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8월호

대한민국 법치주의는 실종중

초법적 발상 일삼는 참여정부…그 ‘혁명군적 사고’를 경계한다!

  • 글: 이석연 변호사·전 경실련 사무총장

    입력2003-07-29 11: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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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치주의의 기본이 흔들리고 있다는 여론이 높다. 중도 성향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제3의 변호사단체 결성을 서두르는 이석연 변호사는 참여정부가 절차적 정의를 무시한 결과 사회 각계에서 여론몰이식 의견이 판치고 있는 상황이라 진단한다. 청와대가 삼권분립 원칙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이변호사의 직격 고언.
    대한민국 법치주의는 실종중

    이석연 변호사는 고영구 국정원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의 임명이 헌법 위반이라 주장한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저술가인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이 88세 되던 1961년의 일이다. 러셀은 당시 핵무기 개발에 반대하는 시민불복종운동을 주도하던 중 그해 2월18일 런던의 국방부 청사 앞에서 연좌시위에 참석, 대중에게 불법행동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기소돼 8월12일 중앙경찰재판소에서 징역 1월을 선고받았다. 판결이 내려지자 방청객 한 사람이 외쳤다. “부끄러운 줄 알라. 88세 노인에게 징역이라니!” 그러자 판사가 말했다. “나잇값을 하시오.” 판결 후 러셀은 1주일로 감형돼 병원구역에서 복역했다.

    방청객과 판사의 재치 문답을 소개하자는 게 아니다. 이 사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영국의 법치주의 현실이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학자의, 평화를 위한 핵무기 반대라는 정당한 목적을 가진 행동이라도 법이 허용하지 않는 불법적 수단에 의한 것이라면 법 위반에 대한 책임을 물어 법치주의를 확립하겠다는 영국 법치주의의 전통을 읽을 수 있다.

    실종된 절차적 정의

    최근 우리 사회는 헌법의 핵심 가치인 법치주의의 기본이 흔들리고 있다. 모든 국정현안과 사회문제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합리적으로 논의되고 해결돼야 하는데도 목적만을 앞세운 힘의 논리와 검증되지 않은 여론을 앞세운 인기영합적 해결책으로 인해 법치주의의 생명인 절차적 정의가 실종되고 있음을 본다.

    두산중공업 파업과 철도청의 4월 노사분규는 법리와 원칙에 입각한 대응을 정부 스스로 포기함으로써 무노동 무임금 원칙과 공기업 민영화란 정책적 기조를 무너뜨리는 동시에 불법집단행동에 대한 법 적용의 엄격성과 형평성을 크게 후퇴시켰다. 국가경제에 엄청난 피해를 끼친 화물연대의 집단파업 때도 차주들의 집단행동에 정부가 일방적으로 굴복함으로써 밀어붙이면 된다는 또 하나의 선례를 남겼다. 화물연대 파업 이후 우리 사회에 힘의 논리가 팽배하면서 파업과 시위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으며 사회가 급속히 분열과 갈등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그런 와중에 권기홍 노동부 장관은 “불법행동이라도 정당한 주장은 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중앙일보 2003년 5월29일자) 목적이 정당하다면 수단이나 절차의 불법쯤은 괜찮다는 의미로 들리는 듯한 발언을 했다. 발언의 진의가 어디에 있었던지를 떠나 이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기본을 망각한 것으로서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권장관은, 주장은 주장대로 불법은 불법대로 대처하면 된다는 의미로 말했다지만, 이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발상이다. 권장관의 이러한 발언에 대해 대통령이나 총리가 질책을 했다거나 문제를 삼았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인간 예지의 산물이라 할 민주주의는 절차 내지 수단의 존중이지 목적만을 제일로 삼는 건 아니다. 적법절차가 무시되는 조치라면 추구하는 목적과 관계없이 공권력의 남용이자 자의(恣意)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 기타 어떠한 공권력도 법의 지배, 즉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와 방법에 따라 권한을 행사하고 그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것이 예측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을 통한 진정한 의미의 법치주의를 구현하는 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변호사 출신의 첫 법률가 대통령이다. 참신하고 솔직한 성격의 소유자인 만큼 그에게 법치주의의 실질적 구현, 헌법적 절차와 가치의 존중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집권 후 5개월도 안 된 시점에서 이미 실망을 넘어 우려의 수준으로 변했음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정원장 임명 강행은 헌법 78조 위반

    노대통령이 고영구 국정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결과 국회가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는데도 임명을 강행한 것은 헌법 제78조에 위반된다고 생각한다.

    헌법 제78조는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공무원을 임명한다’고 규정했다. 예컨대 국무총리, 대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헌법재판관처럼 헌법에 직접 그 임명자격과 절차가 규정돼 있는 경우엔 그에 따라야 한다. 또 법률에서 임명자격과 방법 등에 관해 별도로 정하고 있는 경우엔 그에 따라야 한다. 검사를 임명하려면 판사 또는 변호사 자격을 가진 자 중에서 임명하도록 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국가정보원법(제7조 1항)에 따르면 국정원장은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빅4’, 즉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국가정보원장 등에 대한 국회의 인사청문회는 금년 2월 임시국회에서 신설된 것이다. 국정원장 등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그동안 시민단체 등이 오랜 기간에 걸쳐 줄기차게 주장해온 것으로, 대통령이 측근이나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인사를 함부로 그 자리에 임명하지 못하도록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그 자질과 도덕성, 공무수행 과정에서의 균형성 유무 등을 청문회 형식으로 검증해 국회의 적부 의견에 대통령이 따르도록 하는, 대통령의 인사권을 제한하는 제도다.

    그러므로 법률로써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과정에서 그 자격과 절차, 방법 등을 제한하는 것은 헌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이런 점에서 우리의 현행 인사청문회는 미국의 ‘인준’ 청문회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현행 국회법 및 인사청문회법에서 그 임명에 국회 동의(사실상 인준)를 요하는 공직자의 인사청문을 국정원장 등의 그것과 구분하지 않고 모두 인사청문회로 표현하면서 동일한 절차에 따르도록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처럼 헌법에 근거한 법률에 의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경우 그 결과에 대통령이 따라야 하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이해할 수 있는 상식에 속한다. 청문회 결과를 따라도 좋고 안 따라도 좋다는 식으로 청문회를 장식용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인사청문회의 제도적 취지를 몰각시키는 위헌적 발상이다. 구태여 인사청문회법에 청문결과에 대통령이 구속된다는 선언적 의미의 규정을 둘 필요가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법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노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의해 연 인사청문회의 결과, 국회가 당해 인사청문위원회 전원일치로 국정원장으로서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는데도 이를 월권 또는 모욕이라 비난하면서 국회의 의견을 묵살하고 임명을 강행한 것은 국회 경시 내지 무시 차원을 넘어 헌법에 반하는 위헌적 행위다. 국회 인사청문회 결과를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는 거라면 무엇 때문에 그 제도를 쟁취하기 위해 그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겠는가! 법리 이전에 너무나 평범한 상식이 무너지고 있어 안타깝다(필자는 국정원장 청문회 결과에 따른 객관적 법 현상을 논할 뿐 국정원장 특정인에 대한 호불호(好不好)의 가치판단 차원에서 접근한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대통령직속위원회의 월권

    노대통령이 감사원 회계검사 기능의 국회 이관을 언급한 이후 마치 현행 헌법하에서도 회계검사권의 일부를 국회에서 행사할 수 있는 것으로 오해되고 실제로 국회와 감사원의 힘겨루기 양상으로까지 발전되기에 이르렀다.

    헌법이 국가기관의 회계검사권과 공무원에 대한 직무감찰권을 명문으로 감사원에 귀속시키고 있는 한 국정감사, 조사에 수반하여 그 보조적 수단으로 제한적 범위에서 회계조사를 할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헌법개정 없이 국회가 회계검사권의 일부라도 행사할 수 없다는 게 통설적 견해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는 감사원이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 핵심의 눈치를 보지 않고 헌법에 규정된 대로 감사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직상의 비효율과 운영상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이 참여정부의 역할이다. 그렇지 않고 감사원의 기능을 개편 혹은 이관하여 감사원을 개혁하겠다는 발상이나 주장은 그것이 법률로 이뤄지더라도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 직속의 김병준 정부혁신및지방분권위원장이 감사원의 직무감찰권을 행정 각 부처에 주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한마디로 헌법에 대한 이해부족이거나, 정권을 잡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만용에서 나온 것으로 심히 유감스럽다. 민주당 조순형 의원이 국회에서 감사원장에게 ‘대통령 보좌진들에게 헌법교육을 시킬 것을 대통령에게 건의하라’고까지 한 속내를 이해할 것도 같다.

    김대중 정부에서도 그랬지만 현 정부에 와서 최근 각종 위원회, 특히 대통령직속위원회의 월권 행위가 법치주의를 흔들고 있다. 이런 위원회는 법률로 설치된 게 아니라 대통령령 등 하위 법령에 의해, 그것도 상위법의 위임 없이 설치된 게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대통령 직속이라는, 그리고 대통령이 임명했다는 위세를 몰아 헌법과 법률로 설치된 국가행정조직에 간섭하고 심지어 지휘·감독하는 행태마저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 법치주의는 실종중

    6월23일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사학연금회관 앞에서 대북송금 특검 수사기간 연장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법률의 하위규범인 대통령령에 근거해 설치된 대통령직속위원회의 본연의 임무는 대통령의 통치철학이 실현될 수 있도록 자문하고 그 결과를 행정 각 부처를 통해 실행하도록 하거나 아니면 법률의 형식으로 제도화하도록 하는 것이다.

    헌법은 행정조직의 설치조직과 직무범위를 반드시 법률로 정하도록 하여 행정조직 법정주의를 선언하고 있다(제100조). 대통령 직속기관의 설치도 마찬가지다. 정부조직법 등 각 법률에서 국가행정기관의 설치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따라서 법률에 의하지 않고 또한 법률의 위임근거 없이 단지 시행령에 의해 설치된 각종 위원회가 많은 예산을 써가면서 행정 각 부처의 업무에 관여하는 것은 행정조직 법정주의에 위배된다. 국정운영에 꼭 필요한 위원회라면 야당의 협조를 구하고 여론을 움직여 당당하게 법률로 설치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안 되면 순수하게 자문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이것이 민주주의요 법치주의다.

    행정조직 법정주의에 위배되는 각종 위원회의 월권적 활동은 권력행사 과정의 투명성과 행정의 책임성을 모호하게 할 뿐 아니라 측근정치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면서 권력 후반기로 접어들면 그 존재조차 유야무야, 흐지부지되는 것이 상례였다.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집권하고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지위와 권한이 부여됐으면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 국정을 수행할 의무가 주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헌법과 법률에 정한 절차를 무시하거나 그 권한을 넘어 권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혁명군적 사고 내지 쿠데타적 발상으로서 경계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개혁정책이라도 법치주의의 틀 안에서만 그 정당성과 정책으로서의 영속성을 부여받을 수 있다.

    대통령비서실의 후진적 통치행태

    고건 국무총리를 많이 질타했다는 문희상 대통령비서실장의 공개석상 발언은 현 정부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정을 운영하지 않고 인치(人治)와 측근정치에 의존하고 있음을 시인하는 것이 다. 이는 국정전반에 관해 대통령을 보좌하고 행정 각부를 통괄하는 헌법상 국정의 2인자인 국무총리가 헌법기관이 아닌 대통령비서실장보다 하위에 있음을 뜻하는 것으로 법치주의의 기본을 흔드는 후진적 통치행태다. 더 나아가 “책임총리제를 구현하겠다” “참여정부에서는 시스템이 제1인자”라던 노대통령의 약속이 단지 립서비스(lip service)에 머물고 있음을 방증하는 실례다.

    책임총리제는 특별한 개념이 아니다. 총리가 헌법과 법률에 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대통령과 참모들이 간섭하지 않으면 책임총리제는 저절로 구현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노대통령과 측근 참모 등의 국정운영 스타일로 볼 때 현 정권에서 책임총리제의 구현은 요원할 것으로 보인다. 국무총리의 헌법상 지위와 권한을 되찾기 위한 노력은 무엇보다 총리 스스로 기울여야 하는데 이 점에서 고건 총리는 매우 실망스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고건 총리는 ‘책임총리’ 또는 ‘안정총리’라는 국민적 기대를 안고 취임했다. 그러나 이제 ‘의전총리’ 역할도 제대로 못한 채 혹시 나중에 국정파탄에 대한 책임을 짊어지는 ‘방탄총리’로 끝나지 않을까 염려된다. 행정의 달인답게 헌법과 법률이 정한 권한과 지위를 스스로 되찾아 국정의 2인자로서의 조정력을 발휘하기를 기대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우리 헌법 구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역대 대통령(또는 대통령비서실)이 헌법과 법률이 정한 권한과 절차를 무시하고 권력을 행사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권한만 행사하고 그에 상응한 책임만 지면 된다. 총리나 장관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권한은 헌법상 국군통수권, 영전수여권, 고위공직자 인사권, 사면권 등 고유권한과 법률상 총리, 장관 등 중앙행정기관의 장에 대한 지휘, 감독권에 한정된다. 나머지 정부의 모든 권한은 각 법률에 행정 각 부처 장관 등의 권한으로 정해져 있다. 정부조직법도 이 점을 명백히 하고 있다(제11조 1항). 따라서 지금처럼 대통령이 행정 각 부처 장관의 권한에 속하는 개별 사안에 대해 일일이 관여하는 것은 위법일 뿐만 아니라 대통령직의 과부하(過負荷) 현상을 낳는 요인이 된다.

    또 장관이 법률상 자신의 권한에 속하는 사안에 대해 대통령의 눈치나 보면서 지시를 기다리는 것은 직무유기다. 한마디로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는 것이다. 대통령비서실도 법률에 규정된 대로 대통령의 권한만을 보좌하는 기능에 그쳐야지(정부조직법 제14조) 대통령을 등에 업고 정부의 ‘몸통’ 노릇을 하는 폐단은 시정돼야 한다. 헌법과 법률 어디에도 대통령비서실이 행정 각 부처의 일에 대해 간섭하고 각 부처를 대신해 정책사항을 발표하라고 한 규정은 없다.

    대통령비서실은 헌법기관도 아니고 법률에 의해 그 권한이 구체적으로 부여된 기관도 아니다. 대통령비서실 직제는 법률 아래의 법령인 대통령령으로 돼 있다. 어디까지나 헌법과 정부조직법에 의한 대통령의 고유권한을 보좌하는 역할이 본래 기능이다.

    청와대가 헌법에 의한 정부조직 근간을 무시한 채 정부의 몸통 역할을 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역대 정권 하에서 줄곧 자행돼온 잘못된 관행이었다. 그래서 법률가 대통령을 행정수반으로 한 참여정부에서는 혹시 잘못된 국정운영 관행이 바로잡히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그러나 참여정부 출범 몇 달이 안 돼서 비서실장이 총리를 질타했다고 하는가 하면 이른바 ‘왕수석’이 출현해 비서실장과 다른 수석비서관들을 제치고 독주하고 있다는 등 대통령비서실 핵심 참모들의 월권적 국정간섭이 역대정부에 비해 한술 더 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검 연장 거부는 법치주의의 후퇴

    우리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그리고 법치주의 내지 적법절차 원리는 지구촌의 대다수 국가 헌법에서 채택하고 있는 인류보편의 가치다. 따라서 헌법 개정시에도 이들 제도는 개폐할 수 없는 헌법개정의 한계다. 이 점은 헌법이 국가목표로서 평화통일을 추구하되 어디까지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즉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입각한 것이어야 함을 천명(헌법 제4조)하고 있는 데서도 나타난다.

    우리가 ‘어떤 통일’인가를 묻지 않는 몰(沒)체제적 통일지상주의를 수용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통일이 자유민주주의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어야지 자유민주주의가 통일의 희생물이 될 수는 결코 없다. 이는 우리 헌법의 확고한 의지다.

    이와 관련, 노대통령이 방일시 일본공산당 당수와의 환담에서 한국에서도 공산당이 허용돼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이 발언의 헌법적 심각성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국토의 절반에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부인하는 공산체제가 집권하고 있는 분단국가가 아니라면 별 문제가 될 수 없을 것이며, 또한 정치발전 차원에서 학자나 일반인이 그런 주장을 했다면 충분히 수긍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헌법상 영토의 보전,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할 책무 등 체제수호 의무를 지고 있다(헌법 제66조 2항). 더욱이 헌법은 공산체제가 집권하고 있는 북한지역을 대한민국 영토로 선언하고 있고(제4조),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는 국가보안법이 엄연히 현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공산당 허용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대통령의 헌법수호 의무와의 충돌을 가져와 자칫 체제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대한 문제를 야기한다. 이런 헌법적 문제점에 대한 노대통령의 자세한 해명 내지 배경설명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개혁주체세력 구축은 초법적 발상

    헌법은 또 통일정책과 관련, 그 중요성을 감안해 대통령에게 국민투표를 통한 민주적 정당성의 확보를 요구한다(헌법 제72조). 국민은 통일정책에 관한 한 자유로운 의견 개진과 토론을 통해 최종적인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헌법적 수권을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적 합의나 국회에서의 논의과정을 배제한 정부 또는 정권적 차원의 독단이나 밀실행위에 의한 통일, 대북정책의 수립·집행은 위헌적 행위로서 헌법적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

    이 점에서 노대통령이 대북비밀 송금사건 특별검사의 수사기간 연장을 거부한 것은 그로 인한 정치적 후유증은 차치하더라도 정치적 고려를 법률적 판단에 우선시켰다는 점에서 법치주의의 현저한 후퇴로 기록될 것이다.

    현행 헌법은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를 최대한 존중하는 자유시장경제 원리를 선언하면서(제119조 1항), 정부가 민간기업 경영에 간섭하려면 국방상 또는 국민경제상 긴절한 필요가 있을 때에 한해, 그것도 반드시 법률에 근거해서만 가능하도록 못박고 있다(제126조). 이는 곧 시장경제적 법치주의를 천명한 것이다. 이런 절차를 무시한 민간기업의 경제활동에 관한 정부의 간섭(정책)은 위헌적인 월권행위다.

    노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상속증여세의 완전포괄주의에 대해 “헌법해석을 바꿔서라도 도입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그러나 헌법상 헌법해석에 관한 최종적인 해석권은 헌법재판소에 있다. 따라서 이는 권력분립주의에 위배되는 발언이다. 더 나아가 과세대상이 되는 소득을 세법에 일일이 규정하지 않고도 과세하겠다는 것(완전포괄주의) 자체가 국민의 경제생활에 있어서의 법적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해치는 것으로 헌법상 조세법률주의에 위배된다고 본다.

    아무리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사안이라도 그것이 헌법의 기본이념에 위배될 경우엔 헌법의 틀 안에서 정책적인 조화점을 찾는 지혜가 요구된다. 아무리 개혁이란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헌법적 통제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다(경제·사회정책의 헌법적 문제점에 대한 구체적 지적은 지면관계상 생략한다). 헌법에 위반된 제도, 법령, 정책 등은 어떤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정책적 영속성과 국민적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없는 무효의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자 한다.

    같은 맥락에서 정부부처 내 개혁주체세력을 구축하겠다는 노대통령의 발언은 헌법과 법률을 무시한 초법적 발상이다. 개혁주체세력과 같은 일종의 사조직은, 청와대의 해명처럼 비록 그것을 공조직의 일부로 한다 하더라도, 공무원의 정치행위나 파벌 조성과 같은 집단행동을 금한 국가공무원법(제65, 66조)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한 헌법(제7조)에 위반된다.

    대통령의 국정철학도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만 설 땅이 있다. 그리고 공무원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책임을 지고 정치적 중립성과 그 신분을 보장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참여의 기회균등’부터 지켜야

    지금까지 참여정부 들어 헌법의 기본 가치가 경시되고 절차적 정의를 무시함으로써 법치주의가 훼손된 몇 가지 사례를 살펴봤다. 민주주의의 생명인 법치주의의 기본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런 지적들을 지금까지 으레 그랬던 것처럼 비판을 위한 비판, 개혁의 발목을 잡으려는 의도, 우리 편이 아닌 사람의 흠집내기 시도 정도로 치부하기엔 문제의 심각성과 파장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이쯤에서 국정운영의 헌법·법률 적합성 여부를 점검하고 잘못 가고 있는 것에 대해 겸허하게 반성하고 바로잡으려는 진지한 자세가 요구된다 하겠다. 국정이 법과 원칙에 따라 국민적 통합의 바탕 위에 운영돼 진정한 의미의 법치주의가 정착됨으로써 한 정부의 성공을 넘어 국가의 성공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한결같을 것이다.



    헌법 이념에 비춰볼 때 국가 개혁정책의 방향은 국민의 삶을 보다 자유롭고 풍요롭게 하는 실용주의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 개혁은 우리 사회의 기본적 가치(자유민주주의, 법치주의 등)를 바탕으로 폭넓은 참여와 사회적 연대를 통해 점진적으로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다같이 잡초밭에서 정치를 하면서 누구는 순혈(純血)이고, 누구는 잡초라는 식의 양분적 사고로 상대방을 매도하는 독선과 아집은 통합과 상생의 사회를 위해 버려야 한다. 공직조직에 개혁주체세력을 만들겠다는 것 역시 소수의견이나 반대의견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으로서 민주주의 기본원리에 반한다. 진정한 의미의 국민적 참여는 ‘참여의 기회균등’이 이뤄질 때만 가능하다. 참여의 기회균등에 바탕을 둔 국민적 합의만이 헌법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이고, 더 나아가 민주개혁과 사회통합을 이루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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