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골산 독수리가 DMZ 일대를 찾아온 것은 10여년밖에 안 된다. 이들은 사람이 던져주는 먹이로 ‘구걸 월동’을 한다(위). 군인들의 ‘잔밥통’을 찾아온 DMZ의 멧돼지떼(아래).
농민들의 추경 시위는 그곳에 농민이 없으면 철새도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이는 ‘그곳엔 인간이 손대지 않은 자연이 있다’던 말과 전혀 다른 것이다. 오히려 철원평야의 철새 낙원은 전쟁의 그루터기에 지독한 인간 간섭이 가해진 합작품인 셈이다. 그 자연은 예기치 않던 ‘뜻밖의 자연’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DMZ의 자연을 하느님이 몸소 만들어낸 에덴동산,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태초의 자연으로 착각한다. DMZ 자연생태계에 대한 그런 오해부터 풀어야 한다.
DMZ 자연생태계가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20여년 전부터다. 그때까지만 해도 DMZ는 일반인에게 미지의 세계였다. 그런데 아주 엉뚱한 계기로 기자들이 DMZ로 모여들였다. 1983년 여름, 동해안 향로봉산맥의 한 기지에서 전역한 한 젊은이가 황당한 얘기로 사람들을 웃겼다. 그는 산맥의 바다 한가운데 너무도 외롭게 떠 있는 기지를 ‘독도’라 부른다고 했다. 독도기지가 있는 그 산맥을 넘어가면 남강(南江)이라 부르는 시퍼런 강이 흘러가는데, 그 강엔 너무 자라 사람 허벅지만한 물고기가 우글거리고, 강기슭엔 그 옛날 강마을의 가축들이 아무렇게나 짝을 지어 태어났는지 얼굴은 염소 같고, 몸은 말 같은 이상한 동물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곳은 DMZ가 지나는 곳이어서 갈 수 없다고 말했다.
필자는 DMZ의 강에 살고 있는 큰 물고기를 안다. 허벅지만하다는 건 과장이라 하더라도 고등어나 명태만한 물고기는 본 적이 있다. 위장한 것 같은 얼룩무늬도 별로 보기 좋지 않지만, 잡을 테면 잡아보라는 듯 좀처럼 멀리 도망치지 않는 그 거드름이 기분 나빴다. ‘돌땅’을 놓고, 포위작전을 펴며 가까스로 물 밖으로 끌어냈을 때 놈은 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 펄떡였다.
“누가 이 물고기 이름 알아? 아무도 몰라? 좋아, 이제부터 이놈을 김일성 고기라 부른다!”
필자도 한때 ‘김일성 물고기’(나중에 열목어로 밝혀졌지만)를 명명하던 DMZ 병사였다. 중동부 전선에서 군대생활을 한 병사들에게 얼굴은 염소 같고 몸은 말을 닮은 동물은 그리 이상하지 않다. 병사들은 그 동물을 ‘말염소’(나중에 산양으로 밝혀졌지만)라고 명명해놓고, 그놈들이 깎아지른 듯한 높은 절벽을 록 클라이밍하는 모습을 혀를 내두르며 감상하곤 했기 때문이다.
독도의 용사가 말한 남강의 사람 허벅지만한 물고기는 ‘김일성 물고기’일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얼굴은 염소 같고 몸은 말을 닮은 동물도 그 ‘말염소’일 게 틀림없었다. 제대 후 민간인으로서 ‘김일성 물고기’와 ‘말염소’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그림같이 펼쳐진 벌판과 금강산으로 가다 끊긴 신작로, 새끼 두 마리를 껴안듯 몰고 가는 고라니 가족, 무슨 영문인지 해발 1300m나 되는 고지까지 올라와 꽃을 피우고 있는 민들레…. DMZ의 풍광이 그립기까지 했다.
DMZ는 분명 전장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 섬뜩한 모습 대신 아름답고 재미있고 희망적이며 교훈적인 DMZ의 풍경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1984년 여름, 자연생태·역사유적·인문지리 등 체계적인 민통선북방지역학술조사단이 꾸려졌다. 조사단은 동해안에서 임진강 하구까지 DMZ와 민통선 지역의 생태를 알아보고 정리해 언론에 공개했다. 1년 동안 시리즈로 연재된 민통선북방지역학술조사 보도는 언론사상 최초이자 최장기 보도라는 영예를 얻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국민을 ‘DMZ=자연생태계의 보고’란 인식에 빠져들게 한 첫 사건이 되고 말았다.
‘김일성 물고기’와 ‘말염소’
DMZ의 자연생태계나 자원에 대한 조사는 종종 이뤄졌다. 그러나 경의선과 동해선 복원 공사현장의 환경영향평가를 계기로 DMZ내 자연조사를 한 것을 제외하면 공식적으로 DMZ를 조사한 일은 단 한번도 없다.
정전협정 제1조 제8항은 ‘비무장지대 내의 어떠한 군인이나 민간인이거나 그가 들어가려고 요구하는 지역이 사령관의 특정한 허가 없이는 어느 일방의 군사통제하에 있는 지역에도 들어감을 허가하지 않는다’고 규정했으며, 지금까지 어떤 조사단도 그런 허가를 받아본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