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이 화가 난 이유는 간단했다. 후보 시절부터 ‘자주국방’이라는 화두를 내걸고 국방비 증액을 공약으로 약속한 것은 사실이지만 ‘올해 3.2%, 장기적으로는 3.5%’라는 구체적인 방침을 재가한 적은 없기 때문. 더욱이 기획예산처 등 관계부처와의 조율은 물론 예산 전체에 대한 심의작업도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한마디로 ‘국방부가 자신의 안을 밀어붙이기 위해 ‘플레이’를 한다’는 것이 청와대와 대통령직속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의 분위기였다.
사실 노대통령의 진노에는 뿌리가 있다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미 국방부는 5월6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자주국방비전’에 관한 대통령 보고에서도 3.5%안을 건의한 바 있었다. 이 자리에서 조장관은 정찰위성, 공중조기경보통제기(E-X), 3000t급 중(重)잠수함, 공중급유기, 대형상륙함, 장거리 지대지미사일 등의 조기확보를 위해 파격적 예산증액이 불가피하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은 이러한 내용의 보고서에 대해 재검토를 지시했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말한다. “우리 스스로 안보결정권을 가지기 위한 장기방안으로 자주국방 보고서를 만들라고 했더니, 전략적 비전과 실행플랜 대신 값비싼 무기도입 계획만 늘어놓았다”는 것. 이에 따라 현재 국방부는 두 번째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국방비 증액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국방부발 보도가 줄줄이 이어졌다는 점도 문제였다. 익명의 ‘군 관계자’들 의견과 한국국방연구원(KIDA) 등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에서 작성한 통계수치들이 함께 제시됐다. 이에 대해 NSC 사무처 고위인사가 국방부측에 ‘자제하라’는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는 것. 그런 와중에 국방장관의 국회 답변내용이 뇌관을 건드린 것이다.
결국 대통령은 조장관을 직접 호출해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한다. 국방비 증액과 관련해서는 “GDP 대비 3% 이내에서 맞추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기본예산은 2.8~2.9% 선에서 결정하고, 주한미군 기지이전비용 2400억원 등을 합해도 3%를 넘기지 않도록 한다는 방침이라고 한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올해 경제성장률이 당초 예상에 훨씬 못 미칠 것이 확실시되고 있는 까닭에 실질적인 국방예산 증가분은 전년대비 10%를 넘기기 쉽지 않다”며 “일이 국방부 뜻대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떠오르는 실세 NSC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방탄조끼를 입고 근무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대통령과 NSC, 국방부 사이에서 들려오는 일련의 ‘파열음’에 대해 묻자, 한 청와대 관계자가 들려준 말이다. 상황이 어느 정도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뼈 있는 농담’이었다. 기자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길래 그러느냐”고 묻자 그는 한참 동안 가만히 있다가 “무엇을 상상하든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그 이상”이라고만 덧붙였다.
NSC는 새 정부의 외교·안보·국방 분야 정책을 종합, 조정한다는 취지하에 지난 3월 확대 강화된 노무현 정부 청와대의 핵심기구다. 특히 12명이던 직원을 3실 1센터 69명 규모로 확대한 사무처의 경우 실질적인 안보정책을 기획하는 수준으로 업무와 기능을 대폭 확대했다. 이에 대해 “NSC(사무처)가 대통령의 핵심브레인 기능을 맡게 됐다”며 “안보 현안에 있어 대통령의 뜻을 관철하는 전진부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쏟아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