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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藝春秋 전문입수

“박정희, 다나카 총리에게 4억엔 바쳤다”

27년만에 드러난 金大中 납치사건 韓·日유착 현장

  • 기무라 히로야스(木村博保)

“박정희, 다나카 총리에게 4억엔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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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다나카 총리와 만나는 일정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병희 자신은 아무 때나 상관없다고 하기에 필자의 스케줄을 감안하여 세 가지 정도로 가능한 날짜를 정했다. 아무리 사전에 약속이 필요없다고는 하지만 한 나라의 총리로서 외유나 출장이 있을 수 있다. 총리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지금은 외유 중이지만 10월 11일에는 귀국하기 때문에 그 후 아침나절에는 자택에 계시다고 했다.

다나카 총리 관저에 진정을 하러 가는 것은 대부분 이른 아침이었다. 매일 수십 명의 사람들과 면회를 하기 때문에 이른 아침 외에는 총리를 만날 시간이 나지 않았다. 월산회 일로 면회할 때에도 보통 8시 정도에는 관저에 도착해 있었다.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일까, 이씨는 필자에게 그 전날 도쿄에서 일박하면서 자신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 어떻겠느냐고 요청해왔다. 사실 전날 도쿄에서 숙박하지 않으면 아침 일찍 총리 관저에는 도착할 수가 없었다. 이씨는 덧붙여서 시바(芝)의 증상사(增上寺) 옆에 프린스 호텔이 있는데, 그곳에 방을 준비해 놓겠다고 했다.

일정을 대충 결정을 해놓고 나서 이씨는 느닷없이 총리에게 선물을 싶다고 했다. 필자는 아무 생각하고 없이 “그러시지요”라고 대답했다.



필자는 그 선물이 필시 김치나 선물용 과자상자 정도로 생각했고, 총리가 무엇을 선호하는지 묻기 위해 꺼낸 말이라고 생각하여 “선물로 뭘 준비하셨는데요?”하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이씨는 “글쎄, 그렇게 짐이 되지 않는 것으로 ‘대행’하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대행’이라는 익숙하지 않은 단어를 듣고 필자는 순간 자신이 얼마나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씨가 말하는 ‘선물’이라는 것은 현금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김대중 사건과 관련하여 거금이 오고간 사실이 만일 세상에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큰 문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순간 필자는 그 이상 깊이 개입하면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선물을 가지고 가는 것은 상관없겠지요”라는 말로 얼버무렸다.

그랬더니 이씨는 “총리와 부인, 두 분께 준비를 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필자는 뭔지 모를 불안함을 느끼면서도 ‘어디까지나 선물을 가지고 가는 것뿐이다’ 하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한국의 현직 장관이 이런 촌구석까지 일부러 찾아와서 필자에게 부탁하는 청을 거절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이 불안감을 씻어주었다.

그날은 둘이서 브랜디를 한 병 비웠는데 이병희는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키가 175cm 정도 될까, 필자와 같은 세대로서는 비교적 큰 체구였고, 온화하고 부드러운 말투로 끝까지 일관했다.

그로부터 열흘이 지나 총리 관저를 방문키로 예정된 이틀 전, 이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호텔 룸 넘버를 알려주며 모든 것을 다 조치해 놓았으니 프런트에 들르지 말고 직접 방으로 올라오라는 내용을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나카 총리와의 인연

필자와 다나카 총리와의 인연은 필자의 부친대(代)로 거슬러올라간다.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나카 가쿠에이가 ‘젊은 피의 절규’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고 중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때 가리하네 면의 면장을 하고 있던 필자의 부친이 응원차 나섰다. 당시 28세였던 다나카는 놀랍게도 당선됐다.

그 직후에 다나카 가쿠에이와 접촉을 갖게 된 것은 필자가 34세로 역시 가리와의 면장선거에 입후보했을 때였다. 엄청난 적자를 내면서 면의 재정을 위기에 빠뜨린 현직 면장과의 한판 승부였는데, 선거 1주일 전에 다나카 대의원이 사람을 시켜 “이미 승부는 결정났으니 포기하라”고 현직 면장에게 귀뜸했다.

필자는 면장으로 당선된 후 다나카 대의원을 찾아가 “의료비를 인상하면 국민들은 죽게 됩니다”라든가 자민당의 농업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불필요한 부분까지 솔직하고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필자를 다나카 대의원은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았다. 또한 예산의 절반을 빚갚는 데에 탕진하여 적자로 운영되던 면 재정을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단번에 재건해낸 필자를 지켜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면장 연임 3기 중반 정도에 다나카의 지지로 현회 의원에 출마하여 당선됐다. 이후 월산회에도 가입하여 지방지부의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나가타니(長谷川信), 사쿠라이(櫻井新)와 더불어 월산회 현의회의 ‘세 마리 까마귀’라고 불린 적도 있었다. 다나카가 ‘기무라는 내 후계자’라고 말했다고 누군가에게 전해들은 적도 있다. 그것이 립 서비스였다고 해도 적어도 다나카 총리의 측근에 해당하는 존재였다는 것은 자타가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1973년 10월, 이병희와 함께 메지로의 관저를 방문했을 때 필자는 44세, 다나카 총리는 55세었다. ‘결단과 실행’을 구호로 내걸고 총리에 취임한지 1년, 그 전해인 72년 9월에는 일중(日中) 교류 정상화도 성사시켜 실로 정치가로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시기라고 할 수 있었다.

드디어 그날이 다가왔다. 이병희로부터 연락을 받고 10월 하순 어느 날 오후 도쿄로 상경하여 시바의 프린스 호텔로 향했다. 통고받은 대로 프런트를 통하지 않고 곧장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미리 가르쳐준 룸 넘버는 긴 복도 거의 끝에 있었다. 지정된 방 앞을 한 남자가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그 남자는 필자를 보고 “기무라씨입니까?”라고 말을 걸어왔다. 이씨의 부탁을 받고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남자는 방 열쇠를 건네주고는 총총히 사라졌다.

신문지에 둘둘 싸인 사각 뭉치

저녁이 되자 이병희씨가 필자의 방에 나타났다. 저녁을 함께 하자며 필자를 이끌고 호텔을 나와 택시를 타고 긴자(銀座)로 향했다.

“여기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내린 곳은 일반 음식점이 아니었다. 표면이 모두 크고 두꺼운 유리로 된, 당시로서는 최첨단 빌딩이 눈앞에 나타났다. 당시 제법 성공한 재일교포 금융 브로커의 건물이라고 했다. 벽에 죽 걸려 있는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샤갈과 피카소의 그림들이었다. 저녁이라 바깥에 있는 입구의 문은 닫혀 있었고 우리는 뒤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안내를 받고 6층 회장을 통과했다. 다다미 스무 장 넓이의 방에 다다미가 깔려 있었고, 한가운데에 둥근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원래 음식점이 아닌 곳을 그날 특별히 필자를 위해 연회석으로 꾸며놓은 것 같았다. 그러나 더욱 놀라웠던 것은 그곳에 한복을 입은 기생이 대여섯 명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접대 대상은 필자와 호스트인 이씨 두 사람뿐이었다. 양쪽에서 시중을 든다 해도 남아돌 판이었다.

“일본에 이런 기생이 다 있었습니까?”하고 물었더니 이병희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아니오, 한국에서 데려왔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이거, 대단한 환대를 받게 되는군요”라고 말하며 필자는 한국정부의 위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식사 자리에서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시종 일관했다. 그 다음날 있을 일에 대해서는 서로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두 시간 정도에 걸쳐 식사를 마친 뒤 이씨는 택시로 필자를 호텔까지 전송해주었다.

방으로 돌아가 잠이 들었는데 새벽 1시 정도에 눈이 떠졌다. 문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렸던 것이다. 문쪽으로 다가가 살짝 바깥을 엿보니 양복을 입은 남자 두세 명이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나를 발견하고는 ‘앗!’ 소리를 내며 놀라는 기색이었다. 필자도 놀라 곧바로 문을 닫았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므로 보디가드를 붙인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지나치게 경계가 삼엄하다고 생각하며 침대로 다시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어 아침까지 푹 잤다.

다음날 아침 7시가 지나자 이병희는 필자의 방으로 찾아왔다. 양손에 큰 종이 가방을 무거운 듯 들고 있었다. 가판대 등에서 파는 비닐로 코팅된 두꺼운 종이 가방이었다. 그때 필자는 ‘아, 저것이 예의 그 ‘선물’이로구나’하고 생각했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식사는 하셨습니까?”

이씨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온화한 말투로 말을 건네며 필자 쪽으로 다가왔다. 식사를 마쳤다는 말을 하며 무심코 종이 가방에 들어있는 내용물을 살짝 엿보았더니 신문지로 반듯하게 포장돼 있는 사각뭉치가 눈에 들어왔다. 예의 그 선물은 커다란 종이 가방의 손잡이 부분까지 가득 채워져서 불룩했다.

사실 필자는 1년 전쯤에 시라자키 원자력발전소의 용지 매각 대금을 전해준 적이 있었다. 그때의 금액이 약 5억 엔이었는데 그것과 거의 같은 크기였다. 종이 가방 하나에 약 2억 엔에서 2억5000만 엔 정도가 들어간다. 아무리 줄여 어림잡아도 합친 금액이 4억 엔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을 것이다. 대단한 금액이었다.

필자는 그때 필자의 역할은 이 한국의 장관을 다나카 총리에게 소개해주는 것까지라고 생각했다. 그 후에는 다나카 총리가 이 건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이다. 그것은 필자가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나카 총리가 어떻게 나올 것인가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병희씨와 필자는 잠시 후에 호텔을 나섰다. 늦어도 8시 정도에는 총리 관저에 도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밖으로 나오니 가을 하늘이 푸르렀다. 전날부터 쾌청한 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씨는 호텔 앞에 서 있는 택시들을 유심히 살피더니 무언가를 선별하는 것 같았다.

“저 택시가 좋겠군요. 저걸 탑시다.”

이씨가 택시 한 대를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죽 늘어서 있는 택시 가운데에서도 가장 낡아빠진 차를 선택한 것처럼 필자에게는 느껴졌다. 눈에 띄지 않게 위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씨는 종이 가방을 꼭 끌어안고 차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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