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프랑스에서는 전시상황에서 초법적 처벌이 행해졌고, 전후 사법적 처리단계에서도 처벌의 형평성, 일관성 등에 많은 문제가 따랐다. 사실 프랑스의 사례는 숙청과 처벌을 통한 인적·제도적 청산 노력만으로 과거의 불행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전후 프랑스 문단에서 진행된 부역 지식인 숙청작업은 그 점을 특히 잘 보여준다. 프랑스 문단의 부역 문인 숙청작업은 처벌론과 관용론이 맞서는 가운데 분열과 반목, 갈등과 혼란만 초래했을 뿐 성찰과 치유의 노력으로 이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1980년대 이래 프랑스 사회가 종전 후 숙청당한 부역 지식인들을 반민족행위가 아니라 파시즘이 지배한 당대의 지적·문화적 풍토의 측면에서 재조명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할 것이다.
프랑스에서 철저한 과거청산 과정이 있었다는 것은 나치 점령기 동안 영웅적인 레지스탕스 운동을 전개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후 프랑스가 국가재건을 목적으로 창조한 하나의 신화에 불과한 면이 있다. 알제리 사례는 그 점에서 매우 시사적이다.
알제리의 식민종주국이었던 프랑스는 1954년에서 1962년까지 8년여에 걸친 알제리 독립전쟁 기간 중 학살과 고문 등 비인도적인 범죄를 자행함으로써 또 하나의 과거청산 과제에 당면했지만 오랫동안 망각과 침묵, 은폐로 일관했다. 알제리 식민지배에 대한 프랑스 사회의 태도는 나치 지배에 대한 태도와는 대조적인 것으로 과거청산 작업이 윤리적으로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하는지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잣대와 기준
둘째, 친일세력 청산작업의 또 다른 문제점은 그 잣대와 기준에 있다. 집권여당 의원이 중심이 되어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과 최근 여당이 다시 국회에 제출한 이 법의 개정안은 현재 논의중인 친일청산의 잣대와 기준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무엇보다 진상규명의 대상인 친일행위에 대한 규정이 극히 포괄적이고 추상적이라는 점, 사실상 구체적인 행위가 아니라 특정 지위나 직책 자체를 조사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규정은 노 대통령을 포함하여 유신헌법을 공부해 국가고시를 치르고 법관의 지위에 올랐던 사람은 모두 유신시대 과거사 규명과 관련해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주장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따라서 그런 주장이 타당하다고 믿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법안이 얼마나 불합리한 것인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한마디로 이 법안이 입법화될 경우 악용될 소지가 많으며, 인권침해와 명예훼손이 극도로 우려된다.
최근 우리는 우려하는 현상이 충분히 현실화될 수 있음을 목격한 바 있다. 친일세력 청산을 앞장서 부르짖던 여당 의원들이 오히려 일제시대 부친의 경력이 문제가 되어 마치 부메랑 현상처럼 정치적·도덕적으로 타격을 입은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듯이 입법의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악용의 소지가 농후한 법률을 용인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특별법의 취지에 대해 특정 인물이나 언론을 겨냥한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주장이 이미 제기된 바 있다. 사실 이 법안만으로 본다면 친일행위 규명의 의도나 목적의 순수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친일 과거사 규명과 관련해 정략적인 의도가 있다는 의혹을 불식하고 싶다면, 친일행적을 폭로함으로써 단순히 증오나 울분을 해소하고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기준과 방식에 대해 거듭 숙고하고 신중을 기해야 마땅하다.
친일 과거청산이 일방적이고 흑백논리적인 심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친일행위 자체뿐 아니라 행위의 배경인 역사적 상황과 맥락에 유의해야 한다. 예컨대 성세(盛世)를 구가하던 일본제국주의의 힘이 식민지 엘리트집단의 현실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통치권력의 억압과 회유는 어떤 역할을 했는가 하는 등의 물음은 친일행위 규명에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물론 이러한 지적은 역사적 상황논리를 통해 친일행위에 면죄부를 주자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늦게 태어난’ 행운을 누리는 자 역시 스스로 역사적 경험의 당사자가 되어 자신이 선택할 행동의 가능성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자는 의미다.
과거사 규명이나 청산이 과거사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일제에 순응하고 협력한 행위를 용납할 수 없는 민족반역죄로 몰아 도덕적으로 낙인찍고 정치적으로 응징하겠다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바람직한 것은 친일행위를 ‘한 개인의 악’이 아니라 ‘한 시대의 불행’으로 인식하고, 비판과 더불어 연민의 시선으로 보아야 하며, 과오를 지적하고 책임을 추궁함과 아울러 그 과오에 대해 함께 가슴 아파해야 한다.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