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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대 출신 주성하 기자의 북한 잠망경 ⑦

시장과의 힘 겨루기에 나선 북한, 최후의 승자는?

화폐개혁 막전막후, 2010년 1월 북한의 현주소

  • 주성하│동아일보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시장과의 힘 겨루기에 나선 북한, 최후의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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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09년은 1992년과는 근본적으로 상황이 다르다. 1990년대 중반 국가에서 배급을 주지 못하게 되면서부터 주민들은 장마당에 매달려 살기 시작했고 그때로부터 15년 가까이 흐른 2009년에는 부익부빈익빈에 따른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졌다. 그런데 화폐개혁이라는 날벼락이 떨어지면서 북한 돈 뭉치를 깔고 앉아 걱정 없이 살던 사람들이 졸지에 하루하루 겨우 먹고살던 이웃과 똑같은 돈을 갖게 된 것이다. 북한 당국은 10만원 이상은 저금하라고 했지만 북한 주민들은 이미 은행에 들어간 돈은 찾을 수 없어 자기 돈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을 경험상 알고 있다.

물론 잘사는 집은 좋은 주택에 비싼 가전제품, 외화 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옆집과 완전히 평등한 처지에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큰 의미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빈부격차가 줄어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직장인은 환영, 장마당 상인은 불만

이 때문에 이번 화폐개혁은 많은 주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가장 큰 지지자들은 당국에서 시키는 대로 직장에 다니는 계층이다. 노동자, 농민, 지식인 등이 해당된다.

이들은 장마당에 나가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직장에 나가야 했다. 출근하지 않으면 노동단련대에서 강제노동을 해야 하는 등 각종 처벌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장에서 배급을 받는 사람은 거의 없다. 월급은 보통 3000~4000원 받지만 이는 쌀 2㎏도 사지 못하는 보잘것없는 금액이었다. 처벌이 무서워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각종 핑계를 내대고 직장에 나가지 않고 시장에서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부럽고 배가 아픈 심정이 될 수밖에 없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같은 노동자였던 사람들이 오늘날 부자와 가난뱅이로 갈라짐에 따라 시장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박탈감은 훨씬 커지고 이는 제도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졌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북한 사회가 자본주의 제도인지 사회주의 제도인지 모르겠다는 불평을 자주 했다.

그런데 이번 화폐개혁은 시장에서 부를 축적한 계층을 희생양으로 만들었다. 열심히 번 돈을 한순간에 날려버린 사람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다. 북한에 강한 불만세력들이 생겨난 것이다. 물론 이들의 분노가 집단적 반발로 이어질 가능성은 적다.

반면 직장에 다니던 사람들은 이러한 조치에 대해 오랜만에 제대로 된 정책이 나왔다고 쌍수 들고 환영했고 심지어 돈을 몰수당한 계층을 고소하게 생각하는 심리마저 생겨났다.

은퇴한 연금생활자들도 이번 조치를 환영하고 있다. 월 평균 1000원 안팎의 돈을 받던 연금생활자들은 기존에는 이 돈으로 옥수수 1㎏밖에 못 샀지만 이제는 최소한 10㎏ 이상을 살 수 있게 됐다. 구매력이 크게 높아진 것이다. 물론 앞으로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짐에 따라 구매력은 떨어지겠지만 지금 당장은 근로자들과 연금생활자들의 구매력이 화폐개혁 전보다 크게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북한 당국은 이런 지지세를 업고 화폐개혁의 2단계 조치로 외화를 보유하고 비싼 집을 사들였던 부유층을 단속하려 하고 있다.

계획경제 부활 노리는 북한

주목할 점은 화폐개혁 직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남 김정은의 생일인 1월8일을 휴일로 지정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김정은이 통치하면 인민을 위한 시책을 펼 수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것이다. 화폐개혁으로 오랜만에 여론이 우호적으로 돌아선 이 상황은 북한 당국에 있어 3대 후계세습을 주민들에게 자연스럽게 알릴 수 있는 최선의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화폐개혁은 3대 세습을 위한 당국의 고도 전략일지도 모를 일이다.

평등주의 이념 구현과 후계체제 구축이라는 설명을 제외하고도 이번 화폐개혁의 목적은 또 있다. 그것은 계획경제를 부활시키고 장마당에 흩어진 인력들을 조직생활로 복귀시켜 당국의 통제력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표면적으로는 이것이 이번 화폐개혁의 가장 중요한 이유일 수 있다.

지금까지 북한에서는 국가가 화폐를 찍어 발행하면 그 돈이 다시 국가 은행에 들어오는 순환이 이뤄지지 않았다. 아무리 화폐를 많이 찍어봤자 이 돈은 발행되는 즉시 장사꾼들의 장롱 속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물론 이는 은행이 저금한 돈을 돌려주지 않아 주민들의 신뢰를 완전히 잃었던 것이 결정적 이유다. 어쨌거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격으로 계속 화폐만 발행하다 보니 북한의 인플레이션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게다가 사실관계를 확인하긴 어렵지만 중국 범죄조직들이 만든 북한 위조 화폐가 대량으로 유통되고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은 화폐개혁을 통해 지금까지 발행했던 화폐를 일거에 휴지로 만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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