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호

DMZ 생태계에 대한 오해와 진실

독초 군락, 축구장만한 서양민들레밭… 생경하게 ‘가공’된 외래식물 전시장

  • 글: 함광복 강원도민일보 논설위원 hamlit@kado.net

    입력2004-09-24 11: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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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 생태계에 대한 오해와 진실
    1953년 7월27일생인 DMZ(비무장지대)는 사람으로 치면 만 51세, 살아온 세월보다 살아갈 세월이 훨씬 짧은 중늙은이다. 노년이 대개 그렇듯 DMZ도 젊은 시절 살아 펄펄 뛰던 기개나 용기, 무언가 뜻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욕망 따위가 소진된 게 틀림없다. 처음엔 동서냉전의 두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전선이었지만, 지금은 서울과 평양을 축으로 한 두 정치세력이 맞닿는 경계선 노릇 외엔 별다른 기능을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반세기를 살아온 DMZ를 훌훌 걷어내기엔 왠지 미련이 남는다. 어떤 이는 DMZ가 말끔히 제거되는 날, 우리가 마루 밑에 뒹구는 조선 막사발 하나를 아무 생각 없이 엿장수에게 넘겨줬다가 훗날 땅을 친 것만큼이나 자연생태계의 보고를 잃은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 말한다. 또 어떤 이는 DMZ 보전을 포기하는 것은 머잖아 지구촌 최고 품질의 관광자원이 될지도 모를 보물단지를 팽개쳐 깨버리는 바보짓이라 말한다. 손대지 말고 가만 내버려두자는 데 대부분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DMZ는 위기다. 배터리 수명이 다해 곧 소멸될 처지에 있는 것이다.

    이런 날을 예견해 지구 대홍수 때의 노아처럼 방주(方舟)를 지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1971년 5월6일 군사정전위 제315차 본회의에서 로저스(F. M. Rogers) 유엔군수석대표가 세계에서 가장 요새화된 DMZ를 비무장지대화, 즉 평화지대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같은해 국토통일원의 통일문제 세미나에서도 DMZ의 국제평화지대(International Peace Zone)화가 제안됐다. 두 제안은 DMZ 정책제안의 효시로 봐야 할 것이다. 이후 노태우 정부에서는 남북교역 자유지대, 평화구역 설치, 남북관광지 공동개발 등이 제안됐다. 정부 부처와 산하기관, 정부투자기관, 강원도와 경기도 등 접경지역 자치단체 등에서도 우후죽순으로 정책제안이 쏟아져나왔다.

    1999년 9월 정부가 유네스코의 인간과 생물권 계획(MAB)에 따라 내놓은 ‘생물권보전지역(Biosphere Reserve)’ 지정 계획은 지금까지 시도했던 ‘직접적인 평화정책’과 달리 자연생태계를 매개로 한 ‘간접적 평화정책’이다. 이어 2001년 환경인 신년 인사회에서는 유네스코 지정 ‘한반도 비무장지대 접경생물권보전지역(The Korea DMZ TBR)’ 계획이 제안됐으며, 올해 7월엔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지정도 제안됐다.

    방주의 설계는 해를 거듭할수록 정교하게 보완되는 것 같았다. 초기에 제안된 평화지대나 평화구역은 그야말로 선언에 불과하다. 그러나 ‘접경생물권보전지역’이나 ‘세계유산’은 DMZ에 대한 국민의 환경인식과 상징성을 포함할 뿐 아니라 남북환경협력의 모델이 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궁극적으론 DMZ에서의 도발이나 전쟁이 종식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지금까지 제안된 모든 DMZ 정책의 종합편인 셈이다. 더구나 이들 계획은 노아처럼 암수 한 쌍씩 동물,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씨앗’을 가려 방주에 태우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DMZ를 통째로 보전할 수 있는 대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의 추진과정에는 몇 가지 현실적인 함정이 있다. 먼저 북한정권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또 DMZ를 두 군사세력간 완충지대 이외의 용도로 활용하려면 정전협정 당사자인 유엔군사령부의 협력을 구해야 하는 복잡한 정치적 문제도 안고 있다. DMZ 정책은 너비 4㎞, 길이 240㎞의 순수한 DMZ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최소한 민통선 지역, 넓게는 접경지역이라 불리는 DMZ 영향권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 효율성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지역의 자연은 2001년 1월21일자로 제정된 접경지역지원법에 의해 되레 파괴가 촉진되고 있다.

    인간의 간섭과 전쟁후유증

    ‘모든 살아 있는 씨앗’만이라도 구제하겠다는 DMZ 정책은 그곳이 ‘자연의 보고’라는 신념에 근간을 두고 있다. 접경생물권보전지역을 제안할 때는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DMZ에는 반세기 동안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순수한 자연이 있다”고 말했다. “DMZ는 민족분단이란 아픔을 주었지만, 자연생태계의 보고라는 선물을 보상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정부는 그 자연의 보고가 얼마나 검증되지 않은 것이며, 그런 주장이 얼마나 자신 없는 것인지 이미 절실하게 경험하고 있었다.

    1999년 정부가 강원도 철원 양구 인제 고성군 등 4개 군의 민통선 북방지역 609㎢를 유네스코의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하려던 계획을 포기한 것은 지역주민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탁상구상과 현장상황은 전혀 달랐다.

    DMZ 생태계에 대한 오해와 진실

    몽골산 독수리가 DMZ 일대를 찾아온 것은 10여년밖에 안 된다. 이들은 사람이 던져주는 먹이로 ‘구걸 월동’을 한다(위). 군인들의 ‘잔밥통’을 찾아온 DMZ의 멧돼지떼(아래).

    철새 도래지인 철원평야에서는 민통선 농민들이 추경(秋耕) 시위를 벌였다. 추수 후 논을 가는 가을갈이는 겨우내 땅속에서 지내는 병해충을 없애고 땅의 힘을 높이는 땅 관리법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두루미나 청둥오리의 먹잇감인 낟알이나 벼 그루터기, 벌레 등을 없애버려 치명적인 철새 퇴치법이 된다. 농민들은 철원평야가 겨울철새의 낙원이 된 것이 전쟁 후 황무지로 변한 그 땅을 농경지로 개간하고, 수많은 저수지와 농수로를 개발해놓았기 때문이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철새가 도래할 수 있는 하드웨어일 뿐이다. 철새가 마음놓고 살 수 있는 것은 농사를 지으며 겨울철새들을 위해 먹을 것을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자연과 인간의 오랜 상부상조 전통, 그 소프트웨어가 가동되고 있었다.

    농민들의 추경 시위는 그곳에 농민이 없으면 철새도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이는 ‘그곳엔 인간이 손대지 않은 자연이 있다’던 말과 전혀 다른 것이다. 오히려 철원평야의 철새 낙원은 전쟁의 그루터기에 지독한 인간 간섭이 가해진 합작품인 셈이다. 그 자연은 예기치 않던 ‘뜻밖의 자연’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DMZ의 자연을 하느님이 몸소 만들어낸 에덴동산,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태초의 자연으로 착각한다. DMZ 자연생태계에 대한 그런 오해부터 풀어야 한다.

    DMZ 자연생태계가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20여년 전부터다. 그때까지만 해도 DMZ는 일반인에게 미지의 세계였다. 그런데 아주 엉뚱한 계기로 기자들이 DMZ로 모여들였다. 1983년 여름, 동해안 향로봉산맥의 한 기지에서 전역한 한 젊은이가 황당한 얘기로 사람들을 웃겼다. 그는 산맥의 바다 한가운데 너무도 외롭게 떠 있는 기지를 ‘독도’라 부른다고 했다. 독도기지가 있는 그 산맥을 넘어가면 남강(南江)이라 부르는 시퍼런 강이 흘러가는데, 그 강엔 너무 자라 사람 허벅지만한 물고기가 우글거리고, 강기슭엔 그 옛날 강마을의 가축들이 아무렇게나 짝을 지어 태어났는지 얼굴은 염소 같고, 몸은 말 같은 이상한 동물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곳은 DMZ가 지나는 곳이어서 갈 수 없다고 말했다.

    필자는 DMZ의 강에 살고 있는 큰 물고기를 안다. 허벅지만하다는 건 과장이라 하더라도 고등어나 명태만한 물고기는 본 적이 있다. 위장한 것 같은 얼룩무늬도 별로 보기 좋지 않지만, 잡을 테면 잡아보라는 듯 좀처럼 멀리 도망치지 않는 그 거드름이 기분 나빴다. ‘돌땅’을 놓고, 포위작전을 펴며 가까스로 물 밖으로 끌어냈을 때 놈은 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 펄떡였다.

    “누가 이 물고기 이름 알아? 아무도 몰라? 좋아, 이제부터 이놈을 김일성 고기라 부른다!”

    필자도 한때 ‘김일성 물고기’(나중에 열목어로 밝혀졌지만)를 명명하던 DMZ 병사였다. 중동부 전선에서 군대생활을 한 병사들에게 얼굴은 염소 같고 몸은 말을 닮은 동물은 그리 이상하지 않다. 병사들은 그 동물을 ‘말염소’(나중에 산양으로 밝혀졌지만)라고 명명해놓고, 그놈들이 깎아지른 듯한 높은 절벽을 록 클라이밍하는 모습을 혀를 내두르며 감상하곤 했기 때문이다.

    독도의 용사가 말한 남강의 사람 허벅지만한 물고기는 ‘김일성 물고기’일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얼굴은 염소 같고 몸은 말을 닮은 동물도 그 ‘말염소’일 게 틀림없었다. 제대 후 민간인으로서 ‘김일성 물고기’와 ‘말염소’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그림같이 펼쳐진 벌판과 금강산으로 가다 끊긴 신작로, 새끼 두 마리를 껴안듯 몰고 가는 고라니 가족, 무슨 영문인지 해발 1300m나 되는 고지까지 올라와 꽃을 피우고 있는 민들레…. DMZ의 풍광이 그립기까지 했다.

    DMZ는 분명 전장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 섬뜩한 모습 대신 아름답고 재미있고 희망적이며 교훈적인 DMZ의 풍경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1984년 여름, 자연생태·역사유적·인문지리 등 체계적인 민통선북방지역학술조사단이 꾸려졌다. 조사단은 동해안에서 임진강 하구까지 DMZ와 민통선 지역의 생태를 알아보고 정리해 언론에 공개했다. 1년 동안 시리즈로 연재된 민통선북방지역학술조사 보도는 언론사상 최초이자 최장기 보도라는 영예를 얻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국민을 ‘DMZ=자연생태계의 보고’란 인식에 빠져들게 한 첫 사건이 되고 말았다.

    ‘김일성 물고기’와 ‘말염소’

    DMZ의 자연생태계나 자원에 대한 조사는 종종 이뤄졌다. 그러나 경의선과 동해선 복원 공사현장의 환경영향평가를 계기로 DMZ내 자연조사를 한 것을 제외하면 공식적으로 DMZ를 조사한 일은 단 한번도 없다.

    정전협정 제1조 제8항은 ‘비무장지대 내의 어떠한 군인이나 민간인이거나 그가 들어가려고 요구하는 지역이 사령관의 특정한 허가 없이는 어느 일방의 군사통제하에 있는 지역에도 들어감을 허가하지 않는다’고 규정했으며, 지금까지 어떤 조사단도 그런 허가를 받아본 적이 없다.

    DMZ 생태계에 대한 오해와 진실

    8000평 규모의 큰 용늪 속에 있는 작은 연못. 해발 1300m 대암산 정상에 있던 작은 용늪은 군용 진지와 도로시설로 인해 사라졌다.

    환경부는 1998년 12월7일부터 1999년까지 유엔군사령부의 허가를 받아 DMZ내 현장조사를 하기로 했었다. 이 조사가 실행됐다면, 최초의 DMZ내 자연생태계 조사가 되었을 것이다. 산림청 임업연구원은 2001년 2월 비무장지대 및 인접지역 생태계조사(1995∼2000) 결과를 발표하면서 ‘DMZ 내부 1곳’을 조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지역은 DMZ 남방한계선 내부일 뿐 철책선 내부는 아니다. 관광지가 된 제2·4땅굴, 일부 전망대 등은 모두 남방한계선 내부의 구조물들이다. 즉 이제까지 DMZ 자연생태계 조사는 모두 민통선 북방 DMZ 남쪽지역에서만 이뤄진 것이다.

    이 때문에 ‘DMZ 조사’는 내용상 ‘DMZ 인접지역 조사’다. 어쨌든 DMZ의 자연은 비록 DMZ 내의 조사는 아니지만 완벽한 건강검진을 받은 셈이다. 학자들은 DMZ 건강상태를 오진만 하지는 않았다. 1995년 비무장지대예술문화운동협의회가 발간한 ‘비무장지대의 과거·현재·미래’라는 논문은 당시 환경처가 조사한 DMZ 인접지역의 녹지자연도 현황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이 논문은 강원도 DMZ 인접지역의 숲 88.4%가 녹지자연도에서 등급7 이하라고 주장했다. 등급7이란 20년생 미만의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정도를 일컫는다. 향로봉산맥 일대에도 50년생 이상의 나무가 주를 이루는 등급9의 임상이 있지만, 그 양은 전체의 1.5%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경기도 지역은 더 보잘것없어 등급7 이하가 87.3%, 등급2 이하가 51.2%나 된다는 것이다.

    한 학자는 DMZ 일대는 생태적 천이가 중단된 방해극상(妨害極相 : Dis-climax Forest)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온대지방의 경우 삼림이 파괴된 후 극상림(極相林 : Climax Forest)에 도달할 때까지 150∼200년이 걸린다고 볼 때 현재 이 일대는 생태적 천이(生態的 遷移 : Ecological Success- ion)가 진행중이거나 천이 자체를 방해받고 있다는 것이다.

    DMZ 자연조사의 결정판이라는 평가를 받는 임업연구원의 조사결과는 더 엄청난 내용을 담고 있었다. DMZ 일대의 임목축적량이 남한 평균의 48%에도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상당한 지역이 당장 복원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빈약하다는 것이다.

    임목축적량, 남한 평균의 48%에 불과

    그러나 DMZ 자연에 대한 조사 결과는 그곳에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자연’이 있기를 바라는 일반의 기대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다. 특히 ‘DMZ=자연의 보고’라는 가제를 머릿속에 담고 취재에 나서는 기자들에게 DMZ의 숲의 실태를 지적하는 보고서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1985년 민통선북방지역학술조사단이 천연기념물 제246호인 대암산·대우산 천연보호구역을 찾아갔을 때 학자들은 고층습원(高層濕原) 늪지 하나가 사라진 것을 발견하고 눈이 휘둥그래졌다. 1966년 한국자연보존연구소와 미국 스미소니언 연구소의 DMZ 공동학술조사단이 대암산을 찾았을 때만 해도 해발 1300m 정상엔 거대한 늪 두 개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4500년이나 된 늪이었지만 방금 그려낸 수채화처럼 녹색 물감이 묻어날 듯 싱싱하고 신비로웠다. 그런데 그중 하나인 작은 용늪이 주둔군인들의 진지와 도로시설로 인해 사라지고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동행취재를 하고 있던 필자는 그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다. “DMZ에 무엇이 있더냐?”고 물을 독자들에게 들려줄 얘기가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작은 용늪이 없어졌든 말든 필자가 처음 본 큰 용늪의 신비로운 얘기를 옮기는 데도 원고지가 부족했다.

    연구업적을 높이려는 학술조사단의 동식물 곤충 ‘신종(新種) 찾기’ 경쟁도 DMZ 자연이 곧이곧대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한 요인이 됐다. 사실 필자의 눈에 DMZ 학술조사단은 향료(香料)를 찾아 동방항로로 떠나는 중세의 선단 같았다. 귀항하는 배에는 무엇이든 진귀한 것이 실려 있어야 한다. 원주민을 수탈해서라도 향료를 싣고 오면 그만이다. DMZ 학술조사단도 탐욕스럽게 보물찾기를 하는 것 같았다. 남보다 먼저 가 신종, 특산종 등 희귀 동식물, 그 보물만 찾아오면 되는 것 같았다. 마침내 ‘DMZ 자연생태계의 신비’에 열광하는 일반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기업, 단체, 기관의 ‘인기주의 생태계 조사’가 성행하고 ‘안보관광’ ‘생태관광’ 등 패키지 관광상품을 개발하기 위한 맞춤형 생태계 조사도 벌어졌다.

    하지만 이처럼 숱한 연구조사가 행해졌으면서도 연구실적은 축적되지 못했다. 이미 여러 차례 조사한 내용을 중복 조사한 것은 물론이고 내용의 상호보완도 이뤄지지 못했다. 조사내용에 연속성이 없었으며, 활용도도 낮았다. 앞사람의 연구실적을 표절하거나 ‘베껴 쓰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 때문에 DMZ를 가볼 수 없는 일반인은 그곳이 ‘자연의 보물’을 캐올 수 있는 보물창고인 것으로 철석같이 믿거나, 자연의 모든 내용물을 풍부하게 담은 원시의 숲이 있는 것으로 믿었다.

    문제는 DMZ가 언젠가는 사라질 수밖에 없는 한시적 구조물이라는 점을 전제로 개발되는 여러 DMZ 정책이 ‘DMZ=인간이 손대지 않은 자연’이라는 환상을 기초로 세워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DMZ=자연생태계의 보고’라는 국민적 중독사태를 누구의 책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20여년이 넘게 DMZ 취재에 매달리면서 필자는 한국인은 유독 남북분단의 그 현장에 대해서만은 역설적 자기최면을 걸어 해석하길 즐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테면 DMZ가 엄연한 전선인 데도 ‘무장하지 않는 지대’란 본래의 뜻으로 미화하는 경향이다. 그러나 도발이니, 만행이니, 무장공비니 하는 폭력적 단어들은 모두 그곳에서 생산됐다. 따라서 DMZ에서 평화란 당초부터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DMZ엔 평화 또는 생명의 에너지원이 있는 것처럼 믿었다. 그런 경향은 문학작품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내가 ‘독도 병사’의 허풍 때문에 향로봉산맥 너머 DMZ에 가봤던 것처럼, DMZ 자연생태계 조사는 ‘그곳이 어떻게 변했는지 가보자’는 호기심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초창기 조사에 착수하던 1980년대는 DMZ에 대한 한국인의 관념이 ‘군사 긴장 도발 음모 침묵 고통’에서 ‘화해 생명 평화 창조 희망’으로 바뀌던 때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외적으로는 냉전체제가 붕괴된 때이고 내적으로는 경제성장에 따른 삶의 질 향상과 정치적 변혁에 따라 새로운 의식과 가치관이 정립되던 시기였다. 이런 요인이 ‘한국인의 DMZ관’에 영향을 줬을 것이다. ‘화해 생명 평화 창조 희망’에 ‘자연’만큼 잘 어울리는 말도 없을 것이다. 따라서 ‘DMZ=자연생태계의 보고’란 그 실체와 관계없이 시대와 정치상황, 국민정서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등식인 것이다.

    그러나 이젠 DMZ에서 저지르고 있는 몇 가지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홍수가 임박했는데, 아직도 그곳이 에덴동산이라고 믿는 그 환상을 깨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우리의 실수를 짚어보자.

    첫 번째 실수는 DMZ가 어디인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이 길다란 벨트는 한반도 허리를 횡단하고 있기 때문에 남한의 북쪽 끝은 어디나 DMZ다. 서울 북쪽에도 DMZ가 있으며, 동쪽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가는 아름다운 길이 끝나는 곳에도 DMZ가 있다. 따라서 어떤 이는 DMZ가 한강 하구의 서해안에서 동해안까지라고 말하며, 어떤 이는 서해에 외따로 떨어진 백령도에서 시작돼 한반도 허리를 횡단하고 동해안을 지나 공해(公海)까지 DMZ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같은 정의는 휴전선과 DMZ를 혼동하는 데서 비롯된다.

    한국전쟁의 정전협정은 임진강을 DMZ의 출발지로 명시했다. 정전협정 제1조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조항’은 군사분계선 제0001호 표지말뚝을 임진강변에, 마지막 제1292호 표지말뚝을 동해안 동호리에 세우며, 두 표지말뚝을 잇는 선 좌우 2㎞ 구간을 DMZ로 설정한다고 명시했다. 임진강 서쪽 서해로 흘러가는 한강도 전쟁을 치른 자리다. 그럼에도 그곳을 DMZ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거기에 군사분계선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정전협정 추가합의서 제4항에 ‘정전협정 군사분계선에 관한 규정과 사민(私民)이 비무장지대에 들어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비무장지대에 관한 규정이 한강 하구에도 적용된다’고 돼 있어 DMZ와 비슷한 지역이 돼버렸을 뿐이다.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 등 서해 5도에 대해서는 휴전협정서 별도조항(제2조 13항의 B)에 ‘황해도와 경기도 도계선의 북방 및 서방에 위치하고 있는 모든 도서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군 최고사령관의 군사 지휘하에 둔다. 단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는 이 규정에 의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했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의 DMZ는 임진강변에서 출발해 동쪽을 향해 뱀처럼 구불구불 기어가 동해안에서 끝나는 폭 4㎞, 길이 240㎞의 띠다.

    비무장지대는 ‘비무장’이 아니다

    두 번째 실수는 DMZ는 결코 비무장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그곳은 과거에 사람이 살던 곳이었다. 오래 전부터 그곳의 들판과 골짜기, 산비탈에서 농민들이 논이나 밭을 일구며 살았다. 마을 근처 숲은 전통적인 온돌 난방의 연료림이 돼주었다. 전쟁이 이 인간과 자연의 공생 얼개를 깨뜨렸을 뿐이다. 1950년 6월25일 발발한 전쟁은 37개월 2일 만에 끝났지만 이 기간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2년여간 그곳엔 전선이 형성됐다. 그 결과 마을 농경지 숲은 남김없이 파괴됐다. 그곳에 살던 사람은 쫓겨났고, 달아날 수 없는 숲의 동물은 그 자리에서 희생됐다. 이 기간 전투는 주로 높은 산을 먼저 빼앗으려는 ‘고지전(高地戰)’이어서 높은 산의 숲과 그 속에 살던 동물의 희생이 더욱 컸다. 그나마 성한 나무나 동물도 모두 화약 냄새를 맡았다.

    전쟁이 끝났을 때 그곳의 땅, 나무, 산짐승, 새, 물고기도 전투를 한 군인만큼이나 지쳐 있었다. 그곳에 터전을 일구었던 사람들이 아직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또 그곳의 자연은 아직 건강이 회복되지 않았는데 DMZ에 점령당했다.

    DMZ 생태계에 대한 오해와 진실

    귀화식물 돼지풀은 여름내 사람의 키를 훨씬 넘을 만큼 무서운 속도로 자란다.

    정전협정 제1조 제6항은 ‘쌍방은 모두 비무장지대 내에서 또는 비무장지대로부터 또는 비무장지대를 향하여 어떤 적대행위도 감행하지 못한다’고 규정했다. 또 제10항은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을 위하여 비무장지대에 들어갈 것을 허가받은 군인 또는 사민의 인원수는 각각 1000명을 초과하지 못하고, 휴대무기는 자동화기가 아니어야 한다’고 못박았다.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이란 ‘DMZ 안에 민간 경찰이 투입되어 DMZ를 관할하고 만일 민간인이 잘못해서 DMZ 안으로 들어오면 그들을 DMZ 밖으로 유도한다’는 뜻이다.

    휴전과 동시에 즉각 DMZ 안으로 민사행정경찰을 투입할 수 없어 군사정전위원회는 우선 ‘군 경찰’인 헌병을 투입했다가 민사행정경찰로 교체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이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양측은 처음 배치했던 사실상의 전투인원 헌병을 경찰(북한은 경무)이라 부르며, 민사행정경찰로 교체하지 않았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꿰인 ‘DMZ 약속’은 1963년부터 완전히 무너졌다. 유엔사측 자료에 따르면 북한군이 먼저 군사분계선 북쪽 DMZ를 요새화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초소를 진지로 구축했으며, 진지와 진지를 지하터널로 연결하고 그 위에 나무를 심어 위장했다. 이어 1965년 들어선 중화기와 전투병력을 대거 투입했다. 1968년은 한반도 상황이 매우 심각하게 돌아갔다. 그해 1월21일 북한 124군부대는 미 24사단의 최첨단 DMZ 방어철조망을 뚫고 청와대 기습을 시도했으며, 23일 오후 1시 원산 앞바다에서는 미 첩보함 푸에블로호가 북한 경비정 4척에 의해 나포됐다. 10월30일엔 울진·삼척에 북한 정예군 120명이 바다를 통해 침투했다. 그해 DMZ를 통한 북한의 무장침투는 233건에 달했다. DMZ의 중대사건이 186일 동안 발생했다. 한국군 145명, 미군 18명, 민간인 35명이 사망했으며, 한국군 240명, 미군 54명, 민간인 16명이 부상했다. 그리고 312명에 이르는 대규모 북한 무장침투조가 사망했다.

    남북방한계선도 무시되었다. 남북한군의 방어 철조망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방어하기 좋은 곳을 찾아 한 발짝, 한 발짝 전진했다. 지금 DMZ 전지역에서 ‘군사분계선(MDL : Military Demarcation Line)을 중심으로 2㎞씩 후퇴’하기로 했던 최초의 약속이 지켜지고 있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비무장지대는 DMZ에서 사라졌다. 그곳은 중무장지대인 것이다.

    DMZ 총면적의 40%가 불타

    세 번째 실수는 DMZ에서 전쟁은 아직도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는 것이다. 휴전은 평화를 뜻하지 않는다. 그곳에선 아직도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전쟁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 뒤에서 수행되는 이 교묘한 전쟁에는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이 동원됐으며 가장 큰 희생자는 자연이었다.

    우선 중국 고대 전법이던 ‘화공전법(火攻戰法)’이 등장했다. 이 작전은 2월 중순에서 5월 사이 시계(視界)와 사계(射界)를 가리는 초목을 태워 없애는 것이다. 저쪽에서 강풍을 타고 불이 번져올 때 최선의 방어책은 이쪽에서도 불을 놓아 불끼리 맞붙어 싸우게 하는 것이다. 이 고대 전법은 21세기까지 계속됐다. 2000년 한해 동안만 해도 DMZ에서는 19차례나 화재가 발생했으며, DMZ 총면적의 40%에 해당하는 371㎢의 숲이 불탔다. 시계와 사계를 가리는 풀을 없애려는 식물과의 전쟁에는 ‘화학전법’도 동원됐다. 1968∼69년 DMZ의 풀과 나무는 에이전트 오렌지, 불루, 모뉴런 등 고엽제 세례를 받았다.

    이 전쟁에는 ‘땅굴전법’도 동원됐다. 1974년 11월15일 중부전선 군사분계선 표지판 0270호 남쪽 1㎞ 지점에서 처음 땅굴이 발견됐다. 1975년 3월24일 군사분계선 표지판 0597호 남쪽 0.9㎞ 지점에서 두 번째 땅굴, 1978년 10월17일 판문점 동남쪽에서 세 번째 땅굴, 1994년 3월3일 중동부전선 ‘펀치볼’에서 네 번째 땅굴이 발견됐다. 군사전문가들은 미확인 땅굴이 10~15개 더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어떤 사람은 최소한 30개의 땅굴이 DMZ에 숨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곳은 지뢰전법이 실전에 활용되고 있는 ‘지뢰의 전장’이다. 또한 지난 6월 남북장성급 회담을 계기로 중단되긴 했지만, 반세기 동안 매일 선전전법의 설전을 벌이는 ‘소리의 전쟁터’였다.

    네 번째 실수는 그곳의 높은 인구밀도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흔히 ‘DMZ=자연의 보고’라 믿으면서 그곳의 인구밀도를 계산하지 못하는 실수를 한다. 인구 센서스 통계가 DMZ 일대의 상주인구를 감쪽같이 속이는 기교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든 국경에 군인이 얼마나 주둔하고 있는지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DMZ에도 군인이란 ‘숨겨진 인구’가 늘 존재한다.

    DMZ가 지나는 강원도 화천은 총면적 909.45㎢의 접경지 군(郡)이다. 2001년 말 현재 인구현황을 보면 총 8813가구에 2만5943명(남자 1만3352명, 여자 1만2591명)으로 인구밀도 28.5명이다. 한국에서 두 번째로 인구밀도가 희박한 셈이다. 그러나 이 인구현황은 민간인만을 나타낸다. 군인 인구를 포함할 경우 이 군(郡)의 인구밀도는 60명선까지 올라간다. 이런 현상은 민통선 북방지역을 포함한 강원·경기도의 15개 시·군, 98개 읍·면·동(리)이 모두 비슷하다. 이들 지역의 상하수도, 생활하수, 쓰레기, 연료 대책은 일부 군인아파트나 군 주둔시설을 제외하고는 ‘밝혀진 인구’와 ‘숨겨진 인구’로 이원화돼 있다.

    DMZ의 숲은 오랜 세월 이 ‘숨겨진 인구’의 군사작전, 난방과 취사 그리고 주거를 위한 자원이었기 때문에 자랄 틈이 없었다. 그리고 DMZ의 북한군은 아직도 재래식 화전농법으로 현지에서 식량을 조달하는 전술을 구사하고 있어 쉴새없이 숲을 불태우고 있다. 바로 이것들이 DMZ의 자연이 유린당하고 있는 직접적 증거다.

    보전될 수 없었던 자연생태계

    자연은 적절히 적응해가거나 그럴 능력이 없을 땐 도태된다. 필자는 한반도를 횡단하는 휴전선의 한가운데인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마현리 광주산맥의 한 고지를 즐겨 찾곤 했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옛 광삼리 벌판 DMZ는 아름다웠다. 듬성듬성 졸린 듯 서 있는 큰 나무들은 가지치기를 해준 것처럼 줄기의 잔가지가 가지런히 다듬어져 있었다. 굽이굽이 흐르는 작은 강, 남대천이 갯버들 숲을 이루며 기어가고 있고, 숲과 숲 사이에는 아직 소떼가 지나가지 않은 풀밭이 펼쳐져 있었다. 멀리 갈대숲에 둘러싸인 작은 연못가로는 마침 고라니떼가 산책하고 있었다. 커다란 새 한 마리가 소리 없이 날아가는 벌판엔 가는 금이 그어져 있었다. 아마도 옛 금강산 전기철도가 다니던 흔적일 것이다.

    목가적인 풍광의 벌판을 바라보면서 어떤 이는 소떼만 몰고 가면 곧바로 목장이 되겠다고 말했으며, 어떤 이는 따로 설계할 것도 없이 홀 컵만 박으면 그대로 골프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어떤 이는 스크래치 기법의 멋진 그림이라고 했으며, 어떤 이는 고도의 조경기법을 도입한 대공원이라고 했다. 웅장한 철책과 숲속에 숨은 진지, 시각매개물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뛰노는 고라니, 벌판을 횡단하는 선전방송의 시끄러운 소리를 들으면서 급기야 DMZ는 20세기의 기념비적인 설치미술이라고 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창작 의도는 없었다. 그 작품은 예기치 않게 빚어진 ‘뜻밖의 결과’다. 철책과 진지와 터널과 도로 그리고 중화기가 점령한 능선은 풀 한 포기 없이 벌겋게 벗겨져내린 흉측한 상처를 드러낸다. 그 상처는 그 아래 펼쳐진 아름다운 풀밭도 누군가로부터 쉴새없이 불세례를 받고 있음을 말해준다. 듬성듬성 서 있는 키 큰 나무들이 가지치기가 돼 있는 것도 그 불길이 벌판을 뒤덮을 때마다 날름날름 혀를 내밀며 나무 밑을 지나갔음을 말없이 증언한다.

    그 풀밭은 초식동물에겐 낙원이 되었다. 전쟁으로 대형 육식동물이 대부분 사라져 그곳엔 동물을 잡아먹는 동물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한 먹이사슬이 형성됐다. 천적이 없으니 고라니 따위가 백수의 왕 노릇을 하며 속절없이 종족을 번식시킬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속단이다. 무엇이 그들의 천적 노릇을 대신하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DMZ는 야생동물에게조차 결코 평화스런 곳이 아니다. 산불은 그들의 서식처를 불태웠고 고엽제에 오염된 풀밭, 가랑잎에 몸을 감춘 발목지뢰, 나뭇가지에 매달린 부비트랩도 먹이를 찾아 나서는 그들을 기다렸고, 더러는 그런 것들에 의해 희생되기도 했을 것이다. 더러는 그런 위험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터득했을 것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벌판을 말잔치장이나 야외음악회장으로 만들고 있는 고출력의 확성기 소리에도 시달려야 했다. 밤마다 불야성을 이루는 철책선의 불빛, 고지의 ‘부처님 오신 날’ 연등, 까마득한 높이까지 꼬마전구가 매달린 크리스마스 트리도 신경 거슬리는 것들이다. 군 막사와 벙커, 둔탁한 굉음을 내는 장갑차나 육중한 트럭, 어디서나 불쑥불쑥 나타나는 무장한 군인은 야생 동물에겐 너무나 겁나는 것들이다.

    그러나 야생 동물들은 차츰 그것들이 자신들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고라니떼는 자신을 관찰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산양은 농약과 비료와 트랙터 그리고 사람 냄새가 찐득하게 밴 채소나 곡물을 받아먹기 위해 철책선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멧돼지떼는 소금기 많은 군용 잔밥에 맛들여 취사장에까지 출몰한다.

    DMZ의 자연은 ‘손대지 않은 자연’이 아니다. 혹독한 간섭에 철저히 길들여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사실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됐던 DMZ의 자연은 더 오랜 기간 냉전에 시달렸다. 나무는 더 자랄 수 없었으며, 불탄 숲은 초지로 바뀌었다. 사람을 피해 숲으로 들어간 동물들은 지뢰나 소음, 불빛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 환경에서 용케 사는 방법을 터득한 동물은 화공작전에 또 어디론가 쫓겨가야 했다. 결국 DMZ의 자연생태계는 교과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설악산 오대산 지리산의 나이 든 숲과는 달리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나아갔다. 옛날 그곳에 살던 사람이 찾아온다면 너무 낯설어 탄식을 할 만큼 대규모 성형수술을 한 모습이다. DMZ의 성형수술 흔적을 살펴보자.

    # 풍경 1

    빨간 경고표지판을 주렁주렁 매단 지뢰밭속 숲에서는 봄마다 진한 향기를 내뿜는 나비 같은 하얀 꽃이 만발한다. 20세기 초 한국에 처음 들어와 황폐한 땅을 급히 복구하는 데 쓰이던 아카시아나무다. 쓰임새가 많은 데도 왕성한 번식력 때문에 다른 나무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해 미움을 받는 나무다. 뾰족한 촉수를 흙속에 감추고 지뢰가 웅크리고 있는 그곳에 누가 그 미운 나무를 심었을 리 없다. 사람이 오지 못하는 지뢰밭에서 마음껏 자유를 구가하듯 DMZ의 아카시아는 아름드리나무로 자랐다.

    # 풍경 2

    한국사람은 돼지풀(Hog weed)이라는 독초를 잘 모른다. 북아메리카가 고향으로 만주지방에도 많이 산다. 한 해 키가 1∼3m까지 자라는 이 풀을 한국전쟁 이전에 한국에서 보았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지금 DMZ 일대에서 자라는 식물을 하나하나 헤아려본다면 돼지풀보다 더 많은 걸 찾기 어려울 것이다. 2000년 실시된 한탄강 상류의 자연생태계 조사에서 이 일대 37개 관속식물 가운데 단풍잎돼지풀과 둥근잎돼지풀이 가장 밀도 높은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돼지풀의 꽃가루는 사람에게 알레르기성 비염과 눈 질환을 일으키는 등 워낙 폐해가 커 1999년 6월 생태계 위해종으로 지정됐다. 산성물질을 분비해 다른 자생식물과 곤충들을 죽이고 오염된 토양에서도 번식속도가 빨라 식물 생태계의 폭군으로도 불린다. 이 풀이 전쟁기간 동안 전쟁물자에 묻어 한국에 상륙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인간의 전쟁은 50년 전에 끝났지만, 돼지풀은 토착식물들을 밀어내고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려는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민들레는 길가에서 사람의 발길에 밟히며 자라는 들풀이다. 그 풀은 높은 산까지 올라가지 않는다. 그러나 해발 1300m나 되는 대암산 정상에는 축구경기장만한 민들레밭이 펼쳐져 있다. 키가 큰 서양민들레다. 마치 공정대처럼 그 산 위까지 날아와 고산식물들을 몰아내고 ‘그들의 나라’를 세운 것이다. DMZ는 중국 국화, 미국 미역취, 개망초, 달맞이꽃 등 97종의 식물이 이민해온 외래식물의 전시장이다.

    # 풍경 3

    독수리는 ‘추락하는 새’란 별명을 하나 더 달아야 할 만큼 DMZ에서 그 명예가 추락할 대로 추락했다. 독수리가 처음 강원도 화천에 나타난 것은 1993년 12월14일. 이 날은 12년 전 동해안에서 한번 모습을 보였을 뿐 한국엔 없던 종(種)이 출현한 날로 기록된다. 독수리의 DMZ 데뷔는 완전 실패다. 양쪽 날개를 펴면 2m나 되고 무서운 눈, 날카로운 부리, 굵은 다리와 발톱을 지닌 독수리가 그 위용에 걸맞지 않게 배가 고파 탈진한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온 것이다. 추락한 독수리는 하루 1만2000원어치의 닭, 생선, 돼지고기를 대접받는 극진한 보호를 받고 건강을 회복해 자연으로 되돌아갔다. 그후 DMZ는 몽골에서 날아오는 이 새의 겨울보호처가 되고 있다. 현재 DMZ 인접지역 12개소에서 독수리 1500여마리가 주민 보호로 월동한다.

    개발이 철새를 불러들인 경우도 있다. 철원평야의 관개를 위해 농민들은 철원 ‘흙다리’라고 불리는 곳에 흙다리처럼 생긴 둑을 쌓고 토교저수지를 건설했다. 그 저수지가 지금 기러기, 청둥오리, 가창오리의 본거지가 되었다. 그 옛날 기러기는 가을하늘 높이 V자를 그리며 날아가는 철새였지 철원평야에 내리지는 않았다.

    2000년 3월 한 공중파 TV에서 DMZ 자연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화면엔 날카로운 바위를 자유자재로 오르내리는 산양이 들고양이들에게 도망 다니는 모습이 비춰졌다. 그걸 보고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댔다. 집고양이가 야생하면서 들고양이가 됐을 텐데 그들이 어떻게 DMZ까지 와 먹이사슬 균형이 깨진 DMZ 동물생태계에서 ‘왕’ 행세를 할까. 답은 간단하다. 쥐는 마음만 먹으면 고양이도 이주시킬 수 있다. 그들 들고양이의 조상은 군인들이 진지와 장비를 갉아내고 식량을 도둑질하는 쥐를 퇴치하기 위해 기르던 귀여운 검은 고양이들이다.

    # 풍경 5

    방역당국은 2001년 초봄 DMZ 인근지역에 광견병 미끼백신(Rabies bait vaccine)을 시험 살포했다. 미끼백신이란 동물들이 좋아하는 미끼에 예방주사 효과가 나타날 수 있는 백신 성분을 넣어 비행기로 산악지방에 뿌리거나 야생동물이 많은 지역에 배포하는 것이다. 광견병은 DMZ 일대의 풍토병이 된 지 오래다. 전 지역이 광견병을 옮기는 래비즈 바이러스(Rabies Virus) 잠재지역이다. 1998년부터 3년 동안은 광견병 발생빈도가 더욱 높아 모두 116마리의 가축이 이 병을 앓다 죽었다. 1993년 9월18일, 철원군 동송읍 오지리 한 농가에서 기르는 여덟 살짜리 발바리가 오소리 한 마리를 잡았다. 그런데 한 달 후 발바리는 미쳐 날뛰다 죽었다. 광견병에 걸렸던 것이다. 방역당국은 문제의 오소리가 날카로운 이빨로 발바리를 공격하면서 옮긴 래비즈 바이러스를 찾아내 DMZ 일대의 오소리, 너구리 같은 야생동물이 악성 전염병을 옮긴다는 사실을 입증해냈다.

    말라리아는 학질모기가 매개하는 원충(原蟲) 감염증이다. 말라리아를 앓는 사람의 피를 빨아먹은 모기가 또 다른 사람을 공격하면서 그 원충을 매개한다. 이 병도 1966년 집단 발병한 뒤 자취를 감췄다가 1993년 여름 파주, 김포에서 군인과 민간인 5명에게 발병한 이래 해마다 여름이면 DMZ 인접지역의 단골병이 되고 있다.

    냉전은 평화도 아니고 전쟁도 아닌 이상한 전쟁이다. 그 이상한 전쟁이 자연을 이토록 생경하게 가공해놓았다. 전쟁에 정신이 팔려 있던 우리가 반세기 전 그곳에 가둬둔 자연이 어디로 어떻게 가고 있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사람들이 그곳에 순수한 자연이 있다는 말을 하거나 말거나 그곳의 자연은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던 셈이다. 지금 DMZ는 중증을 앓으며 신음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뜻밖의 자연’을 방주에 실어 구제할 것인지는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DMZ가 사라질 찰나인 데도 막연히 에덴동산이리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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