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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2001년 1월, 한국의 은행원

일은 두배, 봉급은 절반, 내일은 없음

  • 최희정

일은 두배, 봉급은 절반, 내일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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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행가에 또 한 차례 정리해고의 칼바람에 불어닥칠 전망이다. ‘구조조정=나라경제 살리기’라는 명분 앞에서 등이 터지는 것은 이번에도 ‘새우’들이다. 불안과 허탈, 분노가 은행원들의 가슴 가득 밀려든다.
지난해 12월26일,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직원들이 두 은행의 합병에 반대하며 일주일째 파업을 벌이던 경기도 일산의 국민은행 연수원을 찾았다.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며칠 전에 내려 쌓인 눈은 갑자기 차가워진 날씨에 그대로 얼어붙어 몇 분만 서 있어도 두 발이 꽁꽁 어는 듯했다.

농성장 곳곳에는 초췌해진 은행원들이 드럼통에 땔감을 넣어 불을 지피며 삼삼오오 짝을 지어 언 몸을 녹이고 있었다. 컵라면 한 개로 저녁식사를 때우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고, 살을 에는 듯한 추위를 이겨내려고 소주 몇 잔을 반주 삼아 털어넣는 이들도 있었다. 농성장에서 만난 국민은행 A지점 C대리는 “닷새 동안 머리 한 번 빗지 못했다”며 머쓱하게 웃었다.

“저기 천막이 보이죠? 저 천막에서 우리 여행원 한 사람이 연탄가스에 질식해 병원으로 실려갔어요. 간밤에 날씨가 너무 추워서 연탄난로를 피웠는데 그만 가스가 새나왔나 봐요. 점퍼를 두 벌이나 껴 입었는데도 너무 추워 잠이 안 오더라구요. 천막 안에 들여놓은 식수가 다 얼어붙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래도 정리해고 당해 길거리에 나앉은 사람들 생각하면 이런 추위쯤이야 견딜 만하죠.”

경비병이 된 은행원



그 옆에서 묵묵히 불을 지피고 있던 같은 은행 L과장은 “지금 심정이 어떠냐?”는 물음에 긴 한숨부터 내쉬었다. 일주일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잠을 설쳐 쌓인 피로가 얼굴 가득 배어 있었다.

“철저하게 배신당한 기분입니다. 은행을 위해 밤낮없이 일해온 행원들에게 의견 한번 묻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합병이라니요? 아니, 엊그제까지만 해도 분명히 강제합병은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수천 명의 은행원들, 그리고 그 가족들의 미래를 놓고 장난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는 자신이 이렇듯 고통스러운 파업농성에 참가한 것은 순전히 가족을 위해서라고 했다. 자신이 직장을 잃고 실업자가 되거나 설령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다 해도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겠지만, 자신만 바라보고 사는 가족에게 닥칠 충격과 절망, 설움을 생각하니 그대로 앉아 있을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연수원 휴게실에 들어서자 일단 추위는 바깥보다 덜했다. 하지만 말이 휴게실이지, 거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여기저기 배낭들이 널부러져 있었고, 라면박스를 포개 깔고 그 위에서 등을 오그린 채 새우잠을 자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외투깃을 잔뜩 세우고 모여 앉아 얘기를 나누는 이들의 표정에는 피로와 추위, 불안한 흔적이 역력했다. 은행 창구에서 보았던 말쑥한 은행원들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은행원들이 언제 큰 목소리 한 번 낸 적 있습니까? 그저 위에서 하라는 대로만 했지요.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쫓겨나야 할 죄인’ 취급을 하는 겁니까.”

주택은행 안산 원곡지점에 근무한다는 J씨는 “일주일이면 3∼4일씩 새벽까지 남아서 일한 결과가 고작 이거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합병반대’ ‘생존권 보장’이라는 구호를 하도 외쳐서인지 그의 목은 쉴대로 쉬어 쇳소리가 날 정도였다.

국민은행 대구지점 행원 K씨는 경찰이 투입될 때에 대비해 길쭉한 몽둥이를 들고 연수원 정문을 지키고 서 있었다. 그는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자기의 모습이 그렇게 변하리라곤 상상조차 못했다고 했다. 입행 5년차인 그는 “한국 최고의 은행에 다닌다는 자부심으로 힘겨운 날들을 견뎌왔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한낱 꿈이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고객들한테는 너무 미안해요. 하지만 우린들 어쩌겠습니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이건 먹고 사는 문제 아닙니까. 남들은 크리스마스다 망년회다 하면서 들뜬 연말을 보내고 있을 때 칼바람 부는 벌판에서 이러고 있는 우리 처지도 좀 헤아려 줬으면 합니다.”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은 12월22일 전격 합병을 선언했다. 새 은행을 만들어 두 은행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6월까지 합병작업을 완료한다는 것.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은 규모에서 국내 1, 2위를 다투는 우량은행으로 두 은행이 합병하면 총자산이 158조 원에 이르는 세계 60위권 대형 은행으로 거듭난다. 이런 대형 은행이 탄생하면 국내 은행권에는 판도 변화를, 대외적으로는 금융 신인도를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우량은행원도 죄인?

그러나 두 은행 모두 기업보다는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소매금융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에 업무의 성격이 비슷하고 점포도 65% 이상 중복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력감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양 은행이 시너지 효과를 내려면 적어도 30%(정규직 기준 6000여 명) 가량의 인력과 중복점포를 줄여야 한다는 보고서도 나와 있다.

두 은행원들이 머리띠를 동여매고 은행을 뛰쳐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와 두 은행장은 “강제적인 감원조치 없이 인력의 자연감소를 통해 10∼20%만 줄이면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인력을 줄이지는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은행원은 없다. 지난해 7월 “강제 합병은 없다”고 선언해놓고 불과 몇 달 만에 손바닥 뒤집듯 약속을 저버렸는데, 합병 후에 인력 감축이 없다는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주택은행에 근무하는 J과장은 한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댔다. 행여 자신이 정리해고 대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인생을 걸어 보겠다’며 은행문을 두드린 지 20년. 일가 친척과 친구들은 물론 학창시절 은사까지 쫓아다니며 예금실적을 올렸고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다. 외환위기가 닥쳐와 대부분의 은행이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자신은 부실 없는 ‘우량은행’ 직원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철이 없었다’는 생각뿐이다. 자신도 패배자요, 낙오자였음을 뒤늦게야 깨달은 듯하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제 인생이 어느 결에 바람 앞에 등불 신세가 된 것 같아요. 아이들은 커가고 앞으로 돈 들 일만 남았는데, 평생을 바친 은행에서 나가라면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나라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거대한 명분 앞에 아무런 미래도 약속받지 못한 채 그저 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분노와 허탈감만 밀려들 뿐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은행은 평생직장의 대명사였다. 여느 기업보다 월급도 많이 받았고, 제 발로 나오기 전에는 누구 하나 나가라고 하는 사람도 없는, 그야말로 무풍지대였다. 두 자릿수 금리시대에도 은행원들은 거의 무이자에 가까운 금리에 주택자금을 빌려 썼다. 그래서 중간간부급 은행원 중에는 명문대학을 졸업한 엘리트가 수두룩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굵직굵직한 기업들이 ‘대마불사’의 신화를 뒤로 한 채 자금난을 이기지 못해 쓰러져갔고, 그 대가는 고스란히 은행원들에게 돌아왔다. 은행 부실의 근원인 관치금융을 주도했던 이들에겐 누구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이번에도 꼼짝없이 등이 터진 것은 ‘새우들’이었다.

98년 구조조정 때 일자리를 잃은 은행원은 4만여 명. 대동은행 동화은행 동남은행 경기은행 충청은행 등이 부실은행으로 퇴출되면서 전체 직원의 80% 이상이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렸다. 합병 당시 거론됐던 고용승계 약속은 그저 말뿐이었다. 퇴출 은행원 대부분은 실업자 신세를 면하지 못했고, 간혹 운좋게 고용이 승계된 직원도 정규직에서 계약직으로 신분 전환을 감수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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