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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보드에 망한 ‘담다디’ 길보드로 웃은 ‘존재의 이유’

길보드 차트를 통해 본 한국 대중가요

  • 임진모

길보드에 망한 ‘담다디’ 길보드로 웃은 ‘존재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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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위용이 하늘을 찌르던 서태지 팬들이 ‘우리 오빠’의 앨범은 정품으로 소장하고 다른 가수의 앨범은 한번 들어보기 위해 길보드 제품을 샀던 셈이다. 지금은 MP3로 곡을 공짜로 듣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지만(그래서 길보드도 근래 불황이다!) 아직도 리어카 테이프를 살 때 ‘한번 사서 들어보고 좋으면 정품 CD를 산다’는 전제로 구매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때로 가수를 웃기고 울리기도 하는 것이 길보드다. 그것에 덕 보는 가수도 있지만 어떤 경우는 가수나 제작자를 아주 고단하게 만든다. 이상은을 보자. 1988년 ‘담다디’라는 곡으로 혜성처럼 떠올랐지만, 나중에 국내 가요계를 떠나 일본에서 활동하는 등 전전하다가 지금은 대중가수보다는 ‘마니아 가수’가 된 ‘꺽다리’다.

당시 강변가요제를 주관한 MBC 라디오국의 프로듀서들은 “‘담다디’는 방송되는 그 순간 떴다”고 표현한다. 당시 10대 팬들의 반응은 정말 광풍에 가까웠다. 이상은은 여가수 최초로 억대 가수로 가치가 상승했다. 실제로 계약하진 않았지만, 그때 지구레코드사는 개런티 1억8000만원을 제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상은의 ‘담다디’는 리어카 음반상을 오늘날의 길보드로 뿌리내리게끔 만들어준 가수로 평가된다. 강변가요제 실황은 테이프로 불법 복제돼 그 다음날부터 리어카에서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당시 판매열풍을 기억하는 한 음반 리어카 판매상은 “모르긴 몰라도 100만장은 나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품 LP(그때는 LP시절이었다)는 2주일이 지나서야 출시됐다. 이미 길보드에서 수요가 완전 소화됐기 때문인지 정품의 판매량은 시원치 않았다. 길보드가 다 팔아버렸으니 제 아무리 화려한 디자인으로 LP를 내봤자 살 사람은 많지 않았던 것이다.



MBC는 앨범이 늦게 나온 걸 원망할 수밖에 없었고 이상은도 기형적인 음반시장에 혀를 차야 했다. 이상은은 뒷날 독집 앨범을 발표하고 당당한 인기가수로 활동하면서 ‘사랑할꺼야’ ‘해피 버스데이’ 등의 히트곡을 냈지만, 어쩌면 이때부터 ‘괴상한’ 국내 음악계에 정이 떨어졌는지도 모른다.

아티스트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주지 않는 상황, 아티스트를 조종하려만 드는 가요계가 도무지 수긍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인기 절정의 시점인 1991년 이상은은 최고 스타의 자리를 박차고 혈혈단신으로 미국 유학을 떠났고 그 후 일본에서 4장의 음반을 발표하는 등 아예 활동터전을 옮겨버렸다.

‘담다디’ 이상은의 고통

그는 한 신문에서 “난 음악을 하고 싶은 것뿐이었다. 하지만 (가요계와 팬들은) 음악은 뒤로 제쳐놓고 ‘사내 같다’ ‘키가 크다’고 해서 좋아하는 현상에 토할 것만 같았다. 집에 돌아오면 베갯잇이 노래지도록 울기만 했다”며 당시의 괴로운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상은의 그런 역경과 고통을 가져온 배경의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길보드에 이르지 않을까? 길보드를 기원으로 해서 우리 음악계와의 관계가 꼬이기 시작한 것 아닐까?

조금 과장하면 길보드는 이상은이란 거름을 통해 덩치를 키웠고 그러면서 그의 기를 빼앗아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것이다. 길보드는 그렇게 이상은의 현재 모습을 간접적으로 결정했다.

이상은과 정반대로 김종환은 백번이라도 길보드에 절을 해야 할 처지다. 많은 음악관계자들은 1990년대 후반 최고의 ‘길보드 히트곡’으로 김종환의 ‘존재의 이유’를 꼽는다. 이 노래는 고교 졸업 후 통기타 가수로 다방과 클럽을 전전하고 새벽 의류시장에서 디스크자키까지 해야 했던 무명의 그를 일약 ‘업타운 스타’로 만들었다.

이 앨범은 16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우리 음악계에 모처럼 ‘아줌마 부대’를 출현시켰다. 그는 다음 앨범 ‘사랑을 위하여’로 다시 11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심지어 ‘그가 나오면서 위축됐던 성인음악에 햇빛이 들었다’는 평까지 나왔다.

그의 인기는 다름아닌 1993년 길보드에서 불이 붙었다.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리어카 음반판매대에서 세차게 울려 퍼진 ‘존재의 이유’는 감상적인 멜로디와 중간의 대사에 힘입어 곧바로 팬들의 귀를 잠식했다. 이 곡이 길보드가 배출한 대박이라는 것을 당시 한 스포츠신문 기사가 밝히고 있다.

“젊은이들이 모이는 거리를 10분만 걷노라면 요즘 뜨고 있는 노래가 무엇인지 대번 알 수 있다. 유행에 민감한 길거리 리어카 판매상들이 최근 들어 가장 즐겨 트는 인기가요는 제목도 생소한 ‘존재의 이유’라는 곡이다. 특히 20대 여성들이 줄지어 찾는 이 노래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기다려 달라는 남자의 목소리가 호소력 짙다.”

방송국 라디오 프로그램도 이 곡을 틀어 거리의 공습을 인정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최수종이 주연한 당시 KBS TV의 인기드라마 ‘첫사랑’도 이 곡을 극중에 삽입했다. 신세대 노래에 기죽어 있던 기성세대는 ‘우리 것이 생겼다’는 듯 연일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불러댔다.

길보드는 이상은의 운명과는 다르게 김종환의 기를 살려주는 수준에서 기능을 멈춘 것으로 보인다. 수요를 바닥내기는커녕 오히려 길보드의 중요한 기능인 ‘바람잡이’ 노릇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 정품 테이프의 수요로 연결된 것이다.

리어카가 어느 정도 팔면서 붐을 조성해주고 일반 레코드점도 그 덕에 음반을 더 팔고…. 적대적인 두 상업집단의 동반상승 효과다. 이 경우는 착한 길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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