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인근(金仁根·41) 박사는 한중수교 직후인 1992년 9월 베이징중의약대에 입학, 학부과정을 졸업한 뒤 석박사과정을 모두 마치고 정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중의사면허시험(中醫職業醫師資格考査)에도 합격해 중의사 자격을 딴 중국유학 1세대. 중국현지에서 중의학을 전공한 한국인 유학생 출신 가운데 선두주자인 셈이다. 본격적인 중의학의 세계로 들어가기 전에 중국의 전반적인 의료현황부터 간단히 알아보자.
-21세기에 들어와 중국의 의료체계가 크게 바뀌고 있다고 하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중국 의료체계의 변화는 민간 의료기관의 활성화와 외국 의료자본의 유치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국가 의료기관이 중심이었습니다만, 최근에는 민간 의료기관에 대한 투자가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각 성의 주요 현(縣)을 중심으로 2~3개의 민간병원이 속속 설립되고 있고, 심지어 티베트나 우루무치(烏魯木齊) 같은 변방의 산간지역에도 병원을 유치하기 위해 힘을 쓰고 있는 정도입니다. 위생부가 합자병원 설립을 위한 외국자본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는데, 이는 단기간에 선진 의료기술을 흡수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여겨집니다.”
중국 의료계의 변화
-중국에 진출한 외국 병원들의 현황은 어떻습니까.
“베이징에 13개의 외국병원이 설립돼 있고 상하이에는 무려 28개나 됩니다. 물론 다른 지방에도 해외의 의료자본이 투자를 많이 하고 있어요. 상하이의 민항병원은 유럽자본과 합자형식으로 설립됐고, 베이징의 화목가(和睦家)병원은 소아과와 산부인과 중심으로 진료하는데, 미국자본의 투자로 세워졌습니다. 또 상하이의 동세병원은 미국과의 합자로, 상하이의 싱가포르임상국제의료센터는 미국 일본 한국의 합작 투자로 설립된 경우입니다. 이외에도 베이징의 국제의료중심, 싱가포르병원 및 SOS병원 등 외국계 병원이 적지 않고 의료수준도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한국의 의료산업도 중국에 진출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실상은 어떤가요.
“SK와 중국위생부 합자병원인 애강(愛康)병원이 작년에 정식으로 진료를 시작했습니다. 이 병원은 특히 최근 들어 성형미인대회가 열리는 등 중국사회에서 성형 붐이 일어나자 이 분야에 뛰어난 한국의 선진 기술력을 유치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애강병원을 비롯해 여러 병원에서 한국인 성형외과 의사가 진료를 하고 있고, 치과와 안과 분야에서도 한국인 의사가 활약하고 있어요. 의사뿐 아니라 한국의 의료기기와 미용재료 등도 중국에서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분만비용이 한화 1000만원대에 달하는 고급 산부인과 병실이 등장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중국 의료기관의 고급화 추세는 어떻습니까.
“앞에서 언급한 외국계 병원이나 합자병원이 고급화를 선도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간단한 감기 치료에도 300달러를 받는 곳이 있는가 하면 한달 입원비가 2만위안(한화 300만원)에 달하는 중국계 병원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또 베이징 최고 수준의 병원으로 알려진 협화(協和)병원의 경우 분만비가 8만위안이 넘는 입원실이 있을 정도로 일부 부유층을 겨냥한 고급 의료기관이 성업중입니다.”
-중국의 의료수준은 전반적으로 어떻게 평가받고 있습니까.
“제가 처음 병원에서 근무할 때만 해도 대부분의 병원 건물은 낡아 허름하고 수술실도 우중충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선진기술과 설비를 갖춰 국제적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면모를 갖추고 있습니다. 물론 현대 의학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아직 국제수준에 못 미치는 점이 많다고 봅니다만, 중의학 분야는 서양의학과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이론이 많이 나오고 있고 또 놀랄 만한 치료효과를 거둔 경우도 있어 주목됩니다. 의료장비 면에서도 첨단 라식수술장비를 갖춘 베이징의 동인안과병원처럼 고급화가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국인은 병이 나면 대개 어디부터 찾아가 치료를 받게 되나요.
“일반적으로 서의(西醫) 즉, 양의(洋醫)를 먼저 찾아가는데 개인병원보다는 종합병원을 선호하는 편이지요. 그러나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병원에 가지 않고 약국에서 약을 사먹는 사람도 많습니다. 한국과 다른 점은 약국에도 의사가 있어서 병을 진단하고 그에 맞는 약을 준다는 것이지요. 서의 대신 중의(中醫)를 찾는 환자도 있지만, 대개는 처음에 서의에게 갔다가 효과를 보지 못한 경우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중의를 찾아가 완치되면 그 다음부터는 중의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