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8월호

진화 멈추지 않는 일본 최고의 연구·환경도시

  • 글: 이나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yeme@donga.com

    입력2003-07-29 18: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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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을 대표하는 계획도시 쓰쿠바. 1966년 첫 삽을 뜬 이래 1985년 과학엑스포를 훌륭히 치러내며 세계적 연구학원도시로 발돋움했다. 도시의 25%를 차지하는 녹지, 우수한 교육환경, 차도와 보도를 분리 설계하는 세심함으로 일본에서도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모범 도시’에서 ‘창의적 도시’로. 진정한 테크노폴리스로의 진화를 꿈꾸는 쓰쿠바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진화 멈추지 않는 일본 최고의 연구·환경도시

    쓰쿠바시의 전경. 멀리 북쪽으로 쓰쿠바산이 보인다

    일본 도쿄. 주말의 긴자 거리는 영국 런던이나 미국의 뉴욕 번화가를 연상케 한다. 세계적 메트로폴리스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는 규모와 때깔을 자랑한다. 그렇더라도 이방인에게 도쿄가 주는 첫인상이란 갈색, 조밀함, 복잡함이다. 미사일 회로처럼 얽히고 설킨 지하철 노선도야말로 과밀도시 도쿄의 상징이자 이미지다.

    이제 고개를 들어 도쿄 동북쪽, 이바라키현으로 눈을 돌려보자. 도쿄에서 60㎞, 차로 1시간 거리에 일본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국제도시’ 쓰쿠바가 있다.

    쓰쿠바의 7월은 온통 초록이다. 밝고 넉넉하고 한가롭다. 크지도 않은 도심에 공원만 93개다. 수령 30년은 족히 됐음직한 가로수들이 푸른 기운을 가득 불어넣고 있다. 깨끗하고 세련된 건물들에는 각기 널찍한 주차장이 딸려 있다. 마치 미국 어딘가의 전원도시를 규모만 좀 줄여 일본 땅에 이식해 놓은 듯하다.

    그러나 쓰쿠바는 휴양지가 아니다. 연구학원도시(Tsukuba Science City), 또는 일본식 조어로 ‘테크노폴리스’라 불리기도 한다. 그것도 일본 내 100여 개 테크노폴리스 중 가장 먼저 만들어진, 그리고 가장 심혈을 기울여 다듬어 온 대표적 계획도시다.

    1966년 일본 정부가 쓰쿠바시 건설의 첫 삽을 뜰 당시, 이 곳은 이렇다 할 특산물조차 없는 촌락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37년이 지난 지금 쓰쿠바는 쾌적한 생활 환경, 높은 교육 수준과 부가가치 창출 능력을 자랑하는 ‘일본 과학의 메카’로 그 명성을 떨치고 있다. 지난해 3월에는 다국적 컨설팅업체 윌리엄 M. 머서사가 세계 215개 도시를 대상으로 실시한 ‘삶의 질’ 평가에서 환경 부문 10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의 쓰쿠바는 완성작이 아니다. 연구단지 부지는 아직 다 채워지지 않았고 도쿄에 집중된 인구·기업·기관 분산에 기여한다는 애초의 건설 목표도 달성됐다 할 수 없다. 도시가 발달하면서 처음 계획과 전혀 다른 기능과 형태를 띠게 된 부분도 있다. 무엇보다 1년6개월 후면 쓰쿠바의 미래에 획기적 전기가 될 도쿄-쓰쿠바 간 철도 ‘쓰쿠바 익스프레스’가 완공된다. 쓰쿠바는 이렇게 아직 ‘진화 중’이다.

    246개 연구소에서 1만5000명 일해

    진화 멈추지 않는 일본 최고의 연구·환경도시

    육교에서 내려다본 시 중심가 교차로. 도로 주변의 가로수들이 울창한 숲을 연상케 한다

    쓰쿠바시의 면적은 2만8500ha다. 이 중 2700ha가 시의 중심인 ‘연구학원지구’다. 시 전체 인구 22만명 중 10만명이 이 곳에 살고 있다. 나머지 12만명은 시 외곽지구에 거주한다.

    연구학원지구에는 46개의 국립연구소와 교육기관, 200여 개의 기업 연구소가 자리하고 있다. 순수 연구인력만 1만5000여 명. 그 중 약 5000명이 공공연구원이다. 일본 전체 공공연구원의 절반 이상이 이 곳 쓰쿠바에서 먹고 자고 일하고 있다.

    쓰쿠바에 국제적 색깔을 부여하는 이들 또한 연구원들이다. 쓰쿠바에는 126개국에서 온 7000여 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다. 대다수가 연구원과 유학생, 그 식솔들이다. 일본인 연구인력의 상당수도 외국에서 학업을 쌓거나 근무한 경험이 있는지라 도시 분위기는 일본적이라기보다 말 그대로 ‘현대적’이다. 이는 쓰쿠바가 일본이 세계적 공업국으로 발돋움하던 1960년대 중반 계획된 도시라는 점과 깊은 관련이 있다.

    1950년대 말 도쿄는 경제 활황과 함께 찾아온 수도권 집중 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수도권정비위원회였다. 1960년 위원회는 ‘대학분산계획시안’을 마련했다. 1961년에는 ‘학원도시안’을 발표했다. 도쿄 인근에 학원도시를 만들어 대학과 연구 기관, 관련 산업시설까지를 분산시킨다는 복안이었다. 곧 건설성, 국토청 등이 나서 지역 물색에 들어갔다.

    1963년 이바라키현의 쓰쿠바가 최종 선택됐다. 정부는 쓰쿠바 건설의 목적을 두 가지로 설정했다. 첫째, 지식산업의 집적을 통한 시너지 창출, 둘째, 수도 기능 분산이었다. 1966년 마침내 쓰쿠바연구학원도시 건설이 시작됐다.

    “당시 쓰쿠바는 수전(水田), 수답(水畓) 농사를 짓는 전형적인 일본 농촌마을이었습니다. 한때는 나뭇잎을 삭혀 만든 퇴비로 질 좋은 쌀을 생산해 이름을 얻기도 했지요. 또 시 북쪽 쓰쿠바산에는 숯가마가 많아 제법 수입이 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근대화와 함께 화학비료 사용이 일반화되고 숯 사용량도 급격히 줄면서 지역 경제는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새 도시 건설이 결정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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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엑스포기념공원에서 휴식을 즐기고있는 시민들

    쓰쿠바대 시스템정보공학연구과 오바세 류지 교수(사회공학 전공·건축가)의 설명이다.

    여타 도시와 마찬가지로 쓰쿠바 건설도 최우선 과제는 토지 매입이었다. 당시 이 곳은 쓰쿠바산만 관공지였을 뿐 대부분의 지역이 농토, 즉 사유지였다. 정부는 땅 주인들과 협상을 벌여 소유 면적의 40%를 공공지로 내놓도록 했다. 그렇더라도 토지 소유자들의 이득은 엄청난 것이었다. 도시 개발과 함께 땅 값이 최소 10배씩 뛰어올랐기 때문이다. 일부 지역은 정부가 나서 직접 매입을 했다. 정부 역시 매입 토지의 40%를 공공지로 내놓았다.

    쓰쿠바대에서 도시경제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유학생 김영숙씨는 “그 과정에서 많은 졸부들이 탄생했다. 지금도 시 외곽을 지나다 보면 외제차를 몰고 논에 김 매려 가는 촌로들을 간혹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각 기업, 연구소, 공장 등을 상대로 쓰쿠바 이전을 타진했다. 처음에는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연구소의 경우 국책연구기관을 대거 옮겨가는 쪽으로 결정을 봤지만 공장 이전은 실현이 불가능했다. 정부로서도 일찌감치 풍부한 녹지를 활용한 ‘환경도시’로서의 비전을 설정하고 있던 터라, 연구·교육기관 유치에 더 많은 힘을 쏟았다. 우선 각 연구기관과 원활한 연계가 가능한 대학의 설립이 시급했다. 여러 안을 검토한 끝에 도쿄도에 있던 116년 역사의 국립 도쿄고등사범학교를 종합대학으로 승격, 이전키로 했다. 이렇게 해서 1973년, 쓰쿠바대가 문을 열었다.

    정부의 계획대로 쓰쿠바대는 개교이래 도시의 ‘심장’ 역할을 하고 있다. 쓰쿠바대는 현재 그 규모와 수준에 있어 일본 내 6대 명문대학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노벨상 수상자를 여럿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의학·이학·교육·체육 분야에서 두드러진 학문적 성과를 내고 있으며 학생의 10분의 1이 해외 유학생일 정도로 국제적 지명도도 높다.

    그러나 쓰쿠바대를 처음 방문한 사람이라면 그 학문적 명성보다 먼저 캠퍼스의 위용과 아름다움에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쓰쿠바대는 학교 전체가 숲 속에 파묻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녹지가 풍부하다. 넓은 주차장과 더불어 시내 중심가에서 대학 내 주요 건물까지를 직접 연결하는 버스가 있어, 도서관 자료실 등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대학이 쓰쿠바시의 ‘정신적 구심’이라면 물리적 구심은 말 그대로 도시 정중앙에 있는 ‘센터(City Center Zone)’다. 센터는 쓰쿠바시 설계 개념의 핵이다. 오바세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쓰쿠바시의 마스터플랜을 짠 것은 국토청이었습니다. 당시 국토청은 일반적인 계획 도시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설계를 구상했습니다. 대개의 도시는 방사형으로 구성됩니다. 도시 중앙에 기차역 등 교통 집산지를 두고 사방팔방으로 뻗은 대로를 따라 크고 작은 상업지구를 배치하는 식이지요. 주거지와 근린주거지가 상업지구와 뒤섞여 발달하게 되는 겁니다. 도시 모양도 원형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쓰쿠바는 타원형의 원 센터 시스템입니다. 도시 중앙에 역과 버스터미널, 대형상업지구 및 주차장을 집중시킨 후 그 위 아래로 주거지와, 연구지를 차례로 배치했습니다. 이어 도시를 빙 둘러싸는 간선도로를 만들어 그 길을 따라 상업-거주-연구 지구를 오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애초부터 지하철, 시내버스 같은 대중교통수단보다는 자가용 사용을 전제로 계획된 도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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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쿠바 설계 개념의 핵인 ‘센터’ 일대. 중앙 광장과 대형 쇼핑몰, 주차장과 버스터미널 등이 있다

    그래서 쓰쿠바는 자가용 보급률이 매우 높다. 성인 가족의 수만큼 차를 갖고 있는 가정이 적지 않다. 학생들의 경우 대개 자전거를 이용하지만 주부, 직장인들에게 자가용은 생활필수품이다.

    센터 근처 마쓰미공원에서 만난 맞벌이 주부 코야마 에이코씨도 “쓰쿠바는 차만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편한 도시다. 또 자전거도로가 워낙 잘 돼 있어 가까운 거리는 늘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문제는 쇼핑할 때마다 차를 몰고 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코야마씨의 말대로 상업지구가 중앙에 집중돼 있는 도시 형태는 시민들에게 적지 않은 불편을 안겨줬다. 그래서 발달한 것이 간선도로 주변의 소규모 서비스(쇼핑)센터, 즉 로드사이드 숍이다. 애초 계획에는 없던 변형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를 근거로 “도시 계획안 자체에 결정적 결함이 있었던 것은 아니냐”고 비판하는 학자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쓰쿠바의 자연친화적 생활 환경은 쇼핑의 불편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앞서 설명한 대로 쓰쿠바에는 연구교육지구에만 모두 93개의 공원이 있다. 쓰쿠바의 1인당 평균 녹지율은 10㎡. 일본 평균인 1인당 6.5㎡ 보다 훨씬 높다. 도시 면적의 약 25%가 녹지인 셈이다. 연구단지의 경우 건물 주변 20m 이내에는 무조건 녹지를 조성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도로 양편도 마찬가지다. 덕분에 학교, 주거지, 연구단지, 도로 어디를 가든 숲을 연상케 하는 울창한 수목군을 만날 수 있다. 대형 교차로마저 산길처럼 느껴질 정도다.

    대부분의 공원은 테니스코트와 어린이들이 축구 경기를 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잔디밭을 갖추고 있다. 박람회기념공원처럼 끝이 가물가물할 만큼 넓고 잘 가꾸어진 잔디밭도 여럿 된다. 저녁나절이면 아이들과 공을 차거나 조깅에 열중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쓰쿠바의 또 다른 자랑은 차도와 보도·자전거도로를 완전히 분리해 놓았다는 것. 웬만한 곳은 보도나 자전거도로를 통해서만도 얼마든지 찾아갈 수 있다. 매연, 소음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교통사고 예방 효과도 크다.

    쓰쿠바가 이처럼 모범적 구조를 갖게 된 데에는 1985년 개최한 쓰쿠바과학엑스포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정부와 민간 기업의 막대한 재정 지원을 바탕으로 당시 도달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도시 설계를 현실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엑스포의 성공적 개최를 통해 쓰쿠바는 일거에 세계적 (R&D) 중심지로 발돋움하게 됐다. 지금 도시를 빛나게 하고 있는 공원, 연구소, 도로 등은 모두 이때 만들고 다듬어진 것들이다.

    ‘에코 오바상’의 힘

    바닥부터 새로 다진 곳인 만큼 쓰쿠바는 일본 내 여타 도시에 비해 주거 공간이 넉넉한 편이다.

    “도쿄에서 살 때랑은 전혀 다르죠. 비슷한 규모의 다른 도시들과 비교해봐도 넓은 편이에요. 건물 사이사이에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어 더 쾌적하게 느껴지는 측면도 있고요.”

    코야마 에이코씨의 말이다.

    쓰쿠바에는 공무원과 연구원들을 위한 관사가 전체 주거시설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집합주택 또는 단독주택 형태로 지어진 관사에서 주민들은 비슷한 연령, 생활 수준을 가진 이웃들과 폭넓은 교류를 하며 지낸다. 상업지구가 덜 발달했다는 것은 그만큼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해서 퇴근 시간 이 후에는 길에서 사람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한편 열악한 문화시설은 시의 주말 공동화 현상을 불러오는 주범이기도 하다. 데이트가 있거나 최신 영화를 보고 싶은 경우, 도쿄로 발길을 돌리는 이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도심 곳곳에 고급 고층 맨션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쓰쿠바 익스프레스’의 개통을 겨냥한 포석이다. 철도 개통으로 도쿄-쓰쿠바 간 이동이 원활해질 경우 쓰쿠바를 베드 타운으로 활용하는 도쿄 직장인들이 크게 늘어나리라는 계산에서다.

    쓰쿠바를 처음 찾는 사람이라면 각종 연구소 건물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개중에는 국내외 저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도 적지 않다. 국책연구소들이 들어선 후 순차적으로 200여 개의 민간연구소가 입주했는데, 그 대부분이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 소속이라 건물 자체의 기능과 모양새에도 남다른 주의를 기울인 까닭이다.

    그렇다면 교육 환경은 어떨까.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입시 경쟁이 더 치열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런 만큼 한 도시의 교육 수준도 명문대학 진학률을 기준 삼아 평가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그렇게 본다면 쓰쿠바는 단연 일본 최고의 교육 수준을 자랑하는 도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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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도와 완전히 분리된 보도 겸 자전거도로

    쓰쿠바 최고의 명문고는 쓰치우라1고(土浦1高)다. 이 학교는 매해 40여 명의 도쿄대 합격생을 배출하고 있다. 한 학년 학생 수가 400여 명이니 열 명 중 한 명 꼴로 ‘하늘의 별 따기’라는 도쿄대 입학에 성공하는 것이다. 이는 일본 전역에서 가장 높은 수치라고 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수준도 도쿄지역 명문 공립학교들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 취재 중 만난 시민들의 한결같은 평가였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의 대덕단지를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학력과 교육열이 남다른 이들이 좁은 지역에 모여 산 결과가 아니겠는가.

    쓰쿠바의 또 다른 특징은 이른바 ‘에코 오바상(환경 아줌마)’의 존재다.

    “남편을 따라 쓰쿠바로 이주하는 여성들은 대개 학력이나 경제적 필요와는 상관없이 직장생활을 포기하게 됩니다. 일자리가 충분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상당수가 또 다른 자기 실현의 방편으로 시민운동이나 사회 봉사 활동에 투신하고 있는 거지요. 이들의 힘이야말로 쓰쿠바의 오늘을 있게 한 숨은 원동력입니다.”

    쓰쿠바의 핵심 NPO(비영리조직)인 TUG(Tsukuba Urban Gardening) 회장 이구치 유리카씨의 말이다.

    20년째 쓰쿠바에 살고 있는 이구치 씨 또한 처음에는 일자리를 찾는 주부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소박한 생각에 시민단체 일을 시작했다. 비즈니스와 사회 봉사 활동을 접목할 길을 찾던 중 ‘도시정원 가꾸기’라는 아이템에 주목하게 됐다. 공원은 많지만 시의 손길이 구석구석 미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착안한 것이다.

    “1993년 정원 가꾸기 강좌를 처음 시작했습니다. 취직에 도움을 받으려는 여성들이 대다수려니 생각했는데 의외로 도시 가꾸기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더군요. 하지만 시에서는 실습 장소 제공이라든가 그런 도움을 주는 데에 매우 인색했습니다. 자연 봉사 활동도 활성화되지 못했죠. 그런데 1997년 중앙정부 차원에서 계속돼 오던 주택정비공단의 도시 관리 작업이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시 스스로 홀로 서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죠. 이렇게 되자 시당국에서 먼저, 정원 가꾸기 강좌 수강생들을 중심으로 일을 해보자는 제안을 해왔습니다.”

    1998년 시, 관련 기업,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TUG 실행위원회’가 생겼다. 사무국 일은 시민단체 쪽에서 맡았다. TUG는 전문정원사와 아르바이트 주부, 무료봉사회원 등을 동원, 시내의 수많은 정원과 가로수 정비, 꽃길 만들기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처음 목표대로 일자리 창출과 봉사활동을 접목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구치씨가 관여하는 업무 중에는 ‘나의 기획’이라는 제목의 공공 이벤트 사업도 있다. 역시 시, 기업, 시민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형태다. 쓰쿠바에는 일본 간토 지역 일대에 수십 개의 지점을 두고 있는 슈퍼체인업체 가쓰미의 본사가 있다. 설립자의 뜻에 따라 가쓰미빌딩은 ‘나의 기획’ 행사에 장소를 제공하도록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시민 중 누군가가 공연이나 전시회, 세미나 등의 행사를 열고 싶다 하자. 계획을 잘 짠 다음 ‘나의 기획’ 사무국에 계획서를 제출한다. 이것이 심사에 통과하면 가쓰미 그룹과 시 당국, 시민단체 등의 도움을 받아 행사를 개최할 수 있다. 이구치 씨는 “고도(古都)로서의 멋과 정취가 부족하고 (도쿄에 비해) 문화적 환경도 열악함을 생각할 때 시와 손잡고 이러한 행사를 개최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다행스럽게 생각된다”며 “쓰쿠바의 매력은 바로 이렇게 능력 있고 국제화된 시민들이 시의 운영과 발전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현재 쓰쿠바에는 40개의 NPO가 있고 그 중 10개가 환경 관련 단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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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쿠바에는 250여 개의 국책·민간 연구기관이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고에네르기가속기연구기구, 방재과학기술연구소, 농업기술연구기구, 산업기술종합연구소

    이처럼 쓰쿠바는 시민들에게 남다른 만족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세계적 도시라 하기에 손색이 없다. 오히려 문제는 계획도시로 처음 입안되었을 당시의 두 가지 목표, 그러니까 지식산업의 집적을 통한 시너지 창출과 수도 기능 분산이라는 측면에 있어 얼마만큼 성공을 거두었느냐 하는 점이다.

    1990년대 초까지 학원연구도시로서 쓰쿠바가 거둔 성과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도시 그 자체로서, 또 지식산업의 집산지로서 나름의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는 평가다. 그러나 쓰쿠바도 1992년 이후 일본열도 전체에 불어닥친 장기 불황의 여파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급변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과거의 목표를 재정립하고 미래를 도모하는 데 부족함은 없었는가 하는 자기 반성이 이어졌다.

    쓰쿠바 건설의 핵심 컨셉트는 ‘세계를 앞서가는 테크노폴리스의 건설’이었다. 테크노폴리스란 일본이 산업고도화 정책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개념이다. ‘지방에 산업·연구 기능 및 쾌적한 주거환경 등을 거의 완벽하게 갖춘 소도시를 조성해 고급 두뇌들이 마음 높고 첨단과학 연구에 전념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이들의 연구성과를 지역 내 기업체에서 산업화함으로써 산업구조 고도화와 지방도시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쓰쿠바는 두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수한 두뇌를 불러모아 연구에 전념토록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첨단 과학, 즉 IT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고 산학협력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에도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쓰쿠바 산학협동공동연구센터(ILC : Tsukuba Industrial Liaison and Cooperative Research Center)’ 기술이전지원실장인 쓰쿠바대 아사노 사다오 교수를 만났다.

    “쓰쿠바대를 비롯한 시 소재 연구기관들은 그동안 기초 과학 연구에 많은 비중을 두어 왔습니다. 반면 산업화 의식은 낮은 편이었지요. 다양한 분야의 국책·공공 연구소가 많다는 점도 그 한 이유였고요. 그렇다보니 실리콘밸리처럼 원활한 산학연계 작업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훌륭한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던 거죠. 공장 등 산업시설 이전 자체를 경원시하는 분위기까지 팽배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대학이나 시 당국, 각종 연구소들도 남다른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 최고의 테크노폴리스라는 명성을 IT 중심 도시인 가와사키 같은 곳에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문제의식 하에 설립된 ILC는 일종의 벤처창업지원 센터다. 창업을 원하는 쓰쿠바대 내 교수 및 학생들에게 연구공간과 자금을 지원한다. 이렇게 배출한 벤처기업은 도쿄대와 비슷한 15개사. 이 정도면 벤처기업에 대한 인식이 일천한 일본에서는 상당한 성과라 할 수 있다.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바라키현, 쓰쿠바시, ILC, 산업종합연구소(통산성 산하 연구소) 등이 참여하는 쓰쿠바연구회를 결성, 3년 내 100개의 쓰쿠바발(發) 벤처기업을 만들고 그 중 10개사를 상장시킨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쓰쿠바의 도전은 침체에 빠진 일본 경제에 커다란 자극제가 될 것입니다.”

    두 번째 문제제기는 수도 기능 분산에 관한 것이다. 실제로 도쿄시민들 중 쓰쿠바를 동일 권역의 도시로 인식하고 있는 이는 거의 없는 듯했다. 쓰쿠바에 ‘도쿄의 위성도시’라는 개념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그 가장 큰 원인은 도시 계획 당시부터 예정돼 있던 ‘쓰쿠바 익스프레스’의 건설이 늦어진 때문이다. 버스로 한 시간 거리라고는 하나 교통비가 너무 비싸(왕복 2500엔, 한화로 약 2만5000원) 실제 도쿄-쓰쿠바 사이를 출퇴근하는 이는 많지 않다. 그렇다면 2005년 1월 ‘쓰쿠바 익스프레스’가 개통된 후 도시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질까.

    “철로를 따라 소규모 역과 그를 중심으로 한 주거지들이 건설될 것입니다. 철로 양편으로 간선도로도 뚫릴 예정이고요. 이렇게 되면 도쿄와 쓰쿠바 사이에 여러 개의 작은 베드타운들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지요. 도시 간 연계도 놀랄 만큼 활성화할테고요.”

    쓰쿠바시 총무부 이토가 무쓰오 실장의 설명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다. 쓰쿠바대 사회공학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유학생 박용훈씨는 “수업 시간에 이와 관련한 토론을 벌인 적이 몇 번 있다. 중간 기착지마다 소규모 주거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에 대한 비판이 특히 많다. 단지 역이 있다는 것만으로 주거지의 요건이 충족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생활편의시설, 치안 문제 등이 함께 해결돼야 한다. 애초 2002년이던 ‘쓰쿠바 익스프레스’의 완공 시기가 3년이나 뒤로 미뤄진 것도 철로 주변 땅 소유자들이 매매를 꺼렸기 때문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토가 실장은 “아니다, 토지 선매(先買)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땅 값도 많이 올라 주민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쓰쿠바 시민의 입장에서 볼 때 철로주변 거주지 건설 문제는 주 관심사가 아니다. 오히려 경계해야 할 점은 쓰쿠바 시 자체가 도쿄의 베드타운으로 전락할 가능성이다.

    이에 대해 쓰쿠바시 총무부 기타지마 히로시게 주임주사는 “크게 우려하지 않고 있다. 그렇더라도 쓰쿠바의 고급 두뇌가 도쿄로 빠져나갈 가능성에 대해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시와 쓰쿠바대, 각 연구기관들이 산학협력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토록 많은 힘을 쏟고 있는 것도 그에 대한 대비의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도 불구하고 쓰쿠바는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일본 최고의 테크노폴리스’ ‘깨끗하고 살기 좋은 도시’라는 명성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중앙 정부의 전폭적 지원 하에 이루어진 꼼꼼한 도시 설계, 명확한 산업 컨셉트, 자연친화적 생활 환경, 시 당국의 열린 행정, 시민들의 적극적 봉사활동과 시정 참여. 더하여 국제 두뇌 중심지로서의 면모와 우수한 교육 여건은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쓰쿠바만의 ‘본질 가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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