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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김정남 미스터리 제2탄

김정일·김정남 愛憎의 父子관계

  • 최영재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cyj@donga.com

김정일·김정남 愛憎의 父子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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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100평 규모였던 중성동 15호 관저는 1973년에 500평으로 늘어났고, 1978년 1년간의 공사를 거쳐 지금의 2000평 규모로 증축되었다. 김정일과 김정남, 성혜랑, 이한영, 김정남의 외할머니 김원주씨는 70년대 내내 15호 관저에서 생활했다.

80년대에는 성혜랑도 모스크바로 나가고, 김정남도 스위스 모스크바 등 외국에 유학을 나가 있었기 때문에 김정일은 빈집 같은 15호 관저를 이용하지 않았다. 이 당시에 김정일은 둘째 아들 정철을 낳은 고영희가 살고 있는 창광산 관저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82년 이한영씨가 한국으로 탈출한 이후에도 15호 관저는 줄곧 성혜랑씨와 김정남, 성혜림, 외할머니 김원주씨가 거주했다. 김정남은 제네바와 모스크바에서 유학하다 잠시 귀국하면 이 집에 묵었다. 80년대에 모스크바에서 치료받던 성혜림이 평양으로 들어오면 김정일도 그때마다 이 집에 머물렀다.

1989년 7월 평양에서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열렸을 때, 마침 성혜림이 평양에 와 있던 터라, 김정일은 이 ‘15호 관저’에 거주하며 축전을 진두지휘했다. 1990년까지 김정일은 이런 식으로 이 집에서 살았으나 성혜림이 다시 모스크바로 돌아가면서 김정일은 이 집에 발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한영씨와 성혜랑씨가 낸 책 내용과 ‘신동아’가 입수한 도면을 맞추어보면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이 관저의 특징은 대응접실, 대형 오락장 등 큰 방의 벽마다 책이 가득 채워져 있다는 점이다.



외할머니가 장서 정리

이 관저에 있는 김정일 서재는 사다리를 놓고 책을 꺼내야 할 정도로 책이 꽉 차 있다. 15호 관저는 단층으로 바닥에서 천장까지 높이가 7∼8m나 된다. 이 관저의 장서를 분류하고 정리한 사람은 김정남의 외할머니 김원주였다. 김원주는 로동신문 국제부장을 지낸 인텔리 출신. 그가 어린 외손자 김정남을 키우기 위해 이 집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이 15호 관저의 장서를 꾸리는 일이었다. 책은 분기마다 김정일이 일본과 남한의 출판목록을 보고 한아름씩 들여왔다. 김정일은 자기 차에 책을 싣고 와서 현관서부터 “할머니! 할머니!” 하고 김원주를 찾았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15호 관저의 이 책 때문에 아버지 김일성에게 크게 점수를 딴 적이 있다. 독일 여류작가 루이저 린저가 처음 북한에 온다는 소문이 있었을 때 김일성은 미리 작품을 읽어 보기 위해 아들에게 루이저 린저의 책이 북한에 있는지 물었다. 책은 학습당(중앙도서관)이나 비공개도서실에도 없었다. 김정일은 김원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책은 관저에 있었다. 김원주는 자기가 꼼꼼히 분류하여 관저에 정리해 놓은 책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고 김정일은 바로 이 책을 김일성에게 전할 수가 있었다.

도면에 보이는 대형 오락실은 김정남의 놀이방인데 규모가 300평쯤 된다. 이 공간은 기둥이 없이 확 터져 있어 운동장같은 느낌을 준다. 오락실 한가운데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포켓볼대가 있고, 사방벽에는 전자오락기가 죽 붙어 있다. 김정남의 어린 시절, 오락실은 5월10일인 그의 생일을 기준으로 매년 새로운 놀이기구로 완전히 바뀌었다고 한다. 그가 새로운 장난감들을 잠깐씩 만져보고 살펴보는 데도 하루 이상 걸렸다는 것이다.

300평 대형 오락실

김정남의 생일선물이 도착하면 오락실에 진열되는데, 생일 당일까지는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김정남은 5월10일 원수복을 입고 명예위병대를 사열한 뒤 김정일의 손을 잡고 오락실에 들어가서 선물을 둘러보곤 했는데, 김정일은 대충 돌아보지만 김정남은 하나하나 만져보고 움직여 본다는 것이다.

이날 15호 관저에서는 김정일과 친지들의 오찬이 베풀어지곤 했는데 어른들이 벌이는 생일축하 파티는 술을 곁들여 오후 서너시까지는 갔고, 그 동안 김정남은 부관이나 경호원과 함께 오락실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고 한다.

이 관저에서는 한국의 텔레비전을 볼 수 있다. 개성의 수신탑에서 남한의 전파를 잡아 평양 중계탑으로 보내고 거기서 김정일의 관저와 집무실로 전파를 보내는 것이다. 이한영씨의 증언에 따르면 관저에서는 오락실 등 가는 곳마다 텔레비전을 켜면 남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나왔다. 일본 NHK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송출하는 러시아방송도 나왔다.

김정일이 이 관저의 정문을 통과하면 “선생님께서 들어오십니다”라고 연락해준다. 관저 안에서 수행원이나 관리원은 김정일을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정문을 통과해서 현관까지 오는 데도 한참 걸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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