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8월호

東北亞 우주대전

한국, 우주의 ‘천리안’ 개발해 대도약 노린다

  • 글: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oon@donga.com

    입력2003-07-28 19: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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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아리랑 1호로 이라크 戰況 파악
    • 대포동의 북한 이름은 ‘백두산’, 노동은 ‘화성 5호’
    • 최적의 우주센터 자리는 제주 모슬포
    • 다탄두 ICBM 개발능력 보유한 일본
    • 외나로도와 제주도 사이 어선 통제방안 있는가
    • 동시에 미사일 발사 준비하면 먼저 불바다 되는 것은 북한
    • 미국 반대로 아리랑 2호가 중국 우주발사체에 실리지 못한 사연
    • KARI, 공군의 협조끌어내고 宇宙法 제정해야
    東北亞 우주대전
    < 한국의 우주시대를 열어갈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의 우주센터 기공식이 조만간 열릴 예정이다. 외나로도에서는 우주센터 건설에 필요한 토지 매입이 90% 이상 진척된 상태다. 그런데도 기공식이 늦어지는 것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꼭 참석하겠다고 밝혔기 때문. 노대통령은 한·중 정상회담 등 중요한 행사가 많아 아직 우주센터 기공식에 참석할 일정을 잡지 못했다고 한다. 노대통령이 이 사업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것은 한국 우주산업의 좋은 징조가 아닐 수 없다.그러나 한국에게 우주산업은 ‘가보지 않은 길’이다. 보장할 수 없는 미래를 향해막연히 달려가는 위험과 고통을 동반한 ‘국가적인 벤처 사업’이다. 성공하면 국가적 자부심이 올라가고 돈도 벌겠지만 ‘그날이 올 때’까지는 거듭되는 실패의 고통을 이겨내고 묵묵히 연구해야 한다.외부의 태클과 내부의 갈등도 헤쳐 나가야 한다.후발 산업국인 한국은 중화학공업과 자동차·반도체에 과감하게 투자해 이 분야세계 톱클래스의 국가가 되었다. 그렇다면 2020년 이후에는 어떤 분야의 사업이 한국을 먹여 살릴까. 우주산업에서 그 가능성을 찾으며 한국 우주산업의 모든 것을 파헤쳐 보기로 한다.취재를 하는 동안 과학기술부와 한국항공우주연구원(KARI)의 관계자로부터 적잖은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외국의 로켓 기술을 들여오기 위해 노력하는 ‘전사’와 한국형 미사일인 ‘현무’ 개발에 참여한 사람의 이야기도 들어보았다. 이들은 국가적인 비밀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라 신원을 밝히지 않기 때문에 설명문 형식으로 기사를 작성했음을 밝혀둔다.(편집자) >

    [제1장|지구촌의 우주 大戰, 50년 늦은 한국]

    1957년과 1958년, 1970년과 1970년, 그리고 1998년과 2005년. 무슨 일이 일어난 해일까?

    이 연도는 라이벌 관계에 있는 국가들이 자력으로 위성을 지구궤도에 진입시킨 해이다. 1957년에는 러시아, 1958년에는 미국, 1970년에는 일본과 중국이 각각 위성을 지구 궤도에 올려놓았다. 1998년은 북한이 자력으로 위성을 올려놓으려다 실패한 해이고, 한국은 2005년 위성을 쏘아 올리려고 한다.

    예전에는 위성이나 유인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것을 모두 ‘로켓’으로 불렀으나 요즘은 ‘우주발사체(Space Launch Vehicle)’라고 부른다. 로켓은 우주발사체의 일부분으로, 1단 로켓·2단 로켓 형태로 구성된다.



    우주산업을 발전시키려면 강력한 로켓이 필수적인데, 당초 로켓은 미사일을 위해 만들어졌다. 즉 군사용으로 개발된 로켓(미사일)을 우주탐사라고 하는 평화 목적에 사용한 것이 우주발사체인 것이다. 우주발사체와 미사일이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은 우주산업을 이해하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대역전극 연출한 소련

    현대적인 로켓을 탄생시킨 사람은 1931년 19세의 나이로 독일 육군로켓연구소에 들어간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 1912~77) 박사. 폰 브라운 박사 팀은 V-2 로켓을 개발했는데, 1944년 9월6일 독일군은 파리를 항해 이 로켓 두 발을 처음으로 발사했다(현대의 미사일은 정밀 유도가 되지만 V-2는 유도가 되지 않아 로켓으로 불린다). 그후 독일군은 2000여 발의 V-2 로켓을 런던 등 연합국의 주요 도시를 향해 퍼부었다.

    1945년 5월7일 독일이 항복하자 미국은 페네뮌데에 있는 독일 육군로켓연구소를 접수해, 폰 브라운을 비롯한 연구진 180명과 함께 거의 모든 장비를 미국으로 가져갔다.

    한 발 늦게 페네뮌데에 도착한 소련군은 단 한 명의 연구원과 남은 장비를 가져가는 데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소련은 막상 위성을 쏘아 올리는 데에서는 미국을 앞서갔다.

    V-2는 액체연료를 쓰는 로켓인데, 소련의 코롤레프 박사는 이 기술을 개량해 R-7이라는 우주발사체를 개발했다. 1957년 10월4일 R-7 우주발사체는 무게 83.6㎏, 직경 58㎝의 스푸트니크 1호 위성을 지구 궤도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소련이 위성을 쏘아 올리자 그때까지 ‘소련을 단순한 농업국가’로 여기며 애써 무시해오던 미국의 조야가 발칵 뒤집혔다. 소련은 미국보다 4년 늦은 1949년 원자폭탄을 개발한 바 있는데, 적잖은 미국인들은 스푸트니크 충격으로 ‘소련의 위성이 미국 상공에서 원자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에 빠져들었다(위성은 핵폭탄을 떨어뜨릴 수 없다).

    당시 미국에서는 육군과 해군이 독자적으로 우주발사체를 개발하고 있었다. 육군팀은 폰 브라운 등 독일에서 온 학자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었고, 해군팀은 미국 학자가 주축이었다. ‘국가 체면’을 의식한 미국 정부는 뱅가드(Vanguard : 선구자)라는 우주발사체를 개발해온 해군에게 위성을 쏘아 올리라고 명령했다.

    그리하여 스푸트니크 성공 두 달 후쯤인 1957년 12월6일, 미 해군은 위성을 탑재한 뱅가드를 발사했으나 뱅가드는 지상 1.5m를 올라가다 발사대와 함께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이로써 폰 브라운 박사를 중심으로 한 육군팀이 대타로 나서게 되었다. 육군은 스푸트니크 발사 성공 넉 달 후쯤인 1958년 1월31일 익스플로러로 명명한 위성을 탑재한 주피터-C 우주발사체 발사에 성공했다.

    익스플로러는 스푸트니크 1호보다 훨씬 높은 고도 370~2580㎞ 타원 궤도를 돌았다. 한편 체면을 구긴 미 해군은 1958년 3월17일 뱅가드 우주발사체를 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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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랑 1호가 찍은 외나로도 사진. 아랫부분 네모 친 곳에 우주센터가 건설된다. 윗부분 네모 안은 조감도.

    이후 미국은 기술을 발전시켜 ‘피스키퍼’나 ‘미니트맨’ 같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했고(미 공군이 관리한다), 미 해군은 ‘폴라리스’나 ‘트라이던트’ 같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개발했다.

    그로부터 12년 후인 1970년 2월11일, 미국과 벌인 태평양전쟁에서 참패한 일본이 람다-4S-5 우주발사체를 이용해 ‘오수미(大隅)’로 명명된 무게 23.8㎏의 위성을 고도 335~5151㎞의 타원 궤도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일본은 1965년 11월26일 디아망(Diamant) 우주발사체를 이용해 무게 42㎏의 A-1 위성을 쏘아 올린 프랑스에 이어 자력으로 위성을 쏘아 올린 네 번째 국가가 되었다.

    일본의 위성 발사 두 달 후인 1970년 4월24일 중국은 고비사막 부근에서 장정(長征) 1호 우주발사체를 이용해 173㎏ 무게의 동방홍(東方紅) 1호 위성을 고도 256~436㎞의 타원 궤도에 올려놓는 데 성공해 다섯 번째 우주 진입 국가가 되었다.

    한편 일본·중국과 경쟁해온 영국은 1971년 10월28일 블랙 애로 우주 발사체를 발사해 66㎏의 프로스페로(prospero) 위성을 547~1582㎞ 궤도에 진입시켜 여섯 번째 성공국가가 되었다.

    그 뒤를 인도와 이스라엘이 이었고 지금은 아홉 번째 자리를 놓고 브라질·이라크·북한·한국이 경쟁하고 있다. 이 중 가장 앞선 나라는 브라질인데 브라질은 1997년과 1999년 자체 제작한 우주발사체에 실어 위성을 발사했으나 궤도에 진입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이라크는 브라질보다 10년 앞선 1989년 12월5일 45㎏의 타뮤즈(Tamouz)를 발사했으나 실패했다.

    1998년 8월31일에는 북한이 무게 50㎏으로 추정되는 광명성 1호 위성을 탑재한 3단의 백두산 우주발사체를 발사했다(서방 국가에서는 대포동 미사일로 알려졌다). 발사 후 백두산의 1단과 2단은 성공적으로 떨어져나갔으나, 3단과 광명성 1호는 제대로 분리되지 않았다(추정). 그로 인해 광명성 1호는 잠시 발신음을 보내다 3단과 함께 북태평양으로 추락했다.

    9위를 놓고 다투는 나라 중에서 가장 처진 것이 한국인데 한국은 아직 우주발사체를 발사한 경험이 없다.

    [제2장|‘한국의 NASA’ KARI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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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궤도위성(위)이 남북으로 지구를 도는 사이 지구는 자전하므로, 저궤도위성은 지구상의 모든 곳을 내려다 볼수 있다. <br>반면 고고도 위성(아래)은 적도 상공에 떠서 지구 자전과 같은 속도로 움직이므로 지상에서 보면 항상 같은 위치에 떠 있는 정지위성이 된다.

    ‘미국 우주항공국’으로 번역되는 NASA(National Aeronautics and Space Administration)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NASA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부분 고개를 가로젓는다. NASA에 가장 근접해 있는 한국 기관은 KARI(Korea Aerospace Research Institute, 한국우주항공연구원)다.

    NASA는 행정기관인 ‘국(局)’이지만, KARI는 국무총리실 산하 연구기관에 불과하다. 그러나 장차 KARI가 독립 행정기관으로 발전할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KARI가 이미 단순한 연구기관을 넘어서 국가사업을 집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1년 1월30일 과학기술부는 전남 고흥군 봉래면의 외나로도에 우주센터를 짓기로 결정했는데, 이 사업을 맡아 추진하고 있는 것이 바로 KARI이다.

    미국의 우주개발을 지켜본 사람들은 달을 탐사하기 위해 1969년 아폴로 11호를 쏘아올린 케이프 커내버럴(일명 케네디우주센터) 기지나 1999년 12월21일 한국의 아리랑 1호 위성을 탑재한 토러스 우주발사체를 발사한 반덴버그우주센터를 기억할 것이다. KARI가 외나로도에 짓겠다고 한 우주센터는 한국의 케이프 커내버럴이나 반덴버그가 될 것이다.

    2005년 외나로도 우주센터 완공과 함께 KARI가 독자 개발한 KSLV-Ⅰ우주발사체에 실어서 쏘아 올릴 무게 100㎏ 정도의 위성은 지구를 남북으로 회전하는 이른바 ‘저궤도 위성’이다. 저궤도 위성은 지구상의 모든 곳을 내려다볼 수 있어 사진을 찍거나 관측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따라서 군사 목적의 정찰위성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은데, 미국의 군사용 정찰위성은 대개 해상도15㎝의 정밀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한다.

    사진은 ‘화소(畵素, pixel)’라고 하는 작은 점으로 상(像)을 만든다. 해상도가 15㎝라는 것은 가로 세로 15㎝인 물체가 한 개의 화소로 찍힌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화소로 찍힌 것은 형상을 분별해낼 수 있다고 한다.

    흔히 쓰는 노트도 가로 세로의 길이가 15㎝ 이상이므로, 미국의 군사용 정찰 위성(KH-12)은 거의 모든 것을 식별해낼 수 있다고 봐야 한다.

    저궤도 위성 중에는 위성사진을 원하는 국가나 기업에게 판매할 목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있는데 이런 위성을 ‘상업위성’이라고 한다. 현재 상업위성이 제공하는 가장 정밀한 사진의 해상도는 1m 정도. 10여 년 전만 해도 해상도 1m의 위성사진은 군사용으로만 쓰였으나 기술이 발달함으로써 지금은 상업용으로 판매되고 있다.

    상업용 위성은 대개 1.5t 이상이다. 이미 우주로 진입한 여덟 나라 중에서 저궤도 위성만 쏘아올리는 나라는 인도와 이스라엘이다.

    상업용 저궤도 위성을 지구 궤도에 올려놓았다면 다음 목표는 적도 상공에서 지구 자전과 같은 속도로 지구를 도는 ‘정지위성’을 발사하는 것. 지구 자전(自轉)에 맞춰 같이 돌기 때문에 지상에서 보면 항상 같은 자리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므로 ‘정지위성’으로 불린다.

    지구는 중력(重力)이 있어 근처에 있는 물체를 잡아당긴다. 때문에 지구 근처를 지나가던 유성은 지구 중력에 이끌려 별똥별로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지구로부터 3만5786㎞ 정도 떨어진 고도로 올라가면 지구가 당기는 중력과 우주의 다른 천체가 당기는 중력이 거의 균형을 이뤄 안정적으로 떠 있는 상태가 된다.

    이러한 곳에서는 약간의 동력만 있으면 지구 자전에 맞춰 똑같이 회전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정지위성이다. 정지위성의 무게는 2~4t으로 저궤도 위성보다 훨씬 무거우므로 보다 큰 우주발사체로 쏘아 올려야 한다(정지위성인 무궁화 3호는 2.8t).

    적도 상공에 떠 있는 정지위성이 어느 한 지역(국가)을 향해 방향을 잡으면 그 지역의 방송과 통신은 난청지역이 없어진다. 이 원리는 매우 간단한데 방송파나 통신전파를 이 위성을 향해 발사해 위성에서 반사시키면, 그 지역에서는 깊숙한 동굴이나 지하에 들어가 있지 않는 한 어디를 가든 방송파와 통신전파를 깨끗이 받을 수 있다. 때문에 고고도 정지위성은 방송과 통신용 위성으로 활용되고 있다.

    덩치가 큰 위성을 3만5786㎞라는 고고도로 올리려면 저궤도 위성을 올릴 때보다 훨씬 더 어려운 기술이 요구되는데, 현재는 일본과 프랑스가 정지위성을 띄우는 수준에 도달해 있다(영국은 우주발사체 사업을 포기했다).

    저궤도→정지→有人→深宇宙

    정지위성 발사에 성공하면 다음으로는 ‘유인(有人) 우주선’이나 ‘우주정거장’을 발사한다. 유인우주선이나 우주정거장은 사람이 타므로 위성보다 훨씬 더 덩치가 커진다.

    현재 유인우주선과 우주정거장을 쏠 수 있는 나라는 미국과 러시아뿐인데 최근 중국이 선저우(神舟) 4호 우주발사체를 이용해 유인우주선을 쏘아 올린다는 계획을 확정했다.

    유인우주선이나 우주정거장, 그리고 정지위성과 저궤도 위성의 공통점은 비록 대기권 밖이긴 하지만 모두 지구 범위 안에서 활동한다는 것. 그러나 기술을 한 단계 발전시키면 지구 범위를 벗어나 외계로 우주발사체를 보낼 수도 있다.

    지구권 밖의 외계를 ‘심우주(深宇宙, Deep Space)’라고 하는데 현재 심우주에 대한 탐험은 미국이 독점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시아는 비너스 3호를 금성에 착륙시킨 바 있다. 미국은 바이킹 우주선을 화성에 착륙시킨 데 이어 보이저 우주선을 토성·해왕성·천왕성을 향해 보냈다. 그러나 미국과 쌍벽을 이루던 러시아의 우주산업은 러시아 경제가 모라토리엄 상태로 떨어지면서 동반 추락했다.

    러시아는 수많은 자금이 들어가는 우주 탐험을 중단하고 오히려 갖고 있는 우주 기술을 팔아 경제를 살리는 데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가 우주 기술을 수출하면서부터 세계 우주시장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경쟁이 치열해지면 위성을 쏘아 올리는 가격이 낮아지고, 가격이 낮아지면 위성을 띄워보겠다는 기업이 늘어나므로 ‘박리다매(薄利多賣)’ 형식으로 우주산업 시장이 커지게 된다.

    그 덕분에 후발국인 한국은 러시아로부터 기술을 도입해 보다 넓어진 우주산업 시장 진출을 꿈 꿀 수 있게 되었다. 러시아의 경제 붕괴는 역설적으로 세계의 우주산업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거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왜 우리가 우주산업을 해야 하는가?”란 원초적인 의문을 갖고 있다. 그 대답은 지난 3월 발생한 이라크전에서 찾을 수 있다. 전쟁이 일어나자 이 전쟁을 주도한 미국의 중부군 사령부는 상세한 전황 브리핑을 하지 않았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였다.

    전황 브리핑에서 나오는 정보가 이라크측에 흘러가면 작전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중부군 사령부는 의도적으로 브리핑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은 이라크로 쳐들어간 미군이 어떻게 작전하는지 ‘자기 눈으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들은 어떻게 이라크전 상황을 살펴보았던 것일까. 그 답은 ‘지상 관측용 저궤도 위성으로 지켜보았다’이다.

    한국은 우주센터는커녕 우주발사체도 없는 나라인데 어떻게 저궤도 위성을 갖고 있는가. 세상에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적지 않다.

    1995년 8월 KARI는 미국의 유명한 위성 제작회사인 TRW사에 9200만달러를 지불하고 기술을 배워가며 공동으로 저궤도 위성인 아리랑 1호를 제작했다. 그리고 1999년 12월21일 미국 오비탈(Orbital)사가 제작한 토러스(Taurus : 황소자리)라고 하는 우주발사체에 실어 이를 고도 685㎞ 지구 궤도에 진입시켰다.

    아리랑 1호에는 지구를 촬영하는 전자광학카메라(EOC: Electro Optical Camera)와 해양 관측 장비, 우주 데이터 수집 장비 등이 탑재돼 있다. 때문에 아리랑 1호는 다목적 위성으로 불린다.

    한국의 국방부와 합참·국가정보원은 아리랑 1호가 실시간으로 이라크 전황을 찍은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아리랑 1호가 없었다면 한국은 미국이 정보를 제공해줄 때까지 ‘까막눈’으로 있어야 했을 것이다. 한 소식통은 “아리랑 1호 덕분에 한국은 이라크전이 조기에 끝날 것을 알고 파병을 서두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리랑 1호에 탑재된 전자광학카메라의 해상도는 6.6m이다. 지금 상업용 위성이 해상도 1m의 사진을 판매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아리랑 1호의 사진은 형편없는 것이다.

    더구나 아리랑 1호의 전자광학카메라는 야간이나 구름이 낀 날에는 전혀 촬영하지 못한다. 야간에 사진을 찍으려면 지구를 환하게 비출 수 있는 엄청난 ‘플래시’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플래시는 없다. 흐린 날에는 허연 구름만 찍히므로 지상을 촬영하지 못한다.

    전자광학카메라가 안고 있는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지상으로 레이더파를 발사한 다음 돌아오는 레이더파를 분석해 사진을 만드는 SAR (Synthetic Aperture RADAR : 合成 開口 레이더) 및 적외선 사진을 찍는 IR 장비를 개발했다.

    지난 3월28일 일본의 우주개발사업단(NASDA)이 가고시마(鹿兒島)현 다네가시마(種子島) 우주센터에서 발사한 H2-A 우주발사체는 해상도 1m의 광학센서(전자광학카메라의 일종)를 탑재한 저궤도 위성과 SAR 장비를 탑재한 저궤도 위성을 동시에 지구 궤도에 진입시켰다.

    이 두 위성이 작동한 첫 무대는 이라크전이었다. 일본은 두 위성이 보내온 자료로 이라크 전황을 상세히 알았기 때문에 자위대를 파병하는 법안을 만든 것은 아닐까. 그리고 지금은 북한을 손금 보듯이 내려다보고 있지 않을까.

    돈만 있으면 해상도 1m의 위성사진을 살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세상 걱정이 없는’ 평화시에나 가능한 이야기다. 상황이 급박해지면 누구도 절친한 동맹국이 아닌 한 자기의 ‘천리안(千里眼)’을 마구 빌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은 해상도 6.6m의 전자광학카메라로 북한을 보지만 일본은 해상도 1m의 광학센서와 SAR 장비로 북한을 들여다본다. 미국은 KH-12 군사 정찰위성으로 해상도 15㎝의 사진을 찍고 있다. 미국이 독수리 눈 수준인 5.0의 시력으로 세상을 살펴본다면, 일본은 2.0, 한국은 0.5의 시력으로 세상을 살피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급한 대로 ‘돈’을 써서 자기 위성을 띄웠지만, 북한은 모든 것을 자력으로 해보려다 실패했다. 1998년 8월31일 북한은 자체 제작한 광명성 1호 위성을 지구 궤도에 올리려고 백두산 우주발사체를 발사했으나, 광명성 1호와 3단 로켓이 분리되지 않아 실패했다. 설사 광명성 1호가 지구 궤도 진입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그 크기가 50㎏밖에 되지 않아, 지상 촬영 장비는 싣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답답함을 북한은 상대적으로 미북 관계가 좋았던 클린턴 정부 시절 표출한 바 있었다. 2000년 10월23일 김정일(金正日)은 평양을 방문한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을 만나 “미사일(혹은 우주발사체) 개발을 중지할 테니 대신 북한을 위해 위성을 대리 발사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요구를 미국이 받아들여 2000년 11월3일 말레이시아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미국과 북한의 미사일 전문가들이 만나 ‘북한이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이 북한의 위성을 대리 발사해주는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그러나 부시 정부가 들어서며 이 논의는 중단되었고,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난 후로 재개 가능성은 ‘제로’가 되었다.

    위성을 쏘아 올리는 또 하나의 이유는 유사시를 대비하는 것. 우주발사체와 탄도미사일은 비유하자면 사촌 관계에 있다. 저궤도 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는 나라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개발할 능력이 있고, 고고도의 정지위성을 쏘아 올리는 나라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쏠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고 한다.

    대량살상무기(WMD)의 확산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1987년 탄생한 MTCR (Missile Technology Control Regime: 미사일 기술 통제 체제)은 사거리 300km, 탄두중량 500㎏급 미사일의 수출과 기술 이전을 금지하고 있다. 단 평화용인 우주발사체를 제작하는 경우라면 MTCR 회원국에 한해서 기술 이전을 허가하고 있다. 따라서 ICBM을 보유하지 못한 나라들은 우주발사체 개발을 통해 한편으로는 우주산업을 발전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사시를 대비하는 이중 전략을 택하고 있다.

    동북아에서 일본의 전통적인 라이벌은 중국과 러시아다. 일본은 청일전쟁과 중일전쟁,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중국과 싸웠고, 러시아와는 러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때 맞붙었다.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붕괴됐다고 해도 여전히 많은 ICBM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을 가격할 수 있는 ICBM을 20기 갖고 있다. 그러나 2차 대전 패전 국가인 일본은 단 한 기의 ICBM도 없다.

    日, ICBM 개발 능력 보유

    지난 3월28일 저궤도 위성을 성공적으로 쏘아 올리기 전인 2001년과 2002년 사이 일본은, 실용(실험)위성을 탑재한 H2-A 우주발사체를 네 차례 발사해 탑재한 위성을 궤도에 올려놓는 데 모두 성공했다.

    이때 H2-A 우주발사체는 저궤도 위성을 떨군 후 다시 상승을 거듭해 적도 상공 3만5786㎞에 정지위성을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저궤도 위성과 정지위성을 동시에 궤도에 진입시킨 것이다. 일본이 두 개의 위성을 동시에 쏘아 올린 것은 다탄두 ICBM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음을 의미한다.

    비록 MTCR이 회원국에 한해 기술 이전을 허락하고는 있지만 자기 나라를 넘보는 데 쓰일 수 있는 기술을 선뜻 넘겨줄 나라는 없다. 한국은 이러한 현실을 돌파할 대책이 있는 것일까.

    2004년 말까지 KARI는 흑백 인화시 해상도 1m, 컬러 인화시 해상도 4m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전자광학카메라(MCS)를 이스라엘과 공동으로 개발해 아리랑 2호에 탑재한다. 그리고 이 위성을 러시아의 로콧(Rocot) 우주발사체에 실어 지구 궤도에 진입시킬 예정이다.

    아리랑 2호는 KARI가 주도적으로 설계하고 개발한 것이지만, 그 원천(源泉)기술은 아리랑 1호의 설계 기술을 제공한 미국 TRW사의 것이다. 위성에 탑재하는 자이로 등 핵심 부품도 미국에서 구입한다.

    중국의 장성공사(長城公司)가 운영하는 장정(長征)-2C 우주발사체는 비교적 싼 값에 위성을 띄워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2001년 10월 KARI는 장성공사와 아리랑 2호 발사 계약을 맺었는데 그러자 미국이 자이로 등 핵심부품의 판매를 거부했다.

    이에 대해 KARI가 “왜 판매를 거부하느냐”고 묻자 미국은, “우리 부품을 탑재한 위성이 중국의 우주발사체에 실리는 것이 싫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KARI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묻자, 미국은 “장정 로켓에만 싣지 않는다면 팔 수 있다”고 답변했다.

    미국은 소련이 붕괴된 후 중국을 잠재적인 라이벌로 여겨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미국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KARI는 결국 계약금을 날리며 중국과 해약하고, 미국의 영향권 안에 있는 러시아의 로콧측과 새로 계약을 맺었다.

    東北亞 우주대전

    지난 3월 이라크전 전황을 촬영해 한국군과 국정원에 제공했던 아리랑 1호의 모습.

    미국이 장정-2C에 아리랑 2호 탑재를 반대한 것은 아리랑 2호에 담긴 기술 수준이 높기 때문이었다. 아리랑 2호급 위성이 두 개 있으면 한국은 단 시간 내에 한반도 입체 지도를 완성할 수 있다. 입체 지도에서는 모든 산의 높이가 정확히 측정되는데, 산 높이는 크루즈 미사일을 발사할 때 핵심자료가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주요 국가들은 자국의 위성은 자국의 우주발사체로 발사한다는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예외적인 경우가 유럽인데, 유럽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15개국이 주주로 참여한 ESA(European Space Agency, 유럽우주청)를 만들었다. 그리고 과거 프랑스가 주도적으로 개발해온 ‘아리안-5’ 우주발사체에 자국의 위성을 실어 발사하고 있다. 이는 EU(유럽연합)를 만들 정도로 유럽 각국간 상호 신뢰가 높기 때문에 가능했다.

    東北亞는 19세기의 유럽

    그렇다면 일본과 중국이 대주주가 되고 한국은 소주주로 참여하는 동북아우주청을 만들 수는 없을까. 전문가들은 현재로서는 “난망(難望)”이라고 잘라 말한다.

    국제정치학자들은 “지금의 동북아는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각국간 경쟁이 치열했던 19세기의 유럽과 비슷하다. 동북아에서 미국이라는 슈퍼파워가 빠진다면, 청일전쟁과 중일전쟁을 치렀던 중국과 일본 간에 냉전 혹은 열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또 러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맞붙었던 러시아와 일본 간의 갈등도 재연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 남·북한 대립과 중국·대만 간의 라이벌관계, 1979년 2월 전쟁을 치른 중국과 베트남 간의 갈등 등을 고려하면, 동북아우주청을 만드는 것은 요원하다는 것이 이들의 단언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이유 때문에라도 한국은 독자적으로 우주산업을 벌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이 우주산업을 해야 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이 산업이 미래의 한국 경제를 이끄는 ‘성장 엔진’이 될 가능성때문이다.

    우주산업은 십수 년 후에는 여러 가지 파생산업을 만들며 번창할 가능성이 높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로는 세계적인 이동통신망 구축 사업이 거론된다. 이 사업은 고고도 정지위성을 이용한 통신과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적도 상공의 고고도에 떠 있는 정지위성은 특정 지역만 향하고 있으므로 특정 지역에 한해서만 최고의 통화품질을 제공한다. 하지만 다른 지역, 특히 지구 반대편에 있는 지역과는 연결될 수 없다는 약점이 있다.

    그런데 지구를 남북으로 도는 저궤도 위성을 수십 개 띄우고 이를 네트워크화하면, 저궤도 위성들은 전지구를 커버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저궤도 위성을 중계지로 삼아 이동전화를 사용한다면, 전세계는 단일 이동통신망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통신회사인 모토로라는 이리듐 컨소시엄이라는 세계적인 이동통신망 회사를 세웠다. 그리고 66개의 저궤도 위성을 발사해 전세계 단일 이동전화망을 구축한다는 사업을 추진했으나, 1999년 가입자 확보가 여의치 않아 이 회사를 파산시킨 바 있다.

    전세계를 단일 이동전화망으로 엮는 사업은 언제든 재개될 가능성이 높다. 그로 인해 66개의 위성이 발사된다면 세계의 우주산업계는 때아닌 특수를 누리게 된다.

    이 위성은 3~4년이면 수명이 다해 소실되므로 3~4년 주기로 새로운 위성을 띄워 교체해주는 사업이 뒤를 잊게 된다. 이런 식으로 후속사업이 속출한다면 우주산업의 미래는 장밋빛이다.

    2001년 5월 미국의 갑부인 데니스 티토는 2000만달러를 주고 러시아의 우주정거장(ISS)에 가서 8일간 머물다 돌아오는 우주관광을 했다. 2002년 4월25일에는 남아공의 갑부인 아크 셔틀워드가 역시 2000만달러를 내고 ISS 관광을 다녀왔다.

    2002년 7월 미국의 스페이스 어드벤처라는 관광회사는 2005~6년경 출발을 목표로 600명의 우주관광객을 모집한다고 밝힌 바 있다. 우주관광은 현재로서는 요원한 것 같지만 생각보다 빨리 보편화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점에서 우주산업은 한국이 의지를 갖고 투자해볼 만한 벤처 사업이다. 1970년대 한국이 다소 무리하게 추진했던 자동차와 반도체 산업이 현재 한국 경제를 이끄는 핵심 엔진이 되었다. 우주산업 관계자들은 이제 2010년 이후 경제를 이끌 성장 엔진으로서 한국은 자력으로 우주산업을 일으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2002년 11월28일 KARI는 액체 로켓인 KSR-Ⅲ를 시험발사했는데 많은 사람들은 KSR-Ⅲ를 우주발사체로 잘못 알고 있다. KARI가 만들려고 하는 우주발사체는 KSLV이고, KSR-Ⅲ는 우주발사체를 만들기 위한 실험용 액체로켓이다.

    비행기는 산소가 있는 하늘을 날아가나, 로켓은 공기가 없는 우주를 비행한다. 따라서 로켓은 자체에 산소를 싣고 날아가야 한다. 산소를 포함한 연료를 싣는 방법에는 액체로 싣는 것과 고체로 싣는 것이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산소를 많이 싣는 것이다.

    산소는 기체이지만 영하 183℃ 이하에서는 부피가 현저히 줄어들며 액체가 된다. 로켓은 이렇게 부피가 줄어든 액체연료를 주로 사용한다.

    그러나 액체산소는 물성(物性) 변화가 심해 발사 직전 로켓에 충전(充塡)해주어야 한다. 충전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뿐 아니라 잘못 다루면 기화하면서 큰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액체산소는 분초를 다투며 발사해야 하는 미사일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현무는 고체, 노동은 액체 미사일

    액체연료가 갖고 있는 이러한 문제를 없앤 것이 고체연료다. 고체연료는 물성 변화가 적고 충전 과정 없이 바로 점화할 수 있어 군사용 미사일에 주로 쓰인다. 그러나 액체연료보다 고가이고 효율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일부 미사일은 액체연료를 탑재하기도 한다. 미국의 경우도 공군이 지상기지에 보관하고 있는 ICBM에는 액체연료를 사용한다. 지상기지에서는 액체연료를 안전하게 다룰 수 있고 공간에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공간이 좁은 해군의 전략핵잠수함은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SLBM을 탑재한다.

    북한이 보유한 스커드-B와 화성-5호 미사일(서방국가에서는 노동미사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백두산 우주발사체는 액체연료를 사용한다. 반면 한국이 개발한 현무 미사일은 고체연료를 사용한다. 따라서 남북한이 동시에 사격 준비에 들어간다면 먼저 불바다가 되는 쪽은 북한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약점 때문에 북한은 미사일을 선제사격용으로 사용하려고 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즉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화성-5호 미사일(노동미사일)에 액체연료를 충전한 다음 이 미사일을 발사함과 동시에 전쟁을 개시하는 것이 북한의 전략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주발사체는 분초를 다투며 발사할 필요가 없으므로 보다 효율적인 액체연료를 사용한다. KSR-Ⅲ는 KARI가 제작한 첫 번째 액체연료 로켓인데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눈 밝은 독자라면 KSR-Ⅲ가 첫 번째 액체로켓이라면 KSR-Ⅰ과 Ⅱ는 어떤 로켓이었냐는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KSR-Ⅰ은 1단 고체로켓으로 1993년 6월8일 처음 발사되었다. KSR-Ⅰ은 KARI가 만든 첫 번째 로켓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KSR-Ⅱ는 2단 고체로켓으로 1998년 6월 발사돼 단(段) 분리를 실험해봤다. 다음 것이 액체로켓인 KSR-Ⅲ인데 모두 세 개가 만들어졌다.

    첫 번째 KSR-Ⅲ는 각 회사에서 제작해온 부품을 모아 설계한 대로 조립이 되는지 시험하는 데 쓰였다(엔지니어링 모델). 완벽하게 조립이 된다고 판단되자 다시 부품을 모아 KSR-Ⅲ를 조립한 다음, 지상에서 로켓을 점화하는 실험을 벌였다. 이 실험에 성공하자 KARI는 용기를 갖고 다시 KSR-Ⅲ를 조립해 실제로 발사했는데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일본이 33년 걸린 일을 한국은 10년 만에

    KSR-Ⅲ는 수직이 아닌 경사각으로 발사되었다. 그 목적이 발사 여부를 알아내는 데 있었기 때문인데, 만약 이것이 우주발사체라면 수직으로 발사해야 한다. 우주발사체나 ICBM을 수직으로 발사하는 것은 최단시간 내에 중력이 강한 대기권을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다. 경사각으로 발사하면 그만큼 대기권 내에서의 비행시간이 길어져 연료 소모가 많아지므로 비행할 수 있는 거리가 짧아진다.

    외나로도 우주센터가 건설되는 동안 KARI는 KSLV를 설계해 각 공장에 부품 제작을 맡기고, 이 부품을 모아 조립해 지상점화시험 등을 벌인다. 그리고 2005년 외나로도 우주센터가 완공되면 여기에 100㎏짜리 소형 위성을 실어 실제로 KSLV-Ⅰ을 수직발사해보는 것이다. 이것이 성공하면 더 큰 위성을 실을 수 있도록 KSLV를 개량해 2010년 1t급 저궤도 실험위성을 KSLV-Ⅱ에 실어 발사한다. 그리고 2015년에는 상업용 1.5t급 저궤도 위성을 탑재한 KSLV-Ⅲ 우주발사체를 쏘아 올리는 것이다.

    東北亞 우주대전

    한국의 중화학공업과 방위산업을 발전시킨 오원철씨(왼쪽)와 한국을 통신·정보대국으로 이끈 오명씨(가운데). 오원철과 오명씨는 대표적인 과학행정가로 꼽힌다. KARI의 채연석 원장(오른쪽)은 그 뒤를 이어 새로운 과학행정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니까 KSLV-Ⅰ이 발사되는 한국의 2005년은, 23.8㎏의 오수미 위성을 실은 람다-4S-5 우주발사체를 발사한 일본의 1970년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은 일본에 35년 뒤져 있는 셈이다. 2015년 한국이 예정대로 1.5t의 저궤도 위성을 실은 KSLV-Ⅲ 발사에 성공한다면 이것은 비슷한 크기의 위성을 실은 H2-A 발사에 성공한 일본의 2003년이 된다. 이때의 한·일간 격차는 12년으로 줄어든다.

    일본은 1970년에 꾼 꿈을 33년이 지난 2003년에야 실현했다. 그런데 한국은 2005년에 꿈을 꾸고 10년 후인 2015년에 현실화하겠다는 목표를 정했다. 한국은 과연 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상당수 전문가들은 “매우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라면서도 “반드시 달성해야 한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면서 이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회고한다. 박 전 대통령은 군사독재로 국민의 희생을 강요해가며 선진국보다 한 세기 늦은 산업화를 불과 20~30년 만에 완성시키는 압축성장을 이끌어냈다. 이들은 한국 경제가 이룬 압축성장의 기적을 우주산업에서도 다시 한번 만들어내자고 다짐하고 있다.

    꿈은 야멸차지만 현실은 어떨까. 현재 한국의 연간 국방비는 일본의 3분의 1 수준. 그러나 우주산업 예산은 일본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박정희 시대의 압축성장은 박정희라는 지도자가 18년 동안 권력을 쥐고 지속적으로 몰아붙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5년마다 지도자가 바뀌어 정책의 지속성이 유지되기 어렵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인치(人治)가 아닌 법치(法治)로 우주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2002년 12월 일본은 우주개발사업단(NASDA), 우주과학연구소(ISAS), 항공우주연구소(NAL)로 나눠져 있던 우주산업 기구를 통합해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라는 JAXA(Japan Aerospace Exploration Agency)를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하루빨리 KARI를 행정기관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두 번째로 강조하는 것은 과학 행정가의 출현이다. 1970년대 한국은 방위산업과 중화학공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는데 그 뒤에는 오원철(吳源哲) 대통령제2경제수석이라는 걸출한 과학 행정가가 있었다. 당시 오수석은 9년간 방위산업과 중화학공업을 맡아 엄청난 파워로 밀어붙였다. 오수석 밑에서 일한 사람들은 “그때 암에 걸리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라며 오수석의 추진력을 회고한다.

    한국이 세계적인 통신·정보 대국으로 올라서는 인프라를 만든 과학 행정가는 오명(吳明) 전 체신부장관이었다. 오원철 수석이 목표를 향해 줄기차게 달려가도록 채찍질하는 카리스마형 과학 행정가였다면, 오명 장관은 자근자근 설명해 반발하는 부하나 훼방꾼들을 이해시킨 후 결국 따라오게끔 만드는 독특한 리더십을 소유한 과학행정 관료였다.

    시대가 변모한 만큼 우주산업을 발전시키려면 오명 장관보다 훨씬 더 세련된 리더십을 가진 과학 행정가가 출현해야 한다. 이러한 기대는 현재 KARI를 맡고 있는 채연석(蔡連錫) 원장에게 부과되는 첫 번째 책무이기도 하다.

    東北亞 우주대전

    외나로도와 모슬포, 그리고 다네가시마의 발사 방위각 비교

    이제 KARI가 건설하려고 하는 외나로도 우주센터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M-16에 비유하자면 우주센터는 ‘M-16 소총’이고 우주발사체는 ‘총알’이라고 할 수 있다. M-16을 거론하면 대개 소총을 떠올리지 총알을 연상하지는 않는다. 이와는 반대로 우주산업을 거론하면, 우주발사체만 생각하고 우주센터의 중요성은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우주발사체는 발사 후 100초가 지나면 1단 로켓이 떨어져나가고, 300초쯤 지나면 2단이 떨어진다. 이때 떨어지는 로켓은 자유낙하하는데 ‘정말로 재수가 없는 사람’은 이에 맞아 즉사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대체로 바닷가에서 바다를 향해 우주발사체를 발사한다.

    1단 로켓은 발사지로부터 200~300㎞ 떨어진 바다에 떨어지는데 이러한 연안은 어선이 많이 몰리는 황금어장인 경우가 있다. 우주발사체는 이륙 도중 잘못돼 폭발할 수도 있으므로 우주센터는 가급적 어선이 드문 바닷가에 짓는 것이 좋다. 일본의 다네가시마 우주센터나 미국의 케이프 커내버럴 우주센터·반덴버그 우주센터는 모두 어선이 적은 바닷가에 자리잡고 있다.

    외나로도에서 발사된 우주발사체는 제주도를 지난 후 1단을 떨어뜨리는데 이곳은 대표적인 황금어장이다. 또 만에 하나 우주발사체가 폭발해 추락할 것에 대비해 우주발사체가 지나갈 궤적 밑으로는 일정 시간 동안 배의 출입을 막아야 한다. 그러나 외나로도와 제주도 사이는 우리나라 최고의 어장이다.

    “설날이나 추석날 발사하라”

    과거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현무 미사일을 개발한 사람들은 “현무를 시험발사할 때 미리 언제부터 언제 사이에는 ○○수역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계도하고 실제 시험발사하는 날 해군과 해경 함정을 출동시켜 어선을 통제했다. 그런데도 그 수역에서 조업하는 어선이 있었다. 참다 못해 해군이 빨리 나라가는 뜻으로 위협사격을 가해도 어민들은 ‘설마 우리를 쏘랴’하며 조업을 계속했다. 어선 통제는 정말 골치 아픈 일이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이와 똑같은 일이 외나로도와 제주도 사이의 바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 전문가는 “아마 어선이 가장 적게 나오는 것은 추석과 설날일 것이다. 외나로도 우주센터는 설날과 추석날 우주발사체를 쏘아야 할지도 모른다”며 농담 같은 충고를 던져주기도 했다.

    외나로도가 안고 있는 또 하나의 약점은 발사 방위각이 좁다는 것이다. 국제 관계상 외나로도 우주센터는 일본 본토 쪽으로 우주발사체를 쏠 수 없다.

    1998년 8월31일 북한은 사전 통보 없이 백두산 우주발사체를 일본 열도 쪽으로 발사했다가 일본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최근 일본이, 일본을 방문한 납북 일본인을 돌려보내지 않고, 일본을 출입하는 북한 상선에 대해 대대적인 단속에 들어간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일본 열도는 홋카이도(北海島)에서부터 오키나와(沖繩)를 지나 타이완까지 이어져 있어 외나로도에서 쏜 우주발사체는 일본 열도의 어딘가를 지나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은 발사를 하기 전에 일본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외나로도에서 우주발사체를 쏠 수 있는 각도는 규슈(九州) 남단에서 오키나와로 이어지는 류쿠(琉球) 열도 사이로 한정되고 만다.

    우주발사체의 궤적을 추적하는 데도 일본과 미국의 협조를 얻어야 한다. 다네가시마에 건설된 일본 우주센터는 한국 우주발사체의 궤적을 추적할 수 있는 첫 번째 중계지이다. 일본은 적도 부근에 있는 크리스마스 섬에 땅을 임차해 그들이 쏜 우주발사체와 위성을 추적하는 중계소를 건설했는데, 이 중계소 또한 같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 섬을 제외하고는 일본 또한 미국이 건설한 중계소에 추적을 의뢰하고 있는 실정이다.

    東北亞 우주대전

    2002년 11월28일 경사각으로 발사되는 한국의 액체로켓 KSR-Ⅲ(왼쪽)와 2003년 3월 수직으로 발사되는 일본의 H2-A 우주발사체

    한국의 우주산업을 발전시키려면 한미일 공조는 필수적인 것이다. 여기서 시야를 돌려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읍 모슬포를 살펴보자. 이곳에는 일제시대 때 일본군이 주둔한 50만평 정도의 비행장이 있는데, 이 땅은 국방부(공군) 소유의 국유지로 전환되었다. 우주센터를 짓는 데는 1차로 150만평 정도가 필요하므로 이곳에 우주센터를 짓는다면 100만평만 추가 매입하면 된다.

    또 지도에서 보듯이 모슬포는 외나로도보다 훨씬 더 발사 방위각이 크다는 장점이 있다. 어선이 드문 곳을 골라 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모슬포 남쪽은 외나로도와 제주도 사이처럼 어선이 붐비는 바다가 아니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모슬포를 최고의 우주센터 후보지로 꼽았고 KARI 역시 모슬포 우주센터 안을 적극 추진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제주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쳤다. 우주센터 부지를 결정할 당시 제주도에서는 ‘평화의 섬’ 건설안과 대정읍에 송악산 관광단지를 짓는다는 안이 마련돼 있었다.

    지역 주민들은 우주센터가 들어서면 평화의 섬 이미지를 잃게 되고, 위락단지 사업도 못하게 된다며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국익을 위한 국가사업이 지역주민들의 이익에 밀려난 것이다. 이를 두고 우주분야 전문가들은 KARI가 당시 너무 쉽게 무릎을 꿇은 게 아니냐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전문가들은 제주 주민들의 반대는 단견이었다고 지적한다. 모슬포 안이 무산된 후 전국의 11개 지방자치단체는 2000억원 정도의 건설비가 투입될 우주센터를 유치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특히 남해도에 있는 경남 남해군과 외나로도를 갖고 있는 전남 고흥군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남해군에서는 당시 김두관(金斗官·현재 행정자치부 장관) 군수와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 의원이 협조해 우주센터를 유치하려고 했다. 고흥군에서는 유상철(劉相哲) 군수가 민주당 실세인 박상천(朴相千) 의원을 내세워 뛰어다녔다.

    외나로도는 발사 방위각이 남해도보다 훨씬 더 크다. 남해도에는 금산과 상주해수욕장 등 관광지가 있어 주민이 많고 땅값이 비싼 데 비해 외나로도에는 관광지가 없어 주민이 적고 땅값도 남해도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점 때문에 외나로도는 더 높은 점수를 얻어 우주센터를 유치하게 되었다.

    우주법 제정과 공군의 참여

    외나로도 우주센터 안이 확정된 후 제주도의 송악산 관광단지 사업은 흐지부지 미뤄졌다. 그러자 일부 제주 주민들이 모슬포 우주센터안에 반대한 것은 단견이었다며 아쉬워했다. 전문가들은 “KARI가 좀더 강한 의지를 갖고 모슬포 우주센터 안을 추진했어야 했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우주센터 건립과 관련해 또 하나 검토해야 할 것은 ‘우주법(宇宙法)’ 제정이다. 이 법에는 우주발사체를 쏠 때는 어선과 비행기를 강제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는 조항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UN을 비롯한 국제기구는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다섯 가지 국제협약을 만들어놓았다. 이중 한국은 ‘달(月) 조약’을 제외한 4개 조약에 가입했다. 국제법인 국제조약은 국내법보다 우선하므로 우주법은 국제법이 규정한 한계 내에서 입법되어야 한다.

    한국형 우주발사체(KSLV)가 완성되고 위성 발사가 본격화할 경우 KARI의 최대 고객 중 하나는 공군이 될 전망이다. 미국에서도 보잉이나 록히드마틴·오비탈 같은 우주발사체 사업자들의 최대 고객은 미국 공군이다. 미 공군은 여러 종류의 저궤도 정찰위성뿐만 아니라 수많은 GPS(범지구측위) 위성을 띄우고 있다.

    한국 공군 또한 ‘우주군 건설’을 모토로 내걸고 정찰위성을 띄우는 등 우주를 이용한 다양한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대부분의 우주센터가 공군기지에 들어서 있는 점 등에 비춰볼 때, 외나로도 우주센터가 완공되면 이곳의 방어는 육군보다는 공군이 맡는 것이 좋을 것이다. 따라서 KARI와 공군 간의 협조는 강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KARI는 공군과 전혀 업무 협조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KARI나 과학기술부는 우주산업을 위한 예산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국방부나 공군의 지원을 받아 공동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는데, 이 부분이 ‘공백’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몇몇 전문가들은 “우주발사체 사업은 평화 목적이기 때문에 군과 협조하는 데는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미사일로의 전환이 아닌 한 군과의 협조엔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이 다수 의견이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은 안팎으로 거센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그의 시대에 우주산업과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선정으로 압축되는 원자력사업이 순항한다면 그는 2020년대의 성장엔진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KARI는 동북아의 스타워즈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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