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8월호

국방부·NSC ‘파워게임’ 에 안보전선 비상등

이견 노출, 정보보고 누락, 조정기능 표류

  • 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03-07-28 19: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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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여정부 국방비전의 핵심원칙이라는 ‘자주국방론’의 실행방안을 놓고 국방부와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가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있다.
    • ‘안보 현안의 기획·조정자’인 NSC와 ‘안보정책 집행의 핵심’인 국방부 사이에는 지금 무슨 일이 벌이지고 있는가.
    국방부·NSC ‘파워게임’ 에 안보전선 비상등
    노무현 대통령이 3박4일간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온 다음날인 6월10일 청와대. 전용차를 타고 집무실로 돌아오는 대통령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등신 외교’ 파문 등 가뜩이나 꼬인 일이 많았지만, 결정적으로 심기를 거스른 것은 이날 아침 각 신문에 일제히 실린 ‘국방비 증액’ 관련 기사. 이들 기사는 전날 열린 국회 통일외교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조영길 국방장관이 “내년엔 국내총생산(GDP) 대비 3.2% 안팎으로 국방비 증액을 건의하고, 단계적으로 3.5% 이상 늘릴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언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대통령이 화가 난 이유는 간단했다. 후보 시절부터 ‘자주국방’이라는 화두를 내걸고 국방비 증액을 공약으로 약속한 것은 사실이지만 ‘올해 3.2%, 장기적으로는 3.5%’라는 구체적인 방침을 재가한 적은 없기 때문. 더욱이 기획예산처 등 관계부처와의 조율은 물론 예산 전체에 대한 심의작업도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한마디로 ‘국방부가 자신의 안을 밀어붙이기 위해 ‘플레이’를 한다’는 것이 청와대와 대통령직속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의 분위기였다.

    사실 노대통령의 진노에는 뿌리가 있다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미 국방부는 5월6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자주국방비전’에 관한 대통령 보고에서도 3.5%안을 건의한 바 있었다. 이 자리에서 조장관은 정찰위성, 공중조기경보통제기(E-X), 3000t급 중(重)잠수함, 공중급유기, 대형상륙함, 장거리 지대지미사일 등의 조기확보를 위해 파격적 예산증액이 불가피하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은 이러한 내용의 보고서에 대해 재검토를 지시했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말한다. “우리 스스로 안보결정권을 가지기 위한 장기방안으로 자주국방 보고서를 만들라고 했더니, 전략적 비전과 실행플랜 대신 값비싼 무기도입 계획만 늘어놓았다”는 것. 이에 따라 현재 국방부는 두 번째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국방비 증액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국방부발 보도가 줄줄이 이어졌다는 점도 문제였다. 익명의 ‘군 관계자’들 의견과 한국국방연구원(KIDA) 등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에서 작성한 통계수치들이 함께 제시됐다. 이에 대해 NSC 사무처 고위인사가 국방부측에 ‘자제하라’는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는 것. 그런 와중에 국방장관의 국회 답변내용이 뇌관을 건드린 것이다.



    결국 대통령은 조장관을 직접 호출해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한다. 국방비 증액과 관련해서는 “GDP 대비 3% 이내에서 맞추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기본예산은 2.8~2.9% 선에서 결정하고, 주한미군 기지이전비용 2400억원 등을 합해도 3%를 넘기지 않도록 한다는 방침이라고 한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올해 경제성장률이 당초 예상에 훨씬 못 미칠 것이 확실시되고 있는 까닭에 실질적인 국방예산 증가분은 전년대비 10%를 넘기기 쉽지 않다”며 “일이 국방부 뜻대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떠오르는 실세 NSC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방탄조끼를 입고 근무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대통령과 NSC, 국방부 사이에서 들려오는 일련의 ‘파열음’에 대해 묻자, 한 청와대 관계자가 들려준 말이다. 상황이 어느 정도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뼈 있는 농담’이었다. 기자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길래 그러느냐”고 묻자 그는 한참 동안 가만히 있다가 “무엇을 상상하든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그 이상”이라고만 덧붙였다.

    NSC는 새 정부의 외교·안보·국방 분야 정책을 종합, 조정한다는 취지하에 지난 3월 확대 강화된 노무현 정부 청와대의 핵심기구다. 특히 12명이던 직원을 3실 1센터 69명 규모로 확대한 사무처의 경우 실질적인 안보정책을 기획하는 수준으로 업무와 기능을 대폭 확대했다. 이에 대해 “NSC(사무처)가 대통령의 핵심브레인 기능을 맡게 됐다”며 “안보 현안에 있어 대통령의 뜻을 관철하는 전진부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 쏟아져나왔다.

    특히 처장인 국가안보보좌관을 대신해 기구를 실질적으로 총괄하는 사무차장의 직급이 1급에서 차관급으로 격상되고, 이 자리에 대통령의 안보관련 자문역 가운데 한 사람이던 이종석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이 임명되면서 이런 관측은 더욱 힘을 얻었다. 안보관련 장기전략을 마련하는 전략기획실장은 서주석 전 국방연구원 국방현안연구팀장이 맡았다. 서실장 또한 대통령직인수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코드가 맞는 인물’이었다.

    이렇듯 대통령의 의지가 실린 ‘새로운 실세’ NSC와 이전까지 국방현안에 대해 거의 전권을 행사해온 국방부 사이에 마찰이 생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두 그룹 사이에 ‘갈등’이 있다는 사실은 기자가 만난 대부분의 청와대 관계자들이 인정하는 바였다. 다만 그 성격에 대해 부분적으로 견해가 다를 뿐이었다.

    문제는 그 수위가 결코 간단치 않다는 것. ‘대통령을 보좌해 외교·안보·국방 현안을 국가전략 및 범정부 차원에서 기획·조정·통합하는’ NSC와 ‘안보정책 집행의 핵심 중의 핵심부서’인 국방부가 다른 목소리를 내며 파워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직접적인 갈등은, 노무현 대통령의 지론인 ‘자주국방론’을 숙원사업 해결의 전기로 삼으려는 국방부측 행보와 단순한 전력증강이 아닌 자주적 비전 마련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NSC측 논리의 대립이라는 분석이다.

    하나의 사업, 두개의 기획안

    정부 관계자들은 이러한 파워게임의 단면이 ‘차기 유도무기사업(SAM-X)’을 둘러싸고 가장 극적으로 드러났다고 이야기한다. 날아오는 미사일을 맞추어 떨어뜨리는 중장거리 대공 요격미사일을 현대화하는 이 사업은, 현재 우리 군이 보유하고 있는 나이키 미사일이 노후화했다는 점을 근거로 1990년대 후반부터 그 필요성이 거론돼왔다.

    특히 국방부는 중장기계획을 통해 2002년부터 10년간 1조9000억원을 투입해 2개 대대 규모의 최신형 패트리어트 미사일(PAC-3·Patriot Advanced Capability-3) 48기를 도입한다는 방침을 구체화하기도 했지만, 지난해 2월 생산업체인 미국 레이시온과 대금 지불방식을 둘러싼 협상이 결렬된 데다 차기 전투기(FX) 사업에 1조8000억원이 추가로 들어가게 되면서 사업이 무기 연기된 바 있다. 국방부로서는 뼈아픈 기억이 아닐 수 없다.

    이후 국방부는 한동안 “2006년께 국방비가 GDP 대비 3% 이상이 되면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자주국방 추진에 따라 예상보다 빨리 3%대 진입이 확실시되자 내년부터 SAM-X 사업을 다시 추진키로 내부방침을 정한 것. 이같은 국방부측 생각은 지난 6월10일 차영구 국방부 정책실장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는 미사일 방어능력 보유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히면서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국방부는 “이미 중기계획에 반영된 바 있으니 예산만 확보된다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반응. 한마디로 SAM-X 사업 재개는 행정적인 처리만 남은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청와대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예산안은 법률안 통과에 준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이미 한번 ‘엎어진’ 예산은 처음부터 그 필요성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 NSC측의 반론이다.

    이러한 입장 차이의 배경에는 ‘어떤 미사일을 도입할 것이냐’라는 질문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국방부가 차세대 대공미사일로 PAC-3를 선호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 우선 한미간 무기상호운용 문제가 있고, 실제로 가장 우수한 대공방어 미사일이라는 ‘현실론’에 근거한 생각이다. 그러나 NSC가 이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아주 구체적인 사업내용에 대해 ‘조정기구’와 ‘집행부처’의 의견이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 SAM-X 사업에 대해서는 국방부안과 NSC안이 별도로 작성되어 대통령의 책상에 올라가 있는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동격의 서로 다른 정부부처가 의견을 달리하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정부부처가 청와대 기구와 의견대립을 벌인다는 것은 예전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자칫하면 ‘국방부가 대통령에게 대들고 있다’는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 이쯤 되면 국방부의 ‘플레이’에 청와대와 NSC가 격하게 반응한 이유를 이해할 만하다.

    국방부·NSC ‘파워게임’ 에 안보전선 비상등

    미국의 대공 요격미사일 패트리어트(위)와 국방과학연구소가 자체개발한 단거리 지대공미사일 ‘천마’.

    NSC안은 국방부안과는 달리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개발중인 ‘한국형 중거리 대공미사일(K-MSAM·Korean Middle range Surface-to-Air Missile)’을 장거리용으로 개발해 사용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K-MSAM은 기존의 호크미사일을 대신하는 중거리(30~60km)용 요격미사일로 1998년부터 연구개발 중이다. ADD는 1998년 11년간의 노력 끝에 단거리 지대공미사일 ‘천마’를 실전배치한 바 있다. NSC측은 이러한 연구역량을 바탕삼아 ‘자체적으로’ 장거리 지대공미사일을 개발한다는 복안을 깔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방안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사실. 우선 러시아 기술을 도입해 개발중인 것으로 알려진 K-MSAM만 해도, 예상개발기간이 10년으로 빨라야 2008년에나 연구가 완료된다. 아직 완료되지 않은 기술을 바탕으로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는 데도 최소한 1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게 국방부측 인사들의 반론이다. 이미 검토를 해봤지만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는 것. 한 공군 관계자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나이키 미사일은 1965년에 처음 들여온 물건이다. 여기서 10년을 더 기다리라는 것은 그 동안 하늘을 비워놓으라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국방부의 현실주의, NSC의 이상주의

    또 한 가지 약점은 비용 대 효과의 문제. 현재 진행되고 있는 K-MSAM에 투입되는 예산만 대략 2000억~3000억원 규모로 알려져 있다. 이를 장거리용으로 개발하는 데 또 얼마나 많은 예산이 들어갈지도 가늠하기 쉽지 않은 상황. 물론 이는 말 그대로 ‘개발비용’일 따름이고, 실제 사용하기 위한 ‘생산비용’은 별도다. 더욱이 성공적으로 개발이 달성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여기까지 살펴보면 국방부측의 ‘현실론’은 지당한 말씀으로 들린다. “PAC-3는 누가 뭐라 해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장거리 유도무기”라는 국방부측 관계자들의 주장을 반박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힘들게 개발비용을 들일 필요도 없고,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 구매가 가능하다는 점도 엄청난 메리트다. 그렇다면 도대체 NSC는 왜 PAC-3 도입에 대해 이견을 갖고 있는 것일까. 국방부 관계자들의 말처럼 “NSC 사람들은 전문지식이 부족한 책상물림들”이기 때문일까. 한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NSC가 PAC-3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고 하면 밖에서는 우선 미국이 추진하는 미사일방어체제(MD)와의 연관성을 떠올릴 것이다. 그동안 시민단체와 언론에서 PAC-3와 MD의 관련성에 대해 꾸준히 문제제기 해왔으니까. 그러나 그건 NSC 구성원들의 성향이나 능력에 대한 억측 혹은 과대평가다.

    실제로 PAC-3와 MD를 연관짓는 논의, PAC-3 도입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외교·안보적인 파급효과에 대해서는 국방부든 청와대든 거의 논의를 한 바 없다. 대신 PAC-3와 K-MSAM 두 개의 보고서가 만들어진 것은 ‘자주국방’에 대한 두 그룹 간의 의견차이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실무적인 문제 같지만 그 뒤에는 거대한 안보철학의 차이가 숨어 있는 것이다.”

    똑같은 ‘자주국방’을 두고 어떻게 생각이 대립된다는 것일까.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자주국방론을 구성하는 세 축 가운데 무엇을 주요 실천방안으로 삼느냐가 문제의 본질”이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세 축이란 전력증강, 국방개혁, 대미 군사의존도 축소. 앞의 두 요소가 방법론이라면 세 번째 요소는 지향점에 가깝다. 이 두 가지 방법론 가운데 국방부가 전력증강에 무게를 두고 있는 반면, NSC는 국방개혁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지난 3월 노무현 대통령 취임 직후 NSC에는 10여 개 남짓의 태스크포스가 만들어졌다. 그 가운데 하나인 ‘국방발전TF’는 청와대 내에서 ‘국방개혁TF’라는 별명으로 더 자주 불린다. 현재 각 군의 운영방식과 인사구조, 전략전술이나 무기체계 가운데 비효율적인 부분은 무엇이고 타성에 젖은 부분은 어디인지를 찾아내 검토·보고하는 것이 이 TF의 핵심 임무다. 국방부로서는 껄끄러울 수밖에 없는 작업이다.

    한편 국방부가 추진한 장기 비전 관련작업은 앞서 등장했던 자주국방 보고서였다. 내용의 상당부분은 자연스럽게 최신예무기 도입과 국방비 증액에 초점이 맞춰졌다. 기획부서와 집행부서에서 전혀 다른 내용의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진 것이다. “대통령은 당초 양측의 안이 서로 견제하거나 발전적으로 통합되어 참여정부 장기 국방정책의 틀을 이루게 하려고 했던 것 같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그러나 NSC 국방발전TF는 국방부측 보고서가 제출된 5월에는 물론 현재까지 별다른 결과물을 내지 못했다. 이 때문에 장기 국방비전 논의를 국방부가 단독으로 주도하는 상황이 벌어졌던 것.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대통령이 국방부의 1차 보고서를 반려하고 재작성을 지시했던 것은 이러한 불균형을 고려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후 국방부의 적극적인 ‘플레이’에 대통령이 분노한 것에는 ‘전력증강 위주의 자주국방론’이 ‘국방개혁을 통한 자주국방론’을 완전히 압도하는 것을 경계하는 뜻이 숨어 있다는 분석이다.

    국방부·NSC ‘파워게임’ 에 안보전선 비상등
    그러나 NSC 내에는 이와는 전혀 다른 시각도 있다. ‘국방부의 안하무인이 문제’라는 견해다. 이는 ‘대미 군사의존도 축소’라는 지향점에 내심 동의하지 못하는 국방부가 ‘대통령 길들이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으로 요약된다.

    “국방부 핵심인사들은 미국과의 더욱 강력한 협력이 한반도 안보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이들에게 이 원칙을 흔드는 것은 어리석은 일로 보일 뿐이다. 그러나 미국을 의식해 내놓고 말은 못하지만, 대미 군사의존 축소는 모두가 알고 있는 노무현 정부의 암묵적인 정책방향이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국방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있었던 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내 임기 안에 자주국방의 토대를 마련하고 싶다”는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군 관계자들이 이견을 표명하고 나섰다는 것. “현실적으로 ‘아주 서서히’ 추진되어야 하는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결과를 얻으려 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이었다고 한다.

    “결국 대통령이 ‘그렇다면 최소한 다음 대통령의 임기 중에라도…’하는 식으로 한발 물러서는 것으로 끝났다. 탈권위도 좋고, 격의 없는 대화도 좋고, 치열한 토론도 좋다. 그러나 최고통수권자의 말을 중간에 자르고 나서는 식이라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청와대의 또 다른 관계자는 “군 고위 지휘관들이 참모들과 함께한 사석에서 반(半)공개적으로 대통령의 국정철학이나 국방비전을 비판했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고 전했다. ‘군심(軍心)’이 예전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다.

    분위기가 이렇게 돌아가자 가장 먼저 이상이 생긴 것은 정보보고라고 관계자들은 전한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안보에 있어서는 정보가 곧 생명이자 힘이다. 때문에 이 시스템에 누수가 생긴다면 이만저만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청와대 안보담당 라인에 근무하고 있는 한 인사는 지난 봄 황당한 경험을 했다. 우연히 만난 군 관계자가 “모모한 문제는 어떻게 대응하기로 했느냐”고 물었는데 자신은 전혀 아는 바가 없었던 것이다. 매일 아침마다 예닐곱 군데에서 올라오는 정보보고를 받지만 관련된 내용을 본 기억이 없었고, 논의한 적도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역추적해보니 정보보고 라인의 중간단계에서 임의로 누락된 것이었다. 사안 전체가 날아간 것은 아니고, 그 사안의 중요성을 한눈에 알 수 있는 핵심정보가 빠지고 전체적으로 ‘톤 다운’ 혹은 ‘물타기’된 것이었다. 밑에서는 청와대와 코드가 맞지 않는 상관의 눈치를 보느라 정보를 누락하고, 결정권자들은 ‘아마추어’ 청와대가 ‘과도한 결정’을 내릴까봐 보고를 생략하는 식인 것 같다.

    물론 고의적으로 누락했다는 물증을 잡을 수는 없었다. 판단의 차이일 뿐이라고 말하면 반박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분명한 것은 이렇게 해서 밖에서는 모두 알고 있는데 대통령과 청와대만 모르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는 점이다.”

    결국 매일 올라오는 정보보고는 언론보도 갈무리나 평양방송 정리 수준의 ‘면피용’만 홍수를 이루고 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도 “knowledge 수준으로도 정선·가공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information만 홍수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대선기간에 대부분의 군 장성들이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비밀이다. 물밑에서는 이회창 후보 지지를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도 꽤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게 불과 반년 전이다. 그 사람들 눈에 대통령이 만족스러울 리 있겠는가.”

    청와대 안보 관계자들이 ‘인수위 시절부터 쓸 만한 보고서 하나 받아본 적이 없다’고 투덜대는 것을 듣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이 관계자는 말한다. 그렇다고 현장에 나가 정보를 수집할 수도 없는 일 아니냐는 반문이다.

    “정보 생산부서에 직접 찾아가도 작업중인 문서를 애써 숨기는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다. 먼저 들고 와서 ‘이것 좀 보세요’ 해도 모자랄 판에. 최소한 DJ정부 때는 요소요소에 한두 사람씩 박혀 있던 호남 출신 인사들의 자발적인 도움이라도 있었다. 물론 정상적인 보고체계는 아니었겠지만, 이들 때문에라도 ‘청와대가 정보에서 국방부에 밀리는’ 상황은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요즘 청와대 사람들 사이에서는 정식 보고라인 외에 현장에서 직접 이야기를 듣거나 비선라인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늘어나고 있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각 부처별로 ‘주니어보드’를 만들어 개혁의 중심세력으로 삼겠다는 말이 뜬금 없이 나온 게 아니라는 것이다.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들의 예산을 생산된 정보의 양과 질에 연동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온다. 국방부를 거치는 공식 라인이 힘을 못쓰니 우회 통제력이라도 가져야 한다는 식이다.

    또 다른 안보분야 담당자는 지난 봄 있었던 사건을 들려주었다. 한 청와대 행정관이 군 인사와 관련된 건의서를 작성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이해관계자가 쫓아왔다는 것이다. 마치 그 문서를 직접 본 듯 자세히 알고 있어 곤혹을 치렀다는 이야기였다.

    “그 행정관은 아무에게도 그 건을 말한 적이 없다고 했다. 자기 자신, 피보고자, 그 바로 위까지 딱 세 사람만 알고 있던 건의서 내용을 군 관계자들이 어떻게 확보했는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는 거였다. 그 얘기를 들으니 나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 같았다. 지나친 피해의식이라고 하면 할말은 없지만, 파일 절도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문제다. 서로간의 불신이 이 정도 수준이라면 말 다한 것 아닌가.”

    현재 스코어는 국방부의 완승

    결국 이같은 의견대립의 한가운데에 미국에 대한 시각차이가 놓여 있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PAC-3와 K-MSAM 문제만 해도, 미국 입장을 따르는 현실적인 방안을 택할 것이냐, 만만찮은 위험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체개발로 방향을 잡을 것이냐의 선택이다. ‘자주국방론’을 둘러싼 논의도 따져 보면 미국에의 군사의존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문제로 시각이 갈린다. 국방비 증액도 마찬가지다. 국방부가 미국의존 체제를 전제한 실전무기에 관심을 두는 반면, NSC는 공중조기경보통제기 도입 등 독자적 작전권 수행에 긴요한 사업을 더 우선시하는 분위기다.

    그런가 하면 현재까지 국방부와 NSC 간에 빚어진 파워게임에서는 NSC가 밀리고 있다는 분석 또한 대부분의 관계자들이 인정하는 바다. NSC가 노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출범한 것, NSC가 제기하고 있는 논점의 상당수가 대통령과의 교감에 따른 결과물이라는 점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지는 열세에 놓여 있다는 것. 한 청와대 인사는 “애초부터 게임이 되지 않는 상대였다. 특히 근본 쟁점인 미국 문제에 대해 NSC 내부에서도 이견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제까지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의견이 같다 해도, 이를 극복할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만드는 일은 간단한 과제가 아니다. 더욱이 그 속도와 시기를 조절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NSC 구성원마다 견해가 다르다는 것. 대통령 본인도 확고부동한 로드맵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실질적으로 NSC 사무처를 이끌고 있는 이종석 차장과 국방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서주석 전략기획실장의 경우 당장 한미관계를 획기적으로 재조정하자는 주장에는 유보적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한편 사무처장인 라종일 국가안보보좌관은 국방부와 NSC의 의견대립에서 중간적 입장이라는 평이 지배적. 반면 NSC의 일부 전략기획관들이나 대통령의 386 참모들 사이에는 보다 급진적인 ‘한미관계 재조정 로드맵’을 제안하는 목소리가 있다.

    이러한 생각 차이 때문에 지금까지 NSC가 당초 설정했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했다는 것이 청와대 사정에 정통한 인사들의 분석이다. 북핵기술자문회의 등 최근의 위기상황 분석을 위해 마련되었던 다양한 자문그룹이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지 못하고 공전하는 등 NSC가 보여준 일련의 ‘허둥지둥’은 기본적으로 내부에서 의견일치를 보지 못한 까닭이라는 것이다.

    SAM-X 사업을 두고 만들어진 두개의 보고서만 해도, 대세는 이미 국방부의 PAC-3 도입안으로 넘어갔다는 것이 중론이다. 부부적으로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국방부안대로 거의 굳어져 사실상 최종발표만 남은 것은 사실인 듯하다. “NSC가 독자적인 기획 능력을 갖추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케이스”라는 게 한 청와대 인사의 설명이다.

    “청와대 NSC는 미국 백악관의 NSC를 본떠 만든 시스템이다. 이라크전에서의 백악관 NSC를 봐라. 일사불란하지 않은가. 그러나 미국도 ‘안보문제를 다루는 각 부서의 의견을 조율·통합하고, 대통령의 국정운영방향에 맞추어 보다 거시적인 차원의 전략기획을 담당하는’ 현재의 모델을 완성하기까지 반세기 넘는 시간을 보냈다. 참여정부 출범 100일 남짓 지난 지금, 그것도 역사상 가장 약한 정권이라는 노무현 정부에서 NSC가 완벽하게 제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이러한 설명에 수긍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아 있다. 당장 NSC가 맡아야 할 국가안보정책의 조정 및 기획 기능은 사실상 공백상태나 다름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NSC 사정에 정통한 한 안보부처 출입기자는 주한미군 재배치를 둘러싼 일련의 논란을 예로 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실 주한미군 재배치는 얼마든지 역으로 활용할 수 있는 문제였다. 포장하기에 따라서는 남북 모두 최전방에 배치되어 있는 전투병력 일부를 후진 배치하는 식의 긴장완화용 카드로 쓸 수도 있었다. 물론 실제로 달성될 수 있을지 여부는 생각이 다르겠지만, 일단 충분히 제안할 만한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고 이 기자는 지적한다. 주한미군 재배치를 미국의 북한 제한폭격의 신호탄으로 해석하는 목소리가 높았고, 한반도 긴장 수위는 한층 높아졌다. 이 상황에서 사실상 NSC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 출입기자의 말이다. 많은 가능성을 담고 있는 변수 앞에서 각 정부부처를 조정하며 통합적으로 상황을 이끌어나가는 것이야말로 NSC의 할 일 아니냐는 지적이다.

    “PAC-3 문제만 해도 그렇다. 정말 NSC가 독자개발을 대안으로 생각한다면 이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는 곧바로 ‘MD거부’로 해석될 수 있고, 따라서 ‘자주국방론’의 큰 줄기로 연결되어 기존의 대미 의존적 국방을 뿌리부터 재검토해야 하는, 한국의 외교안보정책 전체를 바꾸어야 할지 모르는 엄청난 과제다. 지독하게 고민하며 플랜을 짠다 해도 ‘현실론’을 설득하기 어렵다.

    그런데 지금처럼 단순히 아이디어 차원이나 다름없는 독자개발안을 던져놓고는 뒷받침할 거시적인 전략 마련에 미적미적한다면, 앞으로도 결과는 뻔하다. 비록 대통령의 뜻이 NSC와 가깝다고는 하지만 목숨 걸고 함께 가겠다는 자세를 보여줘야 대통령도 마음을 정할 것 아닌가.”

    NSC 사람들은 국방부의 ‘안하무인’과 ‘낡은 사고방식’을 비판하고, 국방부 사람들은 NSC의 ‘아마추어리즘’과 ‘순진한 이상론’을 탓한다. ‘북핵 위기’라는 첨예한 상황 앞에서 각종 안보관련 이슈에 대해 두 그룹간에 이견이 나타나는 일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향후 한반도 평화를 책임질 큰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방향을 잃고 헤매는 상황이 이어진다. 이런 일들은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노대통령과 오랜 친분을 맺고 있는 한 국책 안보연구기관 중견 연구원의 이야기다.

    “지금은 노대통령이 참고 있는 것”

    “나는 대통령이 참고 있다고 본다. 청와대 안에도 국방부를 비롯한 안보관련 라인의 총체적인 물갈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이제까지 국방부만큼 참여정부 개혁의 ‘무풍지대’인 곳이 없다. 우선은 대통령 본인이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니었고, 군이라는 조직이 함부로 손을 댈 수 없는 곳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그렇다면 언제까지 참을 것이냐. 답은 간단하다. 명분이 확보될 때까지다. 내년 총선이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최소한 절반에 근접하는 의석이라도 확보한다면 대통령은 과감하게 ‘자신과 생각이 다른’ 군을 바꾸기 위해 나설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불가피하게 인적인 개혁도 수반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작업은 NSC를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다. 결국 대통령의 결심만 남은 것이다. 진짜 싸움은 그 때 벌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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