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덕분일까, 자동차와 가전제품 주문이 급증한 한편, 지난 5월에는 중동·아프리카 지역 12개국의 바이어 129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중동수출상담회’까지 열려 그 기대치를 한껏 높였다. 이런 분위기를 일찌감치 간파해 지난해부터 중동 시장 개척에 뛰어들어 결실을 눈앞에 둔 사업가가 있다. (주)GIG코퍼레이션(Global Industrial Group Corporation) 최승갑(46) 회장이다.
최회장은 얼굴·지문 등을 이용한 생체인증제품을 생산하는 국내 몇몇 업체와 파트너십을 맺고, (주)GIG코퍼레이션 IT연구소가 기술노하우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중동 시장 개척에 나섰다. 요르단 주요 은행과 정보기관 최고위 관계자를 상대로 한 보안솔루션 수출계약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다.
“공공시설을 대상으로 한 얼굴인식시스템 판매협상은 90%가 끝났습니다. 대형빌딩과 사무실, 고급주택에 설치하는 지문 도어록 시스템의 수출 가능성도 매우 큰 편입니다. 1차 수출물량은 대략 2억~3억달러어치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과를 올리기 위해 최회장은 죽음도 불사하고 중동 지역을 넘나들었다. 요르단 정부측 인사로부터 접촉 제의를 받은 것은 한창 전운이 감돌던 올 3월초. 그는 망설일 것도 없이 터키를 거쳐 요르단으로 들어갔다.
“당시는 국내를 비롯해 세계 각국 해외상사 직원, 공관원들이 모두 중동 지역에서 철수를 할 무렵이었습니다. 미국이 대규모 포탄을 퍼붓고 생화학무기를 사용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해 분위기가 몹시 흉흉했지요.”
그럼에도 전쟁터를 향해 날아간 최회장의 목적은 분명했다. 남들이 꺼릴 때 한 발 앞서 기회를 잡고야 말겠다는 것이었다.
“사업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하는 것입니다. 아랍지역 사람들은 신뢰를 특히 중시합니다. 어려울 때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 신뢰구축에 무엇보다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요르단에 머물던 최회장은 3월20일 전쟁이 발발하자 출입허가증도 없이 요르단 거주 후배를 앞세워 이라크로 들어갔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합니다. 향후 전쟁특수가 일 것이 분명한 만큼 이라크 현장 상황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바그다드 근처까지 들어간 그가 목격한 것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의 생지옥이었다. 전쟁 시작과 동시에 미군이 펼친 ‘충격과 공포 작전’으로 중요 건물과 시설은 참담한 폐허로 변해 있었다. 융단폭격을 받아 불길이 치솟는 바그다드 시내를 뚫고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시민들 행렬은 끝이 없었다. 최회장은 피란민들의 얼굴에 서려 있던 굶주림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가 지금도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라크로 들어갈 때 최회장은 중동 출장에 동행했던 직원 한 명을 요르단에 홀로 남겨두었다. “내가 죽는 거야 상관없지만 남의 자식을 죽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죽음이 두렵지 않을 수 있을까. 최회장은 “이미 한 번 죽어봤기 때문에 나는 무서울 게 없다”고 했다. 그가 ‘죽음’을 경험한 것은 서른한 살 때다.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거칠 것 없이 승승장구하며 성공가도를 달리다 하루아침에 몰락한 충격을 이기지 못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