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2월 초 고건 총리후보 인준여부를 놓고 한나라당에 부정적 기류가 우세했을 때였다. 의원회관에서 만난 최병렬 의원에게 “어떻게 투표할 거냐”고 질문했다. 그는 “찬성표 낼 겁니다”라고 딱 부러지게 밝혔다. 1998년 서울시장 선거 때 고건 당시 국민회의 후보와 최병렬 한나라당 후보는 정말 세게 붙은 적이 있다. 감정의 앙금도 생길 법했다. “그 때는 그 때고 행정달인, 청렴성은 인정해주어야지요.”
“국정을 결딴냈다”
“최병렬 대표는 단호하다. 동시에 뒤끝은 없다.” 최대표 측근들의 말이다. 원내1당 대표의 역할에 필요한 결단력과 유연성을 모두 갖췄다는 것이다. 대구에서 최대표는 “최딩크가 되어달라”는 덕담을 들었다. ‘최틀러’보다는 확실히 나아 보이는 별명이다. 그러나 ‘최병렬체제의 한나라당’ 상황은 그렇게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여권의 신당 창당 및 정계개편 소용돌이는 한나라당에도 직간접적 파장을 미치고 있다. 개혁성향 의원 5명은 보란 듯이 탈당했다. 당 개혁 요구는 거세지고 있다. 중진 보수성향 의원들도 제 목소리를 낸다. 특검법 처리 등 각종 현안을 두고 한나라당과 현 정권의 대립도 첨예해지고 있다. 7월10일 오후 한나라당 대표실에서 최병렬 대표를 만났다.
-대표경선 승리의 비결은 무엇이었습니까.
“우선 노무현씨 덕이 큽니다. 나라가 불안하고 많이 흔들리니 국민들 사이에선 야당이라도 역할을 잘해서 나라를 바로잡아 줬으면 좋겠다는 분위기가 생겼습니다. 이는 당원들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현 정부가 잘하는 것은 화끈하게 도와주고, 비판할 것은 확실하게 비판하고 제동을 걸겠다는 내 말이 국민들의 기대나 심정과 잘 맞아떨어진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한국정치는 명분이 중요합니다. 나와 라이벌 관계였던 후보가 여러 장점이 많았던 반면 명분에 결정적 문제점이 있었던 것도 승인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지요”
최대표는 인터뷰 첫머리부터 노무현대통령을 거론한다. 지난 7월8일의 대구 발언은 일과성이 아닌 듯했다. 본격적으로 물어봤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5개월여의 국정운영에 대해 평가해 주시죠.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은 우리나라의 메인스트림이 우에서 좌로 바뀐 결과입니다. 나중에 역사는 그렇게 평가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노대통령은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국민들의 불평과 불만은 널리 확산되어 있었고 기득권층과 그렇지 못한 층의 구조적 갈등도 있었습니다. 그런 현상을 잘 활용했으면 상당히 민심을 얻을 수 있었을 겁니다. 또한 개혁을 해나가는 데도 탄력이 붙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이점은 하나도 살리지 못하고 반대로 국정을 완전히 결딴내놓고 말았어요. 정치, 경제, 사회, 안보 등 모든 것이 함께 주저앉는 형국이에요”
“한가한 ‘네덜란드식’ 얘기만 한다”
-경제가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경제 침체에는 경제 외적인 요인도 작용하고 있는 것 같은데, 현재의 경제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경제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동대문의류상가는 텅텅 비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기업은 투자의욕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신용불량자는 300만이 넘고 실업자도 늘고 있습니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됐으면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소매 걷고 나서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 오일쇼크와 같은 경제위기 때 대통령이 총력전을 펼치며 난국을 헤쳐나가려는 모습을 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노대통령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보는데 속으로는 어떤지 몰라도 겉으로 보기엔 그렇게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말 많은 신당이 노대통령과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지금 대통령이 신당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국민이 고통을 받고 있는데 그건 대통령의 책임 아닌가요?”
-얼마전 최대표께서는 노무현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 말의 진의는 무엇입니까.
“대통령이 자신의 역할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그런 표현을 한 겁니다. 대통령이 제 역할을 못하는 이유 중에는 기본적인 자질문제도 있겠죠. 그러나 그것 때문만은 아니고 청와대 팀의 문제가 주원인인 것 같습니다. 인사의 잘못 역시 대통령의 책임입니다. 대통령의 말은 왔다갔다 하고, 국정경험은 없고 운동권 경험밖에 없는, 코드 맞는 사람만 청와대에 갖다 놨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