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8월호

性·사랑·외도…인류 最古의 주제

  • 글: 표정훈 출판칼럼니스트 medius@naver.com

    입력2003-07-30 14: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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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性·사랑·외도…인류 最古의 주제
    올해는 킨제이 보고서란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앨프리드 킨제이 박사가 ‘여성의 성적 행동’을 발간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1953년 당시 킨제이 보고서는 출간되자마자 12개국어로 번역되고 한 달 만에 25만부가 팔렸다. 동성애, 자위, 혼외정사, 매매춘, 오르가슴 등 그때까지 금기시되던 주제들을 공공연히 다룸으로써 사회적 파장도 매우 컸다. 흥미로운 건 킨제이 박사가 5년 먼저 낸 ‘남성의 성적 행동’은 별 반응을 얻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상·비정상 따질 수 없는 성생활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나 ‘현대인의 성생활: 21세기판 킨제이 보고서’(이마고)가 나왔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의 자닌 모쉬-라보가 프랑스 노동부의 지원을 받아 1999년부터 2001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프랑스에 거주하는 140명을 대상으로 행한 인터뷰 결과를 담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사람들의 성관계 횟수나 오르가슴 도달 여부 같은 걸 알고자 한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굳이 그런 사항이 궁금하다면 1992년에 행해진 다른 조사 결과가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프랑스 사람들의 첫 성경험 연령은 평균적으로 남성 17세, 여성 18세. 평생 성 파트너는 남성이 11.3명, 여성은 3.4명. 오르가슴을 경험한 비율은 남성 88.8%, 여성 74.6%. 구강성교 경험은 남성 79%, 여성 66%였다. 한 달 평균 성교 횟수는 남성 8회, 여성 7회라고 한다.

    모쉬-라보의 책은 양적 연구보다 질적 연구에 가깝다. 예컨대 대다수 여성이 30대 중반이 돼서야 성적 쾌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17∼19세 사이에 이뤄진 프랑스 여성들의 첫경험은 쾌감은커녕 공포와 고통이며, 남성에게 성과 관련해 일생 동안 가장 큰 사건은 자위행위를 알게 된 때라고 한다. 성 파트너와 헤어지고 만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성별 특징도 흥미롭다.



    이 책엔 3000명 정도의 여성과 관계를 가진 남성 스트립댄서, 3명의 아이가 있는 여성과 동거중인 레즈비언 음악가, 세 아이의 아버지로서 여자로 성전환해 가족과 함께 사는 32세 컴퓨터 기술자 등 상식적으론 이해되지 않는 사례들도 나온다. 개인의 성생활은 너무도 복잡하고 다양한 것이어서 정상과 비정상을 정의할 수 없다는 게 저자의 요지다.

    이런 요지에서 필자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 하나는 숫자가 적다고 해서 양성애자, 동성애자, 성전환자, 여장남자, 남장여자 등을 비정상으로 치부하지 말자는 사회적 깨달음이다. 다른 하나는 내 나름의 성적 취향을 놓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려 들지 말자는 사적인 깨달음이다. 남들이 ‘하는 걸’ 이상하게 볼 필요도, 그렇다고 내가 ‘하는 게’ 이상하지 않나 움츠러들 필요도 없다.

    애인의 체취 없애는 법

    그런데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사랑인 일이 있다. 이른바 바람 피우는 일이다. 지난해 말 한국성과학연구소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배우자 이외의 상대와 외도를 해본 비율은 78%에 달했다. 배우자 외에 지속적인 성관계 상대가 있느냐는 질문엔 15%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래서일까. 번역서지만 불륜 아닌 사랑을 원하는, 혹은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을 위한 실전 가이드까지 등장했다. 자비네 에르트만과 볼프 슈라이버가 쓴 ‘리스크 없이 바람 피우기: 바람남녀 실전 노하우’(북키앙)란 책이다.

    책 제목이 이러니만큼 저자가 궁금하다. 대기업 비서로 근무중인 에르트만은 두 아이의 엄마로 결혼한 지 8년 된 주부이며, 남편 몰래 5년째 바람을 피우는 중이다. 대기업 임원인 슈라이버는 결혼한 지 13년째인 남성으로 세 아이를 두었고, 3년 전부터 아내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다. 부인은 의심 많고 똑똑하지만 단 한 번도 슈라이버의 외도에 관한 결정적 단서를 잡지 못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애인으로 적당할까? 연애상대가 자신에게 흠뻑 빠진 경우는 조심해야 한다. 처음부터 세컨드 역할에 만족하지 않고, 정식 파트너 자리를 탐낸다면 이미 위험수위라는 것. 이럴 땐 도망치는 게 상책이란 게 저자들의 충고다. 그러면 헤어지고 싶을 때는? 상대가 복수의 칼을 갈지 않게 늘 사랑스럽고 자상하게 대해야 한다. 상대를 단지 이용만 했다는 느낌을 줘선 안 된다. 그러면서 점차 응하는 횟수를 줄이고 직설적으로 헤어지자고 말하지 않는다. 애인이 스스로 헤어지자고 할 때까지 침착하게 기다려야 한다.

    바람 피우는 사람들의 가장 큰 걱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애인의 체취다. 숯과 분사식 탈취제 등이 해결책이다. 숯은 강한 냄새를 빨아들이는 데 더없이 좋다. 차 안이나 사무실 책상 아래 숯을 두면 냄새를 없애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준비성이 없는 사람이라면 담배 연기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담배 연기는 한 시간 이내에 진한 향수 냄새까지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 결국 담배 연기 자욱한 레스토랑이나 술집에 앉아 있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 책의 내용을 뒤집어 생각하면 배우자의 행실을 체크하는 리스트로 써먹을 수 있다. 예컨대 성관계 중 평소 안 하던 행위를 하거나 새로운 체위를 요구한다면, 다른 사람과의 경험에서 배운 것일 가능성이 있다. 전엔 그렇지 않았는데 휴대전화에 잠금장치를 해놨거나 한밤중에 굳이 거실로 나가거나 한다. 회식이 있다면서 늦게 들어왔는데 술을 마신 것 같지 않고 오히려 깔끔하며 별로 피곤해하는 것 같지도 않다. 자신의 옷을 직접 세탁하거나 세탁소에 맡기는 일이 많아진다. 갑자기 몸에 대해 타박이 심해진다. 예컨대 엉덩이가 처졌느니 배가 나왔느니 하며 다른 남성 혹은 여성과 비교한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이 앞선다. 만일 이 책을 보관하고 있다가 배우자에게 들킨다면? 저자들이 그 점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책의 크기가 비디오테이프 크기와 같다. 그러니 비디오 케이스에 책을 넣어두면 된다. 더구나 이 책의 표지를 벗겨 뒤집어씌우면 제목도 따분한 ‘아름다운 우리 강 우리 산’이란 다른 책이 된다. 이 책과 관련해 정작 중요한 건, 우리 사회가 이런 성격의 책도 용납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말이다.

    여자에겐 두 남자가 필요하다?

    28세부터 71세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층의 기혼여성 23명의 연애 이야기를 담은 책도 있다. ‘나에게는 두 남자가 필요하다’(마음산책)가 그것인데, ‘우리나라 주부들이 큰 일이다’라고 개탄하긴 이르다. 마르티나 렐린이라는 독일 저자가 엮은 독일 여성들 얘기니 말이다.

    이 책에 실린 여성들 가운데 그저 일상이 권태롭고 심심해서 애인을 사귀는 여성은 한 명도 없다. 모두 자기 일을 갖고 있는 그들은 애인은 현재 그대로 애인으로 남아 있는 것이 최선이며, 낮에 곁에 있으면서 일상을 지탱해줄 남자와 열정적인 밤을 함께 보낼 남자, 그래서 남자가 둘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들은 심지어 ‘나는 남편에게서 아무 것도 빼앗는 것이 없다’고 자신한다. 오히려 잃어버린 설렘과 강렬한 열정을 찾은, 그래서 더욱 자신감 있고 삶에 만족하는 아내와 어머니를 통해 남편이나 가족 전체가 수혜자가 된다는 주장까지 펼친다.

    물론 모든 여성이 애인과의 관계를 통해 일종의 자기 발전과 가족에 대한 기여까지 달성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 책에도 결혼생활을 유지하면서 애인을 가질 수 없다는 걸 안다고 고백하는 여성, 실제로 애인 때문에 남편과 이혼하고 아이들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아픔에 빠진 여성이 등장한다. 저자의 견해는 어떨까? 독일에선 부부의 3분의 1이 이혼한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일부일처제가 기존의 사회 전체를 유지하는 데 필요하면서도 실제로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제도라면, 그 보완책으로 남녀간의 좋은 친구관계를 생각해볼 수 있다.’ 남녀간의 좋은 친구, 하지만 말처럼 쉽진 않을 것 같다.

    예술? 외설? 보면 안다

    마지막으로, 소장 가치가 큰 책이지만 어린 자녀의 눈길이 닿지 않도록 주의해서 소장해야 하는 책이 있다. ‘SXE: 잃어버린 자유, 춘화로 읽는 성의 역사’(해바라기)다. 그리스, 로마, 중국, 인도, 일본, 페르시아 등 각 지역의 노골적인 성 풍속화, 고대의 춘화부터 오늘날의 사이버 섹스 장면까지 담은 200여 장의 훌륭한 도판과 만날 수 있다. 책제목 ‘SXE’는 오기(誤記)가 아니며 ‘SEX’의 순서를 일부러 바꿔 완곡하게 표현한 것. 동아시아 전통 사회에서도 춘화를 운우도(雲雨圖)라 하여 은근하게 일컫기도 했다.

    이 책과 관련해 아주 오래된 질문을 던져본다. ‘예술이냐 외설이냐.’ 물론 이 책은 예술도 외설도 아니며 차라리 문화사에 가깝다. 하지만 책의 절반은 독자가 만든다는 말이 있다. 요컨대 이 책의 성격은 독자의 태도에 따라 결정된다. 음란성의 기준을 놓고 토론하던 미국 대법원 판사들 중 한 사람은 ‘보면 안다(I know it when I see it)’는 의견을 내놓았다던가.

    성, 사랑, 외도. 이것은 인류 최고(最古)의 주제이며 적잖은 사람들에게 최고(最高)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시대와 사회, 개인에 따라 그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이나 대하는 태도가 천차만별일 것이다. 각자의 방식과 태도가 무엇이든, 그 천차만별의 양상을 확인해보는 건 누구에게나 유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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