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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취재

요절복통 호주 바둑 30년 秘史

“아내와 바둑 중 하나를 선택 하라고? 당연히 바둑이지!”

  • 글: 윤필립 재(在)호주 시인 phillipsyd@naver.com

요절복통 호주 바둑 30년 秘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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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그레이는 시드니대 수학과 교수 출신으로 초대 시드니 바둑클럽 회장직을 맡아 1950~60년대 호주 바둑계를 이끈 사람이다. 그는 대학 재직중 수학 참고서를 써서 큰돈을 번 뒤 조기 은퇴해 바둑여행을 다니면서 전세계를 떠돌았다. 특히 한국과 중국을 좋아해 두 나라에 얽힌 많은 일화가 있다. 1970년대 초에는 만리장성에 올라 바둑을 뒀고, 1996년에는 70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베일리 회장과 함께 한국의 권갑용 도장에서 몇 달간 유학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한국이 그리워지면 주변의 바둑 친구들을 꼬드겨 서울로 향한다. 한번은 언어학자인 톰 포인튼 교수와 함께 서울 낙원동의 여관에 묵으며 매일 탑골공원으로 나가 그곳 노인들과 바둑을 두면서 몇 달을 보냈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아마 1급 정도의 실력이다.

점심때가 되면 공원 앞에서 노인들에게 무료로 국수를 나눠주는 트럭 앞에 줄을 섰다가 끼니를 때우고 저녁때까지 계속 바둑을 뒀다 하니 그들의 바둑 사랑을 무슨 말로 더 하겠는가. 두 사람 다 큰 부자지만 진정한 한국문화를 체험할 요량으로 한국에 올 때마다 허름한 여관에 머문다고 한다. 톰 포인튼은 언어학자답게 만년에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해 호주 바둑인 가운데 한국어를 가장 잘 구사할 뿐 아니라 한국문화에 심취해 다섯 차례나 한국을 방문, 전국을 일주했다고 한다.

데이비드 에반스는 호주 남동부에 있는 태즈메이니아(州) 국립의료원장을 지낸 저명한 의사다. 호주바둑협회 2대 회장으로 호주 바둑계에 큰 족적을 남긴 사람이지만, 부인과는 일찍 이혼을 했다. 정년보다 3년 일찍 은퇴한 이유가 바둑 때문이었다는 풍문이 있는 걸 보면 이혼 사유가 바둑이라는 얘기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에반스는 취미로 바둑판을 제작하기도 했다. 나중엔 태즈메이니아의 질 좋은 적송(赤松)으로 본격적인 바둑판 생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뜻이 있어 한국을 방문해 바둑판 제작회사를 돌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상당 부분의 공정을 수공업으로 처리하는 것을 보고 실망하여 포기했다고 한다.



한국계가 이끄는 호주 바둑

네빌 스마이스는 현재 호주국립대 수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저명한 학자로 1978년에 호주바둑협회(AGA)를 창설해 초대 회장을 지낸 호주 바둑계의 대부다. 시드니대 대학원에 재학중이던 1961년 시드니 체스클럽에서 독일계 커트 프레토우에게 바둑을 배웠다.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했는데, 지도교수가 미국에 바둑을 보급한 랄프 폭스 교수여서 물을 만난 고기처럼 바둑을 본격적으로 익힐 수 있었다.

스마이스는 1965년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과 호주에서 수학을 강의하다가 1972년 호주 수도 캔버라에 있는 호주국립대 교수로 임용됐다. 그는 곧바로 캔버라의 바둑인들을 규합해 캔버라 바둑클럽을 만들었는데, 한국대사관 직원들이 멤버로 가입해 함께 활동했다. 1978년에는 브리즈번 바둑클럽의 빌 리베리트와 시드니 바둑클럽의 크라이브 데이비스를 끌어들여 호주바둑협회를 창립했다. 초대 회장으로 네빌 스마이스가 취임했고 리베리트가 총무, 데이비스가 재무담당을 맡았다. 호주바둑협회는 제1회 전국대회를 시드니 소재 세인트 존스대에서 열었고, 그후에는 브리즈번, 멜버른, 캔버라, 애들레이드, 호바트 등 호주 각 주의 주도(州都)에서 대회가 이어졌다.

스마이스는 회장 취임 당시 10년 동안 회장직을 맡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약속대로 1988년에 데이비드 에반스에게 회장직을 물려주었다. 1993년엔 한국 출신 한상대 교수가 제3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한 교수는 회장에 당선된 직후 초대 회장을 역임한 네빌 스마이스를 총무로 지명했다. 사람들은 전직 회장을 총무로 지명했을 때 놀랐고, 그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을 때 다시 한번 놀랐다고 한다.

그후 진양일 박사가 제4대 회장을 맡았고, 지금은 호주 챔피언인 신명길 아마 7단이 제5대 부회장을 맡고 있어 한국계가 호주바둑협회를 이끈다는 말이 허사가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반면 바둑 인구가 한국보다 훨씬 많은 중국계는 회장단에 뽑힌 전례가 없다.

4명의 회장을 보필하면서 지금까지 총무로 일하고 있는 스마이스는 호주바둑협회의 ‘살아 있는 역사’나 다름없다. 그가 들고 다니는 노트북 컴퓨터에는 지난 26년간의 호주바둑협회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수학에 깊이 들어가 보면 결국 철학과 만난다. 바둑은 동양철학을 배경으로 해서 생겨났고 한편으로는 수리적 게임이다. 그 안에서 내가 찾던 어떤 해답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바둑을 시작했다”고 토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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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필립 재(在)호주 시인 phillipsy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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