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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의 세상읽기

“따뜻한 가슴과 연대만이 희망이다”

  • 신영복

“따뜻한 가슴과 연대만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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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문제는 성급함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기회주의와 졸속주의입니다. 저는 당시에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후에 확인되는 바에 따르면 민주화 과정에 헌신했던 많은 사람들이 모두 중앙으로 집결하느라 바빴더군요. 민중과의 접촉면을 유지하고 강화하거나 새로이 조직하는 노력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서둘러 중앙으로 결집했다가 또다시 서둘러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죠. 여러분이 더 잘 아는 일입니다.

기회주의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민주화운동 과정에 확대된 사회적 공간, 확대된 운동공간을 놓고 보여준 기회주의적 편향성입니다. 전체 역량의 합의를 거쳐서 그 귀중한 공간에 공동으로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계파가 먼저 가서 깃발을 꽂고 선점하려는 경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참담한 실패로 이어졌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패를 평가하는 시각입니다. 아직은 진보주의가 시기상조라는 평가입니다. 나는 이러한 평가가 별 논의 없이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잘 납득이 안 됩니다. 이러한 평가는 특정 그룹의 실패가 그 기회주의적 편향성을 반성하기보다는 서둘러서 전체 역량을 매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평가에 이어서 보여준 것이 바로 개량화입니다. 제도권으로 옮겨가거나 시민운동 형태로 물러서거나 하는 경향이 주류를 이루지요. 생각해보면 이러한 것들은 어쩌면 우리가 감정적으로 느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정적이라는 것은 인간적 배신감의 차원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만 크게 보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기본적 한계이며 취약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민주화에 대한 이해 수준입니다. 그리고 민주화 문제를 국내정치 지형에서 사고하는 것도 문제지요.

민주화 문제를 국내정치 더 나아가서는 제도정치, 더 나아가서는 의견수렴 과정이라는 형식의 문제로 이해하는 것이지요.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구조화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근본적 문제에 대해 매우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주체적이고 종속적인 구조에 대한 사고가 없다는 것이예요.



따져보면 기회주의와 졸속주의는 피상적이고 허약한 현실인식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야간의 비방이나, 또 이념논쟁이나, 사회계층간의 이해충돌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만, 솔직히 저는 이러한 비주체적이고 종속적인 구조에서는 누가 한들 어쩔 도리가 없겠다는 생각을 해요.

어떤 형태의 사회운동도 결국 비슷한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원천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뜻입니다. 종속적 구조에서는 경제든 정치든 문화든 무엇 하나 제자리를 잡기 힘들다는 사실을 절감하곤 합니다. 저는 이러한 문제까지 포함하여 민주화에 대한 인식의 불철저성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상품문화에 매몰된 신세대

그리고 주체역량의 관점에서 논의하자고 했습니다만 문제는 이 역량이 고립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 다시 말해서 세대간에도 단절되어 있다는 것이 더 절망적입니다. 역량의 후속부대를 이뤄야 할 젊은이들의 사고방식 말입니다.

젊은 세대의 사고와 행동패턴은 물론 민주화운동의 역량이란 관점에서도 문제이지만 한마디로 세계경제의 중하위권에 편입되어 있는 한국 자본주의의 재생산 구조를 절감하게 합니다. 특히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은 이전과 완벽하게 달라졌어요. 우리 학교 여러 선생님들이 저한테 1학년 교실을 좀 잡으라고 짐을 지우지만, 잡기는 어떻게 잡아요. 도리어 내가 잡힐 지경입니다. 완고한 벽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우리 사회의 종속구조가, 교육과 문화에서도 그 재생산구조가 이제 완벽하게 구축됐구나, 그런 걸 실감합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우리나라의 사회성격 논쟁은 더 이상 여지가 없다고 봐요. 확실하게 상품생산 사회, 자본주의 사회로 구조가 완비되었다고 해야 합니다. 토플준비와 영어공부가 관심의 전부입니다. 신자유주의의 도도한 흐름을 거스를 수가 없습니다.

신세대들은 스스로 개성세대라고 개성을 공격적으로 드러내고 있지만 그 개성이란 기본적으로는 상품문화에 매몰돼 있는 것에 지나지 않지요. 개성표현에 인간적인 내용은 전혀 없어요. 머리카락을 무슨 색으로 물들일 건가, 어떤 배낭을 짊어질 건가, 그런 수준을 넘지 못하지요. 인간의 개성이 어떠한 고뇌와 방황과 실천과정의 결과로서 경작되는가와는 한 점 상관도 없이 무엇을 소비할 것인가, 아니면 무엇으로 형식을 삼을 것인가에서 얘기가 끝나 버려요. 상품미학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지요. 한마디로 인텔리 충원 구조 내지 교육문화의 재생산구조도 완벽하게 자본주의화한 실정입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변혁역량의 충원구조가 와해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을 냉정하게 전제하고 고민해야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신자유주의 논리와 세계화논리가 막강한 포섭력을 갖게 되고 세계화와 식민의식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이제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담론 자체가 아예 사라지고 없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바로 ‘사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화운동 과정에 노정된 인식의 불철저성에 관하여 언급하였습니다만 사상이란 현실에 대한 압축적 인식입니다. 그리고 결국 모든 투쟁은 사상투쟁에서 시작하는 것이며 사상투쟁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저는 본의 아니게 자본주의 문화로부터 일정기간 격리돼 있었으니까 그러한 자본주의적 의식에 좀 덜 물들어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얼마 전 KBS 촬영 팀과 같이 우크라이나에 갔다가 키예프에 세워진 2차 세계대전 전승기념탑을 보고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선 제가 보기에 그것은 아무래도 전승기념탑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전승기념탑이라고 하면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이 점령한 고지에 성조기는 아니더라도 일단 깃발을 세우는 그런 형태의 조형물을 떠올리잖아요. 미국의 전쟁기념관에 있는 전승탑이지요. 그러나 키예프의 드네프르강 언덕에는 여인상이 하나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어머니가 팔을 벌리고 높은 동산에 서 있는 형상이지요. 의아해하는 저한테 누군가 설명을 하더군요. 전쟁이 끝난 뒤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아들들을 맞이하기 위해 팔 벌리고 서 있는 어머니의 모습, 바로 그걸 형상화한 거라고요.

나는 충격 받지 않을 수 없었어요. 전쟁과 평화에 대해, 아니 진정한 승리에 대하여 얼마나 천박한 관념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침통하게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매우 부끄러웠습니다.

모스크바에서도 비슷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유명한 모스크바 지하철에서는 젊은이들이 노인을 깍듯이 예우합니다. 노인이 타면 얼른 일어나 자리로 안내하고, 노인들도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어쩌다 미처 노인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가는 그 자리에서 꾸중을 듣는다고 합니다. 의아해하는 내가 들은 답은 의외로 간단한 것이었어요.

“이 지하철을 저 노인들이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서 한 젊은이한테 물어봤죠. 이 지하철을 만든 이가 바로 저 노인들인데 왜 비키지 않느냐고요. 그들의 답변 또한 의외로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월급 받으려고 만들었지 우리를 위해 만든 건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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