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7월호

싸고 영양 만점에 술안주로도 그만

  • 글·최영재 기자 사진·김용해 기자

    입력2005-05-20 15: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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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장에서 MT를 갔을 때 남자들이 손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두부요리다.
    • 두부김치는 소주나 막걸리 같은 대중주의 술안주로 그만이다. 만드는 법도 어렵지 않다.
    싸고 영양 만점에 술안주로도 그만
    남자는 여자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순간이 다른가 보다. 드라마 ‘태조 왕건’가운데 궁예의 제1 가신인 책사 종간의 죽음은 뭇 남성의 심금을 울렸다. 드라마에서 종간은 궁예가 죽기 전 극약을 마시고 자결한다. 철원 황궁을 점령한 왕건과 마주쳤을 때도 종간은 죽어가며 오직 주군(主君) 궁예만을 걱정한다.

    “폐하가 그대를 다시 보게 된다면 부디 욕된 자리를 만들지는 마시오. 그것을 부탁하고자 이렇게 나와 있었던 것이오. 감축드리오 왕시중. 나는 저세상에 가서 다시 내 주인을 만나야겠소.”

    종간이 왕건에게 던진 마지막 대사다. 드라마를 시청하던 숱한 남성들이 이 비장한 한마디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드라마가 끝난 뒤 술 마실 줄 아는 이는 소주잔을 기울이고, 담배를 좋아하는 이는 줄담배를 피웠을 법하다.

    “그래 맞아, 사내는 저렇게 죽는 법이야.”

    보는 사람이 그랬다면 연기자는 어땠을까? 김갑수 씨(45)도 울지 않으려고 했지만 자꾸 눈물이 나서 주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첫째 이유는‘태조 왕건’이 첫 전파를 탄 이래 약 18개월 동안 온몸을 바친 데서 오는 섭섭함 때문이었다. 그는 120회까지 한 회도 빠진 적이 없고, 1주일에 사나흘은 서울과 경북 문경을 오가며 촬영하고, 나머지 시간도 그 준비로 보냈다. 1977년 극단 ‘현대극장’ 1기생으로 데뷔한 이래 한 인물을 이렇게 오래 연기한 적은 없었다. 기간도 기간이지만 이 정도로 열심히 한 배역도 없었다고 한다. 시청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시청률이 올라갈수록 스트레스도 심해졌다.



    둘째 이유는 극중인물에 대한 몰입이었다. 삼한을 통일하는 대업(大業)을 이루지 못하고 중간에 좌절하는 종간이라는 인물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더라는 것이다.

    배우 김갑수 씨는 1984년 연극 ‘님의 침묵’에서 만해 한용운 역을 맡아 호평을 받은 이후 주로 영화를 통해 연기파라는 명성을 얻었다. 영화 ‘태백산맥’에서는 염상구역으로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영화 ‘금홍아 금홍아’에서는 작가 이상 역을, ‘지독한 사랑’에서는 대학교수 역을 맡았다.

    그러나 김갑수 씨는 1990년 이전까지는 서울연극제 등 주요 연극제서 남자 연기상을 석권한 연극 무대의 스타였다. ‘님의 침묵’에서는 만해, ‘길 떠나는 가족’에서는 이중섭, ‘아! 이상’에서는 고뇌하는 인텔리 이상을 연기했다. 연극은 그에게 호구지책이었다. 1977년 현대극장에서 연기를 시작할 무렵에는 매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생활이었지만 극단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이 커다란 매력이었다고 한다.

    연극배우에서 영화배우로, 탤런트로 성공했지만, 그는 연극계를 떠나지 않는다. 김갑수 씨는 현재 서울 대학로의 극단 ‘배우세상’대표다. IMF 사태가 터진 직후인 1997년 말 그는 이 극단을 시작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드라마 ‘태조 왕건’을 끝낸 뒤에는 연극‘칼맨(김태수 작, 윤우영 연출)’을 공연하고 있다. 이 연극에서 김갑수 씨의 역은 의외로 주연배우가 아니라 단역인 장씨 역이다.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란다.

    싸고 영양 만점에 술안주로도 그만
    ‘칼맨’ 공연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저녁 이어진다. 공연이 없는 날이 월요일이라, ‘칼맨’팀은 6월3일 일요일 저녁 공연을 마치고, 당일 밤차로 경기도 양평으로 MT를 떠났다. 밤늦게 도착해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이다 다음날 늦게 일어나니, 배는 고프고 무언가 음식을 해 먹어야 했다.

    김갑수 씨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된장찌개다. 그의 어머니가 된장찌개를 잘 끓였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그는 생일에도 미역국 대신 된장찌개를 먹었다고 한다. 된장찌개를 끓여주시던 어머니는 그가 스무살이 되기 전에 돌아가셔서 지금은 그 맛을 정확히 알 수 없다. 막연히 맛있었다는 느낌뿐이다. 그래서 그는 지방 촬영 때 된장찌개를 잘한다는 식당이 있으면 무조건 찾아간다.

    그가 된장찌개 다음으로 좋아하는 음식이 두부다. 밖에서 선후배들과 술 한잔 기울일 때도 두부 안주는 꼭 시킨다. 집에서도 그는 두부를 김치에 싸서 먹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두부는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고 불리는 콩으로 만든 음식으로 누구나 즐겨 먹는다. 단백질이 풍부하고 우리 몸에 유익하지 않은 포화지방산 대신 식물성 지방이 들어 있다. 예부터 채식을 하는 승려나 인도의 채식주의자가 영양적으로 가장 의존하는 식품이 콩이었다.

    두부 종주국은 중국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우리 나라의 두부 만드는 솜씨가 뛰어나서 중국과 일본에 그 기술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일본만 해도 임진왜란 때 우리 나라에서 두부 기술이 전해졌지만 지금은 일본의 두부 가공기술이 앞선다. 포장 두부나 장기 보관 두부 등 여러 제품을 오히려 우리가 배워 오는 실정이다.

    직장에서 MT를 갔을 때, 별다른 재료가 없어도 남자들이 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가 두부요리다. 재료가 간단하고, 별다른 솜씨가 필요없다. 영양 만점에다 밥반찬으로도 훌륭하고 소주와 막걸리 같은 대중주의 술안주로도 그만이다.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먼저 볶음김치부터 만든다. 우선 양파와 파를 썰고, 부추를 3cm 길이로 썬다. 마늘은 납작납작 썰고, 생강은 다진다. 채소 준비가 끝나면 돼지고기와 신김치를 같은 크기로 썬다. 두부에 곁들일 볶음김치 재료 준비가 끝나면, 소금을 약간 넣고 물을 팔팔 끓인 후 두부를 살짝 데친다. 이때 두부는 단단한 것으로 준비한다.

    물이 끓고 데친 두부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면, 프라이팬에 참기름을 약간 두르고 돼지고기를 볶는다. 고기가 익으면 신김치를 한데 넣어 뒤적이며 같이 볶는다. 적당히 볶아졌으면 채소를 집어넣고 약간 뒤적이다 바로 불을 끈다. 간은 신김치 간이면 충분하다. 다음은 김이 나는 두부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 사진과 같이 김치볶음과 두부를 모양있게 담아 낸다. 상에 내기 직전 기호에 따라 통깨를 뿌려도 좋다.

    김갑수 씨는 극단 후배들과 강가에서 두부김치로 모처럼 기분을 냈다. 학사주점 술안주로 나오는 서민 요리지만, 새파란 강물과 수면을 스치듯 나는 새, 시원한 강바람, 조약돌이 함께하니 호텔 요리가 부럽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뒤, 다시 후배들과 웃통을 벗어던지고 뙤약볕에 족구를 하는 김갑수 씨. 그 천진난만한 모습에는 냉혹한 ‘종간’은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배우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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