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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문학가 이오덕의 들판이야기

산산조각으로 박살나는 겨레 모둠살이

산산조각으로 박살나는 겨레 모둠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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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돈이 4000여 만원인데, 500평 땅을 팔아봐야 겨우 1000만원밖에 안 된다. 그런데 다행하게도 시집간 딸이 이 소식을 듣고 빚 갚는 데 보태 쓰라고 1500만원을 보내주었다. 그래서 그 돈하고 모두 2500만원은 갚을 수 있으니, 남은 빚 1500만원은 앞으로 택시 운전을 부지런히 해서 조금씩 갚아 나가면 먹고 살 수는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듣고 보니 그 사정이 하도 딱해서 우리 아이가 서울 있는 친구한테 급히 알려서 그 땅을 팔 수 있도록 주선을 했다.

땅을 팔고 난 다음 하루는 그 안노인 아들이 우리 아이를 찾아와서 고맙다면서 소개해준 수고비로 돈을 든 봉투를 주는 것을 받지 않았다. 그랬더니 돈이 적어서 안 받나 싶어 그 다음날은 더 불룩한 봉투를 가지고 와서 두고 갔다고 한다. 그래 우리 아이가 그 집에 다시 찾아가서 나는 지금까지 이런 일을 더러 했지만 한 번도 돈을 받은 적이 없으니 이번에도 받을 수 없다고 하여 그 할머니에게 돌려주고 왔다고 한다. 우리 아이가 말했다. “그런 돈 받으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끊어지잖아요. 사람은 서로 정을 주고받는 것이 돈을 주고받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지요.”

시골 농사꾼 가운데는 아직도 이 안노인과 그 아들처럼 성실하고 착한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런 착한 사람일수록 온갖 재난을 당하고, 총각들은 장가도 못 가고 사기를 당하고 한다. 한편 처녀들치고 농촌에서 농사일을 거들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고 죄다 도시로 가 있다. 도시에서 살다 어쩌다가 시골로 돌아와 농사꾼과 결혼해서 사는 수가 있어 신통하다 싶으면 몇 해 안 가서 그만 어디로 가버린다. 아이를 몇이나 낳아서 기르다가도 다 버리고 도망을 가버린다. 빚까지 잔뜩 지어놓고. 이런 집이 한두 집이 아니다. 이런 현상은 벌써 10여 년 전부터 온 나라에 나타나 갈수록 심하게 되었다. 나는 남녀평등이고 호주제 폐지고 다 찬성하지만, 여성들이 펼치고 있는 여권운동이란 것이 어째서 이런, 자신들이 사람으로서 올바르게 살아가는 일에는 아주 눈을 감아버리는지, 그것을 알 수 없다. 도시 생활이 잘못되었다고 깨닫고는 농촌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어쩌다가 있는데, 이런 가정에서 대개 남편은 농사꾼이 되고 싶어하지만 그 부인들은 도시에서 소비생활이나 즐기고 싶어한다. 그래서 흔히 이산 가족이 되고 만다. 또 부부가 함께 와서 농사를 짓게 되는 경우에도 남편은 땀 흘려 애써 일하는데 여자들은 일을 싫어해서 도시의 사치한 생활을 그대로 흉내내려고 하고, 집이고 옷이고 겉모양만 내고 싶어한다. 그러다가 자식도 남편도 버리고 집을 나가는 것이다. 하도 이런 일을 많이 듣고 보아서, 방송이나 신문에서 도시의 여성들이 온갖 수난을 겪고 인권이 짓밟히고, 윤락여성으로 팔리고 한다고 해도 그만 별로 동정이 가지 않게 되었다. 모두가 제 잘못이고 ‘자업자득’이란 생각까지 들게 되었다.

비극의 교통사고, 그리고 자살

이 마을에 홀로 사는 천씨 할아버지는 아들이 삼형제다. 딸도 있는데 몇인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다. 세 아들 중 막내는 도시에 나가 공원으로 살아간다. 여기서는 맏아들과 둘째아들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천씨 노인은 살기가 어려운 터에 맏이가 장가를 가서 식구가 늘어났기에 그만 아들이 며느리와 같이 살지 못하도록 집에서 내쫓아버렸다. “네 식구가 먹을 것은 어디 가서 네가 벌어오라”고 한 것이다. 쫓겨난 아들이 집을 나가서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무엇을 해보려고 했지만 아무데도 일할 자리가 없어 굶주리며 거지 노릇을 하다가 집이 그립기도 하여 돌아오면 아버지 천씨 노인은 또 불호령으로 쫓아내고, 그러기를 두어 해 동안이나 되풀이했다. 그래도 아들은 자꾸 집으로 돌아왔고, 흔히 집 뒷산에 숨어 있기도 했다. 그래서 그 아내가 시아버지 몰래 음식을 산에 갖다주고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한번은 맏아들이 동생집으로 찾아갔다. 동생은 서울에서 순경을 하고 있었다. 찾아갔던 그날도 동생은 직장에 나가 있었고, 맞벌이하는 그 아내도 일자리에서 돌아오지 않아서 어린 조카가 집을 지키고 있었다. 맏아들은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였기에 장가를 늦게 가서 아들이 이제 겨우 두 살쯤 되었지만, 순경으로 있는 동생은 벌써 열 살쯤 되는 아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 조카하고 방에서 놀면서 동생 내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동생이 돌아왔다. 순경 동생은 술에 만취가 되어 돌아오자마자 방바닥에 쓰러져 누워버렸다. 조카가 아버지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어 장난을 쳤다. 권총에는 총알이 들어 있었다. 아이는 그 권총을 자랑스럽게 쳐들어 보이면서 방아쇠를 당기는 시늉을 하다가 정말 큰아버지를 겨누어 쏘아버렸다. 큰아버지는 그만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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