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지난 7월 중순 영화인들이 대거 참여한 ‘스크린 쿼터 축소철회 영화인 시위’를 보면 충무로의 경쟁력에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보호무역의 혜택이 완전히 없어지고 주식시장의 사활이 외국인 투자자에 달려 있는 오늘날, 시장 점유율 60%를 넘는 영화산업 종사자들이 스크린 쿼터제 ‘철폐’도 아닌 ‘축소’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이 주장하듯이 미국식 이데올로기를 설파하는 할리우드 영화에 대항해 문화 주권을 지키려는 애국심의 발로인가, 아니면 할리우드 자본의 막강한 힘에 맞서기에는 아직 충무로 자본의 힘이 부족하기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면 한국 영화의 관객 흡인력이 약하기 때문인가.
이 글은 1999년 ‘쉬리’에서 2004년 초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이하 ‘태극기’)에 이르기까지 한국 영화의 흥행 성공과 그 산업적 성장이 과연 한국 영화계와 영화사에 장밋빛 청사진을 그릴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다. 영화산업이 한때 호황을 누리다가 현재는 고사 직전에 놓인 음반산업과 출판산업의 전철을 밟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와 함께. 그럼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1990년대 신세대 등장
1990년대, 사람들은 세상이 변했다고 했다.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차례로 몰락했으며 한국에서는 30년간 지속된 군인정치가 종식되고 문민정부가 등장했다.
문화를 옭아매온 이데올로기는 진부한 것이 됐고, 한국의 지식인들은 진지한 소통을 요구하는 문학이 아닌 대중문화를 통해 세상을 읽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문학 전문 계간지가 주를 이루던 이전과 달리 1990년대에는 대중문화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계간지가 대거 출현했고 대중문화 비평가임을 자칭한 지식인들이 각 장르별 텍스트에 대한 분석과 비평을 쏟아냈다.
이들은 문필가를 꿈꾸는 세대는 이젠 없다고 주장한다.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대중문화의 부흥과 함께 연예인이 한국의 10대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직종으로 부상했으며 이전까지 거의 주목받지 못했던 전문 백댄서가 10대 소년소녀들의 꿈이 되기도 했다. 또 대기업이 직접 연예 매니지먼트사를 설립하고 음반 레이블을 만들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대중문화의 하드웨어적 시스템이 점차 갖춰졌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쥬라기 공원’이 창출한 부가가치가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이 일구어낸 업적과 비교되면서 사람들의 관심도 ‘공장을 세워 밤새 일하고 좋은 제품을 만들어 수출을 많이 하는 한국’보다는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문화상품을 만들어내는 한국’으로 서서히 옮겨갔다.
그런 의미에서 이른바 서태지 세대는 한국의 90년대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문화 아이콘이다. 강렬한 비트와 랩, 현란한 댄스와 무질서하게 겹쳐 입은 티셔츠. 어른들은 이 정신 없는 ‘아이들’을 보며 혀를 찼지만 젊은이들은 새로운 문화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등장한, 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90년대에 30대의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세대를 뜻하는 용어 ‘386’은, 당시 막 출시된 최신형 486 컴퓨터와 대비되면서 80년대적인 것을 구시대적이고 버려야 할 것으로 규정하면서 1990년대의 ‘신세대 문화’를 더욱 부각시켰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이 땅의 새로운 세대는 사회적 도덕이나 이성적 규범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는 데 더욱 익숙했다. 이들에게는 진지함보다는 화려함이, 공동체보다는 개인이 어울렸다. 책을 읽는 신세대보다는 이어폰을 꽂고 랩을 즐기거나 혹은 영화를 보는 신세대가 주를 이루었다. 운동권의 대명사이던 총학생회도 정치적 집회보다는 영화제를 기획하기 시작했고 주말이면 대학로에서 화려한 댄스 공연을 펼치는 젊은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게 됐다.
신세대는 이전 세대와 취향도 달랐다. 그들의 새로운 취향에 따라 그 동안 지루하고 재미없는 것으로만 여겨지던 유럽 영화가 문화원이나 시네마테크가 아닌 일반 극장에서 개봉되어 흥행에 성공했다. 1992년 프랑스 작가주의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의 흥행 성공이 그 예다. 한국의 새로운 세대가 내뿜는 문화에 대한 욕망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기정사실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