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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비화

박지원, 노무현만은 ‘배신’않을 것으로 믿었다

  • 글: 송국건 영남일보 정치부 기자 song@yeongnam.com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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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다만 한잎 차에 띄워 마시며 살겠다.”
  •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현대로부터 150억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6월18일 밤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되면서 조지훈의 시 ‘낙화’를 인용해 밝힌 소회다. 국민의 정부 5년 동안 ‘소(小)통령’ 또한 ‘대(代)통령’으로 불리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그가 청와대에서 나온 지 4개월 만에 영어(囹圄)의 몸이 되는 순간 남긴 이 말에는 어떤 생각이 녹아 있을까.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비화

2002년 12월 박지원 당시 청와대비서실장이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에게 당선축하난을 전하고 있다.

‘낙화론’은 박지원 전 실장이 무심코 내뱉은 말이 아니다. 박 전 실장은 이 비유를 통해 자신의 심경이나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려 했던 것 같다. 그는 평소 매우 신중히 생각한 뒤에야 말을 꺼내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화제를 모은 이 시구 또한 즉흥적으로 나온 게 아니라 며칠 동안 준비한 끝에 ‘채택’됐다는 후일담도 있다.

박 전 실장은 구속을 예감하면서 뭔가 언론에 남길 적절한 은유적 표현을 별도로 준비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 박 전 실장의 한 측근은 여러 시집을 뒤졌는데 그 가운데 조지훈의 시 ‘낙화’를 찾아내 박 전 실장에게 보고했다는 것. 박 전 실장은 시 문구를 면밀히 검토한 뒤 인용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먼저 ‘꽃’은 박 전 실장 본인이거나 좌초위기에 처한 햇볕정책, 또는 위기에 몰린 김대중 전 대통령을 포함한 국민의 정부 사람들을 비유한 게 아니냐는 풀이가 가능하다. 아울러 무상한 권력 자체를 ‘만개했다 지는 꽃’으로 묘사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바람’은 무엇일까. 일단 햇볕정책에 관여했던 국민의 정부 사람들이 줄줄이 사법처리되는 현재의 정치상황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보다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측에서는 ‘바람’이 현 정권을 의미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놓는다.

즉 참여정부 탄생에 국민의 정부 청와대가 음으로 양으로 많은 도움을 줬는데도 결국은 바람이 돼 꽃을 지게 하는 데 대한 비정함을 탄식하고, 그렇지만 이를 탓하지는 않겠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는 해석이다.



현대측이 대북송금 과정에서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줬다는 150억원의 용처 문제, 여권 유입설 등은 특검이나 검찰의 수사를 앞두고 있다. 민주당측은 150억원에 대해선 떳떳하다는 입장이다.

2002년 3~4월 민주당 대선후보 국민경선 과정에서 제기됐던 ‘보이지 않는 손’이나 ‘음모론’도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노무현 후보가 예상을 완전히 깨고 경선을 통해 민주당 후보로 확정되는 데는 청와대의 막후 지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그때의 관측과 지금의 상황을 연결시켜 ‘낙화론’을 해석할 수 있는 까닭이다.

“‘金心’ 읽은 박실장이 盧 밀었다”

참여정부 탄생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던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당 대선후보 국민경선 과정에서 ‘김심(金心· 김대중 대통령의 의중)’을 읽은 박지원씨가 노무현 후보를 막후 지원한 것은 정황상 분명한 사실”이라고 단언했다. 다만 그는 “경선 이후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가 급격히 떨어지자 청와대가 나서서 후보 교체를 시도한 흔적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꽃’이 져도 ‘바람’을 탓할 수 없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당시 한나라당과 이인제 후보측 등이 제기한 것처럼 노무현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한 청와대의 ‘작업’이 있었을까. 또 이후 지지도가 떨어진 노무현 후보를 낙마시키기 위해 청와대가 개입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선 여러 가지 분석이 있지만 지금까지 분명한 결론은 나오지 않고 있다.

먼저 당시 청와대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개입 여부를 규명해보기 위해 민주당 경선이 막 끝났을 때인 2002년 5월 박지원 실장과 일부 기자들이 북한산 자락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점심을 함께하며 나눈 대화를 들어보자. 박실장은 민주당 경선 막바지인 4월15일 청와대 정책특보에서 비서실장으로 승진한 상태였다.

“청와대가 노무현 후보를 지원했다는 소문이 정치권에 파다한데요.”

“대통령께서 전혀 정치에 간여하지 말라고 엄명을 내리셨는데 무슨….”

“대통령이 직접 하는 게 아니라 박 실장과 동교동이 막후 지원에 나섰다고….”

“ ‘정치 뚝, 경제 GO’ , 정치 얘기는 하지 맙시다.”

“청와대의 지원 없이 특히 광주에서 갑자기 그런 바람이 불 수 있었겠습니까.”

“…”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가 갑자기 올라가기 시작한 데 대한 원인 분석은 했을 것 아닙니까. 정무수석실도 여전히 있고….”

“정치 얘기는 안 합니다.”

“개인적으로 노무현 후보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이 있을 텐데요.”

“(몇 번 망설이다가) 그는 믿을 만한 사람입니다. 배신 같은 것은 할 사람도 아니고….”

당시 기자들은 박실장을 상대로 청와대가 노무현 후보를 지원했다는 간접적인 암시라도 듣기 위해 이리저리 돌려가며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박실장은 “대통령께서 정치와 절연했기 때문에 청와대의 관심은 오로지 경제 살리기 밖에 없다”는 말로 기자들의 예봉을 피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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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송국건 영남일보 정치부 기자 song@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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