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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중편소설

길-아름다운 동행

  • 홍 은 경

길-아름다운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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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너무 셌나. 가스불 위에 올려놓은 양은 냄비에서 비눗물이 넘쳐흘러 파란 불꽃들이 지지직거리며 꺼질 듯 장탄식을 내뱉었다. 수납장 이곳 저곳을 열어보느라 한눈을 팔고 있던 양희는 급히 냄비 뚜껑을 열어 던지고, 불길을 조절하였다. 성난 기세로 뚜껑을 밀어 올리던 비누거품들이 이내 잦아들었다.

“아유, 엄만 귀찮지도 않나?”

어머니가 시킨 일을 마지못해 하는 중이라는 양 투덜거리며 양희는 튀김용 젓가락으로 행주를 뒤적뒤적거렸다. 뜨겁게 삶아지기 시작한 행주는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얗다. 하긴 양은 냄비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도 행주는 새하얗다. 어머니는 일주일에 두 번은 꼭 젖은 행주 마른 행주 할 것 없이 모두 비눗물에 넣고 푹푹 삶았다. 하얗게 건조된 행주들을 보면 가슴 뿌듯해진다는 것이었다.

양희는 수납장에서 찾아낸 포도주 병을 열어 목 높은 글라스에 조금 따랐다. 검붉은 빛깔이 무척 고혹적이었다. 엄만 또 언제 이걸 담그셨을까?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며 군침을 돌게 하였다. 양희는 식탁 의자에 앉아 한 모금 마시고, 또 한 모금은 병아리처럼 입에 물고 가만히 있었다. 알싸한 혀의 감각을 좀더 즐기고 싶어서였다.

행주는 조금 있다 빨아 널어야지.



포도주 속을 헤엄치며 놀던 혀의 감각이 둔해져왔다. 따뜻하게 데워지다 못해 끈적끈적하게 뭉쳐 하나의 덩어리가 된 듯한 포도주를 식도로 밀어 넣으며 양희는 새삼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여튼 우리 엄만 알아줘야 해. 대충대충 좀 하고 사시지, 뭘 저렇게 매일 쓸고 닦고, 닦고 쓸고 하시나 몰라.”

눈길 닿는 그 어느 곳에서도 양희는 먼지 하나 그을음 하나 발견할 수 없었다. 싱크대는 물론 가스 렌지대도 말끔했다. 방금 전 양희가 올려놨던 냄비에서 떨어진 비눗물이 없었더라면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거라고 말해도 믿을 수 있었다. 그릇은 그릇대로, 수저는 수저대로, 양념 통들은 양념 통대로, 모든 식기들이 양희가 결혼하기 이전부터 봐왔던 그 자리 그대로 놓여 있었다. 눈과 손에 익은 그 자리는 각 사물들에게 딱 알맞은 제자리였다.

물건이 아주 못쓰게 되지 않는 이상 잘 버리지 않는 어머니였다. 저 양은 냄비도 양희가 어렸을 때부터 사용하던 것이다. 처음엔 물론 밥을 끓이거나 국을 끓이는 용도로 쓰였다. 표면에 도장된 노란색 도료가 조금씩 벗겨지면서, 그리고 무엇 때문인지 이곳저곳이 우그러들기 시작하면서 냄비는 행주 삶는 일에만 전용되었다.

무엇 하나 눈에 설지 않은 물건이 없었다. 냉장고, 전기 밥솥, 전자 렌지 하다 못해 삶은 빨래 뒤적거리는 튀김용 젓가락조차도 뜨거운 기름에 빠진 양희의 간식거리를 건지던 것이었다. 어머니가 끓는 기름 속으로 허연 밀가루 덩어리를 밀어 넣고 저 긴 젓가락으로 이리저리 휘저으면 양희는 속으로 하나, 둘, 셋, 넷 숫자를 세곤 하였다. 어떤 땐 스물에, 어떤 땐 스물 다섯에 어머니는 젓가락을 들어올리신다. 그러면 그 끝엔 놀랍게도 노르스름하게 잘 구워진 도넛, 고구마 튀김, 야채 튀김 따위가 걸려 나오곤 했다. 히야, 맛있겠다!

“안 돼 양희야, 뜨거워! 기다렸다 식으면 먹어야지?”

참지 못하고 양희가 덥석 집어먹으려면 어머니는 양희의 손등을 잡으며 어린 식욕을 달래곤 하였다. 그러면 양희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것들을 보면서 군침을 꿀꺽꿀꺽 삼키곤 이번엔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빨리 식어라, 빨리 식어라.

양희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왠지 슬펐다. 몇 모금 마시지도 않았으므로 술 탓은 아니었다. 조금도 낯설지 않다는 건 그 만큼 세월이 오래 되었다는 뜻일 것이다.

또 한 모금의 포도주를 삼키는데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빈집을 울리는 초인종 소리는 공연히 간담을 서늘케 했다.

“엄마? 엄마 오셨어요?”

양희가 거실로 뛰어나가 인터폰을 들었으나, 화면에 나타난 사람은 모르는 남자였다.

“누구세요?”

“도시가스에서 나왔습니다.”

“지금 아무도 안 계신데 다음에 아, 아녜요 들어오세요.”

순간적으로 남의 집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에 의아해하며 양희는 서둘러 문을 열어주었다.

젊은 남자는 무전기처럼 생긴 가스 누출 탐지기와 도화지 만한 공책을 들고 들어왔다. 양희는 먼저 제복과 명찰을 확인한 후 남자를 주방으로 안내했다. 빨래 삶는 냄새가 주방 가득 고여 코끝을 자극하였다. 양희는 가스 불을 끄고 냄비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뒤로 물러났다.

남자의 손놀림은 리드미컬했다. 짧고 억세 보이는 손답지 않은 움직임이었다. 남자가 탐지기를 가스 호스와 밸브 주변에 갖다대자 탐지기에서 부그르르르 물 끓는 소리가 났다. 이곳 저곳에 척척 탐지기를 대던 남자가 말했다.

“참 관리를 잘 하시네요.”

그리곤 흘깃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술잔을 보았다.

“아, 네에.”

말을 얼버무리며 양희도 술잔을 바라보았다. 글라스 표면에 붉은빛 포도주 자국이 얼룩져 있을 뿐 술은 남아 있지 않았다. 양희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젠 완연히 가을이에요.”

“네에, 그, 그러네요”

“낙엽두 떨어지구 찬 바람두 불구.”

“·”

“괜히 마음이 쓸쓸한 게 왠지 마음이 더 추워지기도 하구 말이죠.”

“·”

“그럴 때일수록 불조심에 신경 쓰셔야 합니다.”

그리더니 갑자기 남자가 양희 쪽으로 몸을 홱 돌렸다. 양희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 뒷걸음질쳤다.

“자, 여기에 서명 좀 해 주세요.”

남자는 양희에게 볼펜을 내밀었다. 양희는 숨을 들이마시고, 검침 대장이 놓여 있는 싱크대로 다가갔다. 남자로부터 건네 받은 볼펜은 미지근했다. 양희는 공책에 또박또박 이름을 썼다. 남자의 시선이 볼펜 끝으로 꽂히고 있었다. 볼펜 자국이 깊게 패였다.

“어떻게 되시나요?”

“네? 뭐가요?”

“그러니까.”

“·”

“세대주와 어떤 관계이신가, 이 말입니다.”

“아, 네에. 따, 딸이에요.”

남자가 돌아간 뒤 양희는 개수대에 서서 손을 씻고, 글라스를 닦아 엎어놓았다. 그리고 양은 냄비를 들고 목욕탕으로 갔다. 고무장갑을 끼려다 그만두었다. 우선 찬물 한 바가지 퍼 넣고 맨손으로 행주를 빨기 시작했다.

탁탁, 행주를 털어 베란다에 널고 나서 양희는 소파에 주저앉았다. 어쩐지 힘이 쪽 빠지는 기분이었다.

양희는 크게 심호흡 몇 번 한 후, 수화기를 집어들고 다이얼을 꾹꾹 눌렀다.

“네, 김 차장님 부탁합니다. 집이에요.”

집? 이럴 때도 집이라고 말하는구나. 늘 사용하던 단어가 오늘따라 생소하게 느껴졌다. 집, 집이라.

꽉 쥐고 있는 수화기 저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왈칵 반가웠다.

“아유 우리 마나님께서 왜 이리 반가워하시나? 왜애.”

“으응, 저, 당신한테 혹시 연락 없었어?”

“연락? 무슨 연락?”

“집에 와보니까 아무도 안 계셔. 두 분이 같이 어디 가신다 말씀도 없었는데. 혹시 당신한텐 말씀을 하셨나 해서.”

“응? 어어, 당신 거기 있구나. 뭐 두 분이서 어디 잠깐 외, 외출하셨겠지.”

“아냐, 나 당신 출근하자마자 여기 왔는데 지금까지 안 돌아오셨어. 연락두 없구.”

“그럼 어디 멀리 바람이라두 쐬러 가셨나?”

“근데 왜 아무 말씀도 안 하셔. 멀리 가시면 가신다 말씀을 해야잖아. 이상해.”

“뭐가 이상해. 장인어른 장모님이 어린애신가 뭐, 일일이 당신한테 보고하구 가게?”

“그래두 한 마디쯤은 해야 걱정을 안 하지. 도대체 어딜 가신 거지? 왜 또 전화는 안 하시구 말야. 답답해, 핸드폰두 없으니. 진작에 핸드폰 하나 해 드릴 걸 그랬나봐, 여보.”

“ 당신 장인어른 거기 다녀오신 뒤부터 신경이 좀 예민해진 거 같애. 장모님 혼자 나가신 것두 아니구 전엔 당신 안 그랬잖아, 장모님두 안 그러시는데 당신이 왜 그래?”

“내가?”

그럴지도 몰랐다. 자신이 모르는 일을 곁에 있는 사람은 알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믿음으로부터 배신당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그 상처의 깊이를 알지 못한다. 더군다나 남자인 남편이 알 수는 더욱 없었다. 남편은 절대 그 심정을 모를 것이다.

“아냐, 아냐. 주방이 엉망인걸. 이렇게 어질러놓고 어딜 가시는 분이 아닌데, 치우지도 않구 그냥 나가셨어. 봐, 이상하잖아.”

엉망이라니, 거짓말이다.

“뭐 급한 일이라두 있으셨나? 걱정하지 마, 금방 돌아오실 거야.”

사실을 말하자면 양희도 그렇게 생각하는 바이다.

오전에 친정에 도착해서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안에서는 인기척이 없었다. 만일을 위해 늘 갖고 다니던 곁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양희는 두 분이 멀리 출타했음을 알 수 있었다. 편지나 쪽지 따위를 써놓은 건 아니었다. 물론 미리 연락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느낌이었다. 양희는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집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집 구경하는 기분이었다. 안방으로 들어가 장롱이며 서랍장이며 죄 열어보고 거기 있는 옷가지와 이불 따위에 손을 대보았다. 킁킁 냄새도 맡아보았다. 흔적을 남기지 않느라 원래 있었던 모양과 위치를 미리 살피고, 그대로 해놓는 일도 잊지 않았다.

아버지의 서재에도 들어갔다. 단단히 잠겨 있는 책상 서랍 하나만을 제외하곤 모두 샅샅이 열어보고 살펴보았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무얼 찾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자꾸만 들여다보고 만져보고 싶었다. 공연히 가슴이 뛰었다. 집안은 늘 그랬듯이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빈틈이라곤 전혀 없었다. 주방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행주 하나만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양희는 어머니의 오래된 습관을 기억해내고 행주를 삶기로 했다. 칭찬을 듣기 위해서였다. 어머니로부터 칭찬 받는 일이 양희는 무엇보다 기뻤다.

“이건 이렇게 하는 거구 저건 저렇게 하는 거야. 그래. 잘 하는구나, 양희야.”

“내가 누구 딸인데 그럼, 엄만!”

“아무렴 우리 딸이지. 그렇구 말구.”

“당신,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불쑥 끼여든 건 남편의 목소리였다. 그제야 양희는 통화중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당신 무슨 일 있어?”

“일은 무슨. 아무 일도 없어. 고만 끊어.”

“근데 왜 아냐. 당신 거기 계속 있을 거지? 이따 들를게. 집에 같이 가.”

수화기를 내려놓고 양희는 소파에 길게 누웠다. 그러니까 포도주 한 잔으로는 어림도 없는 모양이었다.

집안을 세밀히 둘러보는 내내 두근거리던 가슴을 양희는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술 생각이 든 건 그 때문이었다. 전에 마시다 남은 양주가 생각나 장식장을 열어봤다. 없었다. 다 마셨나?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역시 알코올 종류는 없었다. 아버지가 술을 즐기지 않으니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좀 실망스러웠다. 맥주나 소주 한 두 병쯤은 있어야지, 어떻게 집안에 술이 한 병두 없냐.

바닥에 떨어져 있는 행주를 본 건 그때였다. 양희는 반가웠다. 그깟 행주 따위가 왜 그렇게 반가웠는지 모르겠다. 어쩐지 틈 하나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 틈 안으로 슬쩍 손을 집어넣듯이, 양희는 오래된 양은 냄비를 꺼내어 즐거이 행주를 삶았다. 그리곤 수납장을 뒤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거기서 그 포도주 병을 찾아냈다.

공연한 수선을 떤 게 아니었나 싶었다. 집에 들어설 때부터 자신을 사로잡고 있다고 믿었던 긴장감 따위는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제 집에서 불안해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양희는 기지개를 켜면서 하품을 했다. 찔끔, 눈물 한 방울이 눈가에 매달렸다. 이게 다 포도주 탓이야. 낮부터 술이나 마시다니, 그것도 주부가. 낮술 마시면 제 부모도 못 알아본다는데 어쩌지.

가물가물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게으르게 눈까풀을 껌벅거리던 일 조차 힘들고 귀찮았다. 눈앞의 사물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있었다. 여긴 내가 시집가기 전까지 살던 집, 나는 지금 친정에 와 누워 있다, 편안하다, 엄마는 장 보러 가셨다, 사위에게 줄 닭을 사려고, 아버진 술을 사들고 들어오실 거다, 남자들은 만나면 술 마시는 게 일이다, 두 분이 술 마시는 걸 엄마두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얘 느이 아버지 김 서방 땜에 술이 많이 느셨구나, 호호호, 그나저나 엄마는 왜 이리 늦으실까, 엄마, 엄마.

“양희야, 양희야.”

양희는 목놓아 울고 있었다. 너무 오래 울었다. 울음소리는 더 이상 새어나오지 못했다. 눈물도 다 말랐다. 목도 아프고 눈도 아팠다. 그러나 마음이 더 아팠다. 양희는 아픈 마음을 이겨보려고 계속 울었다.

“웬 잠이 이렇게 깊을꼬? 양희야, 양희야. 정신 차려.”

목이 잠겨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엄마? 우리 엄마야? 우리 엄마가 온 거야?

“양희야 일어나야지. 얘가 어디 아픈가? 얘, 은지야, 은지야!”

“엄마?”

엄마였다. 풀로 붙여 놓은 듯 딱 달라붙어 있던 두 눈까풀을 안간힘을 써서 떼어내니 엄마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엄마!”

엄마는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마로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양희는 엄마의 손을 끌어내려 꼭 잡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이었다.

“어떻게 된 게야? 어디 아프냐? 감기 들면 어쩌려구 이불두 안 덮구 한 데서 자? 무슨 나쁜 꿈을 꾼 모양이로구나.”

씁쓸한 꿈이었다. 엄마를 잃어버렸다. 아무리 찾아도 엄마가 없었다. 다가가 얼굴을 보면 엄마가 아니었다. 양희는 엄마를 목놓아 불렀다.

그것은 양희의 깊은 내면에 씨앗 되어 숨어 있다가 때때로 싹을 틔워 비집고 나오곤 했다. 이렇게 불쑥불쑥 튀어나오면 곤란했다. 좀더 단단해져야지. 좀더 단단해져야겠다. 양희는 주춤주춤 일어났다.

“엄마. 언제 오셨어요? 아버진?”

“방에서 쉬신다. 넌 오면 온다구 얘길 하구 오지, 많이 기다렸니?”

“아, 아니에요. 잠깐 눈 붙인다는 게 그만 깜빡 잠이 들었나봐요. 어디, 다녀오시는 거예요?”

혼몽했던 의식은 완전히 돌아왔다. 어머니는 외출복 차림이었다. 언뜻 찬바람 냄새가 맡아졌다. 어디 먼 길을 다녀오는지 무척 고단한 기색이었다.

“응, 그냥. 너, 김 서방하구 다툰 건 아니지?”

“엄만, 아녜요. 많이 피곤해 보이세요. 엄마 여기 앉으세요. 이렇게 좀 해 보세요.”

“아니다, 됐다, 얼른 가봐라. 김 서방 퇴근해 기다릴 시간 아니니?”

“이리루 온다구 했어요. 아유 이렇게 굳은 거 봐.”

“얼른 가라니까 그러네.”

양희는 어머니의 어깨 주무르는 손놀림을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는 빨리 가라고 하면서도 시원하다, 시원하다를 연발하였다. 양희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이 보잘것없는 손놀림 하나로 어머니의 깊은 슬픔마저 풀어드릴 수만 있다면.

어머니의 어깨. 이 작지만 옹골찬 어깨. 그러나 슬픔에 눌려 구부러진 어깨. 그 날 어머니의 가냘픈 두 어깨가 격렬한 떨림을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모습을 양희는 잊을 수 없었다.

아버지를 홀로 떠나보내고 어머니는 한숨을 자주 내쉬었다. 어쩌면 어머니는 아버지를 그렇게 보낸 드린 걸 후회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배웅도 마다했을 만큼 어머니는 떠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 날 티브이는 남과 북으로 흩어져 살던 이산 가족들의 감격적인 상봉 장면을 하루 종일 보여줬다.

“고만 좀 하지. 왼죙일 저것만 보여 주냐? 아유, 지겨워. 왜들 저렇게 울고불고 난리래. 좀 점잖게 만나면 안 되나?”

양희는 공연히 투덜거리는 시늉을 하며 티브이를 껐다. 목젖을 지그시 눌러오던 뜨거운 기운이 다행히 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십 년 동안이나 못 만나지 않았니.”

그러면서 어머니는 또 한숨을 내쉬었다. 양희도 덩달아 꽉 막힌 목구멍을 열어 느꺼운 숨을 조심스레 토해냈다.

“전에두 말씀드렸지만 난 아버지 저기 가시는 거 싫어요. 절대 반대야. 뭐예요, 이제 와 새삼스레.”

“그런 말이 어딨어!”

“그렇잖아요, 여자 마음이. 엄만 속상하지도 않아요? 아버진 안 가신다구 그러셨는데 괜히 엄마가 먼저.”

“같은 여자니까 내가 그 마음 모르겠니, 그쪽도 여잔데. 느이 아버지 기뻐하시면 나두 기쁘다, 부부는 일심동체라잖니.”

“난 기쁘지 않아요.”

“됐다 그 얘긴 고만 하자.”

어머니는 의연하려고 무척 노력하였다. 아무렇지도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 손수 티브이를 다시 켜기도 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화면엔 눈길 하나 주지 않고 안방을 향해 걸어갔다.

“좀 누워야겠다.”

어머니의 구부정한 등을 본 순간 양희는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엄마, 그래두 저랑 김 서방은 엄마 자식인 거 아시죠!”

걸음을 멈춘 어머니는 그러나 뒤돌아보지 않고 고개만 끄덕끄덕 하였다. 많은 것을 감추고 있는 작고 초라한 등이었다.

식사할 때 잠깐 얼굴을 내비쳤던 어머니는 밤이 이슥해지도록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양희는 남편과 함께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았다. 귀는 줄곧 안방을 향해 열려 있었다. 안방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냥 누워만 있는 모양이었다.

“여보, 여보 저것 좀 봐!”

남편의 목소리는 턱없이 높았다.

“북한 비행기야! 북한 비행기가 김포공항엘 다 오다니. 와, 이거 참 오래 살고 볼일이야. 장인어른 저 비행기 타고 평양에 가셨겠지?”

격앙된 남편의 목소리가 실내를 쾅쾅 울렸다. 움찔 놀란 양희는 안방 쪽을 쳐다보고 남편에게 목소리를 낮추라는 눈짓을 했다.

“저거 다 아까 나왔던 거야.”

심드렁하게 말했지만 새삼스레 벅차 오르는 감동은 어쩔 수가 없었다. 티브이에서는 북에서 온 사람들이 남에서 살고 있는 가족들과 얼싸안고 엉엉 울고 있었다. 50년만의 만남이었다. 양희는 저토록 많은 수의 북쪽 사람들을 한꺼번에 텔레비전에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러나 조금도 낯설지 않았다. 남쪽 사람들과 똑같이 생겼고, 똑같은 말을 하고, 똑같이 울었다. 지금 이 시간 북쪽에서도 서로들 만났겠지,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만져보고 어깨를 끌어안고 울고 있겠지 양희의 눈가에도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통일도 머지 않은 것 같애. 어떡하냐?”

한껏 목소리를 낮춘 남편이 은근하게 속삭였다.

“뭐가?”

“통일되면.”

“·”

“장모님 말야.”

양희는 남편을 흘겨보았다.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그렇잖아, 양쪽 어머니 그때까지 다 살아 계시면, 장인어른, 아야야.”

“이 이가 증말, 그만두지 못 해! 들려.”

양희는 인상을 쓰고 남편의 등을 때리며 연신 안방으로 시선을 던졌다. 어머니가 들었으면 어떡하나, 그것만이 걱정이었다.

“주책이야, 주책. 어째 남자라구 그렇게 무심하냐?”

“여보세요. 여보세요!”

남편은 난데없이 수화기를 들고 소리치고 있었다.

“거기 경찰이죠? 여기 남편 구타하는 아내가 있는데요. 얼른 잡아가세요.”

어이가 없었다. 양희는 남편을 가볍게 노려보고 피식 웃고 말았다. 남편도 계면쩍은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양희는 남편에게 눈다짐을 주고 일어나서 안방 쪽으로 조심조심 걸어갔다. 등뒤의 티브이 소리가 작아졌다. 남편은 텔레비전 앞으로 바짝 다가가 앉아 화면을 쳐다보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엄마. 엄마, 주무세요?”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너무 소리가 작아 들리지 않았을 것 같았다. 조금 머뭇거리다 슬며시 방문을 열려고 할 때였다. 낮고 날카로운 외침이 귓가로 쌩 날아왔다.

“여보! 나왔어, 장인어른이야!”

“·”

“만나셨어. 만나셨다구.”

“·”

“괜히 나두 눈물나는데?”

“·”

“어 뭐야. 벌써 지나갔잖아, 아참 금방 지나가네. 좀더 보여주지. 여보, 장인어른 지나갔어.”

가슴이 고동치고 손이 덜덜 떨렸다. 아무리 침을 삼켜도 입은 바짝바짝 말라왔다. 머릿속에서 휘잉, 하고 바람도 불고 깃발도 펄럭였다. 양희는 넘어질 것 같아서 벽을 짚었다. 내가 왜 이러지? 내가 왜 이럴까? 양희는 자신이 왜 이토록 동요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무리 정 도타운 부모자식 사이라지만 마치 자신이 당사자인 양 행동하고 반응하는 건 아무래도 이상했다.

양희는 주방으로 들어가 차가운 냉수를 들이켜고, 무엇을 생각하는 것도 아닌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나서 안방 문을 빼꼼히 열었다.

어머니는 이쪽으로 등을 돌린 채 누워 있었다. 양희가 들여다보고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고요히 등을 보인 채 누워만 있었다. 어머니는 저런 식으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시위하고 있는 것이리라. 정작 아버지 앞에서는 못 그러시곤. 선뜻 들어설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완강한 등은 양희가 들어갈 조금의 틈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티브이도 켜지 않은 채였다. 리모컨은 머리맡 손이 닿을 거리에 놓여 있었다. 아마도 어머니는 리모컨을 들고 여러 번 망설였을 것이다. 수도 없는 망설임의 손자국이 거기에는 고스란히 찍혀 있을 것이다. 단단한 적막함과 쓸쓸함을 물리치기 위한 그 어떤 말이나 몸짓도 갖고 있지 못한 양희로서는 조용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양희가 문을 닫으려고 할 때였다. 문득 어떤 흔들림을 본 듯했다. 양희는 문의 좁은 틈으로 눈을 바짝 들이댔다. 철벽 같이 미동도 않고 있다고 생각했던 등이 실은 잔잔하게 떨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시는구나! 어머니가 우시는구나!

순간 목구멍과 콧구멍으로 뜨거운 기운이 확 치솟아 오르고 눈물이 쏟아졌다. 얼굴이 불길에 휩싸인 듯 뜨거워졌다. 머리 꼭대기로 치솟은 뜨거움은 그러나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머릿속을 뱅뱅 돌았다. 갑자기 머리통이 커다랗게 부풀어오르는 것 같았다. 누군가 귀를 막았는지 세상의 소리들은 멀어졌고 대신 심장에서 부는 바람 소리만이 격렬하게 들렸다.

양희는 어머니 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하나. 입에 발린 헛된 물음들이었다. 할 일을 찾지 못한 빈손은 하릴없이 제 입만 꼭 틀어막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엄마! 엄마!

어머니의 쓸쓸한 등을 안아 드려야 할 텐데. 엄마를 위로해 드려야 하는데. 어떡하지, 어떡하지? 양희는 발만 동동 굴렀다. 조금의 도움도, 위안도 되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자괴감 마저 들었다. 내가 진짜 엄마 딸이었다면 저토록 서러운 엄마의 등을 안아줄 수 있었을까? 어깨의 떨림을 조금은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이때처럼 어머니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사실이 원망스러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왜 난 엄마 딸이 아니던가? 왜 엄만 날 낳지 않고 데려다 키웠는가? 왜! 왜! 왜!

못난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못난 딸이었다. 양희는 더 이상 어머니의 들썩거리는 어깨를 쳐다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문을 닫고 그 문에 기대 서서 숨죽여 울기만 했을 뿐이다.

어느새 어머니는 잠들어 있었다. 소파 등받이에 모로 기대어 낮게 코를 골고 있었다. 양희는 깃털을 옮기듯 어머니의 등을 부축하여 소파에 눕혔다. 조심스런 이동에 잠깐 뒤척거리긴 했지만 다행히 깨지는 않았다.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기는 실로 오랜만이다. 단아한 얼굴, 오종종 제자리에 놓여 있는 눈 코 입, 비교적 조쌀한 편이긴 하지만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늘 봐왔던 얼굴을 새삼 감상하듯 그것도 잠든 얼굴을 가까이에서 내려다보니 눈맞추고 마주 볼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전압이 낮은 전류가 살갗 밑으로 돌아다니는 기분이랄까.

이마의 세월이 굽이친 흔적과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전보다 부쩍 늘어나 있었다. 결혼하고 나서부터 한 시도 떼어놓지 못했던 인내와 희생의 징표이리라. 그러나 40년 세월에 걸쳐 빚어졌던 인내와 희생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었다.

악몽이라도 꾸시는 걸까. 눈썹이 찡그려졌다. 얼마나 고단했으면 순식간에 잠 속으로 빠졌을까. 양희에게는 40년의 인고보다는 오늘 하루의 피곤함이 더 안쓰러웠다.

누운 자세와 자리가 편안하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어린아이처럼 사부자기 들어 푹신한 이부자리에 토닥토닥 뉘였으면.

문득 어머니의 아랫배를 보았다. 한 번도 생명을 담아보지 못했던 아랫배가 조용히 오르내리고 있었다. 아버지를 위해 포태의 기쁨도 포기했을 어머니. 감히 묻지 못했으나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양희 자신이 그 증거이니까.

두 아이를 배고 낳고 키우면서 어미로서의 행복과 자긍이 무엇인지 잘 아는 양희로서는 어머니의 수고로움과 애정에 늘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 저려오는 가슴은 어찌 할 수 없었다. 혈육, 핏줄을 뛰어넘을 수 없는 그 무엇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혹시 어머니도 나처럼 그 희미한 막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은 양희를 끈질기게 괴롭히고 있었다. 그것은 공허였다. 그것은 심연이었다. 한 번도 채워지지 않았던 어머니의 자궁, 딱 그 만큼의 크기로 존재하고 있을 공허였다. 아버지는 물론 양희 자신도, 은지 은철이도 채워줄 수 없는, 끝과 깊이를 알 수 없는 까마득한 심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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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은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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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아름다운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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