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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불교탑의 최고봉 불국사 다보탑

  • 최완수

세계 불교탑의 최고봉 불국사 다보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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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교 18계단과 청운교 15계단을 올라가 자하문을 지나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영산 불국세계에 도달한다. 여기서 처음 마주치는 것이 대웅전 앞에 좌우로 벌려 서 있는 국보 20호 과 국보 21호 이다. 바로 이 과 이 대웅전이라는 현판과 함께 이곳을 영산(靈山) 불국세계로 인정하게 하는 증표이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즉 ‘법화경(法華經)’ 권5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에서 석가세존은 미륵보살의 청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여 영취산(靈鷲山), 즉 영산불국세계에 무수한 세월을 살면서 불국세계를 이루어놓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대들은 여래의 비밀스럽고 신통한 힘에 대해 자세히 들으라. 일체 세간과 천인, 아수라가 모두 이르되, ‘지금의 석가모니불은 석씨의 왕궁에서 나와 가야성에서 멀지 않은 도량에 앉아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한다. 그러나 선남자여, 내가 실제로 성불한 이래로 이미 한량없고 끝도 없는 백천만억 나유타겁이 지났다….

이로부터 나는 항상 이 사바세계에 있으면서 법을 전해 중생들을 이롭게 했으며 또 다른 곳의 백천만억 나유타 아승지 국토에서도 중생을 인도하여 이롭게 하였다. 모든 선남자여, 이 중간에 내가 연등불(燃燈佛)의 일들을 말하였으며 또 그 열반에 듦을 말하였으나 이와 같은 것은 모두 방편(方便)으로 분별한 것이다.…

이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펼치려고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한량없는 겁을 지나온 이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방편으로 열반을 나타냈으나 실제로 멸도하지 않고 항상 이곳(영취산)에 머물러 설법하였다. 내가 항상 여기(영취산)에 머물러 있어도 여러 가지 신통력으로 삐뚤어진 중생은 가까이 있어도 보지 못하게 하였다.…



중생이 이미 믿고 따라서 곧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한결같이 부처님을 뵙고자 하며 목숨조차 아끼지 않으면 그때 나와 뭇 승려들이 함께 영취산에 나타나리라….

겁이 다하여 큰불에 모두 타는 것을 중생이 볼 때도 내 이 국토는 안온하여 천인(天人)이 항상 가득하고 동산 숲과 여러 집들은 갖가지 보배로 꾸며지며 보배로운 나무에는 꽃과 과일이 많이 달리고 중생들이 노는 곳에 여러 천인들이 하늘 북을 치면서 항상 온갖 기악을 연주하며 만다라 꽃으로 비를 내려 부처님과 대중에게 뿌리리라.”

그러니 영산 불국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바세계에 현존하는 불국세계로 우리에게 불법을 가르쳐서 교화하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상주처(常住處; 항상 머무는 곳)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여러 불국세계 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친근하고 중요한 불국세계이므로 불국사의 가람배치에서 가장 중심에 놓아 정문을 통해서 맨처음 들어가게 하였다.

그리고 이곳이 영산 불국토임을 더욱 확실하게 하기 위해 과 을 대웅전 앞에 쌍으로 벌려 놓았다. 그 이유는 ‘법화경’ 권4 견보탑품(見寶塔品)의 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하시자 그 앞에 높이가 500유순, 가로 세로가 250유순이 되는 칠보탑(七寶塔)이 땅에서 솟아나온다. 이에 법회에 모여 있던 모든 회중(會衆)이 보탑에 공양을 올렸다. 그러자 보탑 속에서 소리가 나는데 이런 말이었다. “석가모니 세존께서 ‘묘법연화경’을 설하시어 법을 가르치시니 이는 모두 진실이다.”

이에 무리 속에 있던 대요설(大樂說)보살이 석가세존께 그 까닭을 여쭈니 석가세존은 이렇게 대답한다. “아득한 옛날 동방의 먼 나라인 보정국(寶淨國)에 다보불(多寶佛)이라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보살도를 닦으실 때 이런 서원(誓願)을 세우셨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성불하고 나서 멸도(滅度; 열반에 듦, 즉 돌아감)한 후에 시방국토(十方國土; 모든 국토)에서 ‘법화경’을 설하는 곳이 있다면, 나의 탑묘는 이 경을 듣기 위해 그 앞에 솟아나서 증명하며 잘한다고 찬탄하게 하소서” 하는 내용이다. 이 말을 듣자 대요설보살은 이 다보불을 뵙고 싶다고 한다. 석가세존은 다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다보불께서는 깊고 깊은 소원이 있으니, 만약 보탑이 ‘법화경’ 설하는 것을 듣기 위해 나타났을 때 다보불 자신의 모습을 대중에게 보이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법화경’을 설하고 있는 부처님의 일체 분신불(分身佛)을 모두 그곳으로 모이게 한 뒤에라야 대중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석가세존은 이 말씀 끝에 대요설보살의 청을 들어주기 위해 눈썹 사이 백호(白毫)에서 솟아나오는 백호광(光)으로 신호를 보내 사방 무수 국토에서 ‘법화경’을 설하고 있는 일체 분신불을 불러모은다. 헤아릴수없이 많은 분신불들이 모두 달려와 나무 아래 사자좌(獅子座)에 자리잡고 각기 시자를 보내 석가모니불께 문안드리고 나서 보탑의 문을 열어주십사 하고 청한다.

이에 석가세존께서는 오른손으로 칠보탑의 문을 여니 성문을 여닫을 때 나는 것처럼 큰 소리가 나며 열리는데 다보불은 사자좌에 앉으시어 선정(禪定)에 든 듯 몸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소리가 들려온다. “석가불께서 이 ‘법화경’을 설하시므로 내가 이 경을 듣기 위해 여기에 이르렀노라.” 모여 있던 대중은 헤아릴수없이 많은 과거의 천만겁 전에 멸도하신 다보불이 이와 같이 말씀까지 하시는 것을 듣고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 찬탄하며 하늘의 보화(天寶華)를 모아 다보불과 석가모니불 위에 뿌려 공경한다.

이때 다보불은 보탑 가운데서 자리를 반으로 나누어 석가모니불께 내어드리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석가모니 부처님이시어, 이 자리에 앉으십시오.” 석가모니불께서는 이 청을 받아들여 보탑 안으로 들어가서 그 반쪽자리에 앉아 결가부좌를 트셨다. 이렇게 두 분 부처님께서 칠보탑중의 사자좌 위에 결가부좌하시는 것을 본 대중은 부처님들이 너무 높이 올라앉아 뵐 수 없으니 신통력으로 우리를 허공에 뜨게 하소서 하고 염원(念願)하니 대중이 모두 허공에 떠올랐다.

이때 큰 소리가 있어 대중에게 고하되, “누가 능히 사바국토에서 ‘묘법연화경’을 널리 설할 수 있겠느냐.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여래께서 머지않아 열반에 드실 터이므로 이 ‘묘법연화경’을 전해주어 세상에 남게 하고자 하심이다”라고 하였다.

독창적인 불국사 다보탑

이런 내용을 조형예술로 표현한 것이 이다. 다보여래의 전신탑이라는 의미로 이라 하였는데 칠보로 장식된 화려하고 장엄한 탑으로 묘사되어 법화신앙이 팽배하던 남북조시대에 벌써 중국사람들이 다보탑을 널리 만들기 시작했던 모양이다. 당고종 건봉(乾封) 2년(667)에 혜상(惠祥)이 지은 ‘홍찬법화경(弘贊法華經)’ 권1에서 다보탑 건립기록을 찾아볼 수 있으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진(東晋) 애제(哀帝) 흥녕(興寧) 2년(364)에 혜력(慧力)이라는 승려가 건강(建康; 현재 남경) 와관사(瓦官寺)에 돌로 다보탑 하나를 만들었다. 송(宋) 문제(文帝) 원가(元嘉) 5년(428) 팽성(彭城) 사람 유불애(劉佛愛)가 건강에 다보사를 짓고 또 다보탑 하나를 지었다.

제(齊) 고제(高帝) 건원(建元) 원년(479)에 예주(豫州)자사(刺史) 호해지(胡諧之)가 종산(鍾山)에 법음사(法音寺)를 지으니 사인(舍人) 서엄조(徐儼助)가 석조 다보탑 하나를 지었다. 당나라 국자좨주 소경(簫璟)은 난릉(蘭陵) 사람인데 양무제의 현손으로 누님이 수양제의 황후가 되었다. 귀족집안에서 태어나 집안 대대로 불법을 깊이 믿었으므로 수양제 대업(大業, 605∼616년) 중에 스스로 ‘법화경’을 외우다가 경문(經文)에 의지하여 다보탑을 만들었는데 전단 향나무로 하였다.”

4세기 중반부터 혜상이 ‘홍찬법화경’을 지을 당시까지 300여 년 동안 중국에서는 다보탑이 끊임없이 조성되고 있었던 사실을 헤아려볼 수 있는 기록이다. 이와 더불어 다보탑 안에 다보불과 석가모니불이 반자리씩 차지하고 함께 앉아 있는 도 무수하게 만들어졌다.

따라서 불국사 다보탑도 중국의 이전 역대 다보탑을 널리 참고한 다음 그 틀에서 벗어나 파격적인 독창성을 발휘해 만들어낸 것으로 보아야겠다. 현재 중국에서 기록에 남은 다보탑의 존재가 확인되지 않아 전체 중국 다보탑 형식을 일괄해서 얘기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운강석굴에서 보이는 다보탑은 한결같이 지붕과 탑신을 갖춘 일반형의 목조다층탑 양식으로 그 초층이나 3층 등에 이 조성되어 있다.

이와 비교해보면 불국사 다보탑은 그 조형적 연계성은 그만두더라도 다보탑에 대한 기본 이해에서 판이한 자세를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불국사 다보탑은 중국식의 누각형 층탑개념에서 벗어나 스투파(stu-pa) 원형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하여 우리 석탑양식의 진전 성과를 총체적으로 종합해내려는 의지가 표출된 것으로 보아야 할 듯하다.

이는 그 동안 성덕왕릉을 비롯한 스투파식 왕릉을 축조하면서 터득한 지혜가 다보탑 건립의장에 영향을 끼친 결과일 수도 있다. ‘법화경’ 권4 견보탑품에서 다보탑을 서술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그때 부처님 앞에 칠보탑(七寶塔)이 있으니 높이는 500유순이고 가로와 세로는 250유순인데 땅에서 솟아나와 공중에 머물러 있었다. 갖가지 보물로 장식하니 오천의 난간과 천만의 감실(龕室)이 있고 무수한 당번(幢)으로 장엄하게 꾸몄으며 보배영락을 드리우고 보배방울 만억을 그 위에 달았다. 사면(四面)에서 모두 다마라발전단향(多摩羅跋檀香)의 향기가 나와 세계에 두루 가득 차고, 모든 번개(幡蓋)는 금, 은, 유리, 자거, 마노, 진주, 매괴 등 칠보(七寶)로 합쳐 만드니 높이가 사천왕(四天王) 궁전까지 이르렀다.”

이런 내용을 가능한 한 조형적으로 완벽하게 표현하고자 한 것이 불국사 다보탑이다. 그래서 층마다 난간이 둘리고, 감실이 2층 탑신석 둘레 팔면(八面)에 새겨졌다. 지대석과 초층기단은 일반 석탑이 가지는 구조대로 기둥을 세우고 벽면을 친 목조결구의 번안 형태인데, 다만 초층 탑신으로 오르는 계단이 사방 중앙에 설치되어 기단 평면이 십(十)자형으로 된 것이 일반 석탑과 크게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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