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8월호

軍 정보기관 고위장교가 작심하고 기록한 군 비리 고발 육필문서

‘뇌물전쟁’에서 이겨야 진급·보직도 이긴다

  • 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3-07-24 15: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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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령관 지시 어기고 동료 모친상 조문했다가 좌천 인사
    • 부하 가족들 시켜 은행알 까고 산더덕 벗겨 상관에게 선물
    • 접대 태도를 인물평과 연결시켜
    • 여름휴가 끝나면 뜨는 사람, 지는 사람 구분돼
    • 부대 회식비를 민간인 업자에게 부담시켜
    • 부인네들은 ‘사모님’ 몸종 자처해야
    • “L소령이 떠나면 우리 애는 누가 봐주나”
    • 재력 있는 부하들에게 금품상납 유도
    • 진급·보직심사 때 심사위원들에게 뇌물
    軍 정보기관 고위장교가 작심하고 기록한 군 비리 고발 육필문서
    국군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는 군내에서 가장 힘 있는 기관으로 통한다. 파워의 상징인 정보와 수사권, 동향관찰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무사가 부패하면 군 전체가 부패의 늪에서 헤어나기 힘들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꼴이기 때문이다.

    ‘신동아’는 지난 호에서 전직 기무사 고위관계자의 증언을 통해 기무사의 문제점과 개혁방안을 진단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군 정보기관의 한 관계자는 최근 ‘신동아’에 군부 비리를 고발하는 자료를 제공했다. 그는 제보 동기에 대해 “언젠가는 꼭 알리고 싶었던 얘기”라며 “‘신동아’ 7월호에 실린 관련기사를 읽고 용기를 냈다”고 밝혔다.

    A4 용지 12장 분량으로 육필로 씌어진 이 문서엔 군 조직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생생히 적혀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군을 망치는 주범으로 꼽혀온 뇌물비리의 다양한 유형과 사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뇌물비리는 모든 비리의 출발이요 끝이라 할 수 있다. 제보자는 오랜 세월 군을 오염시켜온 뇌물비리를 14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신동아’는 고발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고 제보자가 그런 사실을 파악할 만한 위치에 있다는 점을 감안해 이를 가감 없이 싣기로 결정했다.

    여기엔 제보자의 주장이 군 비리 척결과 제대로 된 개혁을 염원하는 다수의 선한 군인들의 여망에 부합하리라는 판단도 작용했다. 다만 명예 손상을 우려해 비리 당사자로 거론된 장교들의 실명은 가렸다. 아울러 내부고발자 보호 차원에서 제보자의 이름과 직위, 직책도 밝히지 않기로 한다.



    피를 토하듯 씌어진 이 글의 주된 고발 대상은 부패를 방지하고 비리를 적발해야 할 위치에 있는 기무사다. 물론 이런 비리와 상관없는 다수의 기무사 장교들은 이 글을 읽으며 자괴감과 분노를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글 곳곳에서 엿볼 수 있는 제보자의 군에 대한 충정은 그런 불쾌감을 충분히 씻어줄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바라건대 이 기사가 특정인이 사심을 갖고 군을 부패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으로 오독되는 일이 없기를.

    다음은 문서 전문이다.

    “무엇으로 전쟁을 할 것인가”

    6·25사변시 다부동에서 전선이 고착된 국가존망의 기로에서 북한군 포병대대장으로서 귀순해 북진의 기틀의 마련한 예비역 소장 정봉욱은 북한군의 장점을 3가지로 요약했다.

    1. 장교(군관)는 모든 편제화기와 장비 사용에 능숙하다.

    2. 군관과 하전사 간에 언어폭력이 없다.

    3. 뇌물이 통용되지 않는다(물론 최근의 먹자판 뇌물판과는 다르지만).

    만약 위의 3가지를 어길 경우 정치보위부에 출두해 자아비판을 받는다.

    이와 비슷한 시기 한국군의 실태는 어떠하였는가. 전후 피폐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군 장비와 인력을 민간 분야에 투입하는 일명 후생산업을 대규모로 벌였다. 신간벽지 부대에서는 숯을 구워 내다팔아야 했으며 부대마다 주보(현 PX)를 운용하고 전속 사진사를 임명해 부하 장병들을 대상으로 한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정봉욱 소장이 사단장에 부임해 비상을 걸어보니 편제차량은 오간 데 없고 겨우 성능을 유지하는 차량 몇 대가 고작이었다고 한다. 이유인즉 후생사업에 전부 나가버렸다는 것. 이 보고를 받고 눈앞이 캄캄해졌다고 한다. 무엇으로 전쟁을 할 것인가.

    군단장 숙소에 부임인사차 빈손으로 갈 수 없어 사과(당시 아주 귀한 과일임) 한 상자를 가져갔는데 군단장이 “얼마야?” 하고 물었다. 처음엔 말귀를 알아듣지 못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상자에 든 돈이 얼마냐”고 확인한 물음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렴한 군인들은 늘 오지나 외지로 내몰리고 세상물정을 모르는 아둔한 무인으로 취급받을 수밖에 없다. 5·16쿠데타를 주도한 박정희 소장의 가슴속에도 이러한 부정과 비리에 대한 강한 불만과 거부감이 자리했다고 한다.

    그후 하나회가 군은 물론이고 사회의 주도세력으로 자리잡으면서 기업가들로부터 막대한 후원금을 받아 부대운영비로 사용함으로써 병영 내에서 부자 부대와 가난한 부대가 구분됐다. 이른바 돈맛을 본 부하장병들은 돈을 물 쓰듯 하는 지휘관을 좋아하고 따르게 됐으며 강력한 사조직이 형성됐다. 많은 초급장교들이 영문도 모른 채 베풀어주는 회식과 가끔 집어주는 격려금에 황송해본분을 망각하고 물질을 추구하는 배금사상이 싹튼 것이다.

    최근 하나회 등 사조직이 쇠퇴하고 은폐됐던 군 내부의 문제들이 하나하나 공개되면서 군의 사회적 위세(?)는 전만 못하게 되었다. 군인에게 호의적인 시류가 사라지면서 민간으로부터의 격려금과 지원금도 크게 줄었다. 이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많은 사람이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현상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으로부터 뇌물을 받는다는 것이다. 보직, 진급, 인사 평정 시기를 앞두고 규모는 상이하지만 상당한 금품이 오가고 그 뿌리가 깊어 가히 반근착절(盤根錯節)의 상황이라 할 만하다.

    설마 군인들이 그럴 수 있을까. 반신반의해보지만 아직도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장교라는 비난이 돌아올 뿐이다. 해마다 이뤄지는 인사이동 결과를 보고서야 왜 나에게는 외지를 빙빙 돌아야 하는 원심력만 작용하는지 깨닫게 된다.

    북한군에서는 뇌물을 주고받을 경우 정치보위부에 의해 자아비판을 강요당한다. 북한군의 정치보위부에 해당되는 부대가 우리의 기무사다. 그런데 기무사가 뇌물비리 구조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는 비판과 비난이 일고 있고 그 탓에 군의 개혁이 요원하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뇌물은 사지금(四知金)이라고 한다. 본래 너만 알고 나만 알자는 것인데, 여기에 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게 돼 네 명이 인지함으로써 비밀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기무사에서 자행되는 뇌물비리의 유형을 살펴보고 반면교사로 삼고자 한다.

    1. 환심 사기 위해 간이라도 빼줄 듯 해야 한다.

    반대의견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소신과 용기를 가진 자는 도태되거나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각종 토론시간에 자기 주장을 피력하면 곧바로 이단자로 간주되고 불평불만자로 낙인찍히는 것을 쉽사리 목격할 수 있다. 그러니 자연 윗사람에게 고분고분하고 ‘지당하옵니다’ 따위의 언행을 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가관인 것은 장래성 있는 육사 출신은 계급이 낮더라도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는 점이다. 이들에 의해 인물평이 형성되고 상층부에 전해지기 때문에 유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들은 비육사 출신들에 대해 “중령은 늦더라도 대령은 내가 먼저 단다”는 투로 말한다. 머지않은 미래를 감안하면 계급이 왕인 군대사회에서 이들은 중요한 고려대상이다.

    2. 상관의 지시는 어떠한 경우에도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문민정부 시절 김현철씨와의 친분관계를 빙자해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던 M대령이 자체 감찰에 적발돼 육군에 원복(원대복귀)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후 그가 D지구 부대에 근무할 때 모친상을 당했다. 그런데 “누구든 M대령 상가에 조문 가는 부대원은 그냥 두지 않겠다”는 L사령관의 명령(?)이 전파됐다.

    당시 C지구 부대장 J대령이 전직 동료에 대한 우의 표시로 조문을 했다가 “믿는 놈에게 발등을 찍혔다”는 L사령관의 분노가 전달됐고 그후 지방을 전전하면서 인사상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했다. J대령은 사령관의 지시를 받들지 않은 죄 아닌 죄 때문에 30년 군생활의 끝이 좋지 않았다.

    3. 지역 특산물 상납은 뇌물구조의 가장 밑바닥

    서울을 떠나 지방에 근무할 경우 특산물은 아주 좋은 상납품으로 활용된다. 전국적으로 이름난 명품이면 더욱 좋고 비싸지 않으면서도 비교적 오랜 시간을 두고 보면서 활용하기 때문에 보내준 사람에 대한 기억도 오래 간다. 그러나 계급에 맞게 해야지 그야말로 성의 수준의 특산품은 보내지 않는 것만 못하다는 여론도 팽배하다.

    J중령은 지방에 근무할 때 명절이 되면 서울로 보내는 특산품이 타이탄 트럭 1대가 넘는다고 한다.

    K중령은 부하들의 가족들을 불러모아 은행알을 까고 산더덕을 벗기게 한 뒤 꾸러미를 만들어 사령부 과장급 이상에게 보냈다. 가족들은 손톱이 벗겨지도록 일한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해야 했다. 그런데 정작 들려오는 소리는 “참으로 예의바른 부대장”이란 호평뿐이어서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는 것이다.

    고위직 친인척 인적사항 파악

    4. 지역에 근무할 때 사령부 부대원 가족과 친척에게 최선을 다한다.

    지방에 근무할 경우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은 사령부에 근무하는 부대원이나 계급이 높은 분들의 친인척 인적사항을 면밀히 파악해 생일이나 명절 때는 물론이고 수시로 접촉해 접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반론도 만만치 않지만 약삭빠른 사람들로서는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C중령은 인사부서 관계자인 L중령의 모친 칠순 잔치가 비공개리에 가족끼리만 모인 자리인데도 부부동반으로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찾아가 절을 드리고 함께 놀아주는 성의를 보였다. 그 덕분에 순탄한 보직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지방부대 간부들이 교체되면 그 지역에 거주하는 부대원의 친인척이 찾아와서 스스로를 알리는 경우도 허다하고 이들의 기분 여하에 따라 사령부에 형성되는 인물평이 달라지는 것이다.

    5. 사령부 주요 직위자를 수시로 초청해 접대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도권에 근무해야만 가능하다. 소령급 이상은 보직 인사이동시 수도권에 발령을 받아야만 조직 내 위상을 유지하고 위세도 대단해진다. 국민의 정부 시절 소위 대전복 부대로 분류되는 사단이나 여단급 이상 부대를 지원하는 기무부대장들은 전원 특정 지역 출신으로 채워졌다. 임기도 통상 2년인데 3년 동안 유지시켰고, 종료 후엔 서울 지역 부대로 옮겨가도록 배려했다.

    이들은 서울 지근 거리에 위치해 사령부 간부들을 수시로 초대했다. 반면 이들이 실세들임을 인식한 비호남 출신들이 제발로 찾아가 우의를 다지는, 이른바 외곽 다지기도 진행됐다.

    K중령과 또 다른 K중령은 서울 근거리 지역의 기무부대장이라는 지리적 이점을 살려 많은 사람을 초대해 접대했다. 또 접대받은 사람은 같은 또래의 부대장을 방문해 서로 접대 태도를 비교하고 이를 사람 평으로 연결시키는 경우도 많았다.

    6. 여름휴가철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바야흐로 탈서울 러시가 눈앞에 다가오는 휴가철이다. 바닷가나 심산유곡 곳곳에는 군부대 휴양소가 설치돼 있다. 도심지에 있는 부대원들에게는 가족 동반 하계휴양이 실시된다. 이때 휴양소를 운영하는 부대원들은 최선을 다해 이들을 모셔야 한다. 만일 조금이라도 기분을 상하게 하면 나쁜 여론이 돌게 되기 때문이다.

    모 지역 방첩과장 P중령은 3년 적금을 해약해 한해 여름 방문객에게 최선을 다한다고 했지만 다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그후 여러 차례 지방근무를 전전했다.

    강원도 모 지역 부대장은 여름휴가철이 늘 곤혹스럽다. 내방객들에게 최소한 회는 대접하고 오징어 한두 축을 차에 실어줘야 하는데 예산이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하지만 진급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있기에 어느 누구도 소홀히 대하지 못하고 최대한 자금을 염출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접대할 사람들에게 식사를 접대하고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것은 그나마 신사적이다. 요즈음은 골프 부킹과 동반 라운딩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해군 중령 P는 유력자의 휴가 일정을 미리 파악해 완벽한 휴가 일정을 제시함으로써 호평을 받았다.

    여름휴가에 얽힌 사연도 많다. Y중령은 해안지역에 근무할 때 사령부 모 과장의 요청으로 콘도를 준비했다. 그런데 콘도에 도착한 과장의 부인이 좁다면서 33평으로 바꿔줄 것을 요구해 동분서주한 끝에 바꿔줬다. 3일 동안 그 과장을 시종처럼 따르면서 수발을 했다.

    그해 가을 사령부에 들어가 인사를 하니 “어디선가 많이 봤는데, 누구지?” 하기에 마음이 상했다. Y중령이 의도적으로 소상히 설명을 해주니 그제야 손을 잡으며 “그때 고마웠어” 하고 딱 한마디했다고 한다.

    L중령은 해안지역 부대장 재직시 고향사람들을 대거 초청해 휴양소를 꽉 메움으로써 다른 부대원들의 불만과 원성을 샀다. 그러나 접대받은 고향 사람들의 입김으로 무사하게 됐다는 여론이 팽배했다.

    어떤 부대장은 휴양시설을 자비로 미리 예약했다가 원하는 사람들에게 사용권을 넘겨주곤 한다. 그런데 만약 예기치 않은 태풍 등으로 휴가를 취소하는 사람이 많을 경우 미리 예약한 시설을 처분하지 못해 야단인 경우도 있다.

    아무튼 여름휴가가 지나고 나면 뜨는 사람과 지는 사람이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 자명한 사실이다.

    7. 각양각색의 스폰서로 하여금 접대비를 담당하게 한다.

    과거 하나회 소속 군인들의 저녁 자리에 참석해보면 사회에서 제법 기반을 구축한 인사들이 와서 식대를 지불하고 2∼3차로 이어지는 주연도 전담했다. 그런데 요즘 와서는 그리 반듯하지 않은 사람들이 스폰서를 자청하면서, 술이 거나하게 취하면 아래위도 없이 굴고 얻어먹는 사람은 뭐라 제지하지도 못하는 진풍경이 흔하게 벌어진다.

    계룡대에 있는 3군 기무부대들이 하나로 통합되기 전에 서울 거주 부대장들을 초청한 골프회동이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스폰서를 데리고 와 골프비와 식사비, 2차 유흥비를 전담시켰다. 참석자 중 한 명이 “장군 부대장들이 100여 만원에 불과한 회식비를 민간인에게 부담시키는 졸렬한 행동을 했다”고 비난했다.

    L준장은 민간 하도급업자 P를 고향마을 후배라고 속이고 부대원들에게 밥을 사게 했다.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이야 좋아라 했지만 눈치 빠른 부대원들은 속셈을 간파하고 비난했다. ‘사금고 업자’를 불러 회식자리를 만들었다고. 이 업자는 술에 취하자 음담패설과 욕설을 해 참석자들이 모두 경악했다.

    스폰서가 붙는 것도 사람마다 다르다. 대도시에 있는 좋은 학교를 졸업한 경우에는 동문 지인들의 자발적인 지원이 따른다. 하지만 시골 면 단위에 있는 오지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스폰서가 밥 사주는 게 소원이라며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한다.

    상관의 부인들도 상관 행세

    8. 부인네들이 몸종을 자처해야만 하는 상황

    부인들은 말없이 가정을 지키고 남편의 공백을 메움으로써 존재가치(?)를 찾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장막 뒤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사령부 대령 이상 고위장교의 부인들은 매주 정례적인 테니스 모임을 갖는 것을 비롯해 여러 종류의 취미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문민정부 시절 S장군이 고위장교 부인들의 군인가족 교육을 건의해 시행됐다. 교육에 참석한 군인가족들은 군인아파트의 폐해를 신랄하게 지적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상부 비위 맞추는 얘기로 일관했다. 이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 남편들의 관용차를 타고 교육장을 왕복했다.

    K대령 부인은 테니스를 할 때마다 소령 부인들에게 수박 냉화채를 만들어 오라고 시켰다. K소령 부인이 이에 응하지 않자 대신 K소령을 사무실로 불러 야단을 쳤다. 이에 K소령이 K대령 부인의 지나침을 직언하자 즉시 외면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아주 나쁜 놈”이라고 혹평했다.

    L대령은 인사 관련 요직을 지내는 동안 L소령의 가족들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다. 가족들은 몸종처럼 드나들며 L대령의 아이들 뒷수발을 했다.

    그는 L소령이 육군대학 입교신고식을 하는 공개석상에서 “L소령이 가면 우리 애는 누가 봐주나” 하고 독백처럼 말해 “실성한 사람 같다”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P중령은 하나회의 후광을 입은 자인데 그의 부인은 서울 모 지역 현대APT에 거주하는 직원 부인들로부터 ‘공주병’이라는 별칭을 들었다.

    P중령 부인이 “동기생 C중령보다는 진급에 유리하다”고 떠벌리자 C중령 부인은 “어떤 일이 있어도 P중령보다는 먼저 진급한다”고 대응했다. 주변 사람들이 두 사람의 경쟁을 부추기는 몰지각한 행태도 있었다.

    “남은 것 나눠 먹자”

    9. 부대 현대화 공사 업체로부터 일정 금액 수수 관행화

    부대 막사를 현대화 시설로 증·개축하면서 제한경쟁입찰 방식으로 공사업체를 선정하고 일정액의 금품을 수수하는 방법이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기무부대 현대화 공사를 할 때마다 부도율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T지구 기무부대와 K지구 기무부대가 대표적이다. 낙찰된 업체가 부도 나서 공사를 제대로 진척시키지 못하고 업체를 재선정하는 홍역을 치러야 했다.

    P지구 기무부대 교외이전 사업과정에 수뇌부가 업체로부터 상당액의 금품을 받았다는 말도 떠돌고 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모 간부가 수뇌부의 아킬레스건을 폭로하겠다고 떠벌리고 다녀 이를 만류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꽤 오래 전이기는 하지만 C지구 기무부대 관사 신축시 부대장 L대령이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지 않고 공사를 제대로 하라고 엄격히 지시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공사 현장감독을 맡았던 모 간부가 500만원을 받았다. 이 간부에 따르면 업체 관계자가 “어차피 누군가는 먹어야 할 돈인데 아무도 받지 않으니 당신이 받아 쓰라”고 해 받았다는 것이다.

    전방 지역 사단 기무부대 공사를 훌륭하게 마친 모 부대장은 사령부 간부로부터 “남은 것 나눠 먹자”는 전화를 받고 어리둥절했으나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난 후 진의를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이를 두고 공사를 벌여놓고 나서 신나게 다니는 간부들의 내심을 알 만하다는 비난이 일었다.

    10. 각종 수의계약 알선 후 사례금 수수

    사단이나 여단급 이상을 지원하는 기무부대장의 경우 각종 수의계약시 업자를 알선하고 일정 금액의 사례금을 받아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관리참모(재무관)로부터 권유를 받아 생기는 일인데, 이는 지휘관의 수의계약 개입 등 올바르지 못한 처사를 호도하기 위해 기무부대장을 교묘히 끌어들이는 것이다.

    또한 상급자로부터 “건실한 후배가 있으니 잘 돌봐주라”는 메시지를 받은 후 수의계약 건을 주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많다.

    아무튼 수의계약 알선 대가로 일정 사례금을 받아 손님 접대를 비롯한 입지 넓히기에 긴요하게 활용하는 것은 일반화된 현상이다. 수의계약에 절대 개입하지 않는 부대장은 그만큼 용돈이 궁하고 사적 친분관계를 넓힐 기회를 상실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11. 업무성과를 독려하면서 뒤로는 금품을 받는 행위

    과거 모 지역 기무부대 M과장은 부하들한테 금품을 강요하는 방법이 매우 교묘했다. 그가 주기적으로 업무성과가 없다고 독촉하면 눈치 빠른 부대원의 경우 보고서 뒤에 돈봉투를 붙여 제출했다.

    방산업체를 지원하는 H과장은 특별한 일도 없이 휴일에 출근해 담당관을 호출해 저녁에 음주 후 귀가하곤 했다.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아 사적 용도로 사용하는 장교들은 그 혜택을 받은 사람들로부터는 두고두고 칭송을 받는다. 하지만 내막을 아는 부하들로부터는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위들의 보험성 뇌물

    12. 재력 있는 부하들과 의도적으로 친하게 지내고 금품상납 유도

    모 지역 기무부대 H대령은 부하들의 신상명세서 재산란을 유심히 관찰해 그 중 재력 있는 사람은 의도적으로 호출해 공개 자리에서 친근감을 표시함으로써 알아서 금품을 상납하는 분위기를 유도했다.

    국방부 예하 모 기관을 지원했던 기무부대원 R씨는 가끔씩 심야에 연락을 받고 술자리에 불려나갔다. 주로 과장들이 모인 술자리였는데 술값 전액을 지불하고 끝날 때까지 동석해야 했다.

    이는 상호 필요에 의해 생기는 기현상이다. R씨는 과장들에게 싫은 내색을 할 수는 없고 그저 너무 자주 호출되지 않고 비용도 적당선에서 부담되기만을 기대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13. 진급에 유리한 보직 위해 금품상납

    국민의 정부 시절 기무사령관 M중장은 ‘공이 없는 사람에게 상을 주면 공이 있는 사람이 떠나고…’라는 글이 있는 액자를 각급 부대 식당에 걸도록 했다. 그런데 쳐다보는 사람마다 비아냥거렸다.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말이기 때문이다.

    소령급이 사령부 계장 자리 하나 차지하는 데도 몇 단계 상위 직위자에게 금품을 상납해야만 한다. 이런 사실이 느낌으로 전파돼 비육사 출신은 일부 예외가 있긴 하지만 뇌물을 바쳐야만 진급에 유리한 자리를 얻는다. 또 이미 상납한 뇌물의 효과가 지속돼 진급할 때까지 유리한 국면을 끌고 갈 수 있다고 한다.

    절대 그럴 리 없다고 고개를 가로젓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후일담을 종합해보면 뇌물비리의 구조는 상당히 탄탄하고 뿌리가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대위들도 일정 금액을 상납하는데, 이는 후일을 기약하기 위해 선금을 치르는 일종의 보험이라고 한다.

    사령부 핵심 과장과 계장에 보직되지 않으면 진급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니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리 차지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른바 “보직은 전쟁”인 것이다.

    경쟁력을 구비한 장교들에게 “연말에는 사령부 들어와야지” 하고 넌지시 운을 떼보고 반응이 없으면 외지로 돌리는 사례도 많다고 한다. 이런 경우는 주요 직위자들이 돈을 긁어모으는 뚜쟁이 노릇을 자처한 것이나 진배없다.

    “업무 능력은 백지 한 장 차이”

    14. 진급 위해 예상 심사위원들에게 금품 제공

    진급심사위원은 통상 2단계 상급자가 위원장, 1단계 상급자가 위원으로 선발되는데 통상적인 기류를 감안하면 누가 들어갈 것인지 예측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들을 대상으로 은밀하고 치열한 로비가 진행되는데 그야말로 누가 더 실력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명암이 엇갈린다.

    심사 때는 늘 엇비슷한 경쟁 대상자가 여럿 있게 마련인데 이들을 누르고 진급의 영광을 움켜쥐기 위해서는 심사위원들에게 환심을 사는 것이 필수적이다. 업무를 잘하는 것은 기본에 불과할 뿐이다.

    그래서 “업무는 백지 한 장 차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정의로운 간부들은 “백지 한 장 차이의 능력이 승패를 좌우한다”고 하지만 이는 대세에 밀린 한가한 소리에 불과하다.

    ‘진급은 투쟁’이라는 속어대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일단 진급하게 되면 승리자가 되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생존구도를 교묘히 활용한 상위 직위자들의 은근한 유혹을 매정히 뿌리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진급 대상자들은 병 들어가는 것이다.

    진급과 보직에 금품이 오가는 군대는 이미 생존력과 동력을 상실한 공룡처럼 겉모습만 비대한 조직이 돼버린다. ‘장교는 군대의 기간이다…’라고 시작되는 장교의 책무를 지킬 의사가 있는 간부들이 얼마나 될까.

    장개석 군대가 인민군에 패하고 티우의 월남군이 보잘것없는 베트콩과 월맹군에게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원인은 군의 부패였다.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에 머리를 조아렸던 인조대왕은 “모름지기 나라는 안에서 망하게 해놓고 외침을 받아 무너진다”고 통곡을 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설마 기무사가 그럴까 하고 의아해할지 모르겠으나 부정과 뇌물의 고리가 워낙 탄탄하고 구전되는 실상이 이러할진대 숨겨진 내막은 더욱 추악한 것이리라.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듯이 치열한 진급구도 속에서 쟁취하려는 자와 이용하려는 자가 있는 이상 뇌물비리의 사슬은 영속될 것이다.

    이번만은, (적합한) 사람이 없으면 소령이 대대장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뇌물 주고받은 자는 엄벌해달라는 전방 소령의 간절한 호소가 귓전을 울린다. 기무사와 기무부대원들이 청렴하지 않으면 깨끗한 군은 기대하기 어렵다.

    뇌물다발을 팽개치며 호령하는 상급자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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