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석준 DJ정부에서 민주주의 공고화 단계를 어느 정도 거쳤습니다만, 아직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상황입니다. 다양한 집단의 욕구가 분출되는 데 반해 이를 조정·해결할 만한 민간부문의 자율적 능력이 부족하고, 정치권과 정부의 갈등관리시스템이나 의지도 불충분합니다. 다시 말하면 대통령의 성향, 대통령을 둘러싼 소수 권력엘리트의 문제해결 능력, 이들을 포함한 청와대 조직과 행정부처간 조정체계, 대통령과 총리의 관계, 정부와 집권여당 혹은 국회와의 관계 등 현 정부의 시스템 전반이 과거의 갈등관리시스템을 완전히 해체시켰다는 겁니다.
그 결과 평상시의 갈등관리체계에서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사안마저 갈등으로 증폭되고 새 갈등을 유발합니다. 특히 북핵 문제 등에서 보듯 국내에서뿐 아니라 국제관계에서도 미흡한 정부의 대응체계와 앞뒤가 맞지 않는 대통령의 언행 등이 되레 갈등을 증폭시킨 결과 국내 갈등과 국제적 갈등이 중층적으로 일어나 국민들이 더욱 불안해하는 것 같습니다.
차병직 갈등 측면에서만 보면 상당히 심각한 상태라 얘기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우리 사회를 두고 마치 판도라 상자를 열어놓은 듯하다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선 정치분야를 보면 여야가 끝없이 정쟁을 벌이는데, 시각의 대립이 너무 단호해서 해결책이 안보이는 상태입니다. 노사관계와 관련해서도, 한쪽에선 파업을 경제발전을 저해하는 주요인으로 보거나 심지어는 범죄시하는 경향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선 최후 수단이라 할 수 있는 파업을 섣불리 사용하는 감도 듭니다.
교육계에선 NEIS 논란에 따른 분쟁이 종식됐다고 볼 수 없을 것이고요. 환경분야에도 새만금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여성계 쪽도 호주제를 둘러싼 대립이 있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는 법치주의냐 불복종이냐 하는 대립도 있습니다.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 문제는 체육과 정치, 지역주의가 혼합된 갈등이죠.
갈등의 전면화· 첨예화 두드러져
전상인 두 분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사회갈등 자체가 나쁜 건 아닙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민주화가 진행되고 다원주의가 확대됨에 따라 각 계층의 기대수준이 굉장히 높아졌습니다. 10년 혹은 20년 전에 비해 갈등이 확대되는 건 당연한 것이죠. 따라서 사회갈등이 분출되고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억압됐던 과거 권위주의 시대를 그리워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문제는 노무현 정부 들어 사회갈등이 점점 전면화·첨예화한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와 관련해서 저는 2002년 대선 후유증의 장기화를 들고 싶습니다. 정부 출범 5개월이 다 되도록 정권 출생의 비밀에 관련된 문제, 예컨대 대선자금 의혹이라든가 하는 문제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 집권 이후 노무현 정부가 정책상의 실수를 꽤 많이 했다는 점 등이 사회갈등의 분출을 촉발한다는 느낌을 줍니다.
덧붙이자면, 이렇게 사회갈등이 폭발하다 보니 노동계나 시민사회단체 쪽에선 구시대가 끝나고 새 시대가 열렸다는 인식, 즉 세상이 바뀌었다는 인식 아래 기대치가 급상승하는 면을 보입니다. 이번 기회에 뭔가 한몫 챙겨야 된다거나 초기에 확실히 맛을 보여주지 않으면 다시는 이런 기회가 오기 어렵다는 생각들이죠. 그러다보니 최후 수단이 돼야 할 파업이 갈등 초기부터 등장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