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여년간 미국에서 연구한 조장희 교수는 “가능성을 발견했기에 한국에 왔다”고 말한다.
그는 한마디로 ‘성공한 과학자’다. 우선 과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진 미국학술원(National Academy) 회원(한국인 회원은 조 교수를 포함해 9명뿐이다)이고, 지난해에는 UC어바인 2500여명의 교수 중 단 한 명을 뽑는 ‘올해의 최우수 교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 언론이 노벨상 후보로 한국인 과학자를 꼽을 때 항상 언급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경제적으로도 여유롭다. UC어바인 정교수로서 최고 호봉의 연봉을 받았고 미국 국립보건연구원으로부터 매년 고액의 연구비를 지원받고 있었다. 컨설팅 비용으로만 한 번에 10만 달러를 번 적도 있다. 최고의 연예인이나 프로 스포츠 스타 부럽지 않은 부를 쌓았다는 의미다. 이런 ‘잘나가는’ 과학자가 한국에 자리를 잡고 새롭게 연구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30여년간 미국에서 생활했지만 여전히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모습으로 미뤄 생각해볼 때 애국심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일까.
“애국심 같은 것 때문이 아니에요.”
의외로 ‘비정치적인’ 답변이 선선히 나왔다.
“세계적인 경쟁에서 1등을 하지 못할 연구는 아예 손도 대지 않아요. 한국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에 온 것입니다.”
한국이 세계적으로 선도할 수 있는 과학 분야가 있다는 얘기다. 과연 무엇일까.
지난 9월6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가천의과대학 뇌과학 연구소가 공식 창립됐다. 독일의 대표적 의료기기 업체인 지멘스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이 연구소의 총 투입 예산은 640억원. 가천의대는 앞으로 지멘스와 장비 개발에 따른 지적재산권 수입을 절반씩 나눠 갖기로 했으며 한국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지적재산권 수입의 2.5%를 각각 한국정부에 기부하기로 했다. 연구소 출범과 동시에 기부 계획을 내놓을 정도로 꽤 자신만만해 보이는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된 것. 가천의대가 ‘든든하게 믿는 구석’은 바로 조 교수였다.
조 교수는 이날 ‘21세기 뇌기능 분자영상연구의 최근 동향’이란 주제로 특별강연을 했다. 한 마디로 우리의 뇌가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촬영해 속속들이 눈으로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칼을 대지 않고 뇌를 해부해 세부구조를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까지 알아낼 수 있다고 한다.
사실 다소 황당한 얘기처럼 들린다. 인체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장기가 바로 뇌다. 자신의 양 주먹을 맞댄 크기에 불과하지만 뇌를 구성하는 신경세포의 수는 150억개에 달한다. 더욱이 신경세포들은 일렬로 늘어서 있는 게 아니라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예를 들어 한 개의 신경세포가 주변의 수십 개 신경세포로부터 신호를 주고받는다.
심장이나 팔다리와 달리 겉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의 존재였기에 인체의 다른 장기보다 가장 늦게 연구가 시작된 분야가 뇌다. 오죽하면 신경(神經)이란 말에서 따온 ‘신(神)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별명이 뇌과학에 붙여졌을까.
“일단 신경세포 하나하나가 어떻게 활동하는지 눈으로 보는 일이 출발점이에요. 신경세포끼리 신호를 주고받을 때 도파민이나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는데 이것도 봐야죠. 나노(nano)라는 말 들어보셨죠? 머리카락의 10만분의 1 크기를 가리키는 용어예요. 신경세포나 신경전달물질이 바로 나노 수준의 크기입니다. 물론 맨눈에는 보이지 않죠. 특수한 의료장비가 필요해요.”
조 교수가 말한 장비는 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장치)와 MRI(자기공명영상장치)다. 번역된 우리말은 어렵지만 한번이라도 병원에 입원해본 사람이라면 들어본 적이 있는 의료 장비 이름이다. 원리는 잘 몰라도 인체 내부 장기의 상태를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는 첨단 의료장비라는 것쯤은 짐작이 간다. 이 두 가지 장비의 세계적 권위자가 바로 조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