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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수’ 정수일 박사의 이슬람 문명 산책 3

천의 얼굴을 가진 ‘위인’ 무함마드

  • 정수일

천의 얼굴을 가진 ‘위인’ 무함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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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무함마드를 더욱 빛나게 한 것은 그의 종교적 성성(聖性)이다. 18세기의 저명한 계몽사상가 헤르더(J.G. Herder)는 천재적 인물에게는 ‘신의 오른손’에 의해 하늘로부터 비상한 힘이 주어진다고 하였다. 헤르더는 역사발전 과정에는 간혹 신이 특별히 간여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때가 되면 신은 천재적 인물을 통해 간여를 실현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지적은 무함마드를 두고 하는 말 같다. 유일신 알라는 7세기 초엽의 적절한 시기에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무함마드에게 계시를 내림으로써, 인간사회에 대한 그의 간여를 성공적으로 실현하였다. 그 과정에 인간 무함마드는 예언자와 성사(聖使, Ras lu’l Ll h, 즉 알라가 보낸 사람)라는 종교적 성성을 부여받고, 20여 년간 이슬람의 창시자로서 본분을 다하였다.

무함마드가 히라 동굴에서 명상정진한 지 15년째 되던 610년 어느 날 밤, 홀연히 하늘가에 환영(幻影, vision)이 나타나더니 그에게 무턱대고 “읽어라!”라고 하였다. 이에 무함마드가 “저는 무학입니다”라고 대답하자, 그 환영은 ‘읽기’를 세 번 권고했다. 그가 “무엇을 읽으란 말입니까?”라고 되묻자, 환영은 “읽어라! 창조주이신 너의 주님의 이름으로, 그분께서는 한 방울의 정액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일깨워주었다. 이 환영이 바로 천사 가브리엘이고, 이 일깨움은 알라가 무함마드에게 내린 첫 계시다.

때는 이슬람의 성월(聖月)인 라마단(禁食月, 이슬람력 9월) 하순의 어느 기수일 밤(27일 밤으로 짐작)이었는데, 그 획기적인 의미를 살려 이 밤을 ‘결정의 밤(라이라툴 까드르)’이라고 한다. 환영을 접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허둥지둥 동굴에서 집으로 돌아온 무함마드는 부인 하디자에게 “날 좀 감싸주오” 말하고는 몸이 불덩이가 되어 방바닥에 쓰러진다. 그가 부인에게서 겉옷을 받아 입을 때 다시 허공에서, “겉옷을 걸치는 자여! 일어나 경고하라! 네 주님만을 찬양하라! 네 겉옷을 청결케 할 것이며 부정을 피하라!”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리는 말방울 소리처럼 요란했다. 이것이 알라가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무함마드에게 내린 두 번째 계시다.

그러나 무지몽매한데다가 새로운 종교가 출현하는 데 겁 먹은 메카 사람들은 무함마드가 최초의 계시를 받으면서 보여준 심리적 불안과 종교적 이상체험을 간질병 환자의 발작이나 히스테리 환자의 망상증 쯤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를 ‘지랄쟁이’, ‘미친놈’, ‘마법사’ 등으로 백안시하고 매도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전만 해도 이러한 매도는 마치 사실(史實)인 양 유럽의 이슬람 연구가들에게 ‘전승’되었다. 아마 루시디는 이러한 역사의 퇴물을 원용(援用)하여 소설의 소재로 잡은 것 같다. 현대의학에 따르면 간질병 환자나 히스테리 환자는 발작 중에 일어나는 일은 전혀 기억할 수 없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이러한 의학적 설명은 무함마드가 간질병 환자가 아니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다.

무함마드는 사망할 때까지 20여 년간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알라의 계시를 간단없이 받았다. 실타래같이 얽히고 설킨 속세의 일로 고민할 때, 알라는 조목조목 그것을 풀 수 있는 가르침을 내렸다. 계시는 ‘읽어라’로부터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러한 계시를 묶은 경전을 ‘꾸란’이라고 한다. ‘꾸란’은 ‘읽다’는 뜻을 가진 ‘까라아’의 동명사니, ‘읽기’ 혹은 ‘읽음’이라는 뜻이 된다. 이것이 종교적 전의에 의해 ‘독경물’(讀經物), 즉 독송하는 이슬람 경전으로 승화되었다. 대체로 초기의 계시는 한 마디씩 또박또박 내려졌으나 후에는 섬광처럼 순간적으로 스쳐오는 영감으로 바뀌었다.



聖使 예수, 聖使 무함마드

무함마드는 이러한 계시를 통해 자신이 종교적 예언자(豫言者, 일명 선지자, 나비)이며 동시에 알라가 인간세계에 파견한 성사(聖使)임을 거듭 확인했다. 이슬람적 해석으로는 예언자나 성사는 모두 절대신 알라의 영감과 계시를 받아 선택된 완전무결한 인간이다. 예언자는 문자 그대로 신의 뜻이나 종교적 비전을 앞질러 예언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성사는 예언과 더불어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담보를 받은 사람이므로, 예언자보다 한 차원 높은 성인이다. 따라서 모든 성사는 예외 없이 예언자이나, 모든 예언자가 다 성사가 될 수는 없다.

‘꾸란’에 따르면 알라의 축복을 받은 개개의 민족에게는 대부분 축복을 알려주는 예언자가 배출되는데, 그 수는 무려 12만4000명에 달한다. 그렇지만 모든 민족을 아우르는 성사는 극히 제한적이어서 아브라함·다윗·모세·예수·무함마드 등 다섯 명만이 거명되고 있다. 예언자나 성사에 관한 이러한 견해는 무함마드의 성성을 살피고, 이슬람의 비(非)배타적인 포용성을 입증하는 중요한 증거다. 이슬람은 유대교나 기독교의 창시자인 모세와 예수를 무함마드와 동등한 성사로 인정한다. 그들에 대한 신앙을 교리적 신조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무함마드는 2년여의 고민과 망설임 끝에 알라의 성사임을 확신하고 613년부터 메카에서 공개적으로 포교활동에 나섰다. 그는 구래의 각종 종교적쪾사회적 폐습을 비난하면서 절대신 알라에 무조건 순종하라고 경고한다. 여기서 순종한다는 뜻의 ‘이슬람’과 순종자라는 뜻의 ‘무슬림’(이슬람 신봉자)이란 말이 나왔다. 순종자들은 순종을 뜻하는 의례적 동작으로 알라를 향해 몸을 굽혀 이마가 바닥에 닿도록 절하는 예배법을 창안해 냈다.

그러나 무함마드의 설교는 처음부터 꾸라이쉬 부족 상층인의 불만과 저항을 야기하였다. 그들은 무함마드의 등장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메카로 오는 순례자가 줄어들어 경제적인 손실이 적지 않았다. 무함마드의 선교가 활발해지고 추종자들이 늘어날수록 무함마드에 대한 이들의 박해는 더욱 심해졌다. 이때 하리스는 무함마드를 보호하다 타살돼 이슬람사상 첫 순교자가 되었다. 양측 사이에 협상을 벌였으나 타협은 되지 않았다.

네구스 왕의 관용

이어지는 박해에 견디다 못한 무함마드는 615년경 1, 2차로 나눠 추종자 96가족을 기독교 국가인 하바셔(현 에티오피아)에 피신시켰다. 그러자 메카의 권력자들은 하바셔의 왕 네구스에게 뇌물을 주면서 피신자들을 돌려보내라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피신자들이 예수와 성모 마리아를 찬양하는 ‘꾸란’ 구절을 송독하자 네구스 왕은 그들의 신앙이 기독교와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믿고 오히려 보호해주었다(기독교와 이슬람교가 티격태격하는 현실을 보면 저승에 있는 네구스 왕은 쓴웃음을 지을 것이다). 메카의 권력자들은 무함마드에 현상금을 걸고 그의 출신 가문인 하쉼가에 협상을 제의했으나 거절 당했다. 그에 대한 보복으로 메카 권력자들은 하쉼 가문과는 일절 계약이나 결혼, 무역거래 등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이들은 특히 무함마드의 보호자인 삼촌을 갖가지 방법으로 회유하고 공갈하여 조카의 전향을 유도했다. 회유와 압력을 견디다 못한 하쉼 가문은 모든 권리를 빼앗긴 채 메카 동쪽 쉬읍 계곡으로 집단 피난하였다.

설상가상으로 619년 삼촌과 평생을 동고동락해온 처 하디자가 세상을 떠나, 무함마드는 정신적인 안식처마저 잃었다. 아부리브의 후임으로 하쉼 가문의 수장이 된 또 다른 삼촌 아부 라합은 아부리브와 달리 유일신교를 극력 반대했다. 그는 가문의 성원을 설득하여 무함마드를 보호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로써 메카에서 포교가 어려워지자 무함마드는 타지에서 출구를 찾으려 했다. 메카 동남쪽 50마일쯤에 산재해 있는 톼이프족은 메카의 꾸라이쉬 부족과 앙숙관계였다. 무함마드는 이 점을 포교에 이용하고자 그곳으로 찾아가 한 달간 설득했으나 조롱과 멸시만 받았다. 그들은 설교하는 그에게 돌을 던지고 잠자리도 내주지 않았다.

온갖 냉대와 박해를 받으면서도 무함마드는 결코 절망하지 않고 지혜를 짜내 포교를 이어갔다. 예나 지금이나 순례의 달과 성스러운 달인 ‘금식월’에는 모든 폭력 행사가 금지된다. 무함마드는 이 기회를 활용하기로 마음먹고 멀리 북방 400km의 야스립(메디나의 고명)에서 온 순례자들을 찾아가 설교를 하였다. 뜻밖에도 그들은 흔쾌히 호응해왔다. 야스립에는 만성적인 분쟁을 겪고 있는 아우스 부족과 하즈라즈 부족의 대표들이 있었다. 그들은 무함마드 같은 성현만이 소모적인 분쟁을 조정·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621년 이 두 부족의 대표 12명이 메카 근교인 아까바에 와서 무함마드에게 제1차 ‘아까바 충성서약’(바이아툴 아까바)을 하였다.

그들은 서약에서 “우리는 유일신만 섬기며, 도둑질을 하지 않고, 간음을 하지 않으며, 우리의 자식을 살해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중상과 비방을 그만두고, 모든 진리의 예언자에게만 복종할 것이다”고 선언하면서 무함마드를 중재자로 메디나에 초청하되 그를 보호해주기로 약속했다. 이것은 무함마드의 포교활동에서 하나의 획기적인 사변이었다. 위기에서 탈출구를 찾고 동시에 희망의 서광이 비쳐왔기 때문이다. 의외로 일이 잘 풀리면 무슬림들은 으레 “함둘릴 라!”(알라에게 찬미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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