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피플 & 피플

이 시대 최고의 소리꾼 故 박동진 명창의 외길인생

죽을 때까지 소리를 하고 싶다던 진정한 藝人

  • 글: 주성원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swon@donga.com

이 시대 최고의 소리꾼 故 박동진 명창의 외길인생

2/4
이 시대 최고의 소리꾼 故 박동진 명창의 외길인생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내 머릿속에는 판소리 18마당 350시간 분량이 정리돼 있다”고 말하곤 했던 것처럼 그는 어렸을 때부터 남달리 기억력이 뛰어나고 총명했다. 진잠보통학교에 다니던 시절, 박동진 명창은 시험에서 충청남도 전체 1등을 한 적도 있다. 도지사와 군수가 그의 집을 직접 찾아와 부모에게 “1등 한 아이는 월사금 없이 도청에서 공부시킨다”고 일러주었다. 먹고 살기도 어려운 가난한 처지였지만, 부모의 교육열과 남달리 공부를 잘했던 재주가 맞물려 대전공립중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당시 대전중은 한국에 거주하던 일본인 자제들이 다니던 학교였다. 학생 400명 중 한국인은 박동진 혼자였다. 일본인들 틈바구니에서 시달리던 소년 박동진은 “이 학교에서 배워봤자 뭘 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가 들어 스스로 학교를 그만둘 결심을 한다. 배짱 좋게도 그는 교무실을 찾아가 일본인 교사들 앞에서 “일본은 조선과 합병하면서 서로 평등하게 잘 지내자고 했으면서, 지금은 조선 사람을 개 취급한다. 더러워서 학교 못 다니겠다”며 일본어 교과서를 찢어버리고 뛰쳐나왔다. 대전중 생활은 1929년 이렇게 끝이 났다.

16세 때 판소리 매력에 빠져들어

학교를 그만두고 잠시 방황하던 16세의 박동진은 그의 일생을 결정할 일생일대의 계기를 맞게 된다. 현재의 대전극장 자리에 무대를 차린 협률사(協律社, 구한말부터 유행한 음악 예술 공연 단체로 전국을 순회하며 판소리, 민요, 재주 등 전통 예술을 공연했다)의 공연을 보게 된 것. 입장료 5전이 없었던 그는 협률사의 깃대를 들고 대전 시내 구석구석을 다니며 ‘홍보 활동’을 해주고 공연을 보게 된다. 그 자리에서 심청가를 들은 그는 단박에 판소리의 매력에 빠져버렸고 이후 소리꾼이 되겠다는 결심을 한다.

집에 와서도 판소리 가락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소년 박동진은 ‘귀신에 홀린 듯’ 협률사 단원들이 묵고 있던 숙소를 찾아간다. 그를 맞았던 것은 당대의 명창 장판개(張判介)였다. 장판개 명창은 어린 박동진을 시큰둥하게 대했을 뿐 소리를 가르쳐주려고 하지 않았다. 장판개 명창으로부터 “소리를 배우려면 먹는 것, 자는 것은 물론 차비까지 부담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는 좌절을 맛보고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판소리를 향한 박동진의 불타는 마음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다. 늘 “어디에 가서 소리를 배우나”만을 생각하던 그는 명창 이동백(李東伯)의 고수인 지동근이라는 사람이 충남 연기군에 산다는 말을 듣고는 그를 찾아갔다. 지동근으로부터 “청양 땅에 사는 손병두(孫炳斗)라는 사람이 재주가 있으니 찾아가보라”는 말을 듣고는 곧장 길을 나섰다.

“너는 國唱이 될 재목이니…”

박동진 명창이 소리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화 한 토막이 이때 나왔다. 대전에서 청양을 가려면 금강을 건너야 했다. 뱃삯 몇 전을 내야 나룻배를 탈 수 있었는데, 배짱 좋은 소년 박동진은 돈 한푼 없이 냉큼 배에 올라탔다. 배가 강 중간쯤 이르렀을 때 마침 술이 거나하게 취한 선원 세 사람이 “뱃삯이 없으니 던져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박동진은 “뱃삯 대신 소리라도 할 테니 들어보라”고 맞섰다. 소리를 배운 적은 없지만 그는 협률사 공연에서 본 대로 심청가 한 마디를 멋들어지게 불렀고, 소리를 들은 손님들이 “잘 배운 소리”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 그 자리에서 당시로서는 큰 돈인 1원40여전을 걷어주기까지 했다. 박동진은 이 돈으로 선물까지 사들고 손병두를 찾았다.

학채(學債)가 없었던 박동진은 머슴살이 같은 생활을 하며 1년4개월여를 손병두에게 소리를 배웠다. 그러나 손병두는 그리 뛰어난 소리꾼은 아니었던 듯하다. 어느 날 손병두가 장에 가서 ‘춘향전’을 사오는 것을 본 박동진은 ‘더 이상 배울 것이 없겠다’는 생각으로 그를 떠날 결심을 한다. 판소리라는 것이 이야기인 ‘사설’을 기본으로 하는 것인데, 손병두가 춘향전을 새로 사는 것은 이미 그가 아는 판소리를 모두 가르쳤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그때 박동진은 인근 부자인 윤씨라는 사람을 만나 소리를 들려줄 기회가 있었다. 그의 소리를 들은 윤씨는 “너는 국창(國唱)이 될 재목이니, 민요나 부르는 손병두에게 배우지 말고 정정렬(丁貞烈) 같은 명창을 찾아가라”고 일러줬다.

박동진 명창은 정정렬에게 배우기 위해 그를 찾았으나, 바로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1년 정도 시골의 뜨내기 공연 단체에서 공연을 하면서 살아가다가 대구의 박상근(朴相根)과 인연이 닿아 ‘흥보가’를 배우게 된다.

대구에서는 술집 기생들의 소리 선생을 하기도 했는데, 이때 이른바 ‘스캔들’도 많이 일으켰다. 박동진은 얼굴도 잘생긴 데다 소리도 잘해서 여성들에게 꽤나 인기가 있었다. 대구경찰서 고등계 형사의 조카인 일본 여대생과 연애하다가 들켜 경찰들로부터 모진 매를 맞고 경주로 쫓겨났고, 경주에서는 기생들의 짝사랑에 말려들기도 했다.

2/4
글: 주성원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swon@donga.com
목록 닫기

이 시대 최고의 소리꾼 故 박동진 명창의 외길인생

댓글 창 닫기

2020/04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