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호

문건에 나타난 ‘MB 세종시’의 불편한 진실

”원안대로 해도 삼성, 한화 온다”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10-01-29 11:1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원안대로 해도 삼성, 한화 온다
    • 세종시 예산이 4대강 예산으로
    • ‘4개 중복’ 대구·경북 직격탄
    • 수정안 자족용지율은 숫자놀음
    • ‘행정부 분할’ 본-베를린 동반 발전
    • 정책으로 박근혜 고립화 유도
    문건에 나타난 ‘MB 세종시’의 불편한 진실

    세종시 수정안의 토지이용계획도.

    정부는 1월11일 삼성 등 대기업과 고려대, KAIST,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등을 유치해 세종시를 ‘교육·과학 중심의 경제도시’로 변경하는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했다. 대신 9부2처2청의 정부부처 이전 원안은 백지화하기로 했다.

    수정안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3조5000억원 규모 과학비즈니스벨트와 함께 삼성 한화 웅진 롯데 SSF 등 민간투자 4조5150억원, 고려대와 KAIST 등 대학투자 1조3712억원을 유치하는 등 16조5000억원(정부예산 8조5000억원)을 세종시에 투입하는 것이 골자다.

    2020년 인구 50만명 자족도시를 목표로 50만㎡ 이상의 산업용지를 개발하는 기업에는 평당 36만~40만원에 원형지를 공급하기로 했다. 세종시 건설의 경제적 편익은 수정안이 원안보다 10배 정도 높다는 KDI 분석결과도 제시됐다. 정운찬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정부부처를 분할하는 것은 행정 비효율과 통일 후 수도 재편 등을 고려할 때 그대로 추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의 수정안 발표에 야당은 일제히 반발했다. 민주당은 규탄대회를 열었고 자유선진당은 불복종운동에 들어갔다. 이회창 총재는 “수정안은 이 정권이 국가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가장 큰 문제는 법치와 신뢰의 실종”이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여당인 한나라당의 박근혜 전 대표는 원안 고수에서 물러설 의사가 없음을 재차 밝혀 수정안 국회 처리를 둘러싼 험난한 일정을 예고했다.

    정부가 말하고 싶지 않은 내용



    문건에 나타난 ‘MB 세종시’의 불편한 진실

    정운찬 국무총리가 1월11일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하고 있다.

    수정안 발표를 전후로 친이명박계와 친박근혜계는 서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에게 직격탄을 날리는 등 감정적 대결 양상을 보였다. ‘끝내 합일점을 찾지 못할 경우 한집살림을 계속하긴 쑥스럽지 않을까’라는 파국 전망까지 나왔다.(국민일보 1월10일 보도) 정부나 주류 측은 당장 입법절차에 들어가기보다는 2월이나 4월, 혹은 6월 지방선거 이후까지 ‘수정안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여론전’을 전개할 것으로 관측되기도 한다.

    따라서 정부의 수정안은 당분간 세종시와 관련된 이슈의 중심에 설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발표하는 내용만 그대로 수용하기보다는 ‘정부가 말하고 싶지 않은 내용’도 언론이 함께 전달하는 것은 정부 수정안을 균형감 있게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의 수정안에 다양한 시각과 평가를 제공하기 위해 그동안 ‘신동아’가 독자적으로 취재한 관련 문건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정부의 수정안 중에서 여론의 시선을 붙잡는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정부 부처 이전이 삼성, 한화 등 대기업 투자로 대체된 부분이다. 정부 측은 이럴 때 세종시의 성공가능성이 훨씬 높아지고 지역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도 커진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일부 정부 문건에 따르면 원안대로 세종시 건설을 추진하더라도 상당수 대기업은 세종시에 입주한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인 2009년 9월 작성된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하 건설청)의 ‘국제 태양광 박람회 참관을 위한 출장 보고서’ 문건에 따르면 건설청은 세종시로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해외 박람회에서 국내외 기업과 심층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결과 한국 기업들은 세종시 입주(행복도시 수용량)에 큰 관심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건설청은 ‘대기업 중심으로 투자유치를 추진한다’는 대응방안을 마련했다.(표 참조)

    이번 정부의 수정안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태양전지사업에 투자할 계획으로 있는 등 태양광산업 유치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원안 추진 시에도 세종시로 태양광산업을 들여오는 일은 적극 추진되었다. 건설청 문건은 9개 태양광 관련 회사의 세종시 입주 가능성을 타진하면서 특히 삼성에 대해선 “곧 태양광산업에 진출할 계획이므로 앵커시설로 조기 유치하는 방안 검토 필요”라고 했다.

    건설청 문건은 구체적으로 삼성전자, 한화케미컬, 현대중공업, 하이드로젠 솔라, 심포니에너지주식회사, 카코 코리아, STX Solar, S-에너지, Semi-materials, Alti-Solar의 세종시 입주를 추진 중이라고 했다. 외국기업으로는 OTB(네덜란드), SCHOTT(독일), Misubishi(일본), Q-Cell(독일), China Sunery(중국) 등 15개 기업과 세종시 입주 논의를 했다.

    문건에 나타난 ‘MB 세종시’의 불편한 진실


    “원안 추진시 대기업 더 온다”

    문건에 나타난 ‘MB 세종시’의 불편한 진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월12일 기자들 앞에서 세종시 수정안 반대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번 정부의 수정안 핵심은 대기업 유치이고 그중에서도 삼성, 한화가 첫 번째, 두 번째로 꼽혔다. 수정안은 대기업에 파격적인 토지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이는 향후에도 재벌 특혜, 타 지역 차별 등 사회적 충돌을 야기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 문건에 따르면 세종시 원안 추진 시에도 삼성, 한화 등 대기업의 세종시 입주가 활발히 추진됐고 대다수 대기업이 세종시 입주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원안에는 수정안과 같은 토지할인 혜택도 없었다. 한 대기업 간부는 “기업은 철저히 ‘이윤’에 따라 움직인다”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수정안이 대기업에 파격적인 토지할인을 유인책으로 제시한 것은 그만큼 세종시의 메리트(merit·장점)가 별로 없다는 방증이다. 인프라도 완전히 구비되지 않은 허허벌판으로 내려갈 이유가 없다. 그런데 원안에 따르면 세종시에는 기획재정부, 국토해양부, 환경부, 농림수산식품부, 교육과학기술부, 문화체육관광부, 지식경제부, 보건복지가족부, 노동부 등 9개 부처가 온다. 나머지 법제처, 국가보훈처, 국세청, 소방방재청 등이 오는데 이들 부처가 기업 생산성에 직접적 관련은 없다. 그러나 9개 부처는 300조원에 달하는 정부 예산의 대부분을 집행하고 중요한 인허가권을 행사한다. 기업 경영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다.

    9개 부처 이전 후, 기업 입장에선 서울에만 있어서는 이들 부처가 발주하는 사업을 따내기 힘들고 유리한 방향으로 인허가나 정부정책을 이끌어낼 수도 없다. 결국 9개 부처가 있는 세종시로 본사를 옮기거나 사무소를 낼 수밖에 없다. 내가 아는 인적 네트워크로 알아본 바로는 원안대로 부처 이전시 국내 30대 대기업 대부분은 세종시에 어떤 형태로든 입주하는 것으로 나왔다.”

    업무시설이 들어오는 것과 제조시설이 들어오는 것은 다른 개념이긴 하지만 어쨌든 ‘부처가 집적화된 곳에 기업도 모여든다’는 원칙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런 점에서 세종시 원안 추진시 삼성, 한화가 들어오고 오히려 수정안보다 더 많은 대기업이 세종시로 들어올 수도 있다.

    정부의 수정안은 충청 이외 지역에는 세종시로 미래성장동력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세종시 블랙홀’ 공포를 안겼다. 심지어 ‘부자 자치구’인 경기도의 김문수 지사마저 “세종시에 비해 경기도에 대한 배려는 100분의 1도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구·경북은 세종시 수정에 따라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지역 중 하나인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과학기술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추진지원단은 세종시 수정안이 나오기 전 ‘전국 18개 시도를 선별해 실시한 과학비즈니스벨트 거점도시 적합도 1차 계량평가 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1위는 아산 천안, 2위는 대전 대덕, 3위는 대구, 4위는 울산, 5위는 부산이었고 세종시는 6위권이었다. 원안대로 추진될 경우 충청권에 정부 부처가 대거 옮겨가는 만큼 과학비즈니스벨트는 시도안배 차원에서 비(非)충청권 중 가장 적합도가 높은 대구에 돌아갈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포항이 유치를 강하게 희망해온 중이온가속기도 세종시로 가게 됐다.

    국제과학비즈 다 잡다 놓쳐

    국무총리실 세종시 기획단 등 관련 기관 자료를 종합해 비교할 때 세종시 자족기능 방안과 대구·경북의 유치희망산업은 4개 부문에서 중복됐다.(아래 표 참조) 이 중 대구·경북의 2개 부문(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중이온가속기)은 무산됐고 나머지 2개 부문(지식경제 자유도시, 국가산업단지, 경제자유구역)도 비슷한 성격의 세종시 기업단지에 큰 폭의 땅값, 세제 지원이 이뤄지게 됨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됐다.

    자족용지율의 증가는 도시의 자족기능 향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부가 수정안의 당위성을 입증하는 중요한 근거로 제시해 왔다. 1월11일 세종시 수정안 발표에서도 정부는 “원안에서 자족용지는 전체부지의 6.7%(486만㎡)에 불과했지만 수정안은 자족용지를 20.7%(1508만㎡)로 3배 늘렸다”고 설명했다.

    문건에 나타난 ‘MB 세종시’의 불편한 진실


    그러나 원안의 자족용지율 6.7%가 적정하게 산출된 것인지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된다. 세종시 원안 통계자료에 따르면 6.7%는 전체 세종시 면적 대비 고용을 창출하는 상업지구와 공업지구 면적의 비율이다. 그러나 상업지구와 공업지구에서만 일자리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의료시설, 교육시설(초·중·고), 복지시설, 문화시설, 체육시설 등을 포함하면 세종시 원안의 자족용지율은 11.4%가 된다. 여기에서 전체면적 중 하천부지를 제외하면 세종시 원안의 자족용지율은 13.6%로 올라간다. 정부 방식의 협의의 자족용지율 척도에 따르면 서울시의 평균 자족률도 7.8%에 그치게 된다.

    정부가 발표하는 세종시 원안과 수정안의 자족용지비율은 사실 학계에서 통용되지 않는 방식의 계산법이라는 견해도 있다. 오히려 ‘1인당 자족용지(전체 자족용지/인구)’ 계산이 도시의 자족기능을 측정하는 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한다.

    1인당 자족용지로 계산했을 때 세종시 원안은 수도권 1,2기 신도시 13곳과 비교하면 광교를 제외한 12개 신도시보다 넓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자족용지 면적에서도 세종시 원안은 다른 신도시에 비해 2~14배 가까이 컸다.

    자족용지율 세 배의 허구성?

    문건에 나타난 ‘MB 세종시’의 불편한 진실

    1얼11일 국회에서 삭발한 자유선진당 국회의원 5명과 당직자들이 세종시 수정안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정운찬 총리는 지난해 10월29일 “원안대로 추진하면 세종시의 자족도가 6~7%밖에 안 된다. 기업, 연구소, 학교 등이 들어오면 자족도가 올라갈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가 이번에 수정안에 포함한 고려대와 KAIST는 2007년과 2008년 각각 세종시 입주가 결정됐다. 여기에 외국계 투자업체인 CCI도 2009년 세종시에 ‘의료과학그린시티’를 조성하기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처럼 원안 추진시 이미 세종시로 입주하기로 한 학교와 기업의 용지를 정부 계산 방식의 자족용지에 더하면 전체 자족용지는 1575만5000㎡가 된다. 세종시 원안의 자족용지율은 21.6%에 달하게 된다. 수정안의 자족용지율 20.7%와 별 차이가 없다.

    정부가 ‘세종시 수정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해 세종시 원안의 자족용지율을 의도적으로 낮게 보이게끔 발표해온 것은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자족용지율은 공인된 통계기준도 아닌 만큼 ‘수정안이 원안보다 3배 급증’ 등은 숫자놀음으로 비칠 수 있다.

    자족용지율과 함께 정부가 세종시 수정을 위해 내세운 핵심 논거는 ‘행정부처 분할의 폐해’다. 그중 본과 베를린으로 수도가 나뉜 독일 사례는 정부 관계자에 의해 자주 부정적으로 인용됐다. 정부가 2009년 11월5일 정운찬 총리와 방한 중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의 면담 내용을 언론에 공개한 것은 그 백미였다.

    슈뢰더 전 총리는 이 자리에서 “정부 부처가 분산되는 것은 좋지 않다” “본에 7~8개 부처를 잔류시키고 총리실, 연방의회, 연방상원과 나머지 행정부들을 베를린으로 이전했는데 언론기관까지 베를린으로 이전하면서 베를린이 독일정치와 언론의 중심지로 부상한 결과, 본에 잔류한 부처들이 베를린에 과도하게 경도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세월이 지나면 모두 베를린으로 이전하게 될 것으로 본다” “수도이전 비용이 과다한 것도 문제지만 본 잔류부처들이 정치권력이 집중돼 있는 베를린을 향해 보이고 있는 지나친 관심으로 인해 유발되는 부작용에 비하면 부차적인 문제”라고 했다.

    정부 측은 수도 분할 실패 사례의 생생한 증언으로 해석하는 경향이었다. 그런데 언론에 공개된 슈뢰더 전 총리의 발언 주제는 성공과 실패를 직접적으로 단정하는 것이 아닌, 두 도시 간 정치적 헤게모니(역학구도)의 불균형에 대한 것이었다. 한국에 앞서 수도 이전을 검토해온 일본의 국토교통성은 홈페이지에서 독일의 행정기관 분할에 대한 평가를 수록하고 있다. 국토교통성은 “본과 베를린으로 행정기관이 분산 배치된 이후 ‘혼합모델(하나의 행정기관이 본과 베를린에 각각 사무실을 두는 것)’의 실시로 독일의 행정개혁은 한층 진행되었다”고 긍정적으로 설명했다.

    상당수 행정기관이 빠져나간 본의 이후 상황에 대해선 “유엔자원봉사계획 등 12개 국제기관이 이전해왔고 독일텔레콤 등 600여 IT기업이 집적하여 국제도시로 계속 발전하고 있다. 앞으로 1000개의 국제기구 유치가 이 도시의 목표”라고 했다. 베를린에 대해선 “새로운 정부 건물이 들어서면서 아름다운 거리풍경이 나오고 교통 인프라의 정비도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세종시 계좌’와 ‘4대강 계좌’

    금융위원회 한 간부는 최근 국회 측에 “정부는 4대강 정비사업 예산 확보 차원에서 세종시 수정 문제를 서두른 측면도 있는 것 같다. 행정부처 이전이 백지화되면 부처 이전비용이 절감된다. 4대강 정비사업에 들어가는 정부 예산을 확보하는 데 그만큼 여유가 생긴다”고 말했다.

    4대강 정비사업은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에 홍수조절, 수자원 확보, 친환경 문화생태공간 조성을 목적으로 총 22조원을 투입하는 대역사다. 현 정부가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과제로 완공 시기는 2011년 말로 잡혀있다. 이 사업으로 35만명의 신규 일자리를 만들고 38조원의 생산유발효과를 창출한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정부로선 재정적자 속에서 제때 사업예산을 마련하는 게 커다란 과제다. 수자원공사를 참여시키고 있는 것도 사실은 정부 재정만으로 이 사업을 해나가기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9년 말 국회에서 예산 4250억원이 삭감됐다.

    이런 가운데 세종시 원안에 따르면 정부 돈으로 지출해야 하는 행정부처 이전은 세종시 건설 사업 중 가장 신속하게 예산을 집행하도록 되어 있다. 가뜩이나 재원 마련으로 고심 중인 정부로선 국정철학에도 전혀 맞지 않는 ‘미운 오리’인 부처이전에 막대한 예산을 써야 하는 게 내키지 않았을 수 있다.

    원안대로 세종시를 건설할 경우 총비용은 22조5000억원이다. 정부는 8조5000억원을 부담한다. 이 중 교통망, 학교시설 설치 외에 부처 이전비용은 1조6000억원이다. 현재 부처 이전비용 중 2500억원이 집행됐다. 부처이전을 백지화하면 적어도 잔액 1조3500억원은 안 써도 되는 효과가 나온 것이다.

    ‘세종시 계좌’에서 ‘4대강 계좌’로 이체되는 것과 같은, 딱 떨어지게 드러나는 일은 아니지만 금융위원회 간부는 “가장 하기 싫은 사업에서 뺀 돈으로 가장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부처 이전 백지화는 4대강 예산확보의 숨통을 틔워주는 데 일정정도 기여하는 건 틀림없다”고 했다.

    정부의 이번 세종시 수정발표는 행정정책의 일환이면서 동시에 ‘여의도 정치’의 역학구도 변화까지 고려한 고도의 정치적 포석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2009년 5월1일 친이명박계 핵심 인사가 만든 ‘당·정·청의 총체적 재정비 방안’이라는 48쪽 분량의 PDF 문건은 눈길을 끈다. 이 문건은 세종시 수정과 관련해서도 함의를 던지고 있다.

    ‘당·정·청 재정비’ 문건

    문건이 만들어질 당시 4월 재·보궐선거 패배로 여권의 주류는 지리멸렬한 상태였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30%대에서 정체되어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여권 주류에선 어떻게든 정국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던 때였다. 이 문건은 청와대에도 전달되었는데 여권 인사들에 따르면 이후의 정국 상황은 놀라울 정도로 이 문건이 제안한 그대로 흘러갔다는 것이다.

    문건은 여권 재정비의 목표설정, 여권 재정비의 필요성, 한나라당 개편방안, 대통령실 개편방안, 내각 개편방안 등 다섯 단락으로 되어 있다. 문건 내용과 이후 실제 정치사건의 일치 여부를 살펴봤다.

    문건에 나타난 ‘MB 세종시’의 불편한 진실
    문건은 “박근혜 전 대표가 차기 대권구도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확보한 상황에서 친이계가 당권을 지속적으로 장악할 수 있는 당내 기반 확보”를 강조했다. 이를 위해 “친박계의 포섭 및 견제”를 강조하면서 그 방안으로 “상징성 높은 원내대표에 친박계 핵심인사 배치”를 제안했다. 대신 “대통령의 의지를 실현할 MB직계의 당 장악 및 친박계 견제가 가능한 구조 정립”을 조건으로 걸었다. 이어 그 적임자로 ‘김무성’을 지목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친박계의 핵심을 상징성 높은 자리에 배치함으로써 대통령 지지층 복원의 레버리지로 활용 필요. 1·19개각시 ‘거국내각’ 컨셉이 활성화되지 않아, 경제팀 교체에도 불구하고 소기의 지지도 상승효과를 거두는 데 한계가 있었음. 4월 재·보선 참패로 ‘박근혜 포용’ 이미지를 한나라당 지지층에게 반드시 전달해야 하고, 그 현실적 수단은 김무성 원내대표 안이 거의 유일함.”

    그런데 이 문건이 전달된 지 5일 뒤인 5월6일 이명박 대통령과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실제로 청와대 조찬회동에서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에 공감대를 이뤘다”고 깜짝 발표했다. 그러나 미국 체류 중이던 박근혜 전 대표가 이를 거부하면서 김무성 원내대표 카드는 무산됐다.

    문건은 대통령실 개편의 필요성과 그 방안을 제안했는데 수석비서관을 포괄지휘하는 선임수석급인 정책상황실장 설치, 대변인실과 홍보기획관실을 통합한 홍보수석실 신설 등을 제안했는데 8월31일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실 개편을 단행했다. ‘정책상황실장’이 ‘정책실장’으로 직함이 달라진 것 외에는 문건이 제안한 내용 그대로 개편됐다.

    김무성, BH개편, 정운찬, 親서민…

    문건은 또한 이번 세종시 수정의 발화점이 된 정운찬 총리 발탁을 제안한다.

    “고소영 강부자 이미지 탈피 및 반부패 사회개혁 추진을 위한 정당성 확보 차원에서 이명박 정부의 얼굴인 총리를 청렴한 인사로 임명 필요. 사회개혁을 주도하는 데 문제가 없는 인물. 우경화된 정부의 이미지 탈색을 위해, 상대적으로 진보인사 임명 필요.”

    이어 문건은 “새로운 차기 대선주자를 부각시키는 기회로 활용할지 여부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면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또는 신인령 전 이대 총장이 요건에 부합”이라고 했다. 9월3일 이명박 대통령은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총리 후보로 지명했다.

    문건이 제안한 ‘친(親)서민’ ‘사회통합 정체성 강화’ 노선은 2009년 중반기 이후 이명박 정부의 주된 국정기조로 받아들여졌다. 마지막으로 현 여권 주류가 궁극적으로 박근혜 전 대표 측과 민주당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 조언했다. 문건은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노선, 정책을 정립함으로써 친박계와 민주당의 고립화 유도”라고 했다. 세종시 수정 승부수는 정책으로서 정적(政敵)을 고립화하려는 이러한 전략의 연장선일까.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