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5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96년 1월22일 이회창 변호사는 청와대에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을 만난 뒤 신한국당 입당을 선언했다. 94년 4월22일 국무총리에서 물러난 지 21개월 만이었다. 김전대통령이 ‘정치초년병’ 이회창에게 맡긴 직책은 선대위의장. 특히 여권이 열세를 보이던 수도권 지역에 집중하라는 주문이었다. 3개월 뒤 15대 총선이 치러졌고, 전통적인 야당의 텃밭 서울에서 대이변이 벌어졌다. 서울지역 47개 선거구 가운데 신한국당이 무려 27석을 차지한 것이다. 정치인 이회창의 화려한 신고식이었다.
그로부터 5년. 이회창 총재는 대선 패배라는 시련을 딛고 강력한 제1야당을 이끌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도 이총재가 내년 대선에서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총재의 행보는 어딘가 모르게 불안해 보인다. 당내에서는 비주류를 중심으로 새로운 판짜기가 한창이다. 당 밖의 상황도 그리 여유롭지 않다. 김대중 정부에 대한 국민적 실망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이총재의 지지율은 답보상태다. 이총재의 대권가도에 빨간 신호등이 켜진 셈이다. 인터뷰는 4월11일 오후 3시 국회 본관 총재실에서 있었다.
―96년 정계에 입문하셨으니까, 이제 꼭 5년이 됩니다. 그동안 가장 어려웠던 순간은 언제입니까.
“역시 총풍 세풍 해가지고 몰아칠 때였죠. 당내 의원들이 무더기로 검찰에 소환당하고, 제 아우까지 구속될 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30명에 가까운 당내 의원들이 압박 때문에 탈당해서 저쪽으로 넘어갈 때는 당이 흔들리는 것 같았는데, 용케 견뎌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순간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입니까.
“원칙이나 도리에서 벗어난 비정상적인 정치 운영은 결코 오래갈 수 없고, 성공할 수 없다는 믿음 같은 것이었어요. 그리고 어차피 우리 당은 총선을 통해 국민이 선택한 제1당인데 이런 식으로 무너질 수 없다는 오기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제 힘이나 노력보다도 당원 전체가 뭉치고 대처한 결과로 봐야겠죠.”
“다시 정치할 것 같지 않네요”
―만일 5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변함없이 정치를 선택하시겠습니까?
“아이고….(웃음) 정말 다시 할 것 같지 않네요.”
다시 5년 전을 떠올려보자. 이총재는 정계에 입문하면서 “법조인과 정치인의 역할은 다르겠지만 행동원칙에는 차이가 없다. 정치인으로서 그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대법원판사, 중앙선거관리위원장, 감사원장, 국무총리를 지내면서 ‘대쪽’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사람답게 그는 ‘소신’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이총재는 5년간의 정치역정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이총재께서 5년간 경험하신 것을 종합해볼 때 정치라는 건 한 마디로 뭐라고 할 수 있습니까.
“좀 거창한 것 같지만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정치에 들어오기 전에는 정치를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했고, 정치인에 대한 인상도 그다지 좋지 않았어요. 굉장히 소모적이고 없앨 수 있다면 없애도 좋은 것이라는…. 아마 지금 국민들이 정치에 대해 그런 감정을 갖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막상 들어와서 느낀 것은 달라요. 한 국가가 제대로 자리를 잡고 국민의 힘을 결집시켜가면서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느냐, 아니면 기본을 갖추지 못하고 국민에게 불안과 위기를 초래하느냐 하는 것들이 바로 정치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과거에는 정치와 정치인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현재는 많이 바뀌셨습니까?
“정치의 본질적인 의미가 중요한데도 정치를 운영하는 마당에서 매우 부정적으로 비치게끔 했기 때문에 제가 좋지 않은 인상을 갖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여소야대 정국이 됐을 때 아마도 민주적이고 정상적인 정치라면 국민이 부여한 여소야대 상황을 놓고 거기서 어떻게 정국을 운영할 것이냐, 대통령과 집권당이 어떻게 야대 국회를 상대하면서 정치를 대화로 이끌 것이냐, 여기에 정치력의 성패가 달려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걸 그렇게 보지 않고 ‘개혁을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여소야대를 여대야소로 만들어야 되겠다’ 해서 억지로 바꾸는 것을 정치의 본령으로 안다면, 그 정치는 국민에게 지탄받고 혐오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법관과 정치인은 여러 면에서 다른데 이총재는 지금 어느 쪽에 더 가까이 있는 것 같습니까?
“지금이야 법관 쪽에서 보면 완전히 타락한 거지 뭐.”
정쟁에 집착하지 않겠다
지난 1월말 한나라당 지구당위원장 연찬회에서 이총재는 ‘국민 우선의 정치(people first)’라는 화두를 제시했다. 이총재는 2월 임시국회 대표연설에서도 국민 우선의 정치를 제기했고, 민생현장 방문, 지하철 탑승 같은 프로그램을 전개하고 있다. 이총재가 이런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차기 대선을 겨냥한 이미지 메이킹이라는 것이 정가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정쟁에서 한발 떨어져 국가 지도자라는 위상을 만들기 위한 홍보전략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총재의 ‘국민 우선의 정치’는 ‘알맹이가 없는 정치쇼’라고 비판도 받고 있다.
―최근 이총재께서 ‘국민 우선의 정치’를 말씀하셨는데요. 많은 사람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내용이 뭐냐? 잘 모르겠다’는 얘기들을 하고 있습니다. ‘국민 우선의 정치’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국민들이 ‘아, 이제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해 뛰고, 국민을 걱정하고, 나라를 위해 일하는구나’라고 느끼게끔 하자는 것이 국민 우선의 정치입니다.
첫째는 대중주의적인 유혹에 빠지지 않는 정치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구조조정을 제대로 해서 경제의 기본틀을 만드는 것은 국민경제를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선 당장 한 건 했다거나 얼마 동안에 마치겠다 하고 나중에 말을 바꾸는 것은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죠. 이런 식의 포퓰리즘적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더 긴 안목으로 국민의 이익을 위하고 국가의 이익을 생각하는 정치가 돼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둘째는 절대로 정부가 강해져야 한다는 소리를 해서는 안 되고 국민이 강해져야 한다는 겁니다. 대통령이나 정부나 권력이 강해지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수 있습니다. 법이나 제도로 제동을 걸지 않으면 그렇게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법의 지배가 돼야 합니다.
셋째는 국민 우선의 정치는 무엇보다도 안정을 추구합니다. 가령 남북문제나 경제문제나 불확실하기 때문에 국민은 불안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남북문제도 그 동안 굴러가던 현대의 금강산 사업이 파탄나기 시작했고, 현대그룹도 대북 창구였던 회사가 파산 지경이 됐잖아요. 또 내년 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지 누구 하나 자신 있게 말을 못합니다. 그래서 민생과 국가의 안정을 지향해야 한다는 겁니다”
―야당 총재로서 앞으로 국민 우선의 정치를 적용한다면, 어떤 모양이 되겠습니까. 정치 스타일이 지금까지와는 좀 달라지는 건가요.
“여야간에 하나 주고 하나 받는 정쟁에 집착하지 않을 겁니다. 무엇이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고 또 무엇이 국민을 위한 정책인가. 이런 각도에서 정책을 선택하고 행동할 것입니다. 물론 야당은 정부나 대통령의 정책과 행동이 잘못 됐을 때 강하게 비판하고 견제해야 합니다. 그것이 본래 야당의 직무이기 때문에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죠. 그러나 여야간에 정쟁으로 날을 지새는 행태는 뛰어넘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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