼저 말을 꺼냈던 사람도 그 자신이었으므로 그는 장인어른과의 약속을 과감히 깨버리고 아내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실은 말이야.
그렇구나, 몰랐어, 난 또, 연신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던 아내가 이번에는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그에게 되물었다.
“통일되면 어떡하지?”
이래서 부창부수라는 말이 있나 보았다. 이 말은 그 날 김이 했던 어리석은 질문 아니던가.
“뭐가?”
“저쪽 가족이 그냥 놔둘까. 아버지 고향이 평양인데 그쪽으로 모셔가려구 하지 않겠어?”
“거야 그때 되면 우리들이 잘 알아서 하믄 되지. 그것보다 중요한 건 장인어른이 돌아가셔서까지 장모님하구 같이 계시구 싶다는 걸 오늘 장모님이 아셨다는 사실이야. 그것만큼 장모님에게 깊은 신뢰를 주는 일이 또 어딨겠어? 안 그래?”
“하긴 근데 그걸 왜 나한테 말 안해. 그게 뭐 숨길 일이라구?”
“글쎄?”
“그게 아닌 다른 뭔가가 또 있는 거 아냐?”
“있긴 뭐가 있다구 그래.”
“아냐, 있어. 당신 눈 보믄 틀림없이 뭔가 있어. 뭔데? 나한테 숨기지 말구 다 말해 줘. 응?”
눈치 빠른 아내는 김이 빠트리고 얘기한 한 가지를 눈치챘음이 분명했다. 그는 잠깐 망설였으나 내친 김이었다. 아내가 속시원히 의문을 풀고 그 날 이후로 찾아들기 시작한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다 털어 버리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그는 그 얘기까지 하고 말았다.
“그게.”
아내는 눈을 반짝이며 귀를 쫑긋했다.
“ 당신이랑 내 자리두 있거든.”
뒤통수를 주먹으로 강하게 얻어맞은 듯 아내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 말이 무얼 뜻하는 건지 알아차린 다음에는 벌어졌던 눈과 입이 더 크게 열렸다. 아직 죽음과는 먼 나이여서 받는 놀라움은 아닐 것이다.
“나야 뭐 화장할 생각이었잖아, 당신두 마찬가지구. 근데 아버님이 우리들두 같이 있어야 어머님 외롭지 않다구.”
흑, 아내가 입술을 삐죽이며 눈물을 떨어뜨린 건 그때였다. 절대로 그 앞에서 우는 얼굴을 보이지 않던 아내였으나 이번만큼은 그게 잘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내가 눈물을 보이기 전에 그의 목소리가 먼저 흔들린 게 사실이긴 하지만.
“그렇게 다 지키고 싶으셨던 거야.”
“·”
“살아서 못 다한 거, 죽어서라두 다 하고 싶으셨을 거야. 나두 내 계획 취소하고 당신 옆자리에 누울게. 아, 물론 살아서도 늘 당신 옆에 누울 거구 말야 양희야.”
자꾸 가라앉는 게 싫어서 김은 엉너리치면서 아내의 상반신을 끌어안고 이부자리 위로 쓰러졌다. 난데없이 무슨 짓인가 싶어 저항의 몸짓을 보이던 아내도 곧 감정을 수습하고, 순순히 그의 몸짓에 따라주었다.
“양희야, 내가 널 지켜줄게.”
어떻게 이 여자와 헤어져 사나. 어떻게 내 아이들을 만나지 못한 채 일평생을 보내는가. 그는 아내의 몸을 쓰다듬으며 비로소 장인어른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기분이었다.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만났으면, 그냥 이렇게 단순하게 서로를 끌어안았으면, 그냥 이렇게 만났으면.
아버지 된 자가 지켜야할 것은 제 목숨이 아니었다. 자신의 품에 뜨겁게 안겨 있는 작은 여자 양희였고, 그녀의 몸을 빌려 태어난 아이들 은지, 은철이었다. 아버지는 단 돈 오만 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들 불완전한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었다.
김은 아내의 몸 속으로 파고들며 자꾸만 자꾸만 중얼거렸다.
“양희야, 우린 떨어지지 말자. 우리 은지 은철이, 죽어두 같이 죽구 살아두 같이 살어, 절대루 떨어져선 안 돼. 절대루 절대루.”
달도 삼켜버린 칠흑 같은 밤이었다. 제 눈으로 제 몸을 볼 수 없는 어둠 속이었다. 겁이 났다. 무서워서 발이 내밀어지지 않았다. 땅바닥에 딱 달라붙어 버렸다. 자칫 허방 속으로 굴러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는 뒤돌아보았다. 집이 있다고 짐작되는 곳에 한 덩어리의 그림자가 있었다. 이쪽을 지켜보고 있는 순희의 검은 실루엣이리라.
들어가라우.
침을 꿀꺽 삼키고 그는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마치 그녀가 들어가지 않아서 출발하지 못하고 있다는 듯이.
아랫배가 소쿠리처럼 둥글게 부풀어오른 실루엣이 뒤뚱뒤뚱 움직였다. 한 덩어리의 어둠이 둔하게 사라져 들어가고 난 후에도 그곳은 여전히 어둠의 차지였다. 그는 어둠을 보면서 자신이 살아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냈고, 절대로 잊지 않으려고 아이의 이름을 속으로 가만히 불러보았다. 그는 다시 한번 마른침을 삼키고 용기를 내어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오늘은 꼭 식량을 구해야 한다.
전쟁이 휩쓸고 지나간 마을을 빠져나오는 그의 눈에는 배고파 우는 두 아이의 모습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뱃속에 담긴 아이의 모습도 눈에 선했다.
이번에는 내레 남쪽으로 갔다 와볼 꺼이야. 고저 좁쌀이라두 좀 얻을 수 있을지 누가 아네?
번번이 허탕을 쳐왔던 그였다. 삼일 동안 아이들을 굶긴 그였다. 자신의 배고픔 따위는 잊은 지 오래였다. 삼일 동안 아이들과 아내를 굶겼다는 사실만이 생각났다.
그는 양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두 팔을 겨드랑이에 꼭 붙인 채 조심조심 발을 옮겼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의 허리를 꺾어대는 빈창자를 이겨낼 수 없었다.
그는 달리기 시작했다. 저주스런 배고픔을 잊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무기력함을 잊기 위해서였다. 배고프다고 느끼는 저 자신이 뻔뻔스럽고 죄스러웠다. 성난 소처럼 어둠을 향해 돌진했다. 발바닥을 걷어차는 돌멩이가 그를 비틀거리게 했지만 결코 멈추지 않았다. 산길은 이미 발에 익숙했다. 이 산을 넘기만 하면, 어둠의 저쪽에는 아이들에게 먹일 식량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이 먹고 남는 것이 있다면 자신도 조금은 얻어먹을 수 있는 음식물이.
쿵, 어깨에 무언가가 세게 부딪쳐 와서 그는 벌렁 나자빠졌다. 떼굴떼굴 어디론가로 굴러 내려갔다.
조심하시라요.
그는 제 어깨를 감싸안았다. 통증보다는 두려움과 배고픔 때문에 전신이 덜덜 떨려왔다. 산을 넘어갔던 사람 중 돌아온 사람은 별로 없다는 소문이 그를 더 겁먹게 했다.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흘릴까봐 두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조심하시라요. 아내는 사립문을 나서는 그의 등뒤에 대고 불안한 목소리로 당부했었다.
귀를 바짝 세우고 긴장했으나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는 않았다. 넘어질 때 긁힌 얼굴이 따끔따끔거렸다. 목덜미로 흘러내리는 걸 땀인 줄 알고 닦았더니 손끝에서 비릿한 냄새가 났다. 손가락을 빨았다. 목구멍이 확 조여 들어오고 울컥 속이 뒤집혔다. 먹은 것이 없으므로 쓴 물만 목구멍에 고였다. 그는 쓴 물을 도로 삼켰다. 그는 호흡을 고르고 배에 힘을 주었다. 땅바닥을 더듬어 손에 잡히는 대로 무언가를 움켜쥐었으나 풀려버린 무릎은 좀처럼 세워지지 않았다. 손에 잡혔던 것이 투둑 끊기는 소리가 났고, 손바닥으로 뜨거운 통증 한 줄기가 날카롭게 지나갔다. 손바닥의 통증을 달래줄 여유가, 무엇이 자기의 어깨를 쳤는지 살펴볼 여유란 조금도 없었다. 한시가 급했다. 그는 주먹을 불끈 쥐고 언덕을 기어올라왔다.
얼마나 왔을까.
어둠이 눈에 익어 사물의 형태가 어렴풋하게 가늠되기 시작했다. 어느새 달도 창백한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달을 보자 불현듯 눈물이 났다. 깜깜한 한밤중에 홀로 치러내야만 하는 이 고독한 행진.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내내 억누르고 있던 두려움이 한 방울 눈물 되어 흘러 내렸다. 그는 전쟁을 저주했다. 아이들을 굶주리게 하고 임신한 아내를 굶주리게 하는 전쟁을. 그에게 있어서 전쟁이란 배고픔이었다.
그는 그의 손을 놓지 못하는 아내에게 씩씩하게 말했었다.
걱정 말라우. 먹을 거 구해서 꼭 돌아올 테니끼니. 내레 오기 전 까진 절대 아무나한테 문 열어주지 말라우. 조금만 참으라 잉.
그러나 무엇을 참으라는 말인가. 굶주림은 인내의 영역에 들어가지 않는다.
잠긴 문안에는 세 모자가 굶주림에 오돌오돌 떨며 있었다. 더군다나 아내의 뱃속에는 7개월 된 핏덩이까지 들어 있지 않은가. 한시바삐 먹을 것을 가지고 돌아오기만 기다리는 가족들의 배고파 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그는 나약한 감상 따위 결연히 떨쳐버렸다.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혹시 넘어져 비탈을 굴렀을 때 길을 잘못 들어선 건 아닐까.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허기에 지친 발을 무겁게 잡아끄는 피로 때문에 그의 발걸음은 자주 비틀거렸다. 어둠도 끝이 없었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나타나는 나무들 때문에 그의 발걸음은 자주 휘청거렸다.
이 어둠의 길은 언제 끝날 것인가. 나는 이 고단한 길을 얼마나 더 가야하는가. 차라리 나 혼자였다면.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 걸음을 우뚝 멈췄다. 검은 짐승 한 마리가 재빠르게 그의 눈앞으로 휙 지나갔던 것이다. 심장이 마구 방망이질해댔다. 식은땀이 모든 땀구멍으로부터 솟아 나와 그를 순식간에 얼려 버렸다. 숨쉬는 나무토막처럼 꼿꼿해져 있는 그의 뇌리에서는 푸른 불꽃을 튀기는 짐승의 눈알만이 번쩍번쩍거리고 있었다.
그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짐승은 사라졌고 길은 여전히 어둠에 점령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뇌리에 콱 박혀 있는 목소리, 두 개의 눈알같이 오연하게 번쩍이는 목소리!
그는 머리를 흔들며 무작정 뛰었다. 그 길이 맞는 것인지 그 자신 알지 못했다. 머뭇거리기를 잘 하는 두 다리가 못미더워 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좁쌀 담을 빈 보자기를 옆구리에 꼭 끼고서 허둥지둥 내달렸다.
달리는 그의 뒤꼭지로 누군가 쫓아온다는 느낌이 들었다. 느낌은 점점 확신으로 변했다. 누굴까. 누가 소리도 내지 않고 쫓아오는 걸까. 그것이 짐승인지 사람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 그의 귀에는 자신의 달리는 발자국 소리만 들렸다. 그러나 분명 누군가 있었다.
그의 등에 달라붙어 있는 듯 느껴지는 선명한 존재감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하여 그는 어둠 속을 향해 달려나갔다. 어둠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을 한 줌 좁쌀을 의식적으로 떠올리면서, 뒤돌아보지 않으려 애쓰며 또 한 마리의 짐승 되어 앞으로앞으로 돌진했다.
조심하시라요! 이대 아바지.
크앙. 날카로운 기운이 뒤통수를 후려갈겼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의식을 잃고 어둠 속으로 함몰되어 갔다.
이대야!
눈을 떠보니 서재였다. 어느새 또 낮잠에 빠졌던 모양이었다. 요즘엔 시도 때도 없이, 장소도 상관없이 눈 깜빡하는 사이 잠이 들곤 했다. 잠도 깊고 꿈도 깊었다. 반복되어 나타나는 꿈도 있었다. 아주 오래 전 일들이 불현듯 꿈속에서 재현되는 일도 많았다. 그것이 꿈인지 과거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꿈을 꾸고 일어나서 그것을 오래 전 기억이라고 착각하거나, 오래 전 기억을 어젯밤 꿈이라고 혼동하는 일은 빈번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자세로 졸았는지 고개가 뻣뻣했다. 책상에 눌려 얼얼한 오른쪽 뺨을 어루만지며 권옹은 허리를 일으켜 세웠다. 책상에는 낡은 사진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또 이걸 보다가 잠이 들었던 게로군.
누렇게 바래고 허옇게 갈라진 사진 속엔 어린 아내와 어린 아들이 이쪽을 쑥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둘 다 정면을 바라보고 꼿꼿하게 서 있는 어색한 모습이었다.
권옹은 오래된 사진 한 장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이 사진이야말로 그와 50년 세월을 같이 보낸 가족이었다. 처음엔 사진 한 장 챙기지 못한 게 후회스럽고 안타까웠다. 그러나 이 앳되고 귀여운 모습에서 늙어버린 아들과 정신을 놓고만 아내를 유추하기란 힘들었다. 그의 손안에 옛날 사진이 있는 한 아들과 아내는 여전히 앙증맞고 청순한 모습으로만 살아 있는 것이다. 때로 그 자신 또한 시간을 무시하고 젊고 튼튼한 아버지로 되돌아가 가난하지만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달콤한 환상에 젖어보기도 하면서.
권옹은 사진을 책상 서랍에 넣고 열쇠로 잠갔다.
편지와 아내의 사진을 주고 온 건 참 잘한 일이야.
사진을 가져오는 건 잊었어도 주고 오는 건 잊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아내에게 위로가 될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생각해낸 최선의 표현임에는 틀림없었다.
점심 드세요. 주무세요?
아내의 목소리가 문틈으로 조심스레 새어 들어왔다.
아니오, 곧 나가리다.
권옹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문으로 다가갔다. 잠시라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금세 굳어버리는 낡은 몸이었기에 관절 이곳 저곳에서 뚝뚝 꺾이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시장하시지도 않으세요?
아내는 권옹이 수저를 들자마자 조급하게 숟가락질을 시작했다.
웬 죽이오?
당신 소화가 잘 안 된다셨잖아요. 기력도 없어 뵈고, 전복이에요. 어여 드세요.
아내는 연신 죽을 떠먹으며 말했다. 권옹에게 늦잠 자는 버릇이 생긴 이후로 아내에게는 식탐하는 버릇이 붙었다. 아내의 새로운 버릇은 그가 만들어준 것일 수도 있었다. 그는 아내의 열심한 숟가락질을 일부러 안 보는 척하며 천천히 죽 한 술을 입에 넣었다.
죽은 간이 맞지 않았다. 아내는 태연하게 먹고 있었다. 밍밍한 죽은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않았다.
왜요? 입에 안 맞아요? 그냥 밥 드릴까요?
그의 숟가락질이 느려지자 아내는 건성으로 한 번 묻고 여전히 맛있게 떠 넣기에 바빴다.
아, 아니오.
지난 번 함께 외출하고 돌아온 다음 날부터였을 것이다. 권옹은 아내가 자신에게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손에 닿을 거리였지만 마음은 미치지 못하는 거리였다. 그전 같았으면 그의 기색을 세심하게 살폈을 아내였다. 게다가 간이 맞지 않는 음식을 저렇듯 맛나게 먹고 있지도 않을 아내였다. 그러나 아내는 무감각해졌다 어쩌면 아내는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도 몰랐다. 나중에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남겨두고 모두 다 써버리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아내가 두 그릇의 죽을 말끔히 해치우는 동안 그는 겨우 한 그릇만을 비워낼 수 있었다. 죽이 싱거운 탓이었다. 맹탕이었기 때문에 목구멍은 자주 조여들었다.
왜 좀더 드시잖구요?
많이 먹었어. 천천히 들어요. 나 먼저 좀 들어가서 쉬겠소.
세 그릇 째 죽을 퍼담고 있는 아내를 뒤로하고 권옹은 다시 서재로 돌아왔다. 비로소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 때문에 그는 적잖이 당황했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난 사람은 아내가 아니라 그 자신이 아니었을까.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30년 전에 끊은 담배였다. 그는 빈 입을 쓰다듬으며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차가운 바람이 성큼 뼛속으로 파고들었다. 붉은빛 초록빛 잿빛 기왓장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3층에서 내려다본 거리는 색색깔의 지붕들에 가려져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한참 지붕만 내려다보았다. 낙엽이 떨어져 있었고, 배드민턴 공과 누군가의 신발 한 짝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이빨도 있을까. 지금도 아이의 빠진 이를 지붕 위로 던지는 아버지가 있을까. 그는 자신이 던져 올린 이대의 앞니를 아직도 이고 있을 집이 문득 그리워졌다. 아내와 아들은 50년 전의 그 집에서 이사도 가지 않고 살고 있다고 했다. 새로 지어 올렸다고는 해도 그 집 지붕은 그가 던져 올린 아이의 건강에 대한 염원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니 빠져 울던 아이는 머리 허옇게 센 중늙은이가 되어 있었다. 아들은 어린아이에서 곧장 늙은이로 성장해 있었다. 젊은 시절 따위 존재했던 적이 없었던 듯 훌쩍 나이만 먹은 모습이었다.
이대야 너도 늙었구나!
아들의 흰머리를 보면서 그는 그렇게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들과 아내가 살아 있어준 것만도 고마웠다.
좁쌀 얻어개지구 오셨소? 우리 이대, 용대 배고픕네다.
그를 만나자마자 아내는 불쑥 그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가슴속에 고여 있던 구름과 비가 매운 재 되어 폭삭 내려앉았다.
오마니, 죽은 용대가 어케 배가 고파요?
둔탁한 무언가로 얼굴을 세게 얻어맞았다고 생각했다. 분명 눈뜨고 귀 열고 있는데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의 영혼을 휘어 감아 끌고 가는 검은 손이 있었다. 검은 손은 암흑 속으로 들어갔다. 캄캄한 어둠이었다. 제 눈으로 제 몸을 볼 수 없었다. 저쪽 끝에서 두 개의 푸른 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둠에 뚫어놓은 두 개의 구멍 같은. 어둠을 꿰뚫고 이글거리는 두 개의 눈알 같은. 그것은 점점 커졌고 드디어 푸른 불꽃을 번쩍번쩍 튀겨내려는 찰나.
이대야 문 잠가라, 아바지 오시기 전엔 아무나한테 문열어 주면 안 된다!
오마니! 정신 차리시라요.
이대야, 용대야 좀만 참으라 잉! 울지 말라우.
오로지 전쟁 탓이었을까.
좀만 참으면 아바지 먹을 거 개지구 돌아오실 꺼이야. 고때까지만 참으라 잉.
오마니!!
오로지 전쟁 탓이었을까 오로지.
그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이라는 걸 똑똑히 알 수 있었다. 도둑고양이 한 마리가 이쪽을 정면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태양 빛을 뚫는 매서운 눈빛. 시커먼 근육. 완만하게 말려 올라간 긴 꼬리. 탄력 있는 등뼈와 당당한 태도. 그럼에도 간사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분위기. 고양이는 오연하게 안광을 번득이면서 바람처럼 소리 없이, 눈에 띄지 않게 미세한 움직임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어디로 갈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고양이의 두 눈과 딱 맞붙어 버린 그의 두 눈. 고양이가 내쏘는 눈빛이 그의 눈 안쪽 깊숙이 휘감아 들어와 그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는 고양이의 입에 물려 있는 것이 처음엔 쥐라고만 생각했었다.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는 건 당연한 일일 테니까. 그러나 고양이의 이빨에 걸려 있는 건 쥐가 아니었다. 쥐처럼 작은 짐승이었으나 쥐는 아니었다. 그것은 낳은 지 며칠 안 돼 보이는 새끼 고양이, 붉은 고양이였다.
그의 시선이 잠깐 허공으로 빗겨 나갔다고 깨달은 순간 지붕은 텅 비어 있었다.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고 사라지는 고양이의 긴 꼬리 끝만 한 점으로 봤을 뿐이다. 소리도 냄새도 흔적도 없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권옹은 창문턱을 짚어 균형을 잡아야 했다. 추웠다. 창문을 닫으려 했으나 잘 닫히지 않았다. 손이 미끄러져서 번번이 창틀에 손등을 부딪혀야 했다. 늦가을 바람을 쐬는 게 아니었다. 창문 하나 제대로 닫을 수도 없이 찬바람은 그새 손가락을 곱아놓았다. 몇 번의 실패 끝에야 간신히 창문을 닫고 돌아설 수 있었다.
권옹은 서재에서 빠져나왔다. 우선 찬 물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싶었다. 온 몸이 얼어붙을 듯 덜덜 떨려왔는데도 그는 냉장고에서 꺼낸 차가운 물을 마셨다. 사악, 핏줄에 살얼음이 끼는 것 같았다.
개수대에는 점심 먹은 그릇들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아내가 설거지를 하지 않고 주방을 방치한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그는 아내를 불렀다.
여보.
왜 목소리가 떨렸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아무 곳에서도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어디 있소?
텅 비어 있는 집이 그의 공허한 목소리를 흉내내어 되들려 주었다. 목소리는 허공을 웅웅 울렸다.
거기 아무도 없소?
아무도 없었다. 주방, 안방, 세탁실, 욕실, 베란다. 아내가 있을 만한 곳을 다 찾았으나 아무 데도 없었다. 물이 증발한 것처럼 감쪽같았다. 아내는 어디를 갔을까. 시장이라도 간 것일까.
아무래도 찬바람 쐰 게 잘못이었다. 오슬오슬 한기가 들었다. 몸의 가장 안쪽부터 서서히 굳어지는 느낌도 늘었다. 속도 메슥거렸다. 맛없는 죽 한 그릇을 핑계거리로 대고 싶었으나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움직임이 둔해지고 호흡이 가빠져 서 있기가 힘들었다. 눕고 싶다.
이대야!
이게 뭘까. 눈물이 시야를 방해하는 건가. 백내장이 재발한 걸까. 그는 백태 낀 눈을 비볐다. 안개였다. 돌연 뿌옇게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안개는 점점 짙어져 주위를 완전히 하얀 어둠으로 덮어버렸다. 자기의 몸을 제외하면 보이는 건 하얀 안개뿐이었다. 이렇게 짙어지다간 제 몸도 보이지 않게 되리라.
이대야!
그는 소리치며 더듬더듬 걸었다. 안개에 빠진 발은 무릎을 번쩍 들어올려야 보였다. 그는 땅바닥을 발끝으로 더듬어본 후에야 한 발짝 걸을 수 있었다.
아바지!
먼저 소리가 들려왔고 흰 안개 사이로 언뜻언뜻 검은 실루엣이 움직였다. 그는 멈춰 서서 기다렸다. 잠시 후 다가온 사람은 이대였다. 젊은 이대였다. 그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젊고 튼튼한 근육을 가진 사내의 모습이었다. 이대는 흰 이를 건강하게 빛내며 활짝 웃고 있었다.
빠졌던 앞니가 그새 자랐구나 이대야.
아바지. 이대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마지막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왔노라고 했다.
무슨 말이냐 이대야. 그는 아들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 마지막이라니?
이대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러나 사내는 이대가 아니었다. 젊었을 적의 자신이었다. 이성보다는 열정을 끌어안았던 강인한 팔뚝, 시간 따위 걷어차면서 거침없이 달려가는 단단한 장딴지, 암울했으나 희망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었던 예리한 두 눈, 젊었던 자신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는 자신의 뺨에 손끝을 대보았다. 안개방울이 얇게 덮여 있었다. 검지손가락을 살짝 움직여 보였다. 스윽 뺨이 지워졌다. 마치 차창에 서린 김처럼. 그는 더럭 겁이 나서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손바닥으로 수증기를 마구 지웠다. 그러자 자신의 늙고 주름진 얼굴이 나타났다.
소스라치게 놀란 그는 아내를 불렀다.
여보!
도대체 아내는 어디로 간 것일까.
안개 속에서 두 명의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어느 쪽이 아내인지 알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불러보려는데 한 여자가 소리쳤다.
용순이 굶어 죽었시요! 뱃속에서 죽어 나왔시요!
그러자 또 한 여자가 소리쳤다.
난 당신 닮은 아들을 갖고 싶어요. 단 하나만이라도! 그것도 안 되나요?
두 여자의 외침은 안개가 되어 안개 속을 둥둥 떠다녔다. 한 여자의 외침은 저쪽에서, 또 한 여자의 외침은 이쪽에서 울렸다. 외침소리와 뒤범벅된 안개 입자는 귓속에 다닥다닥 달라붙어 뇌 속을 갉았다.
그는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길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가야할 길도 보이지 않았고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도 보이지 않았다. 이쪽인지, 저쪽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걸었다.
얼마나 왔을까.
안개가 눈에 익었지만 사물은 전혀 가늠되지 않았다. 귀에 의지하며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어디선가 강물소리가 아련하게 들려왔다. 그는 마침내 길의 끝에 도달했음을 알았다. 이 하얀 어둠의 길이 끝났음을 알았다. 그는 강물소리가 나는 쪽으로 발을 옮겼다. 이젠 정말 누워야겠다.
한 통의 편지를 꽉 움켜쥔 양희의 손은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편지는 집에서 어머니 몰래 가져온 것이었다. 어머니는 은철의 난데없는 서비스에 흐뭇해하느라 양희가 빠져나온 걸 눈치채지 못했다. 은철이더러 할머니 방에 가서 두 시간만 놀다오면 용돈인상을 적극 고려해 보겠다고 협상한 결과였다.
편지를 받고 수취인과 발송인 이름을 확인했을 때 양희는 아무도 모르게 살짝 뜯어보고 나서 쓰레기통에 버릴까 싶었지만 도저히 혼자서는 겁이 났다. 아무래도 공범이 필요할 것 같아서 서둘러 집을 나선 참이었다.
“나, 먼저 차가운 물 한 잔만 줄래요?”
양희는 커피숍에 들어서자마자 종업원에게 부탁하고 눈에 띄는 대로 아무 자리에나 가서 앉았다. 종업원이 가져다준 한 잔의 물을 다 마시고도 두 번이나 더 청해 마셨지만 갈증과 긴장감은 가시지 않았다. 공연히 입맛을 다시며 숨을 고르다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 종업원과 두 눈이 딱 마주쳐서 양희는 화들짝 놀라 편지를 뒤집어놓았다. 겉봉에 적혀 있는 선명한 글씨가 바닥으로 사라졌다. 마치 불온문서라도 숨기는 양 가슴이 쿵쾅거렸다.
“뭐 드실 거예요?”
이때만큼 종업원의 불손한 언사가 반가웠던 적은 없었다. 양희는 반사적으로 커피, 라고 말했다.
때맞춰 김이 커피숍 안으로 들어왔다.
“왜 무슨 일이야 도대체?”
김은 양희의 맞은편 자리에 앉으며 조급하게 물었다. 양희는 약 삼십 분전에 큰일났다고 지금 당장 만나서 할 얘기가 있다고 회사로 전화를 했었다.
“무슨 일인데? 장모님 어디 안 좋으셔?”
양희는 주위를 살피고 탁자 위로 얼굴을 내밀며 가까이 다가오라고 손짓했다.
“왜 그래? 무슨 일인데 그렇게 속삭여.”
김도 주위를 둘러보고 탁자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양희는 조심스럽게 편지를 들이밀었다.
“이것 좀 봐.”
“편지잖아.”
“여기 이 주소랑 이름 좀 보란 말야.”
“응? 평양? 어디 이리 좀 줘 봐. 형님이 보내신 거네?”
양희는 김에게 목소리를 낮추라는 시늉을 했다.
“괜찮아.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잖아. 당신두 참, 이것 땜에 그런 거야?”
고개를 주억거리는 양희의 표정은 여전히 불안해 보였다.
“아버지 앞으로 온 거잖아. 어떡하지?”
양희의 걱정대로 김도 어떡하면 좋을지 몰랐다.
“아버지 돌아가신 거 모르나 봐. 어떡하지?”
“·”
“그냥 돌려보낼 수두 없구, 그렇다구 우리가 뜯어볼 수두 없구.”
“근데 뭐가 이렇게 두툼하지?”
“우리가 뜯어보믄 안 될까 여보?”
양희가 남편을 나오라고 한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장모님은 아셔?”
“안 돼. 엄마가 받기 전에 내가 받은 게 증말 다행이지, 만약 엄마가 이 편질 받으셨다면 틀림없이 또 속상해하셨을 거야. 더군다나 돌아가신 아버지한테 온 편지라니. 그것도 북한에 있는 장남한테서.”
“아버님 산소에 가서 그냥 태워버리면 좀 그렇겠지? 뭐가 들어 있길래 이렇게 두툼할까? 아참, 어떡해야 되는지 모르겠네.”
김은 주머니를 뒤졌으나 담배가 없었다. 커피를 가져온 종업원에게 담배와 콜라를 시켰다. 종업원이 들고 오는 쟁반 위에서 담배를 날름 집어 한 개비 꺼내 물고 긴 한숨처럼 연기를 내뿜고 나자 일단은 가리사니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여보 내 말 잘 들어봐. 형님한테두 연락을 드려야 도리잖아, 진작에 연락을 드렸어야 했는데, 그러니까 우리가 이걸 뜯어보자구. 그리구나서 그 다음을 생각하는 거야. 동의하지?”
양희는 무조건 크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김이 편지봉투를 뜯자 안에는 여러 장의 사진과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양희가 김의 손에 들려 있는 사진을 낚아챘다. 김은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여보 여기 이 사진 좀 봐. 세상에, 어쩜.”
정신 없이 사진을 바라보는 양희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연발했다.
“세상에, 어쩜 이렇게 똑같지? 여보 이 사진 좀 보라니까.”
양희가 김이 읽고 있는 편지지 위로 불쑥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응, 알았어. 이따 볼게.”
김은 건성으로 사진을 들여다보곤 다시 편지 읽는 데 집중했다.
양희가 한 장 한 장 넘기는 사진 속에는 아버지와 북의 가족들이 들어 있었다. 아마도 지난 번 평양에 가셨을 때 찍은 사진이리라. 부자가 어깨를 겯고 서서 정면을 보고 있는 모습, 그리고 선뜻 부르지 못할 것 같은 오라버니의 독사진, 오라버니가 아버지에게 큰절을 올리는 모습, 아버지가 오라버니의 손을 꽉 붙들고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 오라버니가 아버지에게 숟가락으로 국인지 뭔지 어떤 음식물을 떠드리고 있는 모습 등등.
아버지가 이 사진들을 가지고 오지 못 해 무척 서운해하시더라는 말을 남편으로부터 전해들은 적이 있는 양희는 눈시울을 적셨다.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이걸 보시구 돌아가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다 북한 어머니와 침대에 나란히 앉아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움찔했다.
잠깐 시선을 비꼈다 다시 들여다보았다. 지난 번 티브이에 비쳤을 때 언뜻 보기는 했으나 도통 기억에 없었다. 한 눈에도 병색이 완연해 보이는 북한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하자 양희는 어쩐지 마음이 놓였다. 뭔가가 스르르 가슴속에서 걷히는 느낌이었다. 측은한 마음마저 들었다.
우리 엄만 아직 곱지.
그러나 양희의 눈을 잡아끄는 사진은 정작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오라버니의 독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양희는 깜짝 놀랐다. 사진 속의 남자는 20여 년 전 아버지의 모습과 똑같았던 것이다.
반백 년 이상이나 따로 떨어져 살아도 얼굴은 서로를 잊지 않고 있었다. 얼굴은 서로의 얼굴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만나지 못하는 시간만큼, 서로를 그리워하는 만큼 서로의 얼굴에 서로의 얼굴을 담아두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내 얼굴도? 양희는 가만히 제 얼굴을 쓸어보았다. 이 얼굴에도 어머니의 모습이 담겨 있겠지. 이 얼굴에서 어머니는 살고 있겠지.
“뭘 그렇게 정신 없이 보구 있어? 어디 좀 봐.”
편지 읽기를 끝마친 김이 말했다. 양희는 제 얼굴에서 손을 거두고 김의 눈앞으로 사진을 들이밀었다.
“똑같지? 그치? 아버지랑 똑같이 생겼지?”
“그래? 어디?”
“자세히 좀 봐봐. 아버지랑 쏙 빼 닮았잖아. 진짜 신기하지 않아? 몇 십 년 동안이나 떨어져 살았는데 어쩜 이렇게 똑같을까?”
사진과 양희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던 김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거 아버님 사진 아냐?”
“그치? 당신두 아버진 줄 알았지? 나두 그랬다니까. 증말 똑같애. 여기 이 사진을 보믄 알 수 있어. 여기 이 분이 아버지셔, 그리구 이 분이 오라버니.”
양희는 제풀에 입을 다물었다.
“어디? 아, 이 분이 형님이시구나. 증말 똑같이 생기셨네 두 분.”
양희가 김의 넉살에 배시시 웃었다. 김도 덩달아 웃었다.
마음속까지 따뜻해지고 시원해지는 웃음을 웃은 김은 잃어버린 아내를 되찾은 기분이었다. 다시 만난 기쁨이 이런 것일까. 감히 그렇다고 말하고 싶었다. 양희가 보여주고 있는 저 태도와 분위기와 웃음은 사라지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사소하지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이었다. 그것은 그 동안 어디 숨어 있었을까. 처가댁에 감춰져 있었을까. 이젠 장모님과 함께 살고 있으므로 우리 집이라고 해야 옳겠지만. 확실히 아내는 장모님과 함께 살게 되면서부터 조금씩 달라지기는 했다. 그러나 아내 자신도 저에게 들러붙어 있는 질긴 불안의 찌꺼기는 완전히 떨궈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간간이 고개를 들이미는 그것과 싸우며 속절없이 한숨만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아내의 얼굴에서는 아무런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아내의 얼굴은 예쁘게 빛이 나고 있었다.
“참, 뭐라구 썼어? 편진.”
천천히 맛과 향을 음미하면서 커피를 마시던 양희가 물었다.
“응 그냥 사진 너무 늦게 보내 죄송하다구. 저쪽 어머니두 벌써 돌아가셨대. 아버님 건강하시라구 쓰셨는데, 아무래도 내가 답장을 써얄거 같애. 당신이 쓸래? 그래 그럼 내가 먼저 쓰지 뭐. 참 당신한테두 안부 전해달래, 당신 오라버니가. 자 이따 집에 가서 자세히 읽어 봐.”
김은 양희에게 편지지를 건네주고 봉투는 제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양희는 놀라 되물었다.
“돌아가셨대?”
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가셨구나.”
양희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탁자 위의 어느 한 곳을 지그시 응시했다. 그러나 다행히 모처럼 되살아난 빛은 꺼지지 않고 있었다. 강렬하지는 않아도 촉수가 낮은 백열등처럼 온화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만 나가자. 내가 한 턱 낼게.”
김이 양희의 어깨를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일어섰다.
“한 턱? 웬 한 턱?”
양희는 탁자 위의 사진들을 핸드백에 주섬주섬 챙겨 넣고 김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뭘로 할래?”
“무슨 한 턱이냐니까?”
“당신 오라버니 생긴 한 턱! 아니지, 오라버니 생긴 당신이 한 턱 내야지?”
양희는 또 배시시 웃으며 곱게 눈을 흘겼다.
며칠 후 이영례 여사는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북한의 권이대에게서 온 편지였다. 수취인은 이영례 자신이었다.
이 사람이 왜 나한테 편지를 보냈을까? 자못 궁금한 마음에 성급히 편지봉투를 뜯자 따로 따로 접은 편지지 두 장과 한 장의 사진이 나왔다. 맨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아 문갑 서랍을 뒤져 돋보기를 꺼내 쓰고 먼저 사진부터 들여다봤다. 처음엔 돌아간 남편인가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아니었다. 그러나 언뜻 봐서는 너무나 흡사했다.
이여사는 사진 속의 남자가 권이대임을 알았다. 그러자 코끝이 저릿저릿해지면서 눈물이 비어져 나왔다. 야속한 사람. 이제는 은지 방이 되어버린 서재 쪽을 쳐다보며 몇 번 한숨을 내쉬고 편지지 한 장을 집어들었다.
어머님 보십시오.
어머니 기체 만안하시옵고 댁내 두루 평안하시온지요? 직접 찾아뵙고 큰절 올려야 마땅하오나 이렇게 외람되이 편지글 올립니다. 용서하십시오.
아버님 영면하셨다는 소식 뒤늦게 듣고 이 불효자식 억장이 무너져내리는 심사 금할 수 없었습니다.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것도 불효인데 그 사실을 알고도 당장 찾아뵙지 못하다니, 정말 원통하기 짝이 없습니다. 게다가 어머니 곁에서 아버님의 빈자리를 메워드리지 못하여 송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글이나마 전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지난 번 아버님이 오셨을 때 저에게 부탁을 하셨습니다. 동봉하는 편지는 아버님이 그때 저에게 주신 것인데 지금 당장 제가 어머니를 만나뵙지 못하기 때문에 일말의 위로가 되리라 사료되어 보내드립니다. 사실 아버님의 부탁이 없었더라도 저는 어머니를 저의 어머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아버님이 주신 어머니의 사진을 날마다 보고 있습니다. 어머니도 보내드리는 저의 사진을 보아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어머니를 만나뵈었을 때 금세 알아볼 수 있고 또 어머니도 아들을 금방 알아보실 수 있을 겁니다.
어머니, 그 동안 하지 못했던 아들 노릇 할 그 날까지 조금만 참고 기다려 주십시오. 부디 그때까지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아들 권이대 올림.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갑자기 아들이라니. 실감이 전혀 나지 않았다. 남편이 평양에 갔을 때 권이대에게 자신의 사진을 준 사실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던 터라 더욱더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여사는 남편이 권이대에게 주었다는 편지를 서둘러 읽어보았다.
이대 보아라.
애비가 애비 노릇도 못하고서 만나자마자 부탁을 하려니 염치가 없구나. 이대야 부디 못난 애비의 청을 들어다오. 이대야 통일되면 꼭 남쪽 어머니도 모셔야 한다. 내가 그때까지 살아 있을 자신이 없구나. 이대야, 난 남쪽 어머니 고향에 묻히겠다. 그래야 너희들 남쪽 어머니 잊지 않고 찾아올 게 아니냐. 이대야, 애비 고향은 한반도다. 그러니 날 이장할 생각은 하지 말아라. 내가 여기 있어야 그래야 우리는 만난다. 두 번 다시 우리 가족 헤어져 살아서는 안 된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 이대야 애비의 마지막 부탁이다. 어머니 함자는 李英禮다.
못난 애비가.
편지는 그렇게 끝맺고 있었다. 편지를 원래대로 두 번 접어 봉투에 넣는 이여사의 손가락이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당신, 언제까지나 내 등을 안아 줄 수 있지?”
권상훈이 그렇게 말한 이후로 줄곧 이영례는 남편의 등을 안으려고 노력했었다. 북쪽을 쳐다보는 내내 돌려진 그의 등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이여사였다. 남편이 저쪽을 바라보느라 이쪽으로는 빈 등만 내주었다고, 저쪽만을 외바라기 한다고, 그래서 영 돌아선 양반이라고 원망했었는데.
어쩌면 단단하게 마음의 서랍을 잠가버린 사람은 이여사 자신이 아니었는지.
투둑, 자신도 모르게 들고 있는 이대의 사진 위로 늙은 어머니의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