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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가 명택 <12>|강릉 선교장 (船橋莊)

仙風이 깃든 한국 최고의 장원

  • 조용헌 < 원광대 동양학대학원 교수 > cyh062@wonkwang.ac.kr

仙風이 깃든 한국 최고의 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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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철을 꺼내서 선교장 좌향을 재어 보니 간좌(艮坐)다. 간좌는 정남향에서 서쪽으로 30。 정도 튼 남서향을 가리킨다. 산세로 보아서는 정남향인 자좌(子坐)도 가능할 성싶은데 방향을 서쪽으로 튼 간좌를 놓았다.

왜 그럴까? 풍수를 모르는 일반인이 보기에는 자좌가 더 좋아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좌향이 자좌를 놓으면 앞의 전망이 시원하게 터지기 때문이다. 반면에 간좌를 놓으면 백호의 끝자락을 안산으로 삼게 된다. 큰사랑채인 열화당 마루에 앉아서 바라보면 백호가 앞을 가린다. 즉 백호의 끝자락이 앞의 전망을 약간 가리는 방향으로 집터를 앉혔다.

이렇게 전망이 불리한데도 집터 방향을 약간 서쪽으로 돌려놓은 간좌를 택한 배경에는 풍수의 문법이 작용하고 있다. 덧붙여서 청룡이나 백호를 안대로 잡을 경우 그 안대로부터 발생하는 발복이 빠르다고 한다.

한편 선교장 터는 수구(水口)가 벌어져 있다. ‘택리지’에서 양택의 첫째 조건으로 강조하는 부분이 바로 수구라는 사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청룡과 백호 사이가 바로 수구인데, 수구가 넓게 벌어져 있으면 마치 여자가 양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는 것과 같아서 좋지 않다고 본다. 기가 빠져나가서 재물이 모이지 않는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구는 닫혀 있어야 좋다.

풍수학자 최원석의 박사 논문 ‘영남(嶺南)의 비보(裨補)’에서는 수구가 벌어져 있을 경우 이를 비보하기 위해서 인공으로 막는 ‘수구막이’를 설치하는 것이 조선시대의 마을 풍습이었다고 한다. 나무를 심어 놓거나, 돌로 된 장승을 설치하는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예를 들면 경북 안동 내 앞에 있는 인공 조림인 개호송(開湖松)은 수구가 벌어진 의성김씨 종택의 약점을 비보하기 위해서 수백년간 공을 들여 조성한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선교장 터는 자좌를 놓으면 전망이 탁 트이는 이점이 있지만 수구가 벌어지는 약점이 드러나는 형국이라서 방향을 약간 틀어 간좌를 놓은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백호 자락이 앞을 가려주기 때문에 수구가 닫히는 형국으로 변한다.

필자의 관찰로는 선교장 행랑채를 한일자로 23칸이나 배치한 이유의 하나도 집터의 수구와 관련이 있다. 즉 간좌를 놓아 수구가 벌어진 약점을 보완하긴 했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이중으로 수구의 약점을 보완하는 장치가 선교장의 행랑채를 횡렬로 길게 배치하는 건축이었다고 보인다. 수구를 막는 바리케이드라고나 할까. 아무튼 행랑채가 일종의 수구막이 용도의 건축이라는 말이다.

선교장 풍수에서 또 한 가지 유의할 것은 백호자락 끝에 서 있는 돌백호다. 자세히 바라보면 백호 끝자락에 화강암으로 만든 호랑이상이 설치돼 있다. 높이 50cm, 길이 150cm의 호랑이가 선교장을 바라보고 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쯤 백호 끝자락에 민속자료 전시관을 신축하면서 포클레인이 백호자락을 훼손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를 안 선교장의 14대 종부 성기희(成耆姬) 여사가 관계 당국에 항의하자, 강릉시청에서 비용을 대 비보로 설치한 것이 바로 호랑이상이라고 한다. 백호 맥을 훼손하였으니 이를 보강하기 위해 돌로 만든 호랑이상을 끝자락에 설치하였던 것이다. 지맥이 너무 강할 때는 탑을 세워 누르지만, 약할 때는 이처럼 백호상을 만들어 보강한다. 만약 청룡 자락이 훼손되었다면 청룡상을 만들어 보강할 수 있다. 돌로 만든 백호상을 바라보면서 명가의 풍수사상은 여전히 그 맥이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天文과 연못

풍수 논리에서 24개의 좌향 중 간좌(艮坐)에는 천문과 관련된 비밀이 하나 있다. 간좌는 하늘의 천시원(天市垣)과 관계가 깊다. 동양의 고천문학에서는 하늘의 영역을 자미원, 태미원, 천시원으로 구분해 삼원(三垣)을 이야기한다. 북극성 근처에 있는 영역을 자미원(紫微垣)이라고 하고, 천구(天球)의 적도 안쪽으로 태미원(太微垣)과 천시원(天市垣)이 위치하고 있다.

조선 세종 때의 천문학자 이순지(李純之, ?∼1465)가 편찬한 ‘천문유초(天文類抄)’에 따르면 천시원은 천자(天子)의 시장(市場)에 해당하므로, 천하가 모여드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천시원의 별이 밝고 커지면 시장을 관리하는 사람이 각박하게 굴어서 상인들에게 잇속이 없게 되고, 홀연히 어두워지면 쌀값이 폭등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까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남대문시장 상인들이 가장 주목해야 할 별자리가 천시원인 것이다.

또 천시원은 하늘의 시장이라서 교역이 이루어지는 곳이고 따라서 돈이 모이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풍수가에서는 천시원과 연결된 터에서 부자가 많이 나온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어떤 터가 천시원과 관련되는가? 바로 그것이 간좌다. 예부터 좌향이 간좌인 집에는 부자가 많다는 속설이 이를 뒷받침한다. 참고로 영남의 이름난 고택 가운데 안동의 학봉 김성일 종택과 영양의 호은종택이 간좌를 놓은 집으로 기억된다. 이들 고택은 재물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풍수서에 따르면 간좌의 터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조건이 하나 있다. 바로 터 앞에 연못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집 앞에 팔방수(八方水, 여러 방향에서 오는 물)가 모여드는 연못이 있어야 제대로 된 간좌라고 한다. 간좌 터에 반드시 연못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풍수서 가운데서도 고급 과정에 속하는 ‘감룡경(龍經)’에 나오는 말이다.

흥미로운 점은 선교장의 활래정에 들어서 있는 연못은 원래부터 있던 자연 연못이 아니고 이내번의 손자인 오은거사 이후(鰲隱居士 李, 1773∼1832) 때에 인공으로 조성한 것이다. 이 연못은 ‘감룡경’에서 말하는 풍수적인 문법에 맞추어서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만약 이 추정이 맞다면 오은거사는 적어도 ‘감룡경’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풍수에 조예가 깊은 인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교양필수 과목이 풍수였음을 감안하면 오은거사의 풍수 실력은 당연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선교장 안채 대문 앞에 있는 우물도 풍수와 관련이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선교장 정면에 배치된 두 개의 대문을 살펴봐야 한다. 일반 고택 가운데 정면에 두 개의 대문이 나란히 설치된 경우는 선교장말고는 우리나라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선교장의 대문 두 개는 그 용도가 각기 다르다. ‘선교유거(仙嶠幽居)’라는 현판이 걸린 솟을대문은 남자와 손님이 출입하는 이 집의 공식 대문이고, 솟을대문이 없는 오른쪽의 평대문은 여자와 가족이 출입하는 대문이라고 한다. 대문을 두 개 만들어 놓은 것은 사는 사람을 배려한 것이다. 이 집의 건물배치는 가로로 길게 늘어서 있어 사랑채로 통하는 대문을 하나만 설치해 놓으면, 안채로 출입하는 여자들은 빙 돌아 들어가야 하는 불편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채로 직행하는 대문을 따로 마련한 것이다.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안채 앞에 있는 우물의 존재다. 이 우물은 정확하게 일직선으로 안채 대문 앞에 위치하고 있다. 풍수적인 시각에서 이 우물은 대단히 좋은 위치에 있다. 우물은 혈구(穴口)로서 인체에 비유하면 입과 같다. 즉 건물이 코의 위치에 있다면 혈구는 입에 해당하기 때문에 일직선상에 있어야 모범답안이다. 그렇지 않고 우물이 대각선 방향이나 삐딱한 방향에 자리잡으면 마치 입이 삐뚤어진 것과 같아서 좋지 않게 본다. 우물이 집 뒤 또는 옆에 있어도 좋지 않게 본다.

그러므로 선교장 안채 대문 앞에 일직선으로 배치된 이 우물은 풍수 교과서의 지침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달리 말하면 우물이 먼저 이 자리에 있었으므로 안채 대문을 거기에 맞추어 설치하였다는 뜻이다. 더구나 이 우물은 살림하는 주부들이 물을 긷기에도 더없이 편리한 지점에 있다.

선교장 사람들에 따르면 이 우물은 제사 때 사용하였다고 한다. 제사지내는 데 필요한 음식이나 술을 빚을 때 이 우물 물을 이용했다는 것이다. 제사는 성스러운 의식이므로 부정을 타지 않게 하기 위해 제삿날을 전후해 며칠씩 이 우물에 흰 명주천이나 창호지를 덮어 놓았다고 한다. 명주천을 덮어 놓은 때는 당연히 우물을 사용할 수 없다. 그런데 대갓집 제사가 어디 한두 번인가. 제사가 자주 있다 보니 이 집 식구들은 이 우물을 사용할 기회가 적었다고 한다. 일상의 물은 다른 곳의 우물 물을 사용하였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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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 원광대 동양학대학원 교수 > cyh062@wonkw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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