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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무중 국민성금의 향방

측은지심의 정성, 정부 호주머니 속으로?

  • 글: 강지남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layra@donga.com

오리무중 국민성금의 향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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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사고의 경우 국민성금을 모금해 적절하게 배분하는 기관이 없는 점도 문제다. 현재 법적으로 성금을 거둘 수 있는 기관은 두 곳으로 제한돼 있다. 전국재해구호협회(회장·최학래)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회장·한승헌)가 그곳. 여타 기관이 성금을 모금하려면 기부금품모집규제법에 의거해 행정자치부 장관이나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장(長)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한다.

매년 여름 수해가 날 때마다 방송사나 신문사는 수재의연금을 접수한다. 이는 언론사의 독자적 사업이 아니라 전국재해구호협회(이하 재협)가 벌이는 사업이다. 언론사에 접수된 성금은 모두 재협으로 집결돼 수재민 구호에 쓰인다. 재협은 수해뿐 아니라 태풍, 폭설, 지진 등 모든 형태의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국민들로부터 성금을 모금해 이재민 구호사업을 할 수 있다.

‘사랑의 열매’ 사업을 하는 곳이 바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이하 공동모금회)다. 이 기관은 예전에 정부가 하던 ‘연말연시 이웃돕기모금사업’을 물려받아 1999년 설립됐다. 공동모금회는 재협과 달리 평소에도 성금을 모아 각종 사회복지기관을 지원함으로써 성금을 사회에 환원한다.

올해 대구지하철 관련 성금 모금은 재협이 주관했고, 천안 축구부 관련 성금 모금은 공동모금회가 주관했다. 그러나 두 곳 다 본래는 재난사고 관련 성금을 모금하는 기관이 아니다. 때문에 유족들에게 교육청과 함께 ‘공공의 적’으로 비난받고 있는 공동모금회 충남지회에서 “좋은 일 하려다 욕만 들었다”는 하소연이 나오는 것은 당연지사. 충남지회 관계자는 “애초 교육청과의 협약대로 교육청을 통해 들어온 성금을 교육청에 다시 되돌려준 것 뿐”이라고 항변했다. 그는 또 “충남지회에 직원이 4명밖에 없어 인력도 부족하고, 이런 일을 처리해본 경험도 없다”며 답답해 했다.

100일 넘게 낮잠 자는 성금



지난 5월20일 대구시청 시장실에서는 대구지하철 참사에 모아진 ‘성금 전달식’이 열렸다. 그러나 이 자리에는 성금의 수혜자인 유가족과 부상자들이 없었다. 최학래 회장과 함께 전달식에 참석한 재협 관계자는 “대구시에서 성금 전달식이 열린다는 것을 사전에 발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보도자료도 전달식이 끝나고 난 뒤인 오후 2시쯤 배포했다”고 말했다.

유가족대책위원회 윤숙기 위원장은 “대구시가 희생자들 몰래 시상식을 열었다”며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성금 전달식이 있었다는 것을 다음날 신문을 보고야 알았습니다. 유족과 부상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걱정과 정성, 그게 성금 아닙니까? 그런 국민들의 마음을 느낄 기회를 빼앗다니…. 대구시의 무성의함에 다시 한번 실망했습니다.”

이에 대해 대구시 지하철사고수습대책반 관계자는 “시상식이 원만하게 치러지지 않을까봐 염려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당시는 유족들이 성금 문제에 워낙 민감하던 때였다. 시장실에 찾아와 난동을 부린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국민들이 정성스레 모아준 성금이 대구에 도착하자마자 ‘천덕꾸러기’가 된 셈이다.

대구지하철 성금 모금은 재협이 맡은 첫 재난구호사업이었다. 씨랜드 화재참사 등 이전의 재난사고 때는 해당 지방자치단체나 관련부처에 모금 창구가 마련됐지만, 지하철 참사는 워낙 큰 사고인 데다 전국적으로 많은 관심이 집중돼 재협이 모금사업을 떠맡았다. 정식 모금기간인 3월31일까지 신문사, 방송사, ARS 등을 통해 접수된 성금은 658억원 가량. 이후에도 전국 각지로부터 성금이 계속 쇄도해 재협이 대구시 통장계좌로 성금을 넣어준 6월16일에는 669억원 가량이 모였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 성금은 대구시 통장계좌에서 잠자며 이자만 불리고 있다. 세부적인 성금 지급규정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 물론 정부가 지급해야 할 보상금도 그 규모나 지급 시기가 아직 합의되지 않았다.

천안 축구부 화재참사와는 달리 대구 지하철 참사에 모인 성금은 사용처가 확실하게 정해져 있다. 대구는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기 때문에 유족들과 부상자들은 보상금 전액을 정부로부터 지급받는다. 보건복지부와 재협은 국민성금을 특별위로금과 추모사업비, 그리고 직접 경비로 지원하라는 방침을 내려보냈다.

성금 지급이 늦어지자 희생자 가족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대구시가 규정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서 유족과 부상자 간에 성금을 어떻게 나눌지 합의를 보라며 행정업무를 미루고 있다는 것. 유족들은 “성금이나 보상금 지급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유족들이 심리적으로 지치고 단결력도 약해질 것으로 보는 것 같다”며 대구시를 향한 악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실제로 성금에 관한 대구시와 유족, 부상자 간 첫 번째 회의가 6월20일 열렸으나, 7월11일 현재 다음 회의 일정도 잡혀있지 않은 상태다.

지난 6월29일 사망자 192명에 대한 합동영결식을 치른 후에도 여전히 유가족대책위 사무실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윤위원장은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털어놨다.

“신문이나 방송에 성금이 많이 걷혔다더라, 대구시에 전달됐다더라, 그렇게 보도가 나오니까 친척들까지 ‘돈도 받았는데 거기서 뭐하고 있냐’고 합니다. 주변에서 ‘유족들이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니까 돈을 못 받는다’는 오해도 받고 있습니다. 우리로선 보상금이든 특별위로금이든 빨리 해결하고서 이 일을 잊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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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지남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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