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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책 하고 놀자’

두 권의 ‘황진이’를 읽는 법

남한 여류소설가의 섬세한 속삭임 vs 북한 원로 남성작가의 선 굵은 외침

  • 글: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kafkajs@hanmail.net

두 권의 ‘황진이’를 읽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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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중은 황진이의 행적과 일화를 서사의 중심축에 놓으면서도 주변인물의 성격과 심리를 꼼꼼하게 묘사한다. 그들의 처지와 정황을 신분사회의 질곡이라는 원근법 속에서 파악함으로써 한 인간이 끌어안고 있는 실존의 모순이 시대적·사회역사적 산물이라는 것을 분명히 드러낸다. 황진이가 불가피하게 떠맡은 실존의 모순은 외부의 정황에서 발생하지만 그것은 내면화되며 삶을 지배하는 원리가 된다.

전경린의 황진이는 자유혼을 갖고 끊임없이 도망가려고 하는 탈주자다. 자신의 삶이 몇 겹이나 되는 모순의 감옥에 갇혀 있다는 투명한 자각에 이른 존재다. 황진이는 제 삶을 억압하는 다섯 겹의 감옥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어미와 아비가 만든 감옥이 첫 번째 감옥이겠지요. 나라에서 만든 온갖 법과 규제의 감옥이 두 번째 감옥이겠고, 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끼리의 관습과 인정과 통념이 세 번째 감옥이겠고, 늘 멀리서나 곁에서나 쳐다보는 타인들의 시선이 네 번째 감옥이겠고, 무엇보다 자기 속에서 자기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괴물같이 커다란 눈이 다섯 번째 감옥이겠지요.”

남존여비, 일부종사, 칠거지악 같은 여성억압적 가치관이 시퍼렇던 조선시대에 여성으로, 아니 여성보다 훨씬 더 비천한 신분인 기생으로 살아야 하는 운명이 황진이가 불시착한 유령적 실존의 자리다. 그 삶은 불우하고 고달팠다. 하지만 기생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자신의 운명임을 알아차린 황진이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길로 들어선다.

“어머니가 죽어간 그 자리에서 나는 거꾸로 살려고 하는 거예요. 그 자리가 저라는 씨앗을 떨어뜨린 자리이니, 그곳에서 꽃 피울 수밖에요. 진흙 연못을 이이 어디 다른 꽃으로 가 꽃을 피우는가요? 세상 바깥에서 온몸을 물에 담그고 천하게 살겠지만 내 생은 길고 짧거나, 천하고 귀한 세상의 이치를 벗어나 자유로울 거예요.”



자유혼을 가진 탈주자

황진이는 이미 여성을 억압하는 세계에서 탈주한 여성이다. 남성의 그늘에서 기생하는 존재가 아니라 당당하게 독립된 삶의 주체로 서 있는 존재다.

전경린이 그려내고자 했던 황진이는 끊임없이 억압의 사슬을 끊고 탈주하는 자유인의 모습이다. 바로 거기서 ‘나는 나다’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발랄한 현존의 한 원형을 구현해내려고 했던 것이다. 황진이는 방외인, 즉 체제 바깥으로 튕겨나간 아웃사이더다. 자발적 방외인의 삶을 스스로의 실존으로 선택함으로써 황진이는 제 삶을 절대자유의 경지라는 토대 위에서 주체적인 것으로 세운다.

“어떤 삶이 검은 창자를 벌리고 나를 기다릴지라도, 그곳이 산이든, 집이든, 풀숲이든, 길 가운데든, 중이 되어 걸식하든, 벌레가 되어 기든, 상것이 되어 손이 발이 되도록 상하며 살든, 나는 나다. 나는 언제나 진이다. 나는 홀로 나의 신 앞에 선다.”

황진이가 주목받는 것은 유교의 강압적 계율 또는 남성 중심의 사회에 흡수되기보다는 끊임없이 거기서 벗어나려는 탈주자의 영혼, 자유혼의 표상으로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황진이는 조선의 팜파탈이며 뮤즈이고, 자유연애주의자이며 스캔들 메이커이고, 전근대의 지평에서 피어난 자생적 페미니스트다. 황진이는 자기 운명의 모순 속에 갇혀 있었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그 억압의 굴레를 벗고 나온다. 전경린은 황진이에게서 “담대한 인격과 신비로운 운명, 미적 권력을 가진 매혹적인 아니마”를 읽었다고 말한다.



당대의 인습과 제도에 발칙하게 저항하며 도발적으로 실존을 꾸린 황진이는 여러 면에서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이태준, 정한숙, 박종화, 안수길, 유주현, 정비석, 최인호, 김탁환 같은 작가들을 뒤이어 홍석중과 전경린이 황진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써낸 것이다.

신동아 200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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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kafka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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