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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체의 시대’ 를 사는 법|가족

‘프리섹스’, 해방과 혁명을 이끈다

  • 권삼윤 < 문명비평가 > tumida@hanmail.net

‘프리섹스’, 해방과 혁명을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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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인간은 누가 뭐라 해도 사회적 동물이다. 독불장군처럼 살 수는 없다. 따라서 남과의 관계, 남을 배려하는 자세가 중요할 뿐 아니라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사회에선 누구의 무엇이라는 ‘관계’가 너무나 큰 힘을 발휘했다. 심지어 그 관계를 위한답시고 개인에게 희생을 강요하기도 했다.

청춘남녀가 서로 사랑하다 결혼했다 하더라도 그 순간부터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이기보다는 누구의 며느리로 사는 시간이 많았다. ‘우리집의 가풍은 이런 것이다’며 사사건건 간섭받아야 했고, 어쩌다 개성을 드러내기라도 하는 날엔 날벼락이 떨어졌다. 참다못해 귀가한 남편에게 낮에 겪은 억울함을 털어놓아도 도움을 얻지 못했다. 착한 남편은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서 속만 끓였다.

이렇듯 우리의 전통적인 결혼생활은 부부만의 것이 아니었다. 부부생활은 그중의 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자녀 양육이란 중대한 과업이 그 나머지 시간마저 앗아갔던 것이다. 자녀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특정한 남녀의 지속적 결합과 그들의 자녀 양육을 내용으로 하는 가족은 부모와 부부, 자녀 등으로 세대가 다른 인적 구성을 갖기에 수직적 혈연구조를 갖는다. 이는 어느 민족에게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지만 조상숭배를 중시한 우리에게는 집안 제사라는 것이 있어 그러한 수직적 위계질서가 유독 강조됐다. 전통이나 가풍을 잇는 의무는 중시됐지만 새로운 가풍의 창조는 좀처럼 허락되지 않았다. 여자와 아이들의 의견은 무시되기 일쑤였다. 수직이 강조된 반면 수평은 무시됐던 것이다.

우리의 가족제도는 많은 장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요소들로 인해 삶을 옥죄는 굴레로 작용했다. 그 주된 피해자는 여성이었다. 여성의 ‘한(恨)’은 어쩌면 그런 굴레의 산물인지도 모를 일이다. 가정의 틀은 철저하게 연장자 중심의 남성 위주로 짜였다.



그런데 최근 사회의 틀이 남성 중심에서 남녀를 구별하지 않는 인간 중심으로 바뀌면서 가정의 기반도 덩달아 흔들리고 있다. 그 첫 도전은 핵가족화 경향이었지만, 그 중대한 변화는 가정의 출발점이 되는 결혼제도에서 일어났다. 누구나 나이들면 하는 게 결혼인데 이제는 결혼은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선택사항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어떤 선택도 당사자 개인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어서 설령 부모라 하더라도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거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커플이나 부모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한 남녀가 ‘우리는 반드시 결혼한다’는 공개선언 내지 현실의 장벽을 돌파하는 파격적 수단으로 이용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양가 부모의 허락을 얻은 상태에서 동거하거나 “가족을 만드는 데 결혼을 하고 안 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혹은 “결혼이라는 절차를 통해 얻는 것은 쓸데없는 가부장적 책임뿐이다. 동거만으로도 기성세대가 결혼을 통해 얻는 혜택을 누리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며 떳떳하게 동거에 돌입하는 젊은이도 적지 않다.

결혼은 ‘시작’ 아닌 ‘결과’

프랑스와 북유럽같이 일찍이 시민혁명이나 여성운동을 경험했던 나라에서 이런 동거형태가 처음 생겨났다. 그들은 여성이 자유롭지 못하면 사회도 자유로울 수 없을 뿐 아니라 삶의 충실화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그 길로 매진할 수 있었다.

북유럽에선 결혼식을 치르지 않고 한 집에서 사는 부부를 ‘삼부(Sambo) 부부’라 부른다. ‘삼(sam)’은 ‘함께’, ‘부(bo)’는 ‘산다’는 뜻이니 삼부란 결국 동거(同居, co-habitation)를 뜻한다. 삼부 부부가 보편화된 것은 1940년대 파리에서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동거문화를 외치면서부터였다. 남성의 사회적 특권을 부정하고 여성의 독립을 외치던 시몬 드 보부아르가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키워지는 것이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은 ‘제2의 성’(1949)을 발표하던 어름이었다. 그것은 보부아르가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자식도 남기지 않으며 서로에게 완벽한 자유를 허용한다”며 사르트르와 계약동거를 선언한 지 20년 가까이 되던 시점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동거부부가 프랑스 땅에 곧장 뿌리를 내린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는 보수적인 가톨릭 국가여서 전파 속도가 더딘 편이었다. 그것이 본격적으로 정착한 것은 80년대였고 법적으로 인정받은 것은 그보다 훨씬 뒤인 99년 10월, 동거부부에게 결혼한 부부와 똑같은 법적·사회적·세제상의 혜택과 보호를 약속한 ‘시민연대협약’이 채택되면서였다.

동거문화의 선구자는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이 태어난 노르웨이 인근의 북유럽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혁신적이고 개방적인 루터교를 믿은 데 기인했다. 동거란 말에는 ‘결혼식을 거치지 않고 같이 산다’는 뜻이지만 남녀가 ‘같은 높이에 서서 살아간다’는 의미도 내포돼 있다. 인간 중심, 개체 중심으로 보면 동거를 탈선이나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같이 산다는 실질적인 내용에 충실할 수만 있다면 결혼식을 올렸느냐 아니냐 여부는 형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스웨덴에서는 신생아의 절반 이상이 삼부 부부에게서 태어난다. 그곳에선 미성년자가 아이를 낳아도 ‘미혼모’라고 부르지 않는다. 아이의 양육부담을 여성에게만 떠맡기지도 않는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라도 법적으로는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와 조금도 차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결혼식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그 풍속도가 변했을 뿐이다. 신랑, 신부만 달랑 걸어나오는 게 아니라 그들이 낳은 아이들을 앞세우고 나타나 하객들로부터 축하를 받는다. 그래서 결혼식은 관계의 ‘시작’이 아니라 그 ‘결과’로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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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삼윤 < 문명비평가 > tumi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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