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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민중가수 최도은

‘국민가수’ 꿈꾸는 ‘노동자의 희망’

  • 李 相 樂

‘국민가수’ 꿈꾸는 ‘노동자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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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도은은 올해 서른 다섯으로 숙명여대 음대 성악과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교내 합창단 단원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아주 자연스럽게 음악대학에 진학했으며, 그때까지는 음악 이외의 바깥세상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모범생’이었다.

84년 5월, ‘80년 광주’를 기리는 행사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나 ‘5월의 노래’ 등을 접하면서 자신이 하고 있는 성악곡보다 더 중요한 노래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노래를 큰 소리로 부를 수 없는 사회상황 등에 눈뜨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성악 전공자로서의 노력을 게을리하지는 않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88년부터 현장활동을 시작했다는데, 대우자동차 노조의 노래패를 지도하는 일 이외에 주로 어떤 현장을 찾아다녔습니까?

“영세 업체들이었어요. 6월항쟁 이후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권리에 눈뜨기 시작하면서 작은 사업장에서도 노조를 결성하기 시작했는데, 당시만 해도 노조가 생겼다 하면 사장이 공장 문을 닫아버릴 정도였어요. 그렇게 되니 자연 농성장이 형성될 것 아닙니까. 그곳에 찾아가서 농성 프로그램을 짜주기도 하고 구호 외치는 법을 가르치기도 하고, 노가바(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 지도도 해줬지요.”

―당시에는 3자 개입 금지 조항을 내세워서 외부인의 개입을 엄하게 다스렸는데, 그런 혐의로 처벌받은 적은 없었나요?



“노동자들의 피땀을 갈취해오던 영세업체 사장들이 회사를 팔거나 도산시키고 도망쳐버린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몇 번 위협은 있었지만 처벌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89년도에 부평3공단에 가서 조합원 15명과 함께 구사대에 맞서 싸우다가 얻어 맞을 뻔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노조원들이 담 너머 옆 회사로 도피시켜주었는데 그 회사 경비원에게 발각돼 혼쭐이 나기도 했어요.”

―현장에서는 어떤 노래들을 부릅니까?

“초기에는 ‘집시의 여인’이나 ‘아빠의 청춘’ ‘한 많은 미아리 고개’ 같은 대중가요의 가사를 바꾼 노래나 대학가에서 부르던 노래들을 주로 불렀는데 지금은 제가 직접 만든 곡들도 함께 부릅니다.”

그는 ‘눈물꽃’과 ‘돌아가자’를 자신의 대표곡으로 꼽는다. ‘청춘이 시들은(시든) 나의 가슴에/ 지나간 일들이 스쳐 지나고/가진 자 오만의 끝은 먼데/ 혼자서만 더 가지려 비굴하진 말자…’로 시작되는 ‘눈물꽃’이나, ‘돌아가자 내 자라온 공단으로/짓누름과 멸시만이 가득한 그 곳에/돌아가자 내 꿈과 사랑을 키워온 곳…’으로 시작되는 ‘돌아가자’의 내용 모두 젊은 시절 노동자로 살아온 삶을 비장하게 되돌아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형식이야 어떻든 그가 직접 지은 노랫말들은 대부분 은유나 상징 따위의 치장을 벗어던지고 하고싶은 말들을 직설적으로 쏘아댄다. ‘십만의 불법체류 노동자/하루 노동 13시간…’(‘꿈의 나라’)처럼 말이다. 노래의 대상과 목적이 분명한 만큼 메시지 전달 방식 또한 그러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그였다.

최도은은 지난 1월 세종대와 인하대 강당에서 두 차례 콘서트를 가졌다. 그는 콘서트라는 말 대신 ‘싸우는 사람들과 함께 했던 자리’였다고 말한다. 경비를 제외한 공연 수익금은 형편이 어려운 사업장 노조에 지원금으로 전달했다.

―노조의 집회 현장에서 부르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달려갑니까?

“그렇진 않습니다. 제 나름대로 상당히 까다로운 기준을 가지고 있어요. 우선 사전에 그 노조의 상황을 충분히 따져봅니다. 노조원들의 수와 평균 연령, 가족사항까지도요. 그후 현장에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한지를 생각하고 결정합니다. 조명이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앰프를 갖춘 대형 사업장은 초청을 받아도 되도록 사절하는 편입니다. 대신에 노점상들이나 철거민들의 집회 같은 곳은 오라는 말 안 해도 달려갑니다.”

―상식적으로는 청중이 많아야 노래하는 사람도 기운이 날 것 같은데요?

“그 반대입니다. 노래를 듣는 노동자들의 눈빛을 보면 내가 노래에 실어 전달하려는 진실을 그들이 가슴속으로 뜨겁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바로 알 수 있어요. 1만 명에 육박하는 대규모 청중앞에서 노래를 하면 ‘내 진실이 저들 가슴속으로 안 가고 있구나’라고 느낍니다. 하지만 20명을 상대로 노래를 하면 사람 냄새가 금세 풍겨 옵니다. 그런 경우 노래하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해요.”

집회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는 이 회사의 김일섭 노조위원장(37)과 잠시 마주앉았다. 김씨는 앉자마자 대우의 부실 원인과 김우중 전 회장 체포결사대를 조직하게 된 배경, 비자금 수사를 회의적으로 보는 이유, 그리고 정리해고의 부당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가수 최도은을 취재하러 그 곳에 갔기 때문에 그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줄 수 없었다.

―최도은씨를 언제 처음 만났습니까?

“90년도에 처음으로 최도은 동지를 만났습니다. 그 당시에 제가 노동조합 노래패였거든요. 최도은 동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사람입니다.”

―최도은씨가 대우차의 노조활동에 어떤 도움을 주고 있다고 보십니까?

“노동자들에게 최고의 인기가수지만 그냥 가수는 아닙니다. 노래만 하는 게 아니라 자칫 흐트러지기 쉬운 조합원들의 마음을 한곳으로 결속시키는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에요. 무엇보다 억눌리고 소외된 서민과 함께 하면서 그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는 걸 보면 존경심이 절로 납니다.”

김 위원장은 행사진행을 위해 자리를 떴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최도은은 노동자의 희망이다!’라고 꼭 써주세요”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흩어져 있던 조합원들이 속속 입장하고, 복면을 한 규찰대원들이 그들을 에워쌌다. 최도은이 노조원들의 대열쪽으로 옮겨가는 바람에 나는 또 다시 이상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노조원들은 회색의 대우 점퍼 위에 검은 색 조끼 하나씩을 더 겹쳐 입고 있는 반면, 나는 그냥 점퍼 차림으로 그들을 마주보고 있었다. 그들이 구호를 외칠 때 손을 치켜 뻗을 수도 없었고 구호를 따라 외칠 처지도 아니었다. 그렇게 되니 나는 영락없는 ‘관리부서의 밀탐꾼’이었다.

‘노동자의 희망이다’

노조 간부인 듯한 사람이 다가와서 “노조원 맞습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복잡한 설명 끝에 간신히 내가 그 자리에 있게 된 사연을 이해시켰다. 잠시 후 또 다른 사람이 와서는 내 정체를 물었다. 아, 이 편도 저 편도 아닌 ‘회색분자’(?)의 고충이라니!

경과설명을 하고 투쟁계획을 세우고 결의를 다지는 구호들을 외치는 사이사이로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의 투쟁가가 여러 차례 울려퍼졌다. 초대된 듯한 남자 가수가 기타를 메고 나와 노래 서너 곡을 하고 들어갔다.

또 다시 노조 간부의 연설이 시작됐다. 열두 시 반이 되자 사회자가 마지막 순서라며 ‘최도은 동지’를 소개했다. 어느 사이 ‘정리해고 결사반대’라는 붉은 머리띠를 동여맨 최도은이 우레 같은 박수를 받으며 연단에 섰다.

“생각보다 박수가 시원찮네요. 우리 노조가 이렇게 박력 없는 조직입니까. 자, 어깨 펴고, 힘차게 구호 한 번 외칩시다. 정리해고 음모 철폐하라!”

그는 일거에 장내를 사로잡는 탁월한 선동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사이 검은 복장을 한 남녀 무용수가 등장했다. 최도은이 이끌고 있는 노동예술단 ‘선언’의 단원들이다. ‘동지의 길’이라는 노래가 시작됐다. “허구많은 인생길 여기에서 만났지/하는 일은 달라도 같이 울고 웃었지….” 이미 노조원들은 모두 그 노래를 알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에 전의(戰意)가 서려 있었다면 과장일까. 수천 명의 노조원은 그를 따라서 일사불란하게 두 손을 내뻗거나 치올리며 이른바 ‘지게차 율동’을 연출하고 있었다.

최도은은 노래 하나가 끝나면 다시 구호를 외치거나 일장 연설을 하고 또 다시 노래를 불렀다. 그의 그런 행위를 ‘불순한 선동’이라고 못마땅해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장내를 휘어잡는 능력만큼은 인정해야 할 것 같았다.

대우 복장을 하니 구내 식당에서 공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혜택이 주어졌다. 주방에서 배식하는 아주머니들이 최도은을 알아보고 후식으로 나오는 사과를 그에게는 두 개나 더 얹어 주었다. 인하대 콘서트 때에는 식당 아주머니들이 모두 몰려와 함께 어울려 밥과 술을 먹었다는 귀띔이다.

우리는 구내식당의 구석자리에 다시 마주 앉았다.

―노조원들의 호응이 열광적이던데요?

“내가 스물 세 살 때부터 함께 해왔으니까 친밀감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겠지요. 그리고 저는 열광적인 호응이 없으면 노래 안 합니다(웃음).”

―‘지게차 율동’이라는 것은 직접 개발한 몸짓인가요?

“그렇습니다. 뻣뻣하게 앉아서 노래하는 것보다는 몸짓을 해가면서 불러야 신명이 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생산 현장의 지게차가 팔을 내밀었다 올리고 하는 모양을 본떠서 만든 거지요.”

―대우 노조 이외에 요즘 또 관계하고 있는 노조가 있습니까?

“대우차에 오기 전에는 해고된 한국통신 계약직 사원들의 농성장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한국통신 4만5000명 중에서 계약직 사원 7000명이 구조조정으로 잘렸어요. 일거에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영하 10도가 넘는 혹한에 경기도 분당에서 비닐을 뒤집어 쓰고 농성을 하는데 참 안 돼 보이더군요. 그렇지만 제 노래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겠습니까. 함께 아파하는 정도지요.”

―집회장에 참여하러 가는 것을 ‘공연하러 간다’고 합니까 아니면 ‘노래하러 간다’고 합니까?”

“연대하러 간다고 얘기합니다.”

―앞으로의 ‘연대’ 계획은 어떻게 되지요?

“당분간은 대우차 노조원들과의 연대에만 전념하고 주말을 이용해서 다른 사업장에도 참여할 생각입니다.”

―더 장기적으로 세우고 있는 계획은요?

“건강 유지에 신경 쓸 작정입니다. 현장에서 건강한 모습을 보여야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얘기할 수 있지 않습니까. 예전에는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도 노래를 잘 했는데, 요즘은 목이 빨리 잠겨버립니다.”

―미혼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활동하자면 기초적인 생활비 정도는 벌어야 되는 것 아닌가요?

“밥은 현장 노동자들한테서 얻어먹고, 잠도 그들 틈바구니에서 끼어 자는 날이 많아요. 그리고 노래 강습도 하고 규모 있는 사업장의 집회에 참석하면 약간의 돈을 받습니다. 워낙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별 불편을 못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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