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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특집|일본역사교과서 韓·日 논쟁

“민간 공동연구부터 하자”

역사교과서 왜곡문제 해결을 위한 제언

  • 윤건차 < 일본 가나가와 대학 교수· 한일민족문제학회 회원 >

“민간 공동연구부터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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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러한 시대적 특징은 단지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 나아가서는 중국 등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중화 사회의 진행 속에서 귀속감을 잃은 개인들이 집단이나 국가에서 자신의 활로를 발견하고자 하는 경향이다. 다만, 일본의 경우 그러한 경향은 전전적(戰前的) 체질인 국가주의·천황주의와 쉽사리 결합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일본이 아시아에서 돌출한 경제대국인 만큼 그것은 또한 의도 여부를 불문하고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에 크나큰 영향을 주게 되므로 그만큼 경계해야 할 일이다. 더구나 일본인 전체가 그러한 현실을 확실히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바로 위기의 심각함, 문제의 본질이 있다고 하겠다.

즉 현재 자기 자신이 놓인 상황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사고하며 판단하여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비판적 상상력의 쇠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일본사회 전체가 한덩어리가 되어 전전회귀(戰前回歸) 사상에 빠져드는 위기에 직면한 것은 아닐까? 한편으로 그것은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특질이라고 할 수 있는 판단정지·사고정지라는 상황이 심화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한다.

런던에서 볼 때 재미있는 것은 ‘조국’에서 멀리 떠나서 살아가는 일본인들이 이러한 사태의 심각성을 의외로 똑바로 꿰뚫어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런던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의 최대 미디어인 ‘영국 뉴스 다이제스트’는 요즘 연속적으로 ‘일본인과 교과서’, ‘천황과 천황제’라는 특집기사를 다루고 있는데, 계속 일본 국내의 움직임에 대해 강한 불신을 표명하고 있다. 이들 기사에서는 일본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는 애매함이 근대천황제(近代天皇制)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명쾌하게 논하고 있다.

물론 역사인식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역사를 자신의 비위에 맞게 써내려 가려는 움직임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특히 정치권력을 쥔 지배층은 대체로 권력 유지에 유리하게 역사를 만들어내는 법이다. 국민국가 제도 속에서 ‘의무교육’을 체제지배의 중요한 수단으로 장악한 지배층에게, 학교교육은 일정한 역사인식을 사람들 머리 속에 철저히 주입하는 가장 편리한 도구로서 기능하고 있다.



지금 문제가 되는 일본의 역사인식 왜곡 문제는 형식상 민간의 교과서 제작 문제로 취급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아시아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크나큰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고 하는 1995년 8월의 무라야마 수상의 담화에 위배되는 행위는 하지 않는다고 변명한다. 일본 정부의 견해는 어디까지나 검정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교육적인 견지에서 행해지는 것이며, 정부는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의 역사인식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논법이다. 그러나 외국에서 보면, 교과서 검정은 일본의 중앙행정부가 집행하고 있으며, 그 결과 책임은 일본 정부가 져야 마땅하다고 보는 것이다.

성급한 한국 정부 대응

여기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에서 ‘교육의 중립성’이라는 명목 아래 교육이 보수 정권의 지배도구로 이용당해온 역사가 깔려 있다. 교육은 정치적으로 ‘중립’이어야 한다는 ‘정론(正論)’ 아래 학교교육 속에서 지배 정당의 의도가 관철되고 동시에 ‘이에나가(家永三郞) 교과서 재판’으로 대표되는 진보진영의 교과서 시정 요구를 배격해온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출’, ‘침략’ 기술의 상징인 1982년 교과서 검정은 정부권력에 의한 교과서 개악이 외교문제가 됨으로써 일시적·부분적이나마 좋은 방향으로 시정되었음을 의미한다.

검정의 주체인 일본 정부는 결코 가치 중립적인 판정자가 아니다. 사실, 일본 정부는 이번에 ‘민간’ 교과서 제작을 강조함으로써 정부의 책임을 회피하고 실질적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교육의 우경화를 실현하려 하고 있다. 이 점에서 볼 때 일본의 역사인식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이유로 한국 정부가 정정할 내용을 항목별로 낱낱이 써서 일본 정부에게 외교 안건으로 요구한 일이 과연 타당한 방책이었는지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교과서의 역사인식 왜곡을 외교 안건으로 삼아 정식 비판하는 일은 정당하다. 그러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시정 내용을 외교 안건으로 무턱대고 들이대는 일이 과연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일본 정부의 의도, 일본의 교과서 검정제도의 존재양식, 무엇보다도 일본의 사상, 이데올로기의 존재양식 등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시정 요구가 어떤 구체적인 결실을 가져다 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잘못하면 반대로 한국 정부가 궁지에 몰리는 결과를 초래할 염려도 부정하기 어렵다.

137개 부분에 이르는 수정 의견을 모두 받아들임으로써 검정에 합격한 ‘모임’의 교과서는, 가령 한국 정부가 제시한 35개 부분의 재수정 요구를 받아들였다 하더라도 그 우익적 성격은 기본적으로 하나도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 정부는 자칫 그러한 교과서를 추후 승인하는 꼴이 되고 만다. 만약 그러한 대응이 꼭 필요했다면, 한국 정부는 학자들의 조사 결과를 공표한다든지 정부의 유감 성명 발표라는 형태에 그쳐야 했다. 한국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조치로 더 효과적인 것은, 오히려 일본 대중문화의 개방정책이라든가 민간이나 연구기관의 교과서 연구 등 일본연구를 조속히 장려·지원해주고 일본의 부당성을 백일하에 드러나게 하며, 국제기관 등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주장을 꾸준히 홍보하는 일이 아닐까? 물론 한국의 학술단체나 시민단체 등이 교과서 기술의 시정을 요구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며 그것을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방법도 좋을 것이다.

조선 멸시관, 아시아 멸시관

교과서 기술에 관한 개별적이자 구체적인 시정 요구는 어디까지나 일본인 스스로 자국 정부나 교과서 회사, 집필자들에게 요구할 일이다. 한국 정부나 한국인들이 할 일은 그러한 양심적인 일본인들이 그렇게 행동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주는 것이다. 그것은 일본 우익들이 억지 주장하고 있는 ‘내정간섭’이라는 불필요한 시비를 피해 가는 방책이기도 하다.

일본의 교과서 기술 문제는 중요한 사안(事案)이다. 하지만 그 근저에는 더 큰 문제가 가로놓여 있다. 즉 이 문제의 본질은 일본이 국가로서 아직까지 한번도 조선 침략, 식민지지배의 부당성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바로 그 점이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의 체결이나 현재 진행(일시 중단)되고 있는 북일(北日)수교 정상화 교섭, 그리고 국회에서 되풀이된 답변으로 밝혀진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견해는 “일본은 이전에 조선반도를 식민지로서 지배했지만, 그것은 대한제국 정부와 협의를 거친 ‘합법적’인 것이었으며, 침략한 사실은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 혹은 천황이 과거의 사죄를 언급하고 선린우호를 찬미한 적은 있어도 그것은 과거 침략·지배한 사실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이었다. 외부에 대한 임시변통의 겉치레적 립서비스(lip-service)에 불과했다. 실제로, 일본 정부가 표명하는 것은 고작해야 “이전의 식민지 지배에는 ‘도의적’으로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고 표현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근대 일본의 역사에서 동아시아, 특히 조선은 억압, 침략, 지배 대상에 불과했다. 사실,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이라든지 ‘만선(滿鮮)’, ‘오족협화(五族協和)’, ‘내선일체(內鮮一體)’, ‘대동아 공영권’ 등의 슬로건들은 제국 일본이 아시아에 대한 군사적 침략의 강도에 상응해서 잇따라 만들어간 정치적 자기표출에 불과했다. 게다가 그러한 역사 과정에서 일본 지식인들은 서구(西歐)에 쫓기면서도 동시에 아시아에서도 반격(反擊)당함으로써 늘 그들 특유의 복잡한 ‘피해자’ 의식을 강하게 가지게 되었다. 일본의 지식인들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서구와 아시아의 추구를 두려워하는 ‘피해자’적 심정의 소유자들이다. 그들에게 그것을 은폐해주는 것은 애매한 천황제 이데올로기이며 또 그것과 일체화된 조선(朝鮮) 멸시관(蔑視觀), 아시아 멸시관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줄곧 미소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경제성장의 길을 걸어온 일본은, 기본적으로 정치적·정신적으로 전전(戰前)과 똑같은 범주에 놓여 있다. 전후 일본의 역사를 어떻게 정리하느냐는 어려운 문제이지만, 일단 일미안보체제(日美安保體制), 천황제 민주주의, 아시아 침략의 은폐·망각·미화라는 세 가지 특질을 가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전후 일본의 기축(基軸)을 이룬 일본국 헌법의 구조가 천황제의 존속, 전쟁책임의 무화(無化), 아시아의 망각과 일체가 된 ‘평화’이념 등을 기본 요소로 삼고 있다. 그것은 미소 냉전의 틀에서 미국의 군사전략에 일방적으로 가담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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