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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제’ 실천하는 사람들

그들에게선 향기가 난다

  • 김현미 khmzip@donga.com 이형삼 hans@donga.com 김영신·자유기고가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제’ 실천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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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지도층’이란 말을 들으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가. 당장 얼굴부터 찌푸려지는가. 밥 먹다 말고 숟가락을 내려놓고 싶은가. 그럴만도 하다. 잊을 만하면 한번씩 떠들썩하게 언론을 장식하는 우리네 사회지도층은 정녕 진정한 ‘지도층’이었다. 탈세, 뇌물수수, 병역비리, 입시부정, 과소비, 고액과외, 투기…. 갖가지 범죄와 파렴치 행위를 선도하는 음지(陰地)의 리더들이었다. 신자유주의의 거센 파도 앞에서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는 어느 결에 ‘자연법칙’으로 굳어지고 있다. ‘80 대 20의 사회’는 돌이킬 수 없는 대세로 받아들여진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갈등에선 지난날의 교조적 이념갈등보다 더한 적대감이 묻어난다. 부족하고 메마르고 차가운 사회를 채워주고 적셔주고 데워줄 생명수가 절실하다. 가진 자, 힘있는 자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누군가는 부(富)를, 누군가는 소중한 정신 자산을, 또 누군가는 인품과 양식(良識)을 앞장서서 나누고 베풀고 보듬어야 한다. ‘지도층’의 미덕은 솔선과 수범에 있다.그들이 진심에서 우러나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다할 때 우리는 다시 희망의 꽃을 피울 수 있다. 여기에 그런 씨앗 같은 사람들이 있다. 》

▶박종규 KSS해운 회장

무욕(無慾)의 정도 경영, ‘회사는 전문경영인에게, 주식은 종업원에게’

KSS해운 박종규(朴鍾圭·66) 회장은 품속에 두 통의 유서를 넣고 다닌다. 하나는 재산에 대한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마지막 유산’인 몸에 대한 것이다. 박회장은 최근 두 번째 유서를 고쳐 쓰면서 장기와 시신을 서울대 병원에 기증한다는 내용을 덧붙였다.

“의대 교수인 친구로부터 ‘앞으로 한국에서는 좋은 외과의사가 나오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해부할 시체가 모자라 해부학을 제대로 공부할 수 없기 때문이랍니다. 시체도 수입한다는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 길로 박회장은 시신 기증을 결심했다. 평소 자식들에게 “사람은 무(無)에서 태어나 무(無)로 돌아가는 것이니 무덤도 만들지 말라”고 당부한 그인지라 장기와 시신 기증을 결심하는 데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이 얘기를 가족에게 알렸더니 아들이 “아버지는 사업한다고 술을 워낙 많이 드셔서 몸에 쓸 만한 게 별로 없을 텐데요”라고 해서 온 가족이 한바탕 웃었다. 그만큼 박회장은 물론 그의 가족도 무욕(無慾)의 삶에 익숙하다.

“시신은 화장한 뒤 동해 바다에 뿌리라고 했어요. 무덤 만들어 놓고 번거롭게 때마다 산소에 찾아올 필요도 없다, 대신 제삿날 가족들이 모여 사진이나 보면서 얘기를 나누면 족하다고 했지요. 그것도 장남 집에서만 할 게 아니라 자식이 셋이니 돌아가면서 한 번씩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5무(無) 기업

KSS해운과 박회장의 이름이 알려진 것은 1999년 12월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펴낸 KSS해운의 사사(社史)가 화제를 일으키면서부터. 기업을 운영하면서 저지른, 남들에게 밝히기 어려운 위법행위와 부끄러운 실수까지 솔직하게 기술한 이 회사의 사사는 기업인들 사이에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됐다. 박회장은 “이런 저런 것을 다 밝히면 혹시 세무조사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임원들의 만류에 고민하기도 했지만, “부끄러운 부분을 다 빼놓고 성공담만 늘어놓으면 회사의 진짜 역사가 아니다”며 편저자에게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쓸 것을 요구했다.

이렇게 나온 사사(‘손해를 보더라도 원칙은 지킨다’)를 통해 박회장이 세 명의 아들을 두고도 95년 3월 전문경영인에게 사장 자리를 물려줬고, 회사 창립 이래 종업원 지주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99년에는 “내가 가진 주식이 너무 많아졌다”며 회사 전체 주식의 10%에 해당하는 자신의 지분을 우리사주조합 기금으로 내놓았다는 사실 등 범상치 않은 경영방식이 세상에 알려졌다.

KSS해운은 99년 기준으로 총자산 1600억 원, 매출액이 740억 원, 보유 선박 10척, 직원 220여 명의 중견기업. 겉으로 봐서는 특별할 게 없어 보이지만, 벤젠 톨루엔 LPG 등 화학물질 수송업 부문에서 독보적인 기업이다. 95년부터 부산과 나진·선봉을 거쳐 중국 옌벤(延邊), 옌지(延吉)까지 연결하는 국내 유일의 남북한 정기 직항로 사업을 개척하기도 했다. 외환위기로 도산하는 기업이 속출하던 97년부터 3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고, 98년과 99년에 잇따라 새 선박을 도입하는 등 내실있는 경영으로 해운업계에서는 ‘스몰 자이언트’라고 불린다.

박회장은 30년간 기업을 이끌면서 늘 창립 당시의 각오를 잊지 않았다고 한다. ‘남이 안 하는 부문을 개척한다’ ‘군살없는 조직을 유지한다’ ‘뒷거래를 일절 배격하고 최고의 도덕성을 발휘한다’ ‘밀수하지 않는 회사를 만든다’ ‘종업원지주제를 실천한다’ ‘족벌경영을 배격하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확립한다’는 것 등이다.

사시(社是)나 사훈 같은 것을 만들지 않은 것도 이채롭다. “도대체 형식적인 표어가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인가. 그냥 실천하면 되지”라는 실용주의가 깔려 있다. 거창한 어구를 동원해 만든 사시에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는 다른 회사 직원들을 보면서 마음먹은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30년을 일관해 사시·인맥·리베이트·밀수·회계장부조작이 없는 ‘5무(無)회사’를 일궜다.

“기업은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라 사회의 공기(公器)다. 재산은 상속할 수도 있지만 경영권은 상속해선 안 된다”는 게 그의 기업관. “기업은 경영자와 종업원의 합동작품이지, 자식이 기업 발전에 무슨 공헌을 했느냐”는 말에서도 박회장이 경영권 세습에 반대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기업 이전에 진정으로 가족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에서 나온 어려운 결심이기도 했다. 그는 ‘손해를 보더라도 원칙은 지킨다’의 서문에서 ‘한솥밥론’을 역설했다.

“150달러만 보내주세요”

“내게는 세 아들이 있다 이들은 우리 회사와 관련을 맺지 않고 독립해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있다. 형제간이라도 한솥에서 밥을 먹으면 밥그릇 싸움을 하게 돼 있고, 그렇게 되면 가정의 화목은 깨진다. 귀여운 자식에게 가장 좋은 것을 물려주고 싶어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요즘 부모들을 보면 자식에게 재산 물려주는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여기는 것 같다.

그러나 자식을 위한 으뜸가는 유산은 독립심을 심어주는 것이다. 재산 상속은 가치가 낮은 것이고, 그보다 더 못한 것이 기업의 경영권 상속이다. 실력이 아니라 핏줄에 의한 경영권 세습은 부모의 가치관으로 자식을 옭아맴으로써 자식의 인간다운 삶을 방해하기 십상이다.”

박회장이 자식들에게 말로만 독립을 강조한 게 아니라 이를 철저하게 실천에 옮겼다는 사실은 둘째 아들의 편지에 얽힌 일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87년 1월 박회장이 도쿄에 출장 가 있을 때 갑자기 국세청 직원들이 집으로 들이닥쳤다. 집 안 곳곳을 수색하던 그들이 발견한 것은 비밀장부가 아니라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던 차남이 쓴 편지였다. 그 내용인즉 “이곳에서 생활하려면 방값 400달러, 식대 100달러, 자동차 기름값과 보험료 등 한 달에 최소한 750달러는 있어야 하는데, 보수가 제일 좋다는 피자집 아르바이트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제가 벌 수 있는 돈은 월 600달러가 못 됩니다. 제발 한 달에 150달러 정도만 보내주시면 안 될까요?”라는 하소연이었다.

“미국에 유학만 보내주면 더 이상 아버지에게 의지하지 않겠다”고 큰소리 치며 떠난 아들에게 박회장은 정말로 단 한 푼도 보내주지 않았던 것이다. 피자 배달로 고학하던 아들의 간절한 편지에 감동한 국세청 직원들은 세무사찰을 중단하고 돌아갔다. 박회장은 그런 편지를 받고도 200달러씩 두어 달쯤 보내주고 말았다.

바른 경제 만들기

주위 사람들은 그런 박회장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면 뭣하러 사업을 하느냐”는 핀잔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아내의 불만도 컸다. 사업가의 아내로 회사가 부침을 겪을 때마다 마음고생만 하고 살았는데, 그처럼 어렵게 키운 회사를 자식이 아닌 남에게 물려준다는 게 섭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남편의 고집을 아는 아내는 섭섭함을 가슴에 묻고 별 내색을 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독립’이란 말을 들어온 아들들 역시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 듯했다. 박회장은 회사 안팎에서 후임자를 물색했다. 누가 정말로 회사를 사랑하고 키워나갈 능력이 있는지 요모조모 뜯어보았다.

“기업은 당연히 자식에게 물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영자에게 인재가 눈에 띄겠습니까. 저야 그럴 생각이 없으니까 사람들을 꼼꼼하게 보게 되더군요. 그렇게 오랫동안 지켜보니까 무슨 일을 결정할 때 내 의견에 가장 반대를 많이 하던 직원이 애사심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자꾸 딴지를 거니까 밉기도 했어요. 지금 KSS해운의 사장과 부사장은 모두 내 의견에 반대를 많이 했던 분들이에요.”

그는 95년 회사의 경영권을 전문경영인에게 물려주고 회장으로 물러나 앉은 뒤 ‘바른경제동인회’ 일에 주력하고 있다. 93년 창립한 이 모임은 이윤만 추구하는 게 아니라 사회의 공기로서 기업의 소임과 기업인의 책임을 강조하고 실천하자는 취지를 갖고 있다. 박회장이 개인적으로 실천해온 정도 경영을 사회에 확산시키기 위한 일이다.

또한 그는 지난해 11월, 경제인뿐 아니라 그와 뜻을 같이하는 사회지도층 인사 30여 명과 함께 ‘태평로 모임’을 만들고 ‘나라의 기본을 바로 세우자’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이 모임에 가입하려면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공사(公私)관계가 분명하며,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환경보호를 생활화하며, 청탁을 하지 않고, 사회를 위해 봉사한다’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손해를 보더라도 원칙은 지키자’는 그의 신념은 민들레 홑씨처럼 퍼져나가 뿌리를 내리면서 조금씩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고 있다.

김현미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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