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주 기사들이 양재호 9단(오른쪽)과 다면기를 두고 있다.
그는 바둑에 흠뻑 빠져 한동안 사람이 찾아온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문득 ‘저러니 이혼을 당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베일리 회장뿐만이 아니다. 호주 바둑인들 중엔 바둑 때문에 이혼한 사람이 여럿 있다. 대개는 부인들이 “나무판에 돌이나 올려놓는 괴이한 취미 때문에 가족을 방치하는 남편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이혼을 요구했다.
그래서일까. 호주 바둑인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마치 기인열전(奇人列傳)을 보는 듯하다. 바둑이라는 블랙홀에 빠져버린 파란 눈 괴짜들의 인생행로가 아주 흥미롭다.
시드니 서부의 관문 에쉬필드의 다운타운에 자리잡은 웨스트리그 클럽은 최근 개축한 건물이어서 무척 산뜻해 보인다. 그중에서도 건물 3층에 있는 간부회의실은 아주 고급스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바로 이곳에서 ‘시드니 바둑클럽(Sydney Baduk Club)’이 매주 금요일 오후 5시부터 바둑 모임을 갖는다. 말이 모임이지, 무슨 비밀결사대의 극비회동 같다. 말소리는 들리지 않고 바둑돌 놓는 소리만 들리기 때문이다.
“조 국수가 온다니 잠이 안 와요”
클럽 안에는 약 30명의 기사들이 바둑을 두고 있었다. 호주 사람들 외에 여러 명의 중국인과 여성 기사 세 명이 바둑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한국인은 진양일 박사(호주국립과학연구원) 한 사람뿐이었다.
시드니 바둑클럽에 한국 사람이 적은 것은 한국클럽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크로이돈 팍에 있는 한인회관 세미나실에서 바둑을 둔다. 일본 사람들은 노스 시드니의 한 음식점에서 바둑 모임을 갖는다.
시드니 바둑클럽의 역사는 196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시드니 시내의 YMCA에는 커트 프레토우가 이끄는 시드니 체스클럽이 있었다. 프레토우는 체스클럽 한 귀퉁이에서 몇몇 사람들에게 바둑을 가르쳤다. 호주 체스 챔피언이었던 프레토우는 1930년대에 독일에서 배운 바둑을 즐기면서부터 체스에 흥미를 잃었다고 한다.
클럽에 도착한 지 30분쯤 지났을까. 데본 베일리 회장이 차를 마시러 가다가 필자를 발견하고는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며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는 “한인바둑협회 창립 20주년이 마치 내 일 같다”면서 “특히 조훈현 국수와 양재호 사범이 시드니에 온다는 뉴스에 잠을 설칠 지경”이라고 했다.
베일리 회장은 호주한인바둑협회 창립 20주년 기념식장에서 읽을 연설문을 미리 보여줬다. 바둑 때문에 이혼당한 그의 처지가 연상되는 글 몇 줄이 눈에 띄었다.
“내가 한국 남자들의 바둑에 대한 열정을 알게 된 것도 어언 20년이 됐습니다. 또 한국 아내들이 바둑에 깊이 빠지지 않는 것이 한국 남편들에겐 행운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 남편들은 배를 곯을 위험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바둑 모임은 자정이 가까워서야 끝났다. 클럽 멤버들이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는 시간에 베일리 회장이 “조훈현 9단과 양재호 9단이 호주에 온다”는 뉴스를 회원들에게 전하자 갑자기 중국 기사들이 “와” 하며 환성을 질렀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들이었다.
조훈현 국수에 대한 중국계의 각별한 관심은, 지난 10여년 동안 세계 바둑계를 석권해온 한국 바둑의 맏형격인 조 국수에 대한 존경심에서 비롯된다. 게다가 1988년 제1기 잉창치(應昌期)배에서 조 국수가 중국 바둑의 영웅 녜웨이핑(?衛平) 9단을 물리치고 우승한 ‘괘씸한 사건’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언젠가 필자가 AGA 제3대 회장을 역임한 한상대 교수에게 “호주 바둑쟁이들은 하나같이 별종이다”고 했더니, “별종이라기보다는 변태(變態)들이지요”라고 답해 껄껄 웃었던 적이 있다. 20년 넘게 호주 사람들에게 바둑을 가르쳐온 한 교수가 말하는 호주의 ‘바둑 변태’들은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고 있기에 그런 평가를 받는지 궁금하여 그들을 탐문해봤다. 몇 사람은 직접 만났고 나머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한 교수와 진양일 박사로부터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