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인물탐구

동양의학 집대성한 ‘한의사들의 대부’ 東原 이정래

文理를 튼 깨달음, 醫道의 경지

  • 안영배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ojong@donga.com

동양의학 집대성한 ‘한의사들의 대부’ 東原 이정래

3/4
5

사실 최 목사 사건보다 나를 더 고민에 빠뜨린 것은 아내 현빈의 문제였다. 아내의 우울증은 최 목사 사건 이후 더 심각해진 것 같았다. 아내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늘진 얼굴로 마치 딴세상에 사는 사람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는 늦은 결혼을 한데다, 결혼한 지 5년이나 되었지만 아직 아이가 없었다. 몇 달 전에 가까스로 임신을 한 아내는 깊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라도 발견한 양 기쁨에 들떠 있었으나 불행히도 그만 유산을 하고 말았다.

절망에 빠진 아내는 차라리 죽고 싶어했다.

“당신 곁엔 내가 있잖아. 우리 둘이서 행복하게 살면 되잖아.”

나는 이렇게 아내를 위로했지만, 그 말이 얼마나 기만적인지는 나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그녀와 결혼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나는 결혼에 어울리는 남자가 아니었다. 더구나 기자라는 직업은 또 얼마나 고달프고 바쁜 직업인가. 결혼을 먼저 원했던 것은 그녀였다. 그녀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사랑이란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무심하고 이기적인 회의주의자인 나는, 생에 대한 커다란 기대도 열정도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내성적이고 곧잘 우울에 빠지긴 했지만 사려 깊고 다정다감한 여자였다. 나는 주저하고 망설인 끝에, 친구와 함께 사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하는 기분으로 결혼에 응했다. 그러나 결혼이 나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지는 못했다. 비록 내가 별로 달갑진 않더라도, 아내가 아이라도 갖길 갈망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가 유산된 후부터는, 아내는 집에서 하던 컴퓨터 회사 일조차 그만두고 말았다. 아내는 밤마다 악몽을 꾸거나 식은땀을 흘리며 헛소리를 했다. 가뜩이나 여윈 편인데다 신경이 예민한 아내. 나는 그런 아내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돌보기는커녕, 병원에나 들러보라고 퉁명스럽게 말하곤 했을 뿐이었다.

아이가 죽고 난 후부터 아내는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꿈속에 죽은 아기가 나타나 예언을 한다는 것이었다.

“마곡시에 무서운 일이 일어날 거예요.”

최 목사가 죽은 크리스마스 이브 다음날,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밤에 아내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그렇게 말했었다.

“싱거운 소리하지 마. 당신, 그러지 말고 정말 병원에 가보는 게 어때. 내가 시간이 나는 날, 같이 가보자구.”

나는 아내의 말을 정신적 이상징후로 볼 따름이었고, 아내는 그렇게 말하는 나를 싸늘한 눈빛으로 쏘아보곤 했다.

최 목사가 자살한 사건이 있은 날 밤에도 내가 그 얘기를 꺼내자 아내는 무덤덤한 얼굴로 나를 쳐다볼 따름이었다. 그리곤 갑자기,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듯한 안쓰러운 표정을 짓고는 “이젠 시작일 뿐이에요” 하고 말하고는 입을 닫아버렸다.

그 후론 내가 말을 걸어도 자기한텐 신경 쓰지 말라면서 맥없이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만 보았다. 그럴수록 아내에 대한 나의 자책감은 더 깊어졌다. 아내의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내가 하는 일, 내 삶, 그 모든 것이 공허해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도 나는 아내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최 목사의 자살 사건이 일어난 지 일주일 가까이 지날 무렵이었다.

잠결에 아내의 비명이 들려 나는 벌떡 침대에서 일어났다. 허겁지겁 거실로 나가보았다. 아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하고 놀란 나에게 아내는 손으로 텔레비전을 가리켰다. 텔레비전을 보는 순간,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했다.

거대한 쥐떼였다.

방송 헬기에 탄 기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현장 상황을 보도하고 있었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쥐들이 검은 바다를 향해 떼를 지어 뛰어들고 있는 장면. 쥐떼의 집단자살. 자정 무렵, 갑자기 쥐들이 나타나서는 남쪽 해변을 지나 파도가 치는 검은 겨울바다를 향해 집단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느 연인은 해변가를 거닐다 자기들 발 밑으로 수천, 수만 마리의 쥐가 몰려다니는 걸 보는 순간 여자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고, 남자는 여자를 팽개치고 도망쳐버렸으며, 한 늙은 남자는 그 자리에서 오줌을 싸고 말았다. 그러나 쥐들은 인간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찍찍찍 음산하고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추호의 주저도 없이 차례차례 차디찬 겨울바다로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마곡시에 살고 있는 늙은 쥐, 어른 쥐, 새앙쥐 할 것 없이 모든 쥐가, 단 한 마리도 남김없이 그날 밤 남쪽 해안으로 몰려드는 것 같았다. 마곡시에 저토록 많은 쥐가 살고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쥐떼가 바닷속으로 일제히 뛰어드는 광경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해변이 사방에서 몰려드는 쥐떼로 새까맣게 보였다.

“도대체 쥐들이 무슨 이유로 집단 자살을 하는 것일까요? 쥐들이 우리 마곡시에 닥칠 어떤 재앙을 예견한 것일까요? 이러한 사건은 최근 마곡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해괴한 사건들과 결코 무관해 보이지 않습니다. 시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나는 텔레비전을 끄고 나서 아내를 데리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무서워하지 마. 저건 그냥 우연히 일어나는 변고일 뿐이야.”

실은 그렇게 말하는 나 자신도 꺼림칙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나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사건 현장으로 달려나갔다.

쥐떼는 밤새도록 무시무시한 자살행군을 멈추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마곡시의 남쪽 바다는 온통 둥둥 떠다니는 죽은 쥐의 시체로 뒤덮였다. 자살한 쥐의 수는 적어도 수백만 마리는 되어 보였다.

그 사태에 대해, 불결한 쥐들이 하루아침에 깨끗이 청소되었다고 좋아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저 이 까닭 없는 사태에 대해 두려움과 공포에 질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유독 술통을 굴리고 다니던 기인, 디오게네스만이 해변가에다 술통을 세워놓고는 술통 위에서 덩실덩실 미친 듯이 춤을 추며 “어허! 죽음이로구나, 죽음이여! 쥐들이 먼저 알고 달아나는구나!” 하고 외쳐댔다. 다음날 그는 술통 안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는 술통 안에 술은 가득 채우고 스스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마곡 시민들은 그 기인의 죽음을 한결같이 애도했지만, 그런 사건은 아내의 말대로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었다.

쥐떼의 집단 자살 사건이 터진 나흘 후에 마곡시의 경찰서에서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어둡고 침침한 마곡시 경찰서의 감방들, 그곳에 수감되어 있던 죄수들이 야간에 집단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다. 그들은 교도관들을 무참하게 살해하고 죄수들을 모두 풀어주어 달아나게 만들었고, 경찰서 바깥으로 탈출하지 못한 죄수들은 출동한 경찰과 대치하여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모조리 사살되고 만 것이다.

그들은 죽어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 죽음이 두렵지 않다! 우리도 이제는 영원히 해방이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마는구나…….’

현장에서 그 모습을 취재하던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다. 그날 밤 편집부 기자들과 술자리를 같이했을 때, 냉소적이면서도 날카롭기로 유명한 후배 정찬우 기자가 말을 꺼냈다.

“선배님. 오늘 사건 현장을 본 소감이 어떻습니까? 드디어 그들이 뇌관을 뽑아버린 겁니다. 두고 보십시오. 지금부터야말로 본격적인 죽음의 축제가 벌어질 테니.”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말하는군.”

나는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글쎄요. 어쩌면 제 무의식 깊은 곳에 그런 생각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다만 제 판단이 빗나가거나, 틀리지 않을 거라는 걸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그럼 앞으로 더 무시무시한 사태가 일어날 거라는 생각인가?”

“속단할 순 없지만……왠지 그런 느낌이 듭니다. 거리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 분위기를 한번 살펴보십시오. 제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이제는 해방이다!’라고, 폭동을 일으킨 죄수들이 외친 말, 그 말이 의미하는 바를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솔직히 지금 많은 인간들이 창살은 없지만 어떤 감옥 같은 것에 자신이 갇혀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살지 않습니까? 지금 마곡시의 실업자만 해도 수만명을 넘고 있고, 언제 목이 날아갈지 몰라 불안에 떠는 직장인도 태반이지요. 죽고 싶은 이유를 들기 시작하면 과연 그런 이유를 하나씩 가지고 있지 않은 자가 지금 어디 있겠습니까? 선배님은 그런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까, 지금? 꼭 수동적인 이유가 아니라 하더라도 적극적인 이유로, 예를 들면 증오심 같은 걸로 타인을 죽이고 자신도 죽어버리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요. 선배님도 잘 아시겠지만 사회 조직이란 것은 각 개인에게 어떤 형태로든 사적인 욕망들을 제한하게끔 강요하지 않습니까? 공공 도덕질서나 공공의 목적 따위의 이념으로 말입니다. 무엇보다 생사를 건 생존 경쟁에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되는 현재와 같은 사회체제에선 개개인의 무의식 속에 깊은 증오심과 적개심을 키우게 만들지요. 더구나 요즘같이 생존하기조차 힘든 상황에서는 그런 증오심과 분노, 적개심은 더욱 뚜렷하고 깊이 개인의 의식 속에 각인되어 나타나고, 그렇기 때문에 계기만 주어진다면 쉽사리 폭발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전쟁이나 종교적인 희생 제의 같은 것도 일종의 그런 억압된 집단 욕망의 표출 현상이라는 건 상식적인 얘기지요.”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의 말대로, 교도소 사건은 불어난 홍수를 억지로 버티던 댐의 한쪽 구석에 마침내 금이 가면서 자그마한 구멍이 터져버린 것이나 다름없을지도 모른다. 앞으론 더 심각한 사태들이 속속 질서 잡힌 이 사회에 구멍을 뚫기 시작할 것이고, 그렇게 사태가 지속되다가는……나는 자신이 끔찍한 상상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리듯 고개를 흔들고는 그를 쳐다보았다.

“하지만…이번 사태는 그런 합리적인 이유만으론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는 것 같은데…어쨌건 만일…네 말대로 사태가 악화되어갈 것이라면, 시 당국의 능력으로 그런 사태를 막아낼 수 있을까?”

내 말에 그는 “글쎄요” 하며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시도 별로 할 일이 없을 것 같은데요, 제 생각엔”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선 잠시 망설이다 다시 입을 열었다.

“선배님, 실은 어젯밤에 우리 아파트 바로 위층에 사는 남자가 자살을 했습니다. 16층에서 뛰어내렸지요. 얘기를 들어보니 그는 은행의 고위간부였는데, 요즘 명예퇴직이다 뭐다 해서 시끄럽잖아요? 아마 그 일과 관계가 있다고는 하는데…잘 모르겠습니다. 하긴 뭐, 우리 시에 자살자들이 많은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긴 하지만. 그리고 언론에서 크게 다루어지진 않았지만, 제가 듣기론 그 쥐떼의 집단자살 사건 때문에 요 며칠 사이에 북쪽 자살 절벽을 찾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는건 선배님도 잘 아시잖아요. 여하튼 심상치 않은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정 기자는 입맛을 쩍쩍 다셨다.

사실 정기자의 말 그대로였다. 최 목사의 자살 사건 이후부터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지고 있었다. 경찰서마다 자살사건 끊이지 않고 접수되고 있었다. 인터넷 사이트들에는 자살에 대한 얘기가 폭주하고 있었고, 최 목사의 자살 상황을 담은 동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었다. 또 수백 개에 이르는 자살 사이트가 새로 개설되었는데, 그곳에서는 공공연하게 자살을 선동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특히 최근의 자살자들에 대한 새로운 정보들은 공식적인 언론보다 훨씬 빠르고 자세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최 목사는 위대한 ‘자살영웅’으로 다시 부활하고 있었다. 그는, 진정 죽은 게 아니었다.

누구에게도 밝히진 않았지만 나 역시 내심으로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어떤 알 수 없는 광기가 마음을 파고드는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은 내게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었으리라. 아니, 사람뿐만 아니라 심지어 짐승들도 어떤 위험을 감지하고 있었던 것일까. 집단 자살한 그 쥐떼들처럼.

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마곡 시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장은 먼저 최 목사 사건에 대해 언급했다. 그에 따르면 최 목사의 부활 사건은 면밀한 의학적 재검토 결과, 일시적인 심장마비로 인한 가사(假死)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최 목사가 가진 기자회견 내용은 가사 상태의 무의식적인 꿈의 소산인 몽상을 무책임하게 발표한 것뿐이라고 축소시켰다. 또 최 목사의 인격적·도덕적 결함과 사회에 대한 증오심 등을 거론하며, 최 목사의 말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행위는 사회와 개인에게 치명적인 위협이며, 시당국으로서는 사회 질서와 도덕을 수호하기 위해 어떤 단호한 조치도 회피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력한 어조로 말했다.

이와 더불어 급증하는 강력 범죄를 소탕하기 위해 강력범죄특별단속반을 설치하는가 하면, 경찰관들에게는 대항하는 강력 범죄자들에 대한 사살 권한을 부여했다는 사실도 아울러 공표했다. 또 인터넷의 모든 자살 사이트를 폐쇄할 것이며, 최 목사의 자살을 담은 영상물은 즉시 삭제될 뿐 아니라 그것을 올리는 사람들은 무조건 구속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시당국에서조차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암울한 기운이 마곡시를 서서히 뒤덮기 시작한 것이다.

6

신문사의 거대한 모니터실로 들어오는 거의 모든 사건 기사들은 자살, 자살 사건에 관련된 것뿐이었다. 그것들은 회사에 소속된 정식 기자들이 보낸 것이 아니라 통신원이라는 제도로 확보하고 있는 일반 시민들이 보낸 화면 기사들이었다.

사실 우리 마곡시는 모든 것을 볼 수 있고, 모든 것을 다 보여주는 괴상한 사회다. 공영 방송 외에 인터넷TV만 하더라도 수백, 수천 개나 되고, 그 채널들은 마곡시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생생하게 화면으로 내보내고 있었다. 언론들은 마곡시의 첨단 기술을 유효적절하게 활용하고 있었다. 휴대폰이나 안경에 부착된 초고성능 카메라는 언제 어디서든지 현장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즉각 텔레비전으로 볼 수 있게끔 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사실상 마곡시의 거의 모든 시민이 기자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런 시스템을 증오한다. 인터넷 방송 채널의 절반 이상이 사실상 포르노 채널이나 다름없고, 그중 많은 수의 채널은 인간의 음험한 관음증과 노출증을 볼모로 한 것들이었다. 사생활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집 안에 있을지도 모를 몰래 카메라를 적발하는 장치를 따로 설치해두고 있었지만, 인간의 욕망은 그런 것들마저 무용하게 만드는 또 다른 기술을 만들어내도록 부추겼다. 집요하고 끈질긴 인간의 관음 욕구는 마곡 시민 전체를 벌거벗기고 있는 것이다. 마곡시는 하나의 거대한 매스컴 체제가 되었고, 자그마한 빈 틈도 허용하지 않는 폭력적인 시선들의 꽉 짜인 그물망을 피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마곡시의 유명인사는, 언제든 침실에서의 은밀한 광경을 인터넷에 공개당할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여성일 경우엔 더더욱.

시 당국은 이들 ‘인터넷 게릴라’들과 이미 오래 전부터 전면전에 들어간 상태이지만 이들을 당해내기엔 늘 역부족이었고, 이젠 거의 자포자기 상태나 마찬가지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씩 출현했다가 금세 사라져버리는 게릴라 방송국들과 사이트들을 일일이 통제하기는 불가능한 것이다. 게다가 공영 언론기관들은 자신들의 상업적 이익을 위해서 이들 게릴라들과 협잡을 일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지경이니. 마곡시에서는 모든 시민이 기자이고 취재 대상이며, 사건인 것이다. 나 같은 공식 기자들이 하는 일이라곤 고작 기사의 선별과 기사 작성, 그리고 보도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가 커버할 수 있는 사건들은 너무나 제한되어 있다. 우리는 단지 시민들이 보내온 기사들에 약간의 지식을 덧붙이고 과대 포장하여 내보내는 것뿐이다.

나는 지치고 맥 빠지는, 그러나 잠시도 정신을 놓을 수 없는 사건들 속을 헤매고 다녀야만 했다.

그런 와중에 마곡시의 전반적인 상황은 점차 악화되고 있었다.

시장의 기자회견이 있은 다음부터 치안 당국의 대처는 더더욱 강경해졌다. 그런데도 범죄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증대되기만 했다. 시당국의 강경대처가 역효과를 내는 것 같았다. 시당국을 비웃고 조롱이라도 하듯이 사람들은 공공연한 대낮에 은행을 털거나, 아무런 목적도 없이 공공기관을 공격하였다. 고급 주택가나 빌라 단지마다 주차장에 세워둔 차량에 대한 방화와 파괴사건이 줄을 이었고, 교회나 성당 건물이라 해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인터넷의 저항이 가장 격렬했다.

네티즌들은 사이트 폐쇄와 고소, 구속 사태에 반발하여 시당국과 관련된 모든 사이트에 침투하여 시스템을 다운시키는가 하면, 말 그대로 게릴라식으로 자살과 죽음을 찬양하고 집단 자살을 선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살 혁명’이라는 구호를 내세우고 있었다. 그런 사이트에서는 경찰에 구속되자마자 자살로 항거해 버린 자살 투사들에 대한 보고가 끊임없이 올라왔고, 흥분한 젊은 세대들은 공공연하게 마곡시의 전복을 외치고 있었다.

사실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은데다, 사회에 대한 불만과 원한과 증오심에 가득 찬 인간들에게 총구를 앞장세운 권력 따위야 종이호랑이밖에 더 되겠는가? 치안당국은 마치 전쟁이라도 치르듯이 이런 범죄 사건들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시내 곳곳에서 경찰들이 폭도들과 대치하여 전투를 하고 있었다. 현장에서 잡은 범인들에게 바로 그 현장에서 무차별로 경찰들이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들, 닭장차라고 부르는 경찰 호송차량에 실리는 범죄자들을 마치 짐승처럼 다루는 모습들은 조금도 가감 없이 인터넷을 통해 중계되고 있었다.

어느 날 하루는 한 떼의 폭주족들에 대해 경찰들이 마치 영화에서나 나옴직한 총격과 무지막지한 테러를 행사하는 것을 나도 현장에서 지켜보았다. 이제 겨우 10대에 이른 어린 청소년들이 오토바이 위에서 경찰이 쏘아대는 총에 맞아 오토바이와 함께 도로에 팽개쳐져 피투성이가 되는 모습, 여러 명의 경찰이 도로에 넘어져 있는 아이에게 몰려가 미친개를 두들겨 패듯이 진압봉을 휘둘러대는 모습들. 보다 못한 시민들이 경찰을 말리려 들자, 그 시민들조차 한패로 몰아 짓밟고, 진압봉으로 사정없이 내려치는 모습은 그들을 도저히 시민의 안전을 수호하는 경찰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단지 경찰복을 걸친 폭력배라고 할 수밖에 없는 행태였다. 경찰들은 그런 현장을 방송으로 내보는 걸 원치 않겠지만, 피해자들의 안경과 군중들의 휴대폰·카메라는 그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인터넷으로 중계하고 있었다. 그런만큼 시민들의 증오심 또한 커지고 있었다.

우스꽝스러운 사건도 일어났다.

마곡시에서 가장 유명한 서커스단에 소속된 줄타기 곡예단원이 그물망도 없이 공중 곡예를 하다가 고의로 그물망 바깥으로 뛰어내려 자살해버린 사건이 벌어졌는데, 당국은 경고조치로 서커스 공연을 무기한 중단시켰다. 이에 격분한 서커스단원들은 서커스단에 데리고 있던 동물들을 모두 세상에다 풀어놓았다. 서커스단이 자리하고 있던 서쪽 해변 주변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사자, 호랑이, 표범, 곰 같은 맹수는 물론이고 코끼리와 기린, 타조, 거위, 원숭이, 돼지, 말하는 앵무새 등 100여 마리의 동물이 서쪽 해변을 점령해버렸고, 벌써 애꿎은 몇 사람이 사자나 호랑이에게 물려 부상을 당하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었다. 코끼리들은 해변의 포장마차며 야외 식당들을 종횡무진 누비며 그것들을 박살내고 있었고, 원숭이들은 아무 집으로나 들어가 음식을 훔쳐먹고, 돼지들은 도로를 점거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동물들의 습격에 혼비백산하여 달아나기에 바빴다.

무질서, 혼란, 광기가 마곡시를 예측불능의 상황으로 몰아가기 시작했다.

“정말 제멋대로군. 모두들 미쳐가고 있어. 모두들.”

사무실에서 뉴스 모니터를 지켜보던 편집장은 얼굴을 찌푸리며 내뱉었다.

갑작스럽게 이른 아침 회의에 소집된 기자들은 지치고 피곤한 나머지 고개를 떨구고 있거나 아직도 잠에서 덜 깬 듯한 멍청한 눈을 하고 있었다. 편집장은 입맛을 쩍쩍 다시더니 당국의 결정이라며 몇 가지 사항을 통보했다.

“시 당국에서 협조 요청이 왔어. 이제부터 언론 통제가 시작될 거야. 검열관이 여기 신문사에 상주하며 기사를 검열하게 되었어.”

기자들은 그 말에 웅성거렸다.

기사 검열이라니! 말도 안돼! 있을 수 없는 일이야! 하며 흥분한 목소리들이 와글거렸다.

“아, 아, 흥분하지 마. 시로서도 곤혹스런 입장이란 걸 우리가 이해해야 해. 여러분은 그런 생각 안 해 보았나? 언론이 지금의 사태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 말이야. 마치 이 세상에서 자살만이 유일한 사건인 양 신문을 도배질하는 게 과연 이 사태를 중단시키는 데 어떤 도움이 돼? 질서를 되찾아야 해. 우리 신문도 자제하고, 시민들이 정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나서야 하지 않겠어?”

편집장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나 역시 매스컴이 사태를 악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언론의 자유를 빙자한 판매 부수 경쟁, 특종 경쟁. 여기에 언론 스스로 희생양이 되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진실이지만, 우리 기자들은 직장을 잃지 않기 위해, 혹은 기자로서의 출세욕에 눈이 멀어 그런 진실을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다. 사태를 전체의 관점에서 냉정하고 차분하게 성찰하며 여론의 흐름을 주도하기는커녕, 늘 상황에 휩쓸려 상황을 따라잡기에 바쁜 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게다가 언론의 사명은 진실 보도이긴 하지만, 우리는 자칫 그 진실로 인해 파멸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나는 최 목사를 다시 떠올렸다. 어쩌면 그가 말한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진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진실로 인해 모든 신비가 사라지고 나면, 우리 삶에 과연 무엇이 남을까. 삶보다 죽음이 더 고상하고 행복하다면, 과연 그 누가 힘겹게 생을 끌고 나가려 할 것인가. 진리의 빛이라는 것은, 그것에 한계를 짓지 않는다면 그 빛을 정면으로 마주보는 순간, 인간의 생명을 앗아가 버리는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최 목사는 우리에게 삶과 죽음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 한 선의의 마음이었는지 모르지만, 그의 선의로 인해 이 세계가 자살로 치닫는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최 목사는 이 세계의 자살에 대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가. 다만 진리를 말했을 뿐이라는 이유로.

몇몇 기자들은 바로 그 진실보도의 사명을 들어 편집장에게 거칠게 항의했다. 편집장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건 내 권한 밖의 일이야.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때 정 기자가 한마디 거들었다.

“이봐요들, 흥분하지 말자구요. 우리가 어떻게 하든 수레바퀴가 방향을 바꾸진 않을 텐데요, 뭘.”

그 말은 섬뜩하게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과연 수레바퀴는 이제 방향을 바꿀 수 없는 것인가.

그러던 어느 날 밤, 취재를 나가 있는 사이에 아내에게서 전화 연락이 왔다. 아내는 잔뜩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을 잇지 못한 채, 어서 와 달라고만 했다. 나는 서둘러 차를 몰고 아파트로 돌아왔다.

아파트 입구로 뚫린 골목으로 들어서자, 경찰 차량과 출동한 경찰들, 그리고 동네 주민들이 뒤섞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경찰들은 무전기로 계속 어딘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고, 무장한 경찰들은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아파트 건물 앞 주차장에 세워진 차량 몇 대는 방화로 인해 불타버렸고, 아파트의 유리창들이 박살 나 그 유리 파편들이 땅바닥에 어지럽게 뒹굴고 있었다. 나는 혼잡한 사람들 틈을 비집고 계단을 통해 3층으로 달려 올라갔다. 초인종을 누르자, 떨리는 목소리로 누구세요? 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내 목소리를 확인하곤 아내는 문을 열었다. 아내는 파랗게 질린 얼굴이었다.

“거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어요. 근데 갑자기 와장창, 하면서 거실 창문이 박살 났고, 커다란 돌멩이가 제가 앉아 있는 바로 앞에 떨어졌어요. 유리창 깨지는 소리는 그 후에도 몇 차례나 마치 폭탄이 터진 것처럼 계속 들려왔고. 무서워요……너무…”

나는 아내의 등을 가만히 두드리며 괜찮아, 괜찮아, 이제 내가 왔잖아, 하고 위로를 하며 거실 안을 둘러보았다. 거실에는 깨진 유리 조각들이 여기저기에 흩뿌려져 있었고, 주먹 두 개를 합친 것 같은 돌멩이 두 개가 거실 한복판에 떨어져 있었다. 거실을 청소하고 샤워를 마친 후에 안방으로 들어갔을 때 아내는 침대에서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누워 있었다.

“이제 됐어. 걱정하지 마. 많이 놀랐지? 유리는 내일 수리공을 불러서 고치면 되고…이젠 안심해.”

나는 아내의 등을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했다.

아내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내가 이불 속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아내가 말을 꺼냈다.

“제 친구…해정이가…자살했어요.”

나는 깜짝 놀랐다. 해정 씨라면, 그나마 아내와 가장 절친하게 지내는 아내의 대학동창이었다. 남편이 유수한 기술개발업체의 이사라, 경제적으로는 아무런 부족한 것이 없는 중산층 부인이었다. 그런 그녀가 무슨 이유로 자살을?

“아니, 도대체 그녀가 왜 자살을…? 당신은 뭐 짚이는 데가 없어?”

“몰라요.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두려워요. 앞으론 더 무서운 일이 벌어질 거예요.”

“그런 말 하지 마. 곧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올 거야. 조금만 참아. 내가 당신을 지켜줄게. 내가 당신을 지켜줄거야…나, 지금까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정말 당신을 사랑해. 내 곁에 있어줘.”

그러자, 아내가 쿡쿡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 아내를 가만히 품에 안았다. 가슴 한쪽이 시려왔다. 검은 죽음이 서서히 우리를 옥죄어는 듯한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세상이 갑자기 미쳐 돌아가는 것 같았다. 도대체 어쩌다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까. 사방에서 사람들이 까닭없이 죽어가고 있었다. 최 목사의 영향 때문일까. 최 목사의 말이 진실이라 하더라도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그의 뒤를 따라 자살할 합리적인 이유는 없어 보였다. 나는 절망적인 한숨을 내쉬었다. 무기력감과 까닭 없는 분노가 나를 사로잡았다.

바깥에서는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3/4
안영배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ojong@donga.com
목록 닫기

동양의학 집대성한 ‘한의사들의 대부’ 東原 이정래

댓글 창 닫기

2021/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