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세청 조사에 대한 김회장의 대응 방식은 협회 안팎에서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격려하는 이도 있었지만 정부 길들이기를 위한 엄포용 쇼 혹은 집단이기주의라 비판하는 여론도 만만찮았다. 이러한 사회적 파장을 감수하면서까지 김회장이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사례를 공개하겠다고 나섰던 이유는 무엇일까.
“공인중개사들이 다 잘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투기를 부채질한 중개업자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는 일부에 불과할 뿐입니다. 대다수 공인중개사들은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하고 있는데, 마치 모든 중개업자를 죄인인 양 몰아붙이는 분위기를 참기 힘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고급정보를 접하는 일부 고위 공직자들의 투기가 부동산 시장 과열에 한몫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더라도 ‘고객’의 명단을 공개한다는 것이 쉬운 결정이었을 리는 없다. 부동산중개법상 ‘고객 비밀준수의 의무’에 정면 배치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고객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했다는 비난과 함께, 심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김회장은 “언제까지 국세청의 공인중개사 조사 행위에 두 손 두 발 다 놓고 당하고만 있을 수 없어 어려운 결심을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김회장은 지난 6월 내내 고위공직자 부동산 투기 관련 정보를 수집하느라 국회, 국세청, 지방 공인중개업소 등을 바삐 뛰어다녔다. 처음에는 뭔가 ‘될 것’ 같았다. 투기사례가 조금씩 입수됐던 것이다. 일이 탄력을 받았다고 생각한 김회장은 더욱 거세게 몰아붙였다. 그러나 정보 수집 한 달여 만에 사례 공개는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협회 회원인 공인중개사 대다수가 ‘고객 정보를 누출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며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라며 정보제공을 꺼렸습니다. 이미 정보를 주었던 중개사도 없던 일로 하자면서 되가져가더군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본의 아니게 결국 ‘엄포용 쇼’가 돼버린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할 따름입니다.”
김회장은 “원래 6월중 명단을 입수해 7월 중에 발표할 예정이었는데 어려울 것 같다. 협회에서 추진한 일이라도 회원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만두어야 한다는 판단이 섰다”고 말했다.
김회장은 30여 년 이상 부동산 중개업무에 종사하면서 전국부동산중개업협회장과 대한공인중개사협회장을 번갈아 맡는 등 남다른 영향력을 행사해온 인물이다. 1999년 10월 대한공인중개사협회를 창립하는 데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김회장이 특히 심혈을 기울여온 분야는 공인중개사 재교육. 더욱 전문적인 지식으로 무장해 효율적 서비스를 펼칠 수 있도록 협회 차원에서 부동산 컨설팅이나 부동산 경·공매 교육, 부동산 풍수지리 교육 등을 진행하고 있다.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공인중개사의 실력도 계속 향상돼야 합니다. 그만큼 새로운 지식이 많이 쏟아져나오고 있으니까요. 과거처럼 집 사주고 팔아주는 식의 중개는 한물갔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워요. 소비자 입맛이 얼마나 까다로워졌는데요.”
소비자에게 신뢰감을 심어주기 위해 부동산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5000만~1억원까지 보상하는 공제사업도 실시하고 있다. 20여 억원을 들여 부동산 거래정보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했다. 정보망을 통해 전국 어느 곳의 ‘물건’이든 안전하고 신속하게 거래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초창기에 사재를 털어야 할 정도로 재정난에 허덕이던 협회는 이제 본궤도에 올라 회원 2만7000명에 순자산만 24억원이 넘는 흑자 재정을 자랑하고 있다. 김회장은 협회 재정은 이렇듯 좋아졌지만 공인중개사 수입까지 나아진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목 좋은 곳에 중개업소 하나 차리려면 몇 억 원의 자금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요즘 같은 때 그렇게 했다가는 투자비 뽑기도 어려울 겁니다. 목이 안 좋은 곳은 투자비가 적은 대신 수입이 적지요. 공인중개사가 떼돈 버는 직업인 줄 착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