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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아파트 파는 다빈치 에어컨 파는 피카소

광고 속의 미술 이야기

  • 정장진 < 문학평론가 >

아파트 파는 다빈치 에어컨 파는 피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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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의 일차적인 생명은 소비자의 눈을 끄는 데 있다. 무엇보다 먼저 소비자들이 광고를 보아주어야 하는 것이다. 유명한 이탈리아의 중저가 의류회사가 갓난아이의 탯줄까지 광고에 등장시키며 죽기살기로 광고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소비자의 눈을 끌기 위해서라면 법적 소송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배짱 뒤에는 소비자에게 강한 임팩트를 주어야 한다는 그들 나름의 생존전략이 숨어 있다. 평범한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코믹하든 그로테스크하든 시선을 잡아야 한다.

명작 패러디로 인지도 선점

적지 않은 광고회사들이 널리 알려진 유명 화가나 조각가의 작품을 광고에 응용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금은 식상할 정도로 진부한 것이 되어 더 이상 사용하지 않지만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밀레의 ‘만종’ 혹은 ‘밀로의 비너스’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등은 가장 많이 광고에 등장한 작품들이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이 작품들이 호소력을 잃지 않고 있다. 농협은 여전히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을 활용하고 있으며, 비너스는 여전히 팬티와 브래지어를 팔고 있으며, 모나리자는 화장지에 그 미소를 드리우고 있다. 반 고흐의 마지막 작품인 ‘까마귀 나는 밀밭’도 등장한다.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밀레의 ‘만종’을 이용한 토지공사의 광고는 가장 아이디어가 결여된 광고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혹은 그림을 가장 잘 선택한 경우일지도 모른다. 땅 투기에 유혹을 느끼는 사람도 이발소 그림으로 전락한 모나리자와 만종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고전 중의 고전도 사용하기에 따라 전혀 다른 효과를 볼 수 있다. 가령 1863년 살롱전에 출품되어 물의를 일으켰던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를 이용한 한 여행사의 광고는 코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는 일단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여자와 남자의 위치를 바꾸면서 누드의 주인공도 바꾸어 놓은 이 광고는 원화 속 인물과 가위바위보를 하는 스토리를 중심 축으로 삼고 있는데 어쩐지 착상이 어색해 보인다. 가위바위보를 하고 있다는 스토리가 원화의 무게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가운데 여성 의 인위적이고 어색한 표정은 눈에 거슬린다. 게다가 가을여행 상품을 광고하며 옷 벗은 인물을 등장시키는 것은 가장 초보적인 이미지 논리를 거스른 것이기도 하다.

반면 미켈란젤로의 3m가 넘는 거대한 조각 작품인 ‘다비드상’을 이용한 한 생명 보험회사의 광고는 비슷한 무게의 고전 작품을 이용하면서도 한발 앞선 감각을 보여주는 광고로 볼 수 있다.

올림픽 시상대가 연상되는 광고 밑부분은 잘 다듬어진 조각의 몸매와 어울려 육상 선수의 건강한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부각하고 있다. 누드 하면 즉각적으로 여자 누드를 떠올리는 상식을 뒤집어 남자의 전신 누드를 활용한 것도 돋보인다. 남자보다는 여자들이, 특히 중년의 가정 주부들이 피곤에 지친 남편을 생각하며 광고를 보는 상황을 예상한 것이리라. 많은 경우 남성 보험은 ‘아줌마들’이 들게 마련이다. 신체 부위별로 마치 해부학 도면을 보여주듯 보험을 들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함으로써 남근 노출의 거부감을 상쇄한 것도 좋은 아이디어다. 광고를 만든 사람의 뇌리 어딘가에 이 조각의 이미지가 남아 있었던 것이리라. 이렇게 잔영의 형태로 남아있는 이미지가 광고로 연결되는 것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다. 광고를 하는 이들에게 전람회나 작품 도록을 많이 보도록 권하고 싶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미지들을 뇌라는 창고에 쌓아두면 언젠가 꼭 필요할 때 그 힘을 빌릴 수 있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한 외국계 은행의 카드 광고도 비슷한 유형이다. 1830년 7월, 왕정복고를 뒤집은 ‘영광의 3일’을 묘사한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분명 ‘시대를 여는 새로운 힘’을 상징한다. 프랑스 삼색 깃발 대신 카드를 펄럭이게 한 아이디어는 별로 독창적인 것은 아니지만, 눈에 익은 그림을 이용했다는 측면에서 일단 성공한 광고로 볼 수 있다.

위의 몇 가지 사례는 명작을 약간 패러디해 거의 직접적으로 광고에 원용한 예에 속한다. 마네의 작품 ‘풀밭 위의 식사’나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모르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광고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광고에 활용된 두 고전 작품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다. 따라서 이 두 광고는 어느 정도의 교양을 지닌 계층을 겨냥한 광고이고 상품 역시 고가였을 것이다. 하지만 손쉬운 패러디에 그쳐 착상이 뛰어날 뿐 상상력에는 별로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다.

원반을 든 여인상

반면 한 건설업체의 아파트 광고와 통신 회사의 광고는 직접적으로 연상되거나 널리 알려져 있어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는 이미지들을 이용하는 대신 어디선가 한번은 본 듯한 이미지를 광고에 이용한 경우에 속한다.

밝은 빛을 발산하는 원반은 서양의 18세기 계몽주의를 상징하는 엠블렘이다. 프랑스 혁명이나 그 후에도 진리나 이성을 나타내기 위해서 태양과 빛을 의미하는 원반은 널리 사용되었다.

어느 경우든 원반은 누드 여인이 받치고 있는 형태를 취한다. 여인의 누드는 이상화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클림트의 그림이 일러주듯, 19세기 말에 들어서면서 여인은 한층 사실적인 모습을 띠게 된다. 르페브르와 클림트의 그림을 비교해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아파트 건설업체 중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벨기에 태생의 초현실주의 화가 마그리트의 그림 ‘피레네 산맥의 성’을 활용한 곳도 있다.

한 통신업체가 갑옷 입은 처녀를 활용한 광고 역시 ‘진리의 빛’을 이용한 건설업체 광고와 마찬가지로 전략적으로 회화의 이미지를 패러디한 경우에 속한다.

위의 두 광고는 ‘모나리자’나 ‘만종’을 이용한 나이브한 광고와는 달리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미지를 활용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실제로 ‘진리의 빛’이라는 이미지가 지닌 도상학적 의미나 계몽주의와의 관계 등은 일반인들로서는 알기 어려운 부분이다. 반면 한 통신업체의 광고에 등장하는 갑옷 입은 처녀의 이미지는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중세 프랑스사의 백미를 장식한 전설적인 인물 잔 다르크의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나리자나 만종의 경우와는 달리 원그림이나 그 그림의 대상이 된 역사적 사건 등이 어렴풋하게 암시될 뿐 명확하게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 두 이미지, 즉 ‘진리의 빛’과 ‘잔 다르크’는 서양의 역사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나 상당히 깊은 지식을 요구하는 이미지들이 아니라 역사 수업 등을 통해 언젠가 들었음직한 막연한 연상만 요구하는 것이다.

광고를 논할 때, 특히 이미지가 등장하는 광고에서 때 중요한 것은 위의 두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광고가 상품을 알리는 동시에 사회적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막연한 대로 어느 정도의 지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들만이 맥락을 알 수 있는 광고는 결코 음료수나 라면 같은 제품을 파는 데는 적합하지 않다. 동시에 광고는 예술사 강의가 되어서도 안 된다. 조잡하지 않아야 하지만 심오해서도 안 되는 것이 광고인 것이다.

‘진리의 빛’을 활용한 한 건설업체의 아파트는 추측하건대 소형 평수의 아파트가 아니라 적어도 50평 이상의 대형이거나 아니면 서구식 고층 빌라일 가능성이 크다. 통신업체의 광고 역시 판타지 소설이나 컴퓨터 게임에 익숙한 젊은 층을 겨냥한 광고로 특정층을 대상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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