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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광장

한국 영화, 고사 위기의 음반·출판 전철 밟나?

다양성 부재, 관객 취향에만 충실, 감독의 문제의식 거세

  • 글: 임근혜 자유기고가 ramjui92@hanmail.net

한국 영화, 고사 위기의 음반·출판 전철 밟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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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대가 열광한 문화 콘텐츠는 대중음악에서 먼저 나타났다. ‘난 알아요’라는 곡으로 가요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서태지와 아이들’은 다양한 형식적 실험을 하고 세련된 무대매너를 선보였다. 그리고 철저한 자기 관리(이들은 음반 발표 후 활동기와 다음 음반 발표 시기 사이에 휴식 시간을 두고 그것을 방송에 공표해 팬들이 기다리게 만드는 마케팅 전략을 사용한 한국 최초의 대중음악인이다)로 마케팅에서 성공했다.

이후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은 서태지의 영향권 아래 놓여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5년 더블 밀리언셀러(200만장 이상)를 기록한 김건모, 1990년대 중반 이후 10대의 우상이었던 댄스그룹 H.O.T와 그들을 벤치마킹한 여러 그룹의 탄생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거기 서태지가 있다.

서태지는 당시 발라드(포크)와 트로트로 양분된 대중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랩과 힙합 문화를 소개했고 10대 오빠부대를 형성했다. 그들의 공연에서 그간 가수의 들러리에 불과하던 댄서의 위상이 비로소 공고해졌으며 이른바 래퍼를 탄생시켰다. 그래서 당시 문화비평가들은 서태지를 ‘주류 질서의 전복자’라 부르며 그의 예술적 성과를 칭찬했다.

서태지와 함께 1990년대 젊은 세대의 사랑을 받은 또 하나의 문화상품은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다. 이미 새로운 감수성을 표현하는 데서 멀어진 것으로 평가받던 소설의 약진은 외형상으로는 의외지만, 하루키 소설의 감수성을 살펴보면 그의 작품이 한국에서 읽히는 것 역시 지난 시대와 구별되는 새로운 문화적 트렌드의 출현임을 알 수 있다.

하루키의 장편 ‘상실의 시대’는 1980년대 말 정식 계약도 없이 세 곳의 출판사에서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원제를 달고 출간됐지만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상실의 시대’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나온 뒤 출간 첫해에만 30만부의 판매고를 올렸다.



바로 이 지점에 우리가 하루키 현상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다. 학생운동이 일본의 대학가를 휩쓸던 1970년대에 와세다대학을 다닌 하루키의 자전적 소설이 ‘상실의 시대’라는 이름을 가지면서 1990년대를 살아가는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크게 어필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한국의 젊은 감성이 ‘무엇을 잃었다는 것’에 자기 동일시를 했음을 의미한다.

규모만 커진 경제구조가 만들어낸 거품 속에서 원인도 모른 채 흔들리는 도시적 감수성은 하루키 문학 전체를 관통한다. 거칠게 일갈하자면 하루키 현상이 시작되면서 80년대적이라 할 만한, 사회 문제에 진지한 관심을 표명하던 한국 소설은 사라지고 하루키적인 새로운 소설의 경향이 한국 문단에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루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재즈와 영화로 대변되는 대중문화를 즐기며 철저히 자기의 내부를 지향하는 ‘개인’이다. 가족이 모두 거세된 채 자신의 내면 욕망에 충실한 하루키의 인물들과 1990년대 한국 문학의 인물들은 서로 닮았다. 그 인물들은 바로 서태지를 소비하는 이 땅의 신세대가 좋아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1980년대 운동권의 이야기를 다룬 일명 후일담문학에서 시작해 기존의 서사 구조에서 벗어나 영화적 글 쓰기 혹은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 글 쓰기를 시도한 신세대 작가군의 작품들, 그리고 사소설적 경향을 띤 여성 작가들의 약진에 이르기까지 1990년대 한국 문학(혹은 대중문화)의 키워드는 시종일관 ‘개인’과 ‘자의식’ ‘욕망’이었다.

90년대 문화 반영한 2000년대 영화

그렇다면 음악과 문학이 쥐고 있던 문화의 주도권이 영화로 옮겨간 것은 언제일까.

실제 1990년대에 시작된 새로운 문화의 흐름에 영화는 주류로 등장하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계에도 1990년대를 기점으로 변화가 일기 시작됐다.

한국 영화의 구조적 재편에 대한 인식은 1989년 미국 영화사인 UIP가 한국 영화시장에 할리우드 영화를 직배하면서 싹텄다. 한국 영화관은 1년 365일 할리우드 영화만 상영하게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우리 영화사들은 한국 영화 제작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할리우드 영화를 수입 배급해 수익을 얻었던 이들이 직배체제로 큰 타격을 입자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에 이른 것이다. 즉 영화를 수입하던 자본을 바탕으로 한국에도 할리우드식 기획영화가 등장했고 영화는 서서히 한국 문화의 중심을 향해 가고 있었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유행한 개인과 자의식, 욕망으로 대변되는, 신세대 감수성과 한국 영화계의 내부적 변화를 고려한다면 1999년 강제규 감독의 영화 ‘쉬리’의 성공과 이후 한국 영화의 성장은 어쩌면 예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쉬리’를 비롯한 최근의 흥행작들이 택한 이야기 구조가 1990년대 각광받던 신세대 문화를 고스란히 반영한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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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임근혜 자유기고가 ramjui9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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