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9일(토요일) 오전 10시50분 과천경마장 예시장(豫示場). 서울 1경주(일반경주, 국내산 6군, 1300m)에 출전하는 말들이 패션쇼를 하듯이 천천히 장내를 돌았다. 경마정보지를 손에 쥔 수십여 명의 사람이 말들의 몸 상태를 살폈다. 기수들은 무표정했다. 이윽고 5번 말을 탄 박태종(46) 기수가 등장했다. 박 기수의 모습은 그를 태운 밤색의 말 핍스플러스처럼 평범했다. 1만회 기승(騎乘)이라는 한국경마 사상 초유의 기록을 세웠으니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나의 막연한 예상은 빗나갔다. 기수를 태운 말들은 마필관리사들에게 이끌려 지하마도를 거쳐 경주로로 나아갔다. 11시20분에 시작된 경주는 1분30초도 안 돼 끝났다.
#장면 2
경주를 막 끝낸 말들이 속속 장안소 하마대(下馬臺)에 도착했다. 말들의 몸에서 허연 김이 모락모락 솟아났다. 역한 말 냄새가 진동했다. 기수들의 얼굴엔 모래가 묻어 있다. 색동저고리 같은 기수복은 모래와 흙으로 더럽혀졌다. 박태종 기수의 상의는 파란색인데 한가운데에 노란색과 빨간색 줄무늬가 가로로 새겨져 있다. 하의는 다른 기수들처럼 흰색이다. 거기에 노란색이 곁들여진 검은색 장화를 신었다.
박 기수는 검량(檢量)위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말에서 내린 후 안장을 풀고 말의 목을 가볍게 두들겼다. 이어 안장과 패드 따위를 들고 검량실로 들어섰다. 경기 후 기수의 체중과 마필부담중량을 재는 후검량을 받기 위해서다. 그의 후검량은 이상이 없었다. 만약 전검량(말을 타기 전 중량)과 후검량이 1㎏ 이상 차이나면 실격처리된다. 500g만 빠져도 조교사에게 과태료가 부과된다.
후검량 대상은 7착(7등)까지다. 12마리가 뛴 이번 경주에서 박 기수의 말은 6착으로 들어왔다. 상금은 5착까지만 주어진다. 그의 말은 1300m를 도는 데 1분25.3초 걸렸다. 우승마의 기록은 1분22.6초.
후검량을 통과한 박 기수는 기수대기실로 가 옷을 갈아입었다. 다음 경주(서울 4경주, 오후 1시10분 발주)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는 오늘 2, 3경주에는 출전하지 않는다. 그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중간 이상은 되는 말인데, 순발력이 떨어졌어요. 만족스럽지 못하죠. 3, 4등은 할 줄 알았거든요. 추입말(追入馬)인데 처음부터 워낙 쫓아가질 못했어요.” 추입말은 선행말(先行馬)을 뒤쫓아가다 막판에 추월을 시도하는 말이다.
“앞이 하나도 안 보이더라고”

1월9일 서울 6경주에서 8번마를 타고 달리는 박태종 기수.
#장면 3
오후 3시20분. 서울 7경주(일반경주, 혼합 3군, 1400m)가 시작되기 5분 전이다. 마권을 사들고 4층 관람대로 갔다. 장내는 담배 연기가 뿌연 가운데 경마정보지와 마권을 들고 서성거리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오늘 박태종 기수의 4번째 경주다. 1경주에서 6등을 했던 그는 4경주, 6경주에서는 두 번 다 2등으로 들어왔다. 나는 단승식과 복승식, 복연승식으로 나눠 박 기수가 탄 13번 말 흑별에 걸었다. 단승식으로는 13번 말에 4000원, 복승식으로는 13번과 1번 말, 13번과 14번 말에 각 2000원씩, 복연승식으로는 13번과 1번 말에 2000원을 밀어넣어 모두 1만원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