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터운 기풍으로 일관하던 이창호 9단의 바둑이 과감하고 치열해지고 있다. 그의 실험은 성공할 것인가.
그랬다. 이창호는 바둑에 관한 한 신이었다. 바둑의 궁극적 지위는 9단이고, 9단은 입신(入神)으로 통칭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창호는 ‘입신’으로 추앙받아 지극히 마땅한 존재였다.
이창호의 바둑은 완벽했고, 특히 추종을 불허하는 계산력은 이미 바둑사의 전설이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입신이 존재했지만, 그는 그 가운데에서도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랬던 그가 올 들어 조금씩 수상한 조짐을 보이더니, 2/4분기에 이르러선 아예 위험수위를 드러내고 있다.
올 들어 이창호가 국내외 기전에서 올린 성적은 29승 15패. 다승부문은 6위요, 승률부문에선 아예 10위권 밖으로 처져 있다. 한 해의 절반농사를 마친 시점에서, ‘천하의’ 이창호가 30승 고지에조차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수상한 조짐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2003년 시즌이 스타트되었을 때만 해도 그는 -체감적으로는 분명 조짐이 없다고 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2월에서 3월에 걸친 제7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전 시리즈를 치르기 전까지는 그런대로 이창호다운 행마를 해왔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이창호는 상반기 중 세 개의 국제기전에서 인상적인 성적을 거뒀다. 국가대항단체전인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 한국팀 주장으로 나서 최후 방어에 성공해 한국의 단체전 불패신화를 이어가게 했고, 일본이 모처럼 마음먹고 창설한 도요타덴소배 세계왕좌전에서는 초대 우승을 차지, 3억원의 상금과 1억원짜리 도요타 렉서스 승용차를 집으로 가져갔다.
유일한 아킬레스건으로 존재했던 춘란배에서도 우승해 스승 조훈현, 선배 유창혁에 이어 현존하는 세계대회를 한 차례 이상씩 모두 우승하는 ‘바둑 그랜드슬램’의 위업을 달성하기도 했다.
2/4분기 들어 ‘돌림빵’ 신세
급전직하(急轉直下)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인가. 2/4분기 들어서면서, 이창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가? 4월 이후 그의 성적은 21전 12승 9패. 승률을 매겨보면 57%로 채 60%에도 미치지 못한다. 도통 이창호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창호도 결국 신이 아닌 인간인지라, 지금까지 햇수로 18년간 프로기사 생활을 해오며 단 한 차례도 슬럼프 또는 위기가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작금 이창호의 부진 역시 지금껏 거쳐간 크고 작은 슬럼프의 포말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바둑가에서 심상찮은 눈으로 보는 까닭은 패점의 ‘양’이 아닌 그 ‘질’에 눈길이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무슨 소리인가?
4월 들어서부터 7월10일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창호가 아홉 번의 패점을 기록했다는 사실은 이미 밝혀놓았다. 그런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꽤 놀라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솔직히 그 동안 이창호에게 패배를 - 그나마 간간이 - 안길 수 있었던 기사는 조훈현과 유창혁뿐이었다고 봐야 한다. 여기에 새천년 들어 급부상한 이세돌까지.
하지만 불과 석 달 열흘, 즉 100일간 이창호를 돌려세운 기사는 네 명이나 된다. 외국 기사 둘을 합하면 물경 여섯 명이다. 이창호의 아홉 번의 패배는 여섯 명의 기사에게 돌아가며 ‘돌림빵’을 당한 것이다!
이창호는 제7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시리즈 패배 직후 벌인 바둑왕전에서 이세돌에게 또다시 졌고, 국내 유일의 지역대항단체전인 KAT시스템배에서는 전북팀 주장으로 나서, 서울남팀 주장 박영훈에게 패했다. 그것도 대마를 잡히며. 바둑왕전 본선에서는 조한승에게 졌고, 후지쓰배는 결승을 코앞에 둔 길목에서 송태곤에게 완패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갑작스런 난조인가? 아니면 허리근육 파열을 쉬쉬하며 무리한 투구에 임했던 박찬호처럼, 이창호 역시 뭔가 ‘조짐’을 품은 채 바둑을 두어왔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