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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한국 조직폭력 현주소

“주먹계에도 호남 역차별 있다”

  • 조성식 mairso2@donga.com

“주먹계에도 호남 역차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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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서울 강남의 한 유명 예식장에서 목포 출신 사업가 P씨가 결혼식을 했다. 그는 과거 김태촌씨가 이끌던 서방파 계열 조직원이었으나 지금은 한 조직의 보스다. 주먹계 주변에서는 그와 정보기관 고위직을 지낸 J씨의 친분이 거론되기도 한다. 이날 결혼식에서 주례를 선 사람은 정부 고위직을 지낸 여권 실력자 P씨. 식장에선 수십 여 개의 정치인 화환이 눈에 띄었다.

비슷한 시기, 또 다른 호남주먹 실력자 K씨의 결혼식에는 모 정당의 대표를 역임한 K씨가 참석한 것으로 전해진다. 양은이파 계열 조직원이었던 K씨는 1980년대 후반 라이벌 조직의 보스를 난자해 주먹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이처럼 겉보기에 호남주먹이 득세한다는 소문은 사실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먹계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듯싶다.

호남주먹 득세설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은 먼저 호남주먹이 예나 지금이나 주먹계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 호남주먹의 강세는 현 정권과 상관없다는 것이다.

반면 호남주먹과 현 정권 실세들의 친분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이권과 청탁의 관계가 아니라 의리 또는 애향심으로 맺어진 관계라는 것이다.



호남주먹들은 현 정권 인사들이 과거 고통과 투쟁의 세월을 보낼 때 유·무형의 도움을 주고받았다. ‘빵 동지’라는 특수한 인연도 무시할 수 없다. 현 정권의 실력자 가운데 옥살이 경험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교도소에선 뭐니뭐니해도 주먹이 최고 실세다. 조양은씨의 경험담은 호남주먹과 호남정치인과의 친분을 미뤄 짐작하게 한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범죄단체조직 혐의로 구속된 조양은씨는 대전교도소에서 현 정권의 핵심인사들과 친분을 맺었다. 당시 내란음모죄 등으로 구속된 김홍일 한화갑 김옥두 의원 등이다. 특히 김홍일 의원의 방은 조씨의 방 바로 옆에 있었다. 조씨는 김의원과 함께 샤우팅(요구하는 바를 외치는 싸움 방법)을 하거나 뚫린 천장 사이로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4년 후 공주교도소에서는 허인회 장기표씨와 인연을 맺었다. 특히 허씨와 친했다. 허씨는 조씨에게 운동권 노래를 가르쳐줬고, 조씨는 허씨에게 담배 술 따위의 금지물품을 구해 주는가 하면 요구르트로 술 담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호남주먹 득세설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속담처럼 그 실체가 뚜렷하지 않다. 노상균 대검 강력과장은 “호남주먹이 득세한다는 얘기가 검찰 주변에서 들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명확히 드러난 것이 없다”고 말했다. 김희준 검사는 “호남주먹들이 자기 과시용으로 정치권과의 친분을 내세우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권부의 경고 메시지

득세설 못지 않게 관심을 끄는 것은 역차별설이다. 호남이 인사에서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즉 정권과 가까운 탓에 오히려 피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대전의 유명한 건달인 M씨(별명). 목포 출신인 그는 고위층과의 친분이 부담이 돼 사업에서 손을 떼고 외국으로 나가야 했다.

얼마 전 서울에서 있었던 주먹계 실세들의 모임에서는 목포 출신 주먹들이 최근 권부로부터 받은 경고 메시지가 화제가 됐다. 말이 경고지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메시지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고향으로 돌아갈래? 아니면 교도소 갈래?’.

서울에 몇 개의 유흥업소를 갖고 있는 목포 출신 주먹 A씨는 고민 끝에 권부의 경고 메시지를 따르기로 결정했다. 주변사람들에게 “정권이 바뀐 다음에 올라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서울을 떠났다. 서울에서 시가 500평 규모의 대형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는 목포 출신 주먹 B씨. 시가 50억 원을 웃도는 황금매장이다. 그 또한 최근 업소를 넘기고 서울을 떠날 결심을 굳혔다.

호남주먹들의 동태는 현 정권 임기가 끝날 때까지 세인의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주먹 출신으로 서울에서 사회사업을 하는 O씨는 “전라도 건달들은 다 교회에 다닌다”고 말한다. 교회도 보통 교회가 아니고 꼭 강남 지역의 유명한 대형교회를 찾는다고 한다. 주먹들은 교회에서 정계, 군, 검찰 인사들을 만나 교분을 쌓는다. 물론 이들은 겉보기엔 주먹이 아니라 엄연한 사업가다.

김희준 검사는 “드러나지 않은 건달이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서울경찰청 김진용 폭력계장은 “겉보기에 뚜렷한 활동이 없는데 무조건 수사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조직폭력 수사의 어려움을 내비쳤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검찰은 수사방향을 바꾸었다. ‘사람’ 중심에서 ‘자금’ 중심으로 전환한 것. 그에 따라 수사 초점을 자금원 차단에 맞추고 있다. 돈줄(자금원)은 죄고 가진 돈(불법수익)은 철저히 박탈한다는 방침이다.

신동아 2001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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