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화된 재산이 아니라 공적인 법인 성격을 띠고 있으니….
“부정으로 치부한 정치인 경제인들은 다 그런 식으로 전위기관을 내세워 재산을 관리하지 않습니까. 무슨 재단이니 하면서. 워낙 독재기간이 길었고 그 후에도 박 정권을 옹호하는 정권이 들어서다 보니 진실을 파헤칠 기관도 없었고 의지도 없었던 거지요. 급기야 박정희 기념관 건립에 국가가 재정을 지원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지요. 정치권이 박정희 향수와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그런 조치까지 취한 것 아닙니까.”
기자가 “그건 김대중 대통령이 주도한 것 아니냐”고 묻자, 이 의장은 “그 얘긴 하고 싶지 않다”고 말을 자르면서 “그러니 박정희 지지자들이 더욱 의기양양해질 수밖에” 하고 개탄했다.
독재자들의 착각
-경제발전에 대한 신념과 열정, 국민들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은 점,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대형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국민들에게 자부심을 갖게 한 점 등을 들어 박 전 대통령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 많죠.
“동양적 전제주의의 발상입니다. 영특한 지도자론, 왕조시대 지도자론이죠. 그런 걸 계속 미화해서는 민주주의로 발전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말이 많고 좀 더디더라도 국민의 집단적 합의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목표만 이루면 된다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가시적인 성과에 집착한 결과 날림공사, 부실공사로 건축물이 무너지는 등 얼마나 부작용이 많았습니까. 실적주의의 폐단이에요. 그것이 1960∼70년대 한국 근대화의 얼굴이죠. 힘 있고 돈 있으면 여자는 얼마든지 거느려도 된다는 식의 천박한 사고방식. 목표만 정당하면 수단은 아무래도 좋다는 발상. 사람이 좀 희생되면 어떠냐, 목적 달성만 하면 되지 하는….”
-국민들한테도 그런 의식이 전파됐다고 봐야 할까요.
“그 전부터죠. 왕조시대 이래로 민주주의 시대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12년 동안 독재를 한 이승만 전 대통령도 국부로 모시잖아요. 조금만 목소리가 높아지면 혼란으로 치부하는 데 익숙해져 있어요. 독재를 질서로 미화했지요. 1978년 동일방직사건 때 시위하던 여공들한테 똥을 먹였잖아요. 그건 인간에 대한 모독이거든. 그 시대엔 그런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졌단 말이지. 사람 죽여놓고도 자살한 것으로 꾸미고.”
-근대화란 산업화와 민주화를 말한다고 합니다. 박 전 대통령이 산업화에 성공한 만큼 민주화에 발판을 마련해준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민주화를 생각하고 산업화를 했다는 뜻은 아니겠지. 산업화를, 독재권력을 장기화하고 공고히 하는 발판으로 삼았을 텐데. 모든 독재자의 착각이 그것이에요. 국민을 잘살게 해주면 영원히 추종받는 줄 알고….”
-실제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과 향수가 살아 있잖아요.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준 위대한 지도자라는.
“민주주의를 하면서도 경제발전을 이룬 사례가 국민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그래요. 경제발전은 이뤘지만 독재의 후유증이 얼마나 큽니까.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지금도 얼마나 큰 비용을 치르고 있냐 말이죠. 언론이 박정희 시대를 제대로 조명하고 분석해야 해요. 이번에 아시아정당회의에 가서 보니 우리나라는 외딴 섬이야. 경제적으로는 앞서 있는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미숙한 상태예요. 이는 남북이 마찬가지입니다. 냉전분단독재의 후유증이죠. 60년 가까이 계속된 분단독재 속에서 양쪽에 조성된 기득권이 있잖아요.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 남쪽에서는 국가보안법이고 북쪽에서는 노동당 규약입니다.”
“궤변에는 답하지 않겠다”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에 대해 학계에서는 세 가지 시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절대적 긍정론으로 그 시대에는 반드시 그 모델이 필요했을 뿐더러 지금도 그 방식이 유효하다는 것이고, 둘째는 옳은 방법은 아니었지만 산업화 초기에 불가피했다는 시각입니다. 마지막으로 독재 정당화 논리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있죠. 의장님은?
“민주화를 통한 경제발전은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담고 있는 것 아닌가요.”
-역으로 말씀하시는데, 논리적으로 꼭 일치하는 얘기 같지는 않습니다.
“박정희 모델이 꼭 필요한 것이었다는 얘기엔 독재를 합리화하는 논리가 숨어 있죠. 내 말은 그런 걸 받아들일 수가 없단 거예요. 박정희 독재하에서 이뤄진 경제성장의 과실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돌아갔다면 좋은 일이죠. 그런데 대다수 국민은 피땀 흘린 것만큼 받지 못했어요. 오히려 많이 빼앗겼지.”
-경제발전 성과는 인정하지만 그 열매가 제대로 국민들에게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비난받아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돌아가지 않았죠. 그런데 그 전보다는 조금 낫게 살게 됐기 때문에 그것마저 감지덕지 감사하는 측면이 있어요. 언론을 통해 얼마나 찬양이 됐습니까.”
-조갑제씨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인권제약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배고픔 해결로 오히려 인권신장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그런 궤변엔 대답하고 싶지 않아요. 한때는 박정희 전두환의 인권탄압을 격렬히 비판했던 사람이에요, ‘마당’이라는 잡지의 기자로 있을 때. 일관성이 없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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